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 하느님의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사랑의 용서
1 며칠 뒤에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2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3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4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보냈다.
5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6 율법 학자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7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8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이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 영으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9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10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그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11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12 그러자 그는 일어나 곧바로 들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마르코 2,1-12
연중 제1주간 금요일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를 치유하시는 장면은 다른 병자의 치유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병자를 곧바로 치유하지 않으시고,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라고 먼저 선언하십니다. 병이 내 몸을 평소 못 챙긴 탓이라고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병은 죄의 결과’라는 예수님 시대의 생각이 오늘날에는 낯선 것이 사실입니다. 율법 학자들 입장에서는 병의 치유에 앞서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죄의 용서를 선언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신성 모독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병이 자신의 죄과라고 믿던 중풍 병자에게 예수님께서 죄의 용서를 먼저 선언하시고 치유하신 사건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으로부터 오셨고 죄를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권한을 가지신 분이심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단순히 신체의 자유를 넘어 죄로부터 해방된 영혼의 자유를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백성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 민족의 침략으로부터 보호받고자 세속에서 백성 위에 군림하는 임금을 세워 달라고 아우성칠 때, 사무엘은 그 임금이 얼마나 백성을 수탈하고 억압하며, 불의한 요구를 할지 미리 경고합니다. 권력자가 백성을 억누르는 독재를 경험해 본 우리 입장에서는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그러나 당장의 이익에 눈이 먼 이스라엘 백성은 그런 불합리에도 상관없이 꼭 임금을 세워 달라고 합니다.
하느님을 백성의 주인으로 삼지 않고, 인간의 권력욕에 빠진 임금을 세워 달라는 이스라엘 백성이나, 예수님의 치유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율법 학자들의 모습 속에서 인간이 지닌 교만의 역사를 봅니다. 나는 하느님께서 진정 나를 치유하시기를 겸손하게 청하고 있는지 되돌아볼 때입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님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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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 신부님 글 드립니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딴 사람은 수학자로 대성할 수 없다고 어느 유명한 수학자가 말했다고 합니다. 수학적인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이 우수한 것이지, 문제를 풀기만 하는 사람은 크게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랍니다. 문제풀이보다 문제제기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지요.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함을 삶 안에서 자주 체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사회는 결과만을 최고로 인정하려고 하지요. 그러다보니 내 자신도 모르게 결과중심주의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분명히 과정입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결과를 다 알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어떻게 할지, 그토록 환호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을 외면할지, 또 당신이 어떻게 생을 마무리 하실지 그 결과를 미리 다 아셨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사셨습니다. 결과보다 그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직접 보여주시기 위함은 아니었을까요?
그렇다면 주님을 따른다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세상의 모습처럼 결과만을 최고로 인정하면서 살아야 할까요? 아닙니다. 과정의 중요성을 기억하면서, 지금 한 순간 한 순간을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결과가 모든 것이 아니기에 지금 이 순간에 해야 할 일이 참으로 많아집니다. 지금 당장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당신이 많은 것을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노예처럼 일하지 않아도 되며, 따라서 당신 자신을 위한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다(호세 무히카).>
연중 제1주간 금요일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마르코 2,1-12)
イエスはその人たちの信仰を見て、
中風の人に、
「子よ、あなたの罪は赦される」と言われた。
(マルコ2・1-12)
When Jesus saw their faith, he said to him,
“Child, your sins are forgiven.”
(Mark 2:1-12)
年間第1金曜日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エヤ、 ノヌン ゼル ヨンソバダッタ。"
(마르코 2,1-12)
イエスはその人たちの信仰を見て、
中風の人に、
「子よ、あなたの罪は赦される」と言われた。
코요 아나타노 츠미와 유루사레루
(マルコ2・1-12)
When Jesus saw their faith, he said to him,
“Child, your sins are forgiven.”
(Mark 2:1-12)
Friday of the First Week in Ordinary Time
Mark 2:1-12
When Jesus returned to Capernaum after some days,
it became known that he was at home.
Many gathered together so that there was no longer room for them,
not even around the door,
and he preached the word to them.
They came bringing to him a paralytic carried by four men.
Unable to get near Jesus because of the crowd,
they opened up the roof above him.
After they had broken through,
they let down the mat on which the paralytic was lying.
When Jesus saw their faith, he said to him,
“Child, your sins are forgiven.”
Now some of the scribes were sitting there asking themselves,
“Why does this man speak that way? He is blaspheming.
Who but God alone can forgive sins?”
Jesus immediately knew in his mind what
they were thinking to themselves,
so he said, “Why are you thinking such things in your hearts?
