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개구리찜/靑石 전성훈
어린 시절이나 젊은 날 맛보았던 별미, 아무리 세월이 오래 지났어도 어느 날 불현듯이 생각나는 음식이 누구나 한두 개쯤은 있기 마련이다. 사람마다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음식 또는 간식거리는 다를 게다. 그중에는 어느 틈에 이미 자취를 감추어버려 다시는 맛볼 수 없는 것도 있다. 세상의 흐름에 따라 어떤 특정한 음식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분위기가 변한다든지 또는 혐오 식품이나 음식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으면 서서히 사라지는 음식도 있다. 이런저런 음식 중, 나이 지긋하신 분들 기억에 있는 별미의 하나가 참새구이가 아닐까 한다. 60년대 후반까지는 아니 70년대 중반까지도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던 참새구이, 박봉에 시달리는 가난한 월급쟁이가 술 한잔하며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었던 친근한 안주가 참새구이다. 60년대 우리 단편 문학에 커다란 획을 그었던 작가의 한 사람인 김승옥 선생의 ‘서울 1964년 겨울’에는 참새구이를 안주로 술을 나누는 정겨운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어느 모임 자리에서, 요즈음은 참새구이는 없고 메추리를 참새구이로 속여서 팔기도 하는데, 메추리를 구우면 참새 냄새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메추리구이를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기에 그 맛이 어떤지는 모르겠다.
참새구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갑자기 떠오른 게 개구리다. 개구리 요리라고 해야 할지 뭐라고 불러야 정확한 표현인지 알 수 없지만, 개구리에 얽힌 사연이 생각난다. 60~70년 전에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 개구리 뒷다리를 구워서 먹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때 그 시절은 6.25 전쟁이 끝나고 얼마 안 되어 찢어지게 가난한 시절이라서 점심을 먹는 집은 동네에서 손꼽을 정도였다. 어려서는 개구리를 잡아 뒷다리만 잘라서 구워 먹기만 했을 뿐 개구리를 통째로 삶아 먹는 것은 알지 못했다. 훗날 군대에 가서 개구리를 통째로 먹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 잘 알다시피 개구리는 겨울철에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고 깊은 산중의 곰처럼 겨울잠을 잔다. 시골은 어쩐지 모르지만, 요즈음 도시에서는 어디서나 개구리를 쉽게 볼 수도 없으니까, 겨울잠을 자는 커다란 개구리 모습을 대하기는 정말 하늘의 별 따기처럼 만나기 어렵다. 혹시 매스컴을 통해서 볼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군대 시절 강원도 화천 대성산 자락 부대 막사 옆의 개울은 겨울이 되면 그야말로 꽁꽁 얼어붙는다. 그렇게 얼은 개울도 입춘이 지나고 봄소식이 들리는 즈음에는 얼음의 두께가 조금씩 얇아진다. 그럴 때가 되면 아직도 깊은 겨울잠을 자는 개구리들을 깨우는 짓궂은 짓을 한다. 사람에게는 하찮은 장난일지 몰라도 개구리는 목숨을 빼앗기는 비극이다. 바위 밑에서 잠을 자는 개구리를 깨우기 위해서 커다란 돌멩이를 집어 들어 얼음에 던진다. 돌멩이로는 생각처럼 단단한 얼음이 깨어지지 않아 부대에 있는 5파운드 무게의 해머를 사용한다. 해머로 얼음을 깨고 물속에 반쯤 잠긴 바위를 강하게 치면 천둥이 치듯이 둥둥 하며 요란한 소리가 난다. 소리가 가라앉고 얼마 시간이 지나면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들이 비몽사몽 간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그냥 물 위로 둥둥 떠 오른다. 떠오르는 개구리를 끄집어내어 봉지에 넣어 막사로 가져간다. 동면하는 개구리는 뱃속이 깨끗하여 취사반에서 얻어온 된장과 대파 그리고 고춧가루를 넣은 군용 반합에 통째로 넣어 삶는다. 구수한 된장 냄새 속에 잘 삶아진 개구리는 커다란 군용 숟가락에 하나 가득히 담긴다. 막걸리 한 잔 털어 넣고 푹 삶아진 개구리를 으적으적 씹으면서 그 맛을 음미하는 게 별미이다. 처음에는 어떻게 먹을 수 있을까 했는데 군복을 입으면 용감해지는 법이라 점점 그 맛에 빠지게 된다. 제대하고 나서는 어디서고 그런 음식을 팔거나 장사하는 곳을 보지 못하여 개구리찜을 먹어본 기억이 없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건강식으로 단백질을 보충해주는 아주 훌륭한 음식이었다고 생각한다. 세월이 바뀌고 입맛도 변하기 마련이지만, 아련한 추억 속의 개구리찜을 다시 한번 맛보고 싶다. 어디에서도 그러한 별미를 볼 수 없다면 꿈속에서나마 한번 맛보고 싶다. (2023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