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비즈니스는 네트워크로 움직인다.”
“적극적으로 네트워크를 만들어라.”
미국 실리콘밸리를 찾은 한국 스타트업이 가장 많이 들은 조언입니다. 글로벌 K-스타트업 해외진출팀으로 꼽힌 6개 스타트업은 지난 일주일 동안 투자자 또는 선배 기업가 14명을 만나 세계 무대에서 성공할 수 있는 길을 물었습니다. 미국 시장에 이미 자리잡은 선배들은 늘 ‘네트워크’를 강조했습니다. 미국 시장은 세계 스타트업 생태계 가운데 70%을 차지합니다. 세계 무대를 여는 열쇠가 네트워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닌 셈이죠.

▲빌 레이처트 개러지테크놀로지벤처스 매니징 디렉터
네트워크=사람
네트워크가 뭘까요. 그동안 한국 스타트업이 만난 선배들의 말을 되짚어보겠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살아가려면 네트워크 만드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스탠포드대를 나오거나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오라클 같은 회사에서 일하지도 않았죠. 그러니 네트워크를 만들려면 더 적극적으로 뛰어야 합니다.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벤처투자회사(VC) 낙셔리캐피탈에서 매니징 디렉터(상무)로 일하는 패트릭 정 변호사가 전한 조언입니다. 실리콘밸리도 네트워크로 작동한다는 설명이죠. 네트워크란 결국 ‘인맥’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패트릭 정 변호사는 인맥을 적극적으로 개척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빌 레이처트 개러지테크놀로지벤처스 매니징 디렉터 역시 네트워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실리콘밸리는 많은 자원이 모여 있어요. 네트워크도 많이 형성돼 있죠. 한 네트워크 그룹에 뭉쳐있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하지만 더 많은 네트워크에 손 내밀 필요가 있습니다.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면 도움을 요청하세요.”
실리콘밸리에는 인재가 넘칩니다. 실리콘밸리에서 활약하는 많은 기업가와 개발자가 하버드나 스탠포드, 매사추세츠공대(MIT)를 졸업한 수재입니다. 학연이 아니라도 구글이나 야후,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기업에서 일한는 걸출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한두 다리만 건너면 아는 사람이 되는 거죠. 이런 사람은 굳이 인맥을 만들려 애쓰지 않아도 될지 모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온 스타트업이라면 사정이 다릅니다. 혈혈단신으로 이미 끈끈하게 뭉쳐 있는 그들의 리그에 파고들어야 합니다.