Which is easier, to say to the paralytic,
‘Your sins are forgiven,’
or to say, ‘Rise, pick up your mat and walk’?
But that you may know
that the Son of Man has authority to forgive sins on earth”
–he said to the paralytic,
“I say to you, rise, pick up your mat, and go home.”
He rose, picked up his mat at once,
and went away in the sight of everyone.
They were all astounded
and glorified God, saying, “We have never seen anything like this.”
2025-01-15「人の子が地上で罪を赦す権威を持っている」
+神をたたえよう。神は偉大、すべては神に造られた。
おはようございます。
今日は年間第1金曜日です。
救い主・イエス・キリストと神の母の聖マリア、聖母の配偶者聖ヨゼフ、諸聖人の大いなる祝福がありますように!
また、大天使とすべての天使、私たちの守護の天使が今日も皆さまを見守り平和でありますようお祈り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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マルコによる福音
<人の子が地上で罪を赦す権威を持っている>
2・1数日後、イエスが再びカファルナウムに来られると、家におられることが知れ渡り、2大勢の人が集まったので、戸口の辺りまですきまもないほどになった。イエスが御言葉を語っておられると、3四人の男が中風の人を運んで来た。4しかし、群衆に阻まれて、イエスのもとに連れて行くことができなかったので、イエスがおられる辺りの屋根をはがして穴をあけ、病人の寝ている床をつり降ろした。5イエスはその人たちの信仰を見て、中風の人に、「子よ、あなたの罪は赦される」と言われた。6ところが、そこに律法学者が数人座っていて、心の中であれこれと考えた。7「この人は、なぜこういうことを口にするのか。神を冒涜している。神おひとりのほかに、いったいだれが、罪を赦すことができるだろうか。」8イエスは、彼らが心の中で考えていることを、御自分の霊の力ですぐに知って言われた。「なぜ、そんな考えを心に抱くのか。9中風の人に『あなたの罪は赦される』と言うのと、『起きて、床を担いで歩け』と言うのと、どちらが易しいか。10人の子が地上で罪を赦す権威を持っていることを知らせよう。」そして、中風の人に言われた。11「わたしはあなたに言う。起き上がり、床を担いで家に帰りなさい。」12その人は起き上がり、すぐに床を担いで、皆の見ている前を出て行った。人々は皆驚き、「このようなことは、今まで見たことがない」と言って、神を賛美した。(マルコ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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ソン・ヨンミン使徒ヨハネ神父様の毎日のミサ ・「今日の黙想」です。
イエス様が中風の人を癒やされる場面には、ほかの病人の癒やしとは異なる特徴があります。
イエス様は病人をすぐに癒やすのではなく、まず
「あなたの罪は赦される」
と宣言なさいます。
病気を自分の不注意や生活の結果だと考えることはあっても、「病は罪の結果である」という考え方は、現代の私たちにはなじみにくいものです。しかし、イエス様の時代においては、そのように理解されていました。
そのため律法学者たちは、病の癒やしに先立って、神のみが行うことのできる「罪の赦し」を宣言するイエス様の姿を、神への冒瀆だと受け取ったのでしょう。
自分の病を罪の結果だと信じていた中風の人に対し、イエス様がまず罪の赦しを宣言し、その後に癒やしを与えられたこの出来事は、イエス様が神から遣わされた方であり、罪を赦す神の権威を持つお方であることを示しています。
それは単に身体の自由を回復させるだけでなく、罪から解放された魂の自由を与える、神の憐れみを民に示す出来事でもありました。
イスラエルの民が異民族の侵略から守られることを願い、世俗の中で民の上に君臨する王を立ててほしいと叫んだとき、サムエルは、その王がいかに民を搾取し、抑圧し、不正な要求をするかを前もって警告しました。
権力者による独裁を経験してきた私たちにとって、その警告は十分に共感できるものです。
しかし、目先の利益にとらわれたイスラエルの民は、その不合理さを承知の上で、なお王を立てることを求めました。
神を民の主とせず、人間の権力欲に支配された王を求めたイスラエルの民の姿、そしてイエス様の癒やしの権威を認めようとしなかった律法学者たちの姿の中に、私たちは人間の傲慢の歴史を見ます。
今こそ私は、神が真に私を癒やしてくださることを、へりくだった心で願っているかどうかを、振り返るときなの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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毎日の福音を読み、罪からも、恐れからも、真に私たちを解放してくださるイエス様の権威と憐れみを信頼し、へりくだった心で主の癒やしを願う者として今日も歩むことができますように。
聖霊、来てくださ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