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한’의 띄어쓰기 문제 따져봅시다
(1)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실천문학, 1988년 초판)
(2) 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실천문학, 2010년 개정판)
위에 보인 것은 허수경의 시집 제목입니다. 제목을 바꾼 게 아니고 최근에 나온 개정판의 제목이 이상해진 것입니다. 본디 이 제목의 의미를 새겨봅시다. “거름으로서 슬픔 이상의 것이 없다. 즉 살아가면서 슬픔이란 그 사람의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매우 유익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이런 뜻으로 쓴 말이 곧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이겠지요. 설만들 '슬픔만 하는(한) 거름이 어디 없다'거나 ‘슬픔만 하나의 거름이 어디 없다’라는 이상야릇하고 알쏭달쏭한 의미는 아닐 터입니다.
1992년에 나온 『동아 새 國語辭典』에서 찾아봅니다.
만-하다[조형](여) [어미 ‘-ㄹ, -을’ 아래 쓰이어] 1. 동작이나 상태 등이 ‘거의 그 정도에 미치어 있음’을 뜻함. * 한창 일할 만한 나이. 2. 어떤 사물의 값어치나 능력이 ‘그러한 정도임’을 뜻함. * 다시 볼 만한 영화. 읽을 만한 책.
-만하다[접미](여) 1. 일부 체언 밑에 붙어, ‘그와 같은 정도에 미침’을 뜻함. * 주먹만한 감자. 2. 일부 관형사에 붙어, ‘어떤 정도에 그침’을 뜻함. * 병세가 그저 그만하다.
한글 프로그램에 깔린 맞춤법 거름장치 중 뭔가 잘못 되어 ‘주먹만한 감자’에는 빨간 밑줄이 죽 그어집니다. 컴퓨터가 틀릴까보냐 생각하고 ‘주먹만 한 감자’라고 띄어쓰기를 하면 빨간 밑줄이 사라집니다. 너무 기계를 맹신한 나머지 틀린 표기를 오히려 맞는 줄 알고 착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알 만하다, 먹을 만하다, 쓸 만하다… 등에서 ‘만하다’는 보조형용사입니다. 이런 경우는 그 앞 말과 구분하여 띄어써야 합니다.
주먹만하다, 콩알만하다, 송아지만하다… 등에서 ‘-만하다’는 접미사입니다. 접미사는 체언(명사, 대명사)인 윗말에 붙여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애초에 허수경 시집 초판에 쓰인 제목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가 바른 표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