11월 25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존재선생 선양모임’인 「기념사업회」가 출범했다. 창립총회 행사장은 장흥읍 외평길 농협 하나로마트 2층 강당. 준비위는 회원 200여명과 여러 기관의 관계자 등 550여명에게 안내장을 보냈다. 다만 참석자를 50명∼100명 정도로 보고 150개의 의자를 놓았다. 그런데 170여명이 모였으니 성황을 이룬 것이다. 되돌아보면 이 조직 하나가 태어나기까지 숱한 곡절이 있었다. 2007년 선생의 덕과 학문을 선양할 조직의 필요성을 제기한지 무려 9년여의 시간이 흐른 셈이다. 도문회는 운영위에서 전후 네 차례나 「존재학회」설립을 결의하고도 흐지부지하기를 거듭했다. 2012년에는 다른 성씨들을 이사로 위촉해서 회의까지 갖고도 역시나 유야무야하기도 했다. 조직을 반대한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거창한 구실 중 하나는 “학회는 남이 하는 것이다.” 퇴계, 율곡, 다산 등의 경우는 충분히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깊은 속을 들어다보면 후손들의 작용이 컸던 것을 간과한 말이다. 다음은 “책을 팔아먹으려 획책한다”거나 “자파 조상이 아니다”라거나 “법인설립에 돈과 절차가 복잡하다”는 등의 이유들이다. 결국 사업회는 이도저도 못해 지난 3월 7일 해남세무서로부터 ‘비영리법인’ 인가를 받아 출범했다. 세무서의 비영리법인사업증은 시·도나 중앙정부의 허가를 받은 ‘사단법인’에 비하면 공신력이 한참 뒤진 것은 분명하다. 만시지탄이지만 이 정도의 선양회가 출범하는 것도 선생이 타계하신지 무려 218년만의 일이니 어찌 과소평가야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존재선생의 선양조직은 끝내 순탄하지는 못했다. 올해는 시조공이 동래한지 1378년이다. 문중조직을 만들고 기묘초보를 편찬하고 제각을 짓는등 어려운 일을 했다. 하지만 특정 조상의 덕과 학문을 선양하자는 조직은 꿈도 꿔보지 않았다. 천신만고 끝에 존재기념사업회를 창립하던 날 문중 원로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이를 오비이락이라 했던가.
◇遣懷 三僻由來世共鳴 삼벽 三僻 : 인벽(人僻), 지벽(地僻) 성벽(姓僻)을 말하는 것으로 여기서는 자신을 일컫는다.(존재집 권4 與兪參奉孟煥別紙, 국역 존재집 1권 180쪽) 이라 세상사람 모두가 비웃지만 每逢佳境獨吟詩 매번 좋은 경치 만나면 홀로 시를 옲조리니 經綸器局雖非呂 경륜과 재주 비록 여상은 아니지만 堯舜襟期豈讓伊 요순의 포부를 어찌 이윤에게 사양하랴 伊尹과 呂尙 : 상의 탕왕 숭상인 이윤과 주의 무왕을 보좌하여 은을 멸망시킨 여상의 병칭으로 모두 저명한 재보(宰輔)이다.
暗不欺心天可質 하늘도 보장할 떳떳한 마음이며 學全師古我無疑 의심 없이 옛 성인을 배우고자 함이여 明窓晝永春風暖 긴긴 낮의 밝은 창에 봄바람 따뜻하니 幽人夢覺時正是 바로 은자가 꿈에서 깨어난 때라오 경윤과 재주가 여상에는 못 미치나 포부는 이윤에게 사양할 수 없다. 이는 겸양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하(夏)의 걸왕(傑王)을 쳐서 상(商)을 건국한 이윤(伊尹)이나 무왕을 도와 은(殷)의 주왕(紂王)을 쳐서 주(周)를 세운 여상(呂尙)에 뒤지지 않다는 자부심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재주를 알아준 지도자와 벽항출신, 끌어 줄이 없는 성씨로 태어난 것이 곧 삼벽이란 것이다. 존재선생의 삼벽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이글은 '광주종친회밴드'에 게재된 원산소장님의 글을 옮겨왔습니다.
시작이 반이라고들 하는데 우리 문중 젊은이들이 힘을 모아 차근차근 일을 진행해가는데 일조하길 요청합니다.
마음에 와닿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장흥위씨의 한사람으로서 죄송하다는 생각에 몸들바를 모르겠고 가슴이 뭉클하고 마음에 와닿는 글을 올리셨네요.열심히 하겠습니다.잘보고 갑니다.
해가 떴습니다...이제 중천으로~~~
어제 장흥읍 억불산 일출...
존재기념사업회 지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