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없는 교련 시간이었다. ‘개고기’라는 별명이 붙은 무서운 선생님 시간이다. 열심히 필기하는 척 고개를 박은 공책 밑에는 표지를 뜯어낸 알몸의 소설책이 숨죽이고 있었다.
‘황태자의 첫 사랑’
날짜 지난 신문도 대접받던, 읽을거리가 귀한 때였다. 책 한 권 생기면 친구들과 돌려 보던 시절이었다. 남들보다 일찍 연애 소설을 읽는다는 자부심은 야릇한 특권이기도 했다. 결혼을 앞둔 왕자님과의 위험한 사랑이라니…….그 아슬 하고도 달콤한 둘의 만남에서 케티가 되어 왕자님을 만나고 있을 때쯤 뒤통수에서 불이 났다. 다른 것도 아니고 연애소설을 보고 있었다는 것은 당시엔 사건이었다. 몇 차례 더 얻어맞고 책은 선생님 손에 끌려 유배지로 향했다. 반성은 커녕 아쉽기만 했다. 귀한 책이었다. 찾아야 했다. 다음 날 용감하게 교무실로 내려갔다. 선생님은 무엇인가를 읽고 있었다. 빼앗긴 내 책이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선생님은 책을 내밀며 말했다. ‘다 읽고 독후감 써와라!’
상인지 벌인지 아리송해하며 밤새워 책 한 권을 다 읽었다. 가슴 저미는 장문의 독후감을 썼다. 그러나 막상 선생님께 내미니 심드렁하게 놓고 가라는 말씀만 하셨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러나 특권은 다음부터 생겼다. 교련시간마다 나는 마음 놓고 책을 읽었다. 그리고 백일장마다 내 이름이 호명되기 시작했다. 선생님께 써낸 독후감은 국어 선생님에게 전해졌고 국어 시간에 쓴 글들이 백일장으로 전해진 것이다. 언니 오빠들은 용돈을 아껴 책을 사다 주기 시작했다. 어릴 때 읽었던 강소천 동화는 나와 함께 놀고 함께 자랐다. 사랑하는 남녀가 등장하는 소설은 나의 감성을 적시며 감수성 많은 소녀로 살게 해 주었고 세계명작이나 수필집은 어른이 된 뒤에도 내 유년의 한 자락을 차지하고 있었다. 내가 잘하는 것이 책 읽기였는데 그것이 어느새 글쓰기가 된 것 이다.
22살 어린 나이에 결혼했다. 큰 아이가 배 속에 있을 때 태교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많은 책을 읽었다. 뱃속 아기에게 어떤 영향을 줄 거라는 생각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심심했다. 집 근처에 시에서 하는 도서관에서 다섯 권을 빌리면 열흘 동안 볼 수 있었다. 선생님의 눈을 피해 읽었던 명작들도 다시 보고 유명작가들의 신간도 원 없이 볼 수 있었다.
그렇게 태교인지도 모르고 태교를 한 아이가 태어났다. 사내아이였다.
아이가 어렸을 적엔 남들 하는 것처럼 그림책도 보고 음악도 들으며 평범하게 성장해 갔다. 내가 바랐듯이 책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나이보다 일찍 명작을 읽고 많은 책을 가지길 원했다. 또래의 아이들보다 생각의 폭이 넓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일기 쓰기에서 독특한 표현을 사용했고 감수성이 남달랐다. 글을 쓸 줄 알았는데 그림을 그리겠다고 했다. 대학도 소위 명문대를 갔다. 그리고 지금껏 한길을 가고 있다. 내가 원하고 짜 맞추지 않았지만 아이는 풍부한 감성으로 이야기가 있는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굳이 강요하지 않았어도 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 엄마는 책을 읽고 있는 것을 보여 준 것이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된 계기라고 믿고 있다.
요즈음 젊은 엄마들은 아이를 가지면 태교여행을 떠나는 것이 유행이라고 한다. 시간과 경제적으로 무리하면서까지 여행을 가는 것이 왕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엄마의 책 읽기가 자연스럽게 뱃속 아이에게 전달되고 또, 책 읽는 모습을 따라 하다가 습관으로 자리 잡게 된다면 책 읽기만 한 태교가 또 있을까 싶다.
요즈음은 책을 빌려 볼 수 있는 곳이 많아졌다. 아파트 부녀회조차 이동도서관이 왔으니 책을 빌려 가라고 한다. 지적 소유욕이 컸을 때에는 책 도둑은 도둑도 아니라는 말도 있었건만 넘쳐나는 매스컴의 속도에 밀려 책 읽기는 뒷전이 되었다. 어릴 적 엄마 팔베개를 하고 듣던 옛날이야기가 동화책으로 바뀌고 그 동화책은 버튼 하나로 간단히 조작하면 보이는 편리한 세상을 살고 있다. 그러나 한장 한장 넘기며 다음 내용에 가슴 설레는 아날로그 책 읽기 맛에 비할까?
아무리 책을 끼고 살아도 이젠 감성이 예전만 못하다. 빗소리에도 무덤덤한 울림으로 들리기도 하고 봄꽃이 앞다투어 필 때도 탄성을 뱉을 때뿐 이내 잊기도 한다. 그러나 같이 어울리는 이웃들은 아직도 소녀 같다는 말을 하며 비결을 묻기도 한다. 그것은 외모가 그렇다기보다 책 속의 활자들이 내 안에 숨 쉬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껍데기치장보다 더 귀한 것이 내면의 채움이라면 내면의 성형은 책 읽기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독서의 계절을 정해놓지 않는지가 한참 되었다. 휴가 때 동행할 적당한 읽을거리를 사러 서점엘 들렀다. 명품 신상보다 더 아름다운 책들이 싱그러운 잉크냄새로 나를 유혹한다. 몇 권의 책을 바구니에 담으니 이번 여름은 벌써 수확의 가을을 맞이한 듯 풍요롭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