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22일 목요일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드로 사도를 선택하시어 당신의 지상 대리자로 삼으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본디 고대 로마에서 2월 22일은 가족 가운데 죽은 이를 기억하는 날이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죽은 이를 기억하는 관습에 따라 4세기 무렵부터는 이날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의 무덤을 참배하였다. 이것이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의 기원이다. 그러나 6월 29일이 베드로와 바오로 두 사도를 함께 기념하는 새로운 축일로 정해지면서, 2월 22일은 베드로 사도를 교회의 최고 목자로 공경하는 축일로 남게 되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3-19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하느님의 깊은 뜻을 저희가 어찌 알겠습니까만
우리가 어떤 일을 시작하기 위해서 반드시 치밀한 계획을 세웁니다. 특히 인간의 생명과 직결되는 일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인공위성을 지구 밖의 궤도에 쏘아 올릴 때, 발사 순간에 측량할 수 없는 오차여도 먼 우주에서는 엄청난 간격으로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과학자들이 말하는 것이 잠시 숫자 놀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주만물의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운행질서를 마련하신 하느님의 섭리를 생각하면 정말 할 말을 잃습니다. 내 인생은 매 순간 오차의 연속이었고, 그 오차의 한계를 넘어서 이제는 겉을 잡을 수 없을 만큼 벌어져 흐트러진 생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울합니다. 그 동안 수없이 세운 많은 계획들이 부질없는 것이고, 그것에 평생의 많은 시간을 허비하였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가슴을 치고 싶은 후회와 회한을 품기도 합니다.
중국의 진나라의 말기에 ''진승'(陳勝)이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친구와 함께 날품팔이 농사일을 하였습니다. 하루는 고용주에게 “만일 장래에 부귀한 신분이 되어도 서로 잊지 맙시다.”하고 말하니 고용주가 비웃으며 “너는 날품팔이나 해야 하는 신분이란 말이다. 어찌 부귀의 몸이 될 수 있겠느냐?”고 면박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진승'이 한숨을 쉬면서 “아아, 제비나 참새처럼 작은 새가 어찌 큰 기러기나 백조와 같이 큰 새의 큰 뜻을 알겠는가?”(연작안지홍곡지지 : 燕雀安知鴻鵠之志)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 후 '진승'은 반란을 일으켜 진왕이 되었고,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도 왕후나 장군이나 대신이 될 수 있다.”라는 말을 하면서 부하들을 더욱 격려하여 그 이후 반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용어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오묘한 섭리와 계획을 우리가 어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완벽하신 일을 우리가 감히 헤아려볼 수 있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찰나에서 아주 작은 공간까지 수많은 인연과 빈틈없이 짜여진 역사와 세상 천지만물의 오묘한 신비를 우리가 어찌 다 알 수 있겠습니까? 오늘 제자들에게 당신이 누구인지 물으시는 주님의 그 깊은 뜻을 누가 감히 알 수 있겠습니까? 다만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아주 작은 부스러기를 겨우 감지하고, 성서학자들의 연구를 통해서 아주 작은 단편들을 겨우 엿볼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나는 땀 흘려 노력하지 않았고, 주님의 뜻을 살피려고 애쓰지 않으면서 주님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는 교만을 생각하니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하고 물으시는 것이 당신의 신원(身元)을 확인하시고, 당신의 정체성에 대하여 몰라서 하시는 말씀이 아닐 것입니다. 또한 제자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몰라서 물으시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또한 베드로가 대답하듯이 당신은 ‘그리스도’이심을 제자들이 알고 있는지 확인하고 시험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다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고 나의 제자로서 하느님 뜻을 깨닫고 제자답게 살고 있는지 성찰해 보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인간적인 차원에서 하느님의 뜻을 잘못 알고 있다면 다시 살피어 반성하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계획을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인간적인 차원으로 생각하고 반박하고 대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고 심한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이나 신원도 모르고 하느님의 계획도 모르는 채 대답하는 것을 나무라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주님은 그리스도이시라고 고백한 것도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불가능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의 신원이나 정체성을 모른 채 성급히 판단하고, 교만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대들고, 반박하고, 하느님을 원망하고, 자신의 뜻대로 하느님이 움직여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본 모습을 찾고 그 신원에 맞도록 살기를 바라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