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나희덕
바람은 마지막 잎새마저 뜯어 달아난다
그러나 세상에 남겨진 자비에 대하여
나무는 눈물 흘리며 감사한다
길가의 풀들을 더럽히며 빗줄기가 지나간다
희미한 햇살이라도 잠시 들면
거리마다 풀들이 상처를 널어 말리고 있다
낮도 저녁도 아닌 시간에,
가을도 겨울도 아닌 계절에,
모든 것은 예고에 불과한 고통일 뿐
이제 겨울이 다가오고 있지만
모든 것은 겨울을 이길 만한 눈동자들이다
- 시집 『뿌리에게』(창비, 1991)
나희덕 : 1966년 충남 논산 출생. 연세대 국문과와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졸업.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뿌리에게」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 시집으로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 『사라진 손바닥』『야생사과』『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시론집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산문집 『반통의 물』 등. 김수영 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소월시문학상, 2014년 미당문학상 등을 수상. 2015년 현재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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