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한 겨울이다 .그러네 그러고 보니 벌써 세월이라는 놈이 휙 휙 지나가서 올해의 마지막도 며칠이면 지나간다. 2020.년도 벌써 16년전의 이야기다. T V를 켜니 서울 낙원동 이야기가 나온다. 가만히 생각을 하니 벌써 16.년전이다. 당시 나는 나이 바로 40 대에 취득한 한식 .양식 음식 자격증이 있었다. 어렵게 공부해서 모두 얻은 값진 내겐 재산이다. 당시 부여 농촌지도소 에서 한식 음식과 전통 음식 그리고 잼을 만드는 교육 과정이 있었다.나는 잼과 전통 음식을 배우러 다녔다. 일주일에 3~4 번 인지 아무튼 강의 내용은 한식 자격증반 전통 떡 고추장 된장 간장 과일 잼등을 3개월 코스로 알려 주는 그런 유익한 강의 였다.나는 열심히 경청을 했다. 당시 초청으로 강순의 선생님의 한식요리 연구가님 의 고추장 담그기 강의도 배웠다. 그분은 키가 작달막 하시고 외 밤톨 같이 탱글 하시다. 단 단 하시다.어떻게 그의 용모를 감히 그래도 보고 느낀 나의 그녀를 보는 첫 인상 이였다. 그분은 그날의 주제가 짱아치와 찹쌀 고추장 된장 간장 만드는 과정의 강의 였다.16년전에 그날의 강의로 제대로 유익하게 강순의 전통 한식 요리사님 에게 배웠다. 이후로 된장 고추장 간장 만드는것이 내겐 쉬웠다.무엇이 던지 알면 쉽다.
알찬 정보였다 .살아가면서 계속 만들고 먹고 집안의 토속 장맛이 좋아야 집구석도 편안 하다고 한다. 옛말이지만 그런것 같다. 옛말은 정말 모두 맞는다. 속담 겪언 모두다 . 항상 배울점이 많다. 한식 요리 연구가 강순의님 덕분에 많이 배웠다.모든것에는 비율 이라는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음식 뿐만이 아니다. 무엇이 던지다 .행복도 무조건 행복만 해서는 않된다 .신은 그래서 양손에 떡을 않 쥐어 준다 . 법에도 자유 .평등.정의.라한다.가난한자도 가끔은 햇볓이 들어온다. 이후에는 나의집 장맛이 많이 좋아졌다.16년 전이다.부여 농촌지도소에서 서울 낙원동의 전통 한식 요리사 한숙자씨 인지 이름이 잘 모르 겠다. 세월이 지나니 가물 거린다. 그분도 요즘 활동을 TV 에서는 한식 요리시간에 못 보겠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그녀는 당시에는 TV 에서 가끔 나오시더니 죄송합니다.그후로는 않 나오신다. 머리는 항상 올백으로 올리시고 그런데 내가 더욱 놀란것은 그녀는 부자였다. 8 층 짜리 건몰이 모두 그녀의 음식 기념관이 었다. 전통떡과 전통음식에 도로 건너에는 그분의 주차장이 도로 쪽으로 대략 1.000평 정도로 직사각형으로 주욱 비워져 있었다 그 분의 남편은 금융계통의 권의자라 한다. 서울의 낙원동 시장입구 요지다 .시장의 한가운 데에 있다. 그녀의 가진자의 여유가 부러웠다 나는 부여 농촌 지도소에서 의 견학으로 낙원동 시장에서 30명 넘는 부여팀의 그녀들과 같이 .그건 그렇고.사실은 일방적으로 한식 배우러 다니는 원생을 데리고 지도소에서 그냥 간것이다 .그런줄. 알었으면 나는 않 같지 계절은 중간 정도의 가을이 무르익고 있었다.그날 따라 가을의 날씨도 화창했다 .맑고 좋은 날씨였다 .
.낙원동 가던날의 나의 의복은 수수하게 입고 당시 만원주고 산 막 가방 소위 핸드백을 들고 나섰다.사실 당시 16.년전에 만원이면 괜찮은 실용적인 가방이다 .우리 일행은 8층의 한식 음식과 전통 떡 만드는 과정을 밀랍 인형을 전시관 중간에 여기 저기 내 세워 놓았다 .음식 백화점 같었다.일층부터 7 층 까지 모두 한식 의주로 전시관이 었다. 아담하고 장소도 괜찮았다.사실 나는 속으로는 맘이 좀 안 좋었다. 기분이 나쁘다. 그냥 목적이 구경이 었다.점심을 근쳐 식당에서 이럭 저럭에 30 여명이 넘게 그렇게 맛도 없이 먹었다.그리고 남는 시간에 30 여명이 넘게 낙원동 시장으로 인사동 시장 으로 나는 그녀들과 같이 당시 만원 짜리 가방을 들고 아이쇼핑을 하고 다녔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를 지나 다니는 젊은 여성이나 중년 여성이 나를 나의 핸드백을 쳐다 보고 나를 쳐다 보곤 이상하게 인상을 찌푸리고 쳐다 본다. 뭐 못 볼것 이라도 본것 쳐럼 당시 나의 나이는 47살 정도에 나는 웃옷은 불랙으로 슈트 웃도리에 불랙 바지를 입었다 .그리고 소가죽의 가방은 짙은 부라운의 색이였다. 그리고 단화는 랜드로바 가방색과 같은 부라운색을 신었다. 머리는 자연스런 보브 컷트 였다. 그래도 촌뜨기 태가 났다.시골에 사니 당연이 신토불이다 . " 좋잖아요 ? 인간미가 있고 풀풀 사람 같고 아닌가요 ㅋㅋㅋㅋ 사실 미적 감각 찾는 나이는 아니다. 불혹의 나이를 달리는 나이다.
