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전리품
정돌식 천부장이 선두에서 남쪽을 향하여 돌진하고, 배중서가 뒤를 따르고 있고,
중군은 묵황 소왕이 지휘하고 있었다.
평성에서 봉홧불을 보고 출동한 후한 군의 지원병이 삼천여 명 되었으나,
개전 開戰 되기가 바쁘게 전투가 끝나 버렸다.
후한 군은 기병대가 3할이 되지 못한다.
칠 할이 보병이니 완전무장 完全武裝한 흉노 기마병의 상대가 될 리 만무하다.
기병과 보병의 전투력은 다섯 배 이상의 차이가 난다.
더구나 정신력의 차이는 열 배 이상의 현격 懸隔한 차이가 있다.
공격자들은 거친 고비사막 넘어 먼 곳으로부터 원정하여, 목숨을 내걸고 치열하게
악귀 惡鬼와 같은 형상으로 전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상대를 이기지 못하면, 전리품이 없다면, 미친 짓거리다.
반면에,
수비병들은 자신의 소중한 목숨이 우선이다.
잃어버린 가축은 다시 기르면 되고,
약탈 당한 곡물도 내년에 넓고 기름진 농토에서 다시 수확하면 되는 것이다.
생즉사 사즉생, 生則死 死則生의 논리 論理다.
살고자 잔꾀를 부려 몸을 도사리면 도리어 궁지 窮地에 몰려 죽기가 쉽고,
목숨을 걸고 죽기로 싸우면 오히려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
수비병 처지에서는 적이 공격해 오면 남 南으로 아니면, 서 西 쪽의 높은 산으로 도망갈 여지가 항상 열려있다.
전투 상황이 불리해지면, 자신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퇴로 退路를 살피며 돌아보게 된다.
그러한 정신력이 승패를 가름하고 그 결과는 엄청난 차이를 나타낸다.
북풍한설 北風寒雪이 쉴 사이 없이 몰아치는 차가운 고원 高原의 겨울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봄부터 여름내 방목장 放牧場을 이곳저곳으로 옮겨가며 힘들게 가축을 돌보아도 큰 수익이 없다.
1년 내 온종일, 가축을 내 자식처럼 돌보며 키워보아도 늘 그것이 그것이다.
가축 수가 ‘쑥 쑥’ 늘지 않고, 늘 제자리 걸음이다.
계산상으로는 연간 年間, 배 倍 이상으로 가축 수가 쑥~ 쑥 늘어나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 * 이는 기르는 가축 중에 수컷보다는 새끼를 잉태할 수 있는 암컷이 5~7배 이상 더 많고,
소와 말. 낙타. 야크 같은 대형 동물의 번식 繁殖은 년 간 1회에 그치지만,
양과 염소 등 몸체가 중형 中形 이하의 가축들은 영양공급 상태에 따라,
일 년에 봄. 가을 두 배(2번)씩 한 번에 2마리 이상이 태어난다.
그러니 수치상 계산으로는 3~4배도 가능하다.]
식량으로도 사용해야 하고, 자연재해로 다치는 가축과 늑대 등 맹수로부터 죽임을 당하는 가축 수도 만만찮다.
혹여, 기상이변 氣象異變으로 한발 旱魃이 심하게 들거나, 가축들의 전염성 傳染性 돌림병이
한번 지나가면 초원에는 아무것도 없다.
낡은 게르만 황량 荒涼한 초원 위에 외로이 선 채, 찬 서리를 맞으며 세찬 바람에 시달리고 있을 뿐이다.
이제 빈손으로 고원의 차가운 기나긴 겨울을 지내야만 한다.
열심히 일하여도 가을철에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으니 악 惡이 받칠 수밖에 없다.
하늘을 원망하고 땅을 저주한다.
그 내면에 쌓인 악한 감정을 풀어야만 하는데 방법이 없다.
속 가슴은 부글부글 들끓는데 해소할 수단이 없으니 화병 火病이 도진다.
그러니 유목민족의 유능한 지도자는 유목민들의 그 화풀이를 다른 지역,
타 종족에게 풀 수 있게끔 유도 誘導한다.
그러니, 다른 종족을 침탈 侵奪하여 획득하는 노획품도 중요하지만,
마음 속에 쌓인 울화병 鬱火病를 해소할 수 있는 하나의 자구책 自救策이기도 하다.
형구 熒丘와 정주에서 2천여 명의 한 군 수비병들이 침탈 侵奪자들을 저지 沮止하려고,
목책 木柵으로 진영을 새로이 구축하고 버티어 보았으나, 기병 騎兵 대 對 보병 步兵의 대결은 무의미하다.
특히, 정신력은 일당백 一當百이다.
승패를 좌우하는 제일 중요한 조건이다.
석가장은 과연, 후한의 동북 東北 거점 據點 도시답게 화려하고, 처음 보는 갖가지 희귀한 물건들이 풍부하였다.
전리품을 약탈할 때는 인정사정이 없다.
성벽을 공격할 때 죽거나 다친 동료 전우들의 울부짖음이 귓가에 생생하다.
이번의 공성전 攻城戰에서는 아군 2백여 명이 전사하고 3백여 명이 크게 다치었다.
자신도 성벽을 타고 오를 때 수비병의 돌에 맞아 귀가 찢어지고,
어깨와 손 등에 생채기를 당한 그 아픔을 참고 견디고 있다.
그 보복 報復을 지금하고 있는 것이다.
전사자나 부상병들의 몫까지 챙겨가야만 한다.
전사자나 불구자가 된 전우와 부상병의 가족들을 볼 면목이 없다.
