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글무늬문학사랑회 이정순
모발 폰 소리가 요란했다. 새벽 2시, LA에 사는 언니였다. 시간개념이 없어진 그녀는 아무 때나 전화했다. 언제 올 거냐 고 묻는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핑계를 댔다. 약속을 했으면 빨리 와야지, 왜 안 오냐 고 목소리가 갈라졌다. 5개월 전의 만남도, 아침에 먹은 식사도 하얀 백지가 된 언니는 인지 장애가 심한 치매 환자이다.
“여기다 여기” 조카와 공항에 나온 언니는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직은 가족을 알아보는 언니가 6년 만에 보는 동생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통통하던 볼은 움푹 들어 갔고, 눈가는 웃지 않아도 주름이 많았다. 아무 말도 없이 내 손을 꼭 잡고 차창밖을 내다봤다.
언니는 활동적이었다. 성당에서 봉사 팀장으로 일하면서 친구들이 많았다. 매일 수영도 하고, 여행도 다니면서 즐겁게 살았다. 그러나 2019년에 일어난 코로나 19는 언니를 황량한 벌판으로 내 몰았다. 모든 것이 단절된 4층 아파트 감옥에서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3년을 보냈다. 수면제를 사러 약국에 갔다가 집을 못 찾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가족들이 알았다. 효자 소리 듣는 아들 셋도 그 당시엔 어쩔 도리가 없었으리라.
표정도 없고 말이 없는 언니는 매일 나가자고 했다. 찜질방에 가서 등도 밀어주고,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정원에 가서 사진도 찍었다. 맛 집을 찾아 다니면서 맛있는 것도 먹고, 예쁜 쇼핑몰에 가서 전동차를 타기도 했다. 비치에 가서 모래 사장을 맨발로 걷기도 했고, 햇살에 보석처럼 반짝이는 바다를 보기도 했다. 매일 다양한 이벤트를 만들었지만 언니의 감정은 출렁임이 없었다.
어느 날은 사나운 얼굴이 되어 나를 긴장시켰다. 언니의 기억이 반세기도 더 거슬러 올라가 친정 집에 머물렀다. 그 당시 친정 어머니는 몸이 몹시 약했다. 7남매의 맏이인 언니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친정어머니 대신 가사일을 전담하게 되었다. 대학교도, 사회생활도 해 보지 못한 억울함이 동생들 때문이라고 나에게 화살이 날아왔다. 꽃 다운 처녀 시절을 일 만 시킨 친정 엄마를 비난하며 원망의 실타래를 한없이 풀었다. 똑 같은 내용으로 한 달에 몇 번씩 폭발하는 언니의 분노를 가족들은 잘 견디고 있었다.
언니의 기억이 시댁으로 향할 때도 있었다. 깐깐한 홀 시어머니 밑에서 얼어붙은 세월을 살다가, 시누이 초청으로 시댁가족들과 같이 미국으로 이민 왔다, 남편은 미국생활에 적응할 새도 없이 투병하다가 5년만에 하늘나라로 갔다. 남편의 떠남은 밑이 보이지 않은 절벽이었다. 항상 형수 편이었던 첫째 시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심장마비)은 한 팔이 떨어져 나간 슬픔이 되었다. 경제적인 여유와 두 아들의 성공을 뒤로 하고 우울증으로 자살해 버린 막내 시누이 때문에 불면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남편이 죽은 후, 왕래가 끊어진 작은 시누이, 살림을 도와줄 때는 아쉬워서 같이 살던 시어머니가 막상 치매 환자가 되니, 상의 한 마디 없이 언니 집 근처의 양로원으로 옮겼다. 음식 싸 들고 6년 동안 다녔던 양로원, 시누이에 대한 응어리가 끝이 없다. 비난과 원망으로 고함을 지르던 언니는 탈진해서 쓰러졌다. 사무친 말이나 상처가 된 감정이 들어간 기억은 세월이 흘러도 생생하다. 몇 시간 전의 일도 잃어버린 언니가 수십년 전의 기억으로 분을 내고 소리를 높이는 것도 잊히지 않는 감정기억 때문이다. 이민 와서도 장손 며느리라는 눌림에 상처와 슬픔을 드러내지 못하고 혼자서 가슴앓이 했던 착한 언니, 고단하고 힘들었던 미국이 얼마나 싫었으면 한국으로 보내 달라고 했을까?
‘그대, 어이 가리’ 라는 한국 영화가 있다. 치매 문제를 다룬 영화로서 환자의 고통과 가족의 아픔, 핵가족화 시대에 부모를 돌볼 수 없는 자식들의 심리적, 경제적 부담을 다른 공감 가는 영화였다. 영화는 언니 가족의 현실이었다. 현재가 전혀 잡히지 않는 언니의 하루는 두명의 도우미가 지켜 준다. 바라만 보아도 행복한 손주들의 얼굴도 지우개로 지우듯이 사라지고, 잘 생긴 아들들에게 ‘누구 야?’ 물어보는 내일이 올 것이다. 언젠가는 소생이 끈이 없는 시설에 보내야 함을 아들들도 알고 있다. 할 수 있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 보겠다는 조카들의 뭉클한 다짐은 이모인 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일 것이다.
보름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짐을 싸는 내 옆에서 표정 없이 앉아 있던 언니는 오늘은 나하고 자고 싶다고 했다. 마지막 밤인 것을 아는 걸까? 코 끝이 찡해왔다.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몸을 씻어주고, 크림을 잔뜩 발라서 얼굴을 마사지 해 주었다. 머리는 드라이로 말려서 곱게 빗어주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내가 하는 대로 따라 주었다. 선물로 사 간 분홍 빛 잠옷을 입히고 나란히 침대에 누웠다. 언니는 눕자 마자 잠이 들었다. 잠자는 얼굴은 편안했다. 자식들의 짐이 되지 않도록, 병이 더 진행되지 않도록, 언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직이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