서로가 모르는 그녀들의 눈은 모두 나의 가방에서 시선을 멈추고 나를 꼭 쳐다본다. 여자는 본인이 들고 다니는 가방에서 신분 차이가 나고 남자의 신분은 그가 타고 다니는 애마 자동차 라고 한다 .특히 이상하게 한국 사회에서는 더욱 심하다 .ㅎㅎ 어이 상실이다. 언젠가 TV 에서 명품 가방의 가죽을 보여주는데 물론 다큐 멘타리다.나는 정말 놀랬다 가죽이라는 가죽엔 소가죽 이던 악어 가죽이든지 어떤 가죽에도 가죽에 상처가 하나도 긁힌 자욱이 없어야 한다. 사실이다 그게 명품이다 돗보기와 더 가까운 현미경 같은 걸로 가죽의 것면을 보여주는데 진짜 가죽에 상쳐가 한개도 없고 긁힘이 없다 그래서 명품 가죽 이다. 그외 b품은 가죽에 상쳐 투생이다 .그것은 b 품 으로 가죽의 서열과 가격이 먹여 지는것 이다. 그래서 같은 여자끼리 가방을 보고 상대를 멸시하고 얒보니 돈이 없는 그녀들은 긍지여책으로 가짜 명품 가방을 찾는다. 여자들이 짝퉁에 어쩔수 없다. 나도 그중에 한명이다. 자식인 딸이 버버리 무늬에 명품 가방을 내게 선물을 했다.진짜 같었다 짝퉁인데도 나는 " 희야 가방 얼마나 주었니 , 하고 물으니 딸은 " 엄마 비씨요 ? 그 가방도 짝퉁 이래도 가지고 다니세요?, 한다 그래서 안쪽을 보니 안쪽에도 버버리 라고 영문으로 전체 가죽을 안에 대고 아니 이럴수가 진짜같다. " 깜작이야 , 나는 놀랬다.사실 누구나 여자라면 진짜 명품가방을 사고 갖고 싶고 애장 하고 프다. 사실 명품 가방 하나는 물론 크기가 다르지만 거의 싯가로 1.000만원은 주어야 이돈이면 그래도 좀 중간의 괜찮은 가방을 산다
.그래도 항상 신상은 매진이 된다.그녀들은 명품가방을 애장 할라고 영끌을 한다. 그리하여 .한개.두개.세개 계속 수집을 한다. 그런데 나는 원래 핸드백 이나 가방에 보석등엔 취미가 없다. 옷이라도 깨끗이 세탁해 입고 사워 자주하고 편안한 의복으로 입고 하루 이틀 사는것이 무닌히 지나가면 그게 행복하다.나의 아늑한 4~5 평짜리 세재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나도 젊은 시절 20~40 때 까지는 멋을 엄청 부렸지 어깨 넘어 긴 머리도 40 이 다 되서 짤랐다. 젊은 시절엔 타이트한 옷을 입고 아가는 어블띠로 앞으로 업고 그러고 다니고 그것도 한때다 .젊음이 시들고 생활에 고통을 받으니 멋도 싫고 가꾸는것도 싫다. 편안한 복장이좋다 하루벌어 살기도 바쁜인생이 되니 모두 다 부질없는 것이다. 명품 없으면 죽냐고 소중한 목숨과 자식이 중요하고 최고지 그렇다. 나이가.드니 이.세상이 어떻다는 것을 알게 된다. 스스로다. 그후 16여년이 지나서 지금은 나는 가만히 그때의 낙원동의 시장과 인사동에서 나의 만원짜리 가방을 쳐다보고 이상하게 눈의 촛점을 가방에 대고 못 본것 같이 지나가던 그녀들이 생각이 난다. 이런 된장이니 젠장이니 " 너는 명품 가방만 있으니 이 모르는 여자들아 지금도 그 가방은 내게 있다.비록 가방의 천은 소가죽 으로 만든 가방 이지만 튼튼하고 변함 없고 좋다. 공과금 내러 갈때나 가까운 거리 행보 할때에 딱 좋다.
모두 공과금 용지를 때려 넣고 현금 넣고 가지고 간다. 명품 좋다. 그러나 내겐 그냥 그게 사치고 바라볼수 밖에 없는 물건이다. 왜 나도 나이가 드는데 악어백.이나 소가죽.이라도 명품 가방 3~4개 있으면 좋지 그것은 나의 욕망이 아니다. 현실에서 있어 주어야.되는 소장품 이지만 어찌 되었든지 지금의 내 나이에 안 아프고 하루 이틀 세월이 가면은 좋다. 그게 사는 거지 죽어서 명품 가방 들고 가니 목에 걸고 가니 이런 인간은 상대를 항상 이해하고 타인에게 가슴아픈 상처를 주고 그런 행동 하지.말고 언제나 푸른 소나무 쳐럼 변치 말고 살다 가는것이 좋다.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살자. 그러자 우리 삶이란 평생 가는것이 아니란다.그날은 내게 그대에게 다가 오고있다 . 유행가 가사 쳐럼 늙어 가는것이 아니라 익어 가는 것이라고 .........
2020.12.28 11.31 분에 가방 이 안겨준 비애를 낙원동에서의 싫은 추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