전리품으로 위로할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그러니 악착 齷齪같이 전리품을 약탈하고 알뜰하게 챙긴다.
전리품을 챙기고 보니 물품량이 기대치보다 많아, 더 이상은 가지고 가기에도 버겁고 힘들다.
그래서 다른 지역 공격은 생략하고 되돌아 북행을 한다.
흉노의 전사들은 이제는 전리품을 챙기는 요령도 달라졌다.
장성을 넘어 갈때에는 여분 餘分의 말은 한 필 정도만 데리고 다니고, 현지조달 現地調達 방식을 취하였다.
전쟁터에서는 ‘적의 식량을 먹으며 싸우라’는 병서 兵書대로 행한다.
점령 占領지의 우마 牛馬와 수레를 먼저 확보하고 난 후,
노획한 물품들을 수레와 말 등에 차곡차곡 쌓기 시작한다.
무기나 금동제 그릇과 같은 무거운 쇠붙이와 곡물, 그리고 귀중품은 아래쪽에 먼저 싣고,
가볍고 작은 물품은 크기와 무게의 차등 差等에 따라 그 위에 차곡차곡 재여 싣는다.
닭과 오리 등의 작은 가축과 어린 양은 우마차에 임시로 만든 전용 나무틀에 넣어 옮기며,
양과 염소. 돼지 등의 중형 中形 가축은 3~4백 마리 단위로 무리를 만들어 이동한다.
젊은 부녀자도 손목을 노끈으로 묶어 마차와 소 수레에 태우는데 만약,
반항하거나 수레에 태우는 것을 거절하는 자는 즉결 처분시킨다.
백부장이 즉시 전권을 행사한다.
그러하지 않으면 시간이 더뎌지고, 군기가 흐트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6천여 명의 중군이 말과 우마차를 이용하여 전리품을 옮기는 사이,
2천 명의 선봉대는 이제 역할을 바꾸어,
일천 명은 이동하는 노획품의 좌우를 호위하고
나머지 일천 명은 후미 後尾 방어를 담당한다.
그러니 납치된 부녀자나 가축들은 도주하거나 이탈 離脫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한다.
석가장의 주요 길목을 지키던 한 군의 5천여 명의 수비병들은 어디까지 달아났는지 종적 蹤迹이 묘연 杳然하다.
정주를 지나 평성 가까이 중군 中軍이 퇴각 退却하자, 성벽을 지키던 병사 천여 명이 마중을 나온다.
전리품을 인계한 중군의 일부 병사들은 다시 정주쪽으로 내려가서
빠뜨린 노획품을 재차 챙겨 다시 북상 北上한다.
흉노 군이 한번 지나가면 그 지역은 초토화 焦土化되어 버린다.
혹여, 저항이 심한 지역이나 공략할 때 아군이 죽거나 크게 다치는 일이 발생할 때는
그 대가 代價로 방화 放火까지 서슴지 않는다.
‘대항하는 자의 말로 末路는 이렇다’라고 시위하는 것이다.
움직이는 생명체는 아무것도 살아남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쓸모 있는 물건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후미의 병사들도 서서히 퇴각하였다.
저 멀리 파란 봉화 연기가 여기저기서 흐느적거리며 올라가고 있다.
이제는 별 의미 없다.
때늦은 통보다.
사후약방문 死後 藥方文이다.
‘안녕히 잘 가세요’라고 손을 흔들며 작별의 인사를 하는 듯하다.
장성을 넘어 회군하는 병사들의 발걸음이 당당하면서도 가볍다.
이번 남벌 전투에서의 전리품도 상당하다.
대형가축인 우마 牛馬가 2만 필이 넘었다.
양과 염소, 돼지 등 중형 가축 수도 엄청나게 많았다.
말의 안장 위와 소 수레에는 닭과 오리, 거위, 어린 양 등의 몸집이 작은 가축을 비롯하여
금속제 그릇과 곡물과 비단, 무명천 등의 의류와 각양각색의 전리품들이 가득하였다.
물품량도 많았고 가지 수도 다양하였지만, 우선 품질이 좋았다.
역시 큰 고을이 이름값을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장성을 넘어 회군하여 초원의 무천진에 이르러 부상 당한 병사들을 돌보며 전리품을 정비하고 있자니,
범양과 유주를 공격하였던 걸걸추로 소왕의 군대도 승리가를 부르며 회군 중이었다.
걸걸추로 소왕 부대의 전리품도 대단하였다.
소와 말이 각기 만 필이 넘었다.
우마 牛馬는 자체가 전리품이지만 또 다른 전쟁 노획품 鹵獲品을 이동시키는 주요한 수단으로 이용된다.
그러니 전리품 중에서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우마의 확보가 전리품 전체의 양을 좌우하고,
노획한 우마의 두수 頭數에 따라 목산 目算으로도 전리품 추산 推算이 대략 가능하다.
병사들의 얼굴에는 의기양양한 승리자의 모습이 비친다.
사기가 오른 병사들을 지켜보는 지휘관들은 마음이 뿌듯하다.
자신에 찬 병사들의 당당한 표정에서 우리 흉노인들의 밝은 미래를 투시 透視해 본다.
이번 남벌은 대성공이다.
한 군에게도 따끔한 맛을 보여주었다.
소왕과 천 부장들은 가슴이 뿌듯하고 통쾌하다.
물론 전략적 戰略的인 면이 있었지만,
여름내 서너 차례 사신을 보내 화친 和親을 도모하였지만,
후한의 거부 拒否로 무산 霧散된 씁쓸한 기억을 이번에 보란 듯이 후련히 씻어내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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