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와 조려낸 고등어 같던 저물녘이며 외 1편
이 영 종
나는 바람벽
옹기처럼 바람이 드나들 수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사내의 타는 간장을 마지막으로 유일하게 목격하였다
뇌출혈 또 생기면 어디든 찔러
피를 내야 한다고 말한 사람은
간장을 타서 먹인다는 잔다리의원 의사였다
손톱 밑을 따는 사내의 바늘이 떨린다
새벽 이불을 끌어당기는 어린 아들에게서는 단간장 냄새가 났다
사내는 대파를 구워 파간장에 찍어 먹던
아이의 푸른 입과 하얀 이를 떠올린다
간장 양념을 해 무와 조려낸 고등어 같던 저물녘이며
멸치 건져내고 간 맞춘 자리에 밀가루를 뜯어 넣던
아내의 뿌연 입김을 돌아본다
만년필이 빨아들이던 파이롯트 잉크 소리를 좋아했던 사내는
세상의 간을 보고 싶었을 것이다
참호 속에서 무언가를 쓰며 눈썹은 만년필처럼 꼿꼿했으며
쓸쓸하면 뚜껑을 닫고 돌아누웠다
내 가슴팍에 잉크병처럼 부딪칠 수 있는
사내이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이마에 박힌 못을 빼내 그를 찌르고 싶었다
늘 서있는 것이 자랑 아닌 날 이었다
에어 택시
이제, 가자 택시 좀 잡아 와 ‘라’ 자는 선배가 기울인 술잔을 타고 ‘ㄹ’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엉덩이가 좀 아팠는지 ‘ㄹ’은 금세 풀이 죽어 버려 재미를 잃어버린 나는 녹초처럼 흔들리는 몸을 몇 차례 바람의 손에 맡긴 후에야 겨우 대지를 박차고 허공으로 날아오를 수 있었다
나는 옛적 제사를 지내던 할아버지처럼 두 번 절하였으나 기다리던 택시는 오지 않았다 이런 날 누군가 기다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두 기다림 옆에 가 있어 기다림 없는 하늘 한켠에서 고서적 속 단어 ‘외로움’이란 혹 이런 것이 아닐까 한없이 막막해지는데 속절없이 눈은 내려 하늘 도로 유도등은 이제 자기 마음이나 유도하겠다는 듯 잠잠하기만 하고 행성 같은 주택들의 불빛도 퍼붓는 눈에 나올 생각을 하지 못한다
언어를 가르쳤다는 조상은 전설이라 한다 태어나면서 이미 알고 있는 말을 어떻게 가르친다는 말인가 옛 사람들은 노래를 불렀다 화성으로 간 수정(受精) 누이가 보내온 심상을 놓고 술자리는 슬그머니 자릴 떠 술만 남아 있곤 했다 밥이라는 걸 먹고 아무 것도 보지 않고 시험이라는 것을 보았다 복제되어 달동네로 간 내가 보내 온 이미지로 세월이 얼마나 활짝 피었던가
선배나 내가 찾아왔던 선조의 흔적은 식물들이 이미 오래 전 먹어버린 뒤였다 일 년에 이백오십 미터를 걸었다던 나무뿌리들은 박물관에 온 어린 나무들의 공부거리다
“오, 지상의 제왕이 된 우리의 근심과 자부심을 보라
하늘에서는 이파리 팔랑이며 미래를 염려하는 소리
늠름한 풍채와 가녀린 허리에 지나는 바람들이 넋을 잃고
땅 속엔 배우고 일하는 소리 가득하여 광물질도 얼굴을 붉히도다.”
지상의 오래된 주막에서 술에 떨어져 코에서도 술 연기 가득 피어오를 선배는 아마 기다림을 멈추었을 것이다 아니 기다림 홀로 술을 마시게 옛 사람이 그러듯 고개 떨구어 머리를 탁자 위에 재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연탄이라는 불과의 노름에 지쳤는지 곱창연기만 혼자 희미하게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