▲미국 IT 기업 관계도 (출처 : 로이터통신)
실리콘밸리에선 네트워크로 투자한다
네트워크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투자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채정인 500스타트업 파트너와 제이 류 DFJ아테나 파트너를 비롯해 글로벌 K-스타트업 해외진출팀이 만난 투자가는 “기업이 아니라 사람에 투자한다”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패트릭 정 변호사는 다니엘 그로스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패트릭 정 변호사는 SKT벤처스에서 일하던 중에 다니엘 그로스의 스타트업에 투자하자고 결정했습니다. 이유는 그가 ‘쿨’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랍니다.
“다니엘 그로스는 재밌는 친구였어요. 첫 사업이 망했거든요. 창업자가 2명이었는데, 자기 공동창업자가 관뒀다고 하더라고요. 제품도 별로였죠. 그런데도 ‘내 아이디어를 말씀드릴게요’라면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우린 그의 이야기가 재밌다고 생각했어요. 당시에 18살이었는데, 대학을 중퇴하고 CIA 같은 이스라엘 정보기관에서 일하더라고요. 이런 곳에는 엘리트만 들어가잖아요. 괜찮은 해커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얘기하다보니 불법으로 군대를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까딱 잘못하면 감옥에 갈 수도 있는 신세인데 당당히 창업을 하는 거죠. ‘배짱도 두둑하고 괜찮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미팅 몇번을 하고 사무실로 한번 보러 오라고 했는데, 안 오는 거예요. 자동차가 고장났다나요. 돈이 한푼도 없으니 수리도 못 한다기에, 제가 다니엘을 보러 갔죠. 그런 상황에도 늘 쿨하더라고요. 얘기도 잘 통하고 뭔가 계속 만들고 하는 모습을 보니 ‘얘한테 돈을 좀 투자하자’라고 생각했어요.”
패트릭 정 변호사가 SKT벤처스에서 투자한 돈은 다른 투자가 들어오는 마중물이 됐습니다. Y컴비네이터 파트너인 폴 북하이트 같은 투자자도 속속 다니엘에게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니엘 그로스가 만든 지능형 비서 앱 ‘그레플린(Greplin)’은 훗날 ‘큐(cue)’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애플은 2013년 4천만달러(429억원)가 넘는 돈을 주고 지능형 비서 앱 ‘큐’를 사들였습니다.
네트워크, 발로 뛴 만큼 가져간다
실리콘밸리에서 네트워크를 만드는 방법은 여러가지입니다. 지름길은 없습니다. 우직하게 노력하는 길뿐이지요. 빌 레이처트 디렉터는 “명함만 준다고 네트워킹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꼬집었습니다. 한발 더 다가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명함만 준다고 네트워킹이 되는 건 아니죠. 명함을 주되 도움이 필요할 때 손 내밀고 누구에게 소개해달라고 부탁하세요. 또 행사에 초대하고 무언가 물어보세요. 다른 사람을 도우면 기분이 좋아지죠. 사람은 원래 다른 사람을 돕기를 즐깁니다. 이 점을 활용하세요.”
송영길 제로데스크톱 대표는 상대방에게 가치를 제공해야 깊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인맥은 기브앤테이크입니다. 뭔가 더 깊은 걸 주고받으러면 여러분도 뭔가 줘야 합니다. 줄 게 없다고요? 그걸 찾아내는 게 능력입니다. 내 능력 중에 그 사람이 필요한 게 뭐가 있을까. 한국 앱 지역화하려면 내가 번역해준다고 하세요. 아니면 한국에 홍보할 일이 있을 때 내가 리트윗했더니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전달됐다, 라고 할 수 있어야죠. 뭔가 노력해서 상대에게 가치를 줘야 합니다. 제일 중요한 건 그 사람이 나와 보낸 시간이 낭비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겁니다.”

▲배정영 8크루즈 마케팅 디렉터
배정영 8크루즈 마케팅 디렉터는 대놓고 사업 애기를 하는 쪽보다 자연스레 대화를 나눈 쪽이 투자를 유치하는데 효과적이었다는 경험을 공유했습니다.
“미국 VC를 많이 만나봤습니다. 파트너와 매니징 파트너도 많이 만나봤죠. 우리 생각과 참 안 어울리는 게 한 가지 있어요. 미국 투자자는 본격적인 프리젠테이션을 참 싫어합니다. VC와 만나서 얘기가 잘 풀렸는 때는 파워포인트조차 꺼내지 않은 경우가 퍽 많았어요. 사무실에서 책상에 다리 올려놓고 10분 얘기하고, 파티에서 5분 떠드는 게 날 잡아서 1시간 하드피칭한 것보다 더 좋은 피드백도 받고 훨씬 쉽게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글로벌 K-스타트업 해외진출단으로 미국에 온 스타트업 대표 역시 네트워킹 파티가 피칭보다 더 효과적이라고 하더군요. 희귀병 환우 간병인을 위한 폐쇄형 SNS ‘프롬디엘(fromDL)’을 만든 이준호 프라미솝 대표는 “욕심 같아서는 매일 저녁 네트워킹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습니다.
“투자자를 앞에 앉혀놓고 피칭을 하면 아무래도 서로 경직되게 마련이죠. 투자자는 경계심을 갖게 되고, 스타트업도 정해진 시간 동안 딱딱한 비즈니스 얘기만 할 뿐이니까요. 그런데 함께 밥도 먹고 술도 한잔씩 하면서 자유롭게 얘기하는 시간에는 정말 다양한 얘기를 할 수 있어요. 제가 살아온 얘기부터 왜 이런 서비스를 만들었는지 배경을 몇십분 동안 설명할 수 있죠. 투자자 입장에서도 부담을 내려놓고 가볍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니 ‘내가 아는 VC 아이가 귀가 불편한데, 걔를 소개해주겠다’라는 식으로 자연스레 네트워크를 얻을 수 있어요. 저도 네트워킹 자리에서 많은 분을 소개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