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081)
* 자살소동 7
“그 녀석이 자고 갔다면 뻔하지 뭐. 더러운 것들 같으니라구”
서문경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함께 구역질을 느낀다.
아무리 임자가 없는 몸이 되었다고 하지만 마구간지기인 대안이와 붙다니, 그처럼 이병아가 천덕스러운 여자였던가 싶으니 정나미가 뚝 떨어진다.
자기는 지금 노비인 계집애와 동침을 하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수춘이는 그만 조금 전의 황홀하던 기분이 어디로 달아났는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바짝 굳어져 오그라들어 있다.
대안이도 대안이지만,
마님한테 어떤 화가 미칠지 몹시 두렵고 걱정이 되어 심란하기만 하다. 거짓말을 할 걸 그랬다 싶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 어쩔 도리가 없다.
서문경은 당장 이것들을 어째 버릴까 하는 생각에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으음-”
무거운 신음소리를 토하면서 옆으로 돌아눕는다.
수춘이에게도 등을 돌리고서 말이다.
솟구쳐 오르는 질투를 감당하기가 어려운 듯 잠시 혼자서 숨을 식식거리다가 무슨 생각에서인지 벌떡 돌아누우며 냅다 그만 수춘이를 불끈 끌어안는다. 그리고 거칠게 마구 이회전으로 들어간다.
“아이고 어메야-”
너무나 별안간의 일에 수춘이는 호들갑스럽게 비명에 가까운 교성을 내지른다.
일차전 때는 그야말로 잘 귀여워해주는 식이었다면,
이번에는 마치 무슨 고약한 심술이라도 부리는 것처럼 냅다 사정없이 짓이겨 준다.
이병아와 대안이의 정사에 대한 견딜 수 없는 질투가 묘하게도 그런 식으로 짙고 뜨겁게 분출된다고나 할까.
서문경의 그런 격렬한 행위에 수춘이는 황홀한지 어떤지도 모르고 그저 이맛살을 야릇하게 찌푸려대며 “악악” 혹은 “으윽 으윽”하고 깜짝깜짝 놀라는 듯한 신음소리를 내뱉는다.
이차전을 끝내고 나가떨어진 서문경은 “훅-훅-”
뜨거운 숨을 내뿜고는 축 늘어지고 만다.
그제야 좀 부글부글 끓던 속이 가라앉는 느낌이다.
수춘이도 잠시 정신이 얼얼하고 몽롱해서 사지를 내던지고 있다가 살그머니 일어나 앉아 주섬주섬 내의를 입는다.
그리고 침상에서 내려서서 겉옷도 주워서 입는다.
“왜? 그만 가려고?
서문경이 지쳐서 목이 잠긴 듯한 목소리로 묻는다.
“소변이 마려워서요”
“소변을 보고, 가서 잘 거야? 또 여기 올 거야?”
“글쎄요... 주인어른께서 시키는 대로 하죠”
“수춘이 생각은 어떠냐 말이야. 이제 됐어? 또 귀염을 받고 싶어?”
“또 받고 싶어요. 히히히...”
“좋아, 그럼 어서 갔다 오라구. 실컷 귀여워해 줄 테니까”
그러면서 서문경은 쭉 기지개를 한번 켠다.
이튿날 아침,여느 때보다 월등히 늦게 잠을 깬 서문경은 한참동안 이부자리 속에 그대로 누운 채 창문에 어리는 겨울 햇살을 멀뚱히 바라보며 이병아와 대안이를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생각해 보았다.
간밤에 수춘이로부터 얘기를 들었을 때는 역겨움과 함께 끓어오르는 질투의 감정을 견딜 수가 없었는데, 지금은 비교적 담담한 심정이었다.
수춘이를 거의 새벽녘이 되도록 거듭거듭 데리고 놀아 온몸의 진이 빠질 대로 빠져서 자고났는데도 사지가 노자근하고 골통이 멍하기 때문에 그런지도 몰랐다.
“모르는 체 해주지”
서문경은 결론을 내리듯 중얼거리고는
아으윽- 커다랗게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켠다.
그리고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난다.
서문경이 그처럼 관대하게 마음을 먹은 것은 이병아가 재차 과부가 되어서 저지른 일이고, 또 자기와의 관계가 다시 이어질 줄을 모르는 상태에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일시적인 행위였을 터이니, 정상을 참작해서 묵인해 주는 게 옳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대안이 녀석이 괘씸하긴 했지만, 그 녀석 주제에 제가 먼저 그런 짓을 하려고 들었을 턱이 없고, 틀림없이 여자의 유혹에 넘어갔을 터이니, 이해가 되는 일이 아닌가. 그 녀석 역시 이병아와 자기와의 관계가 단절된 상태에서 저지른 일이니 말이다.
그리고 바로 엊그저께 여섯 번째 아내로 맞아들인 여자를 불과 이삼 일만에 그것도 바깥에서 홀몸일 때의 일을 들추어 온 집안이 다 알도록 망신을 준다는 것은 너무 가혹하고, 그녀에게 치명적인 일이다 싶기도 했던 것이다.
그래서 너그럽게 모르는 척 덮어두기로 마음먹긴 했지만, 그러나 서문경은 혹시 앞으로 두 사람 사이에 다시 그런 망측한 일이 있을지 알 수 없으니, 그 점만은 단단히 유의해서 눈여겨 살피리라 생각했다.
만약 다시 두 연놈이 그런 불미한 짓을 저지른다면 그때는 결코 용서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제는 자기 집 울안에서의 일, 다시 말하면 자기의 여섯 번째 마누라와 노복 녀석이 내통하는 일이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서문경은 생각한 끝에 아침 식사를 마치자,
아량이를 시켜 다시 수춘이를 불렀다.
날이 밝기 전에 서문경의 침실에서 빠져나갔던 수춘이는 또 무슨 일인가 싶은 그런 얼굴로, “주인어른, 또 부르셨나요?”
하면서 방으로 들어선다.
“그래, 어때? 몸이 괜찮아?”
“좀 뻐근해요”
“어디가?”
“히히히...”
“나도 뻐근하다구. 허허허...”
싱겁게 웃고나서 서문경은 정색을 하며 말한다.
“그런데 말이야 수춘아, 내가 너에게 한 가지 당부할게 있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