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끝없는 가능성의 시간 / 김승업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흔붓이 흘리고 있다. (중략)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2018년 2월 9일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는 마치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 연상되는 그림 같은 명장면이 펼쳐졌다. 이효석 소설의 무대인 강원도 봉평에서 대화까지 칠십 리 길에 대한 묘사는 두고두고 한국 문학사상 가장 아름다운 길로 꼽히기에 그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타임랩스 기법으로 담은 한국의 사계절이 지나가고 나면 강원도 정선 태생의 최고령 소리꾼 김남기의 '정선아리랑'과 함께 하얀 메밀밭 위로 등장한 순수한 소년 소녀들의 희망찬 항해가 시작된다.
대한민국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여준 이번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은 한국의 전통미뿐만 아니라 ICT 강국으로서 면모를 전 세계에 알린 의미 있는 축제였다. 강원도의 다섯 아이들은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여행을 하며 한국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소개하는데, 이 무대의 많은 부분을 완벽하게 영상으로 구현해낸 점도 놀랍다. 한민족의 정신을 표현하는 백두대간이 무대 위 영상으로 펼쳐지는가 하면, 하늘과 땅을 오가며 1000년을 산다는 새 인면조와 평화의 상징 봉황이 등장하며, 사람과 동물 그리고 자연이 어우러진 과거의 평화로운 한때를 환상적인 기법으로 구현했다. 이뿐만 아니라 5G 기술로 만든 천상열차분야지도가 하늘에 별빛으로 떠오르는 장면은 장관이었다. 특히 드론 1218개로 만들어진 오륜기의 등장과 대한민국 동계올림픽의 새로운 지평을 연 김연아의 성화 점화로 한국의 자긍심을 더욱 고조시켰다.
평창동계올림픽은 세 번 도전한 끝에 성취해낸 값진 올림픽이다. 한때는 '동계올림픽의 불모지'라는 오명을 받으며 평창의 가능성에 의구심을 제기했지만 국내 동계 종목 선구자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묵묵히 그 씨앗을 뿌리며 각고의 노력을 계속해 왔다.
서두에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중 한 부분을 언급한 이유는 그만큼 그 '메밀밭'이 함축하는 의미가 특별하기 때문이다. 끝없이 펼쳐진 아름다운 메밀밭 그리고 비바람 속에 다시 일어선 메밀꽃은 시련과 고난의 현대를 살아온 한국인의 인내와 끈기의 상징이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의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한 선수들과 관계자들에게 가슴속으로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필자는 곧 따뜻한 봄이 되면 평소 자주 찾던 그곳, 강원도를 찾아가 마치 새로운 곳에 당도한 듯 천천히 걸어보고 싶다. 여지껏 간과했던 그 뜨거운 땅을, 메밀밭의 그 의미를 되새기며 말이다. *
[김승업 충무아트센터 사장]
첫댓글 이민 오기 전 수년간 용평에 콘도회웜으로 겨울과 여름시즌을 스키와 골프로 2ㅡ3박하면서 지냈죠.
그 때는 교통이 불편했지만 복잡한 대도를 떠나 매서운 바람도 맞으며 자작나무로 경관이 좋아 조용한 휴식에 만족했어요.
한국인은 88올림픽 이후에 국제행사에 능숙합니다만 생활체육,
실속있는 축제가 되기를 바라죠.
떠벌이식 전시효과를 거부하기를.
맞습니다.
이제 조금씩
나아지겠지요.
세상 이목에
자족함을
찾아야 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