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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31일 헌화로 산책길 ... 집결지(集結地) 정동진역 ...(09:51)
석탄더미에서 아침 해가 떠오르다
1962년 11월 6일 검은 연기와 함께 증기기관차는
정동진나루를 가로질러 바닷가 작은 마을에 기적소리와 함께 도착했다.
작고 아담한 역사에서 여객과 화물수송 업무를 시작한 정동진역은
이후 소박한 소시민들의 웃음과 슬픔, 만남과 이별의 무대가 되었고,
아름다운 바닷가와 주변의 비경이 어우러져 테마 여행지로 각광받게 되었다.
과거 이 지역은 강릉광업소 등 많은 탄광이 밀집해 있던 곳으로,
한때 인구가 5천 명에 이르렀으나. 산업 환경의 변화로 조그마한 어촌으로 변했다.
그러던 중 '모래시계'드라마가 방영된 이후 전국적으로 알려졌고,
다양한 여객상품을 개발되면서 정동진마을은 물론이고, 주변 여러 도시의 관광활성화에도 기여하였다.
2020년 KTX운행으로 정동진역은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동해 바닷가가 되었다.
오랜만에 걷기 좋은 날씨의 '헌화로 산책길' .... 많은 바우님들이 참석했다.
'수리수리 마수리~ 헌화로 산책길 문이여 열려라~'....이사님 Opening ... (09:58)
구간 지기님이 선물하는 수통 주머니 소개... (이사님 웃는 표정이 참 해맑다)
산두꺼비 & 감자아빠
9구간 지기 허브 & 나그네님 인사
지영 씨와 에셈님
정동진(正東津)
정동진은 조선시대에 한양 광화문에서 보아 정동 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것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측량법으로 측정되어 정동진의 위도는
도봉산 인근의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 산 25-3'이며,
반면 서울 광화문 기준으로 현대 측량 기술로 측정한 실제 정동진은 '강원도 동해시 일출로 389-1'이다.
정동진과 직선거리로 15㎞정도 차이 난다.
이로 인해 강릉시와 동해시와의 갈등이 일어났으나,
지리적 정동은 동해시, 역사적·문화적 정동은 강릉시라고 할 수 있다
정동진 일대에는 정동진역 · 모래시계공원 · 정동진 조각공원 · 해수욕장 등 많은 관광지가 있다.
이곳은 1990년대 중반에 TV 드라마로 방영되었던 모래시계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전국적인 관광명소가 되었다.
특히 세계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역으로 기네스 북에 올라 있는 정동진역 구내에는
‘고현정 소나무’라고 알려진 소나무를 비롯해 수십 그루의 소나무가 있어
관광객들의 기념사진 촬영장소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한편 정동진에서 가장 볼 만한 경치는 장엄한 일출(日出)이다.
소나무와 철길이 어우러진 해돋이는 정동진만의 자랑이다.
청량리역에서는 매일 정동진의 해돋이 시각에 맞추어 해돋이 열차가 운행되고 있다.
그리고 매년 1월 1일에는 새해를 맞아 모래시계공원에서 모래시계 회전행사와 해돋이 행사가 열린다.
정동진 일대는 계속되는 난개발로 인해 옛 모습을 잃은 지 오래이다.
정동진역 부근에는 기념품 판매점 · 모텔 · 횟집 등이 줄지어 들어섰고,
건물의 불법 증 · 개축과 용도 변경이 곳곳에서 이루어져 본래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해발고도가 높고 경관이 뛰어난 해안단구에도
각종 위락시설과 숙박시설이 들어서 단구의 본모습을 심하게 훼손하고 있다.
밀레니엄 모래시계 앞에서...(10:20)
정동진 밀레니엄 모래시계는 세계에서 가장 큰 모래시계이다.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여 1999년 12월에 완공되어 2000년 1월부터 가동되었다.
이 시계는 모래가 다 떨어지려면 1년이 걸린다. 1월 1일에 회전하여 12월 31일까지 계속 반복한다.
형태는 일반 모래시계와 달리 둥글며, 레일 위에 놓여있다.
둥근 모양은 시간의 무한성과 동해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상징하고, 레일은 영원한 시간의 흐름을 의미한다.
또한 모래시계의 유리면에는 우리의 전통적 시간 단위인 12 간지가 새겨져 있다.
드라마 《모래시계》가 방영되었고 이 드라마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를 얻자 드라마의 촬영지인 정동진도 유명해졌다.
이에 강릉시는 '새천년 밀레니엄'을 위해 모래시계공원을 추진하였다.
삼성전자의 도움으로 199년 12월 15일에 준공되었다.
시공사 삼성전자와의 계약 만료와 막대한 운영비 때문에
2011년 1월에 가동이 중단되었다가 2011년 10월 20일에 재가동되었다.
잠시 휴식 후.. 외솔봉으로 오름을 시작한다...(10:30)
구름님
리딩으로 수고하시는 나그네님
산우에 바닷길 괘방산 & 삼우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인디언 밥 아자씨...
외솔봉으로 올라 삼거리에서 잠시 휴식...(11:11)
심곡으로 내려 서다 울트라 1구간 기마봉 능선이 시야에 들어온다.
騎馬峰(기마봉)과 玉娘(옥계)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금진리 뒷산 기마봉에 얽힌 전설.
집안이 가난하여 서른이 되도록 장가를 가지 못한 윤복이 사랑하는 옥랑을 두고 전장에 나갔다 돌아와 죽자,
옥랑(玉娘) 역시 윤복의 죽음을 비통해 한 나머지 따라 죽었다는 이야기이다.
기마봉이라는 자연물과 관련하여 전승되는 전설이다.
이 설화는 『명주의 향기(溟州의 香氣)』와 『한국구비문학대계(韓國口碑文學大系)』에 수록되어 있는데,
구전설화의 특성상 채록본에 따라 내용에 차이가 있다.
윤복은 건강하고 잘 생겼으나 집안이 빈한하여 서른이 넘도록 배필을 정하지 못한 채 외롭게 살았다.
그 무렵 고구려와 신라는 치열한 전쟁 중이어서 윤복도 생업에만 전념할 수가 없었다.
윤복이 마음에 두고 그리던 처녀가 있었는데 이름이 옥랑이었다.
윤복이 전장에 나가자 옥랑은 그날부터 뒷산에 제단을 만들고 윤복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빌었다.
어느 날 꿈에 옥랑은 수염이 허연 산신령을 만났다.
산신령은 말 한 필을 주면서 빨리 밤재로 가서 윤복을 구하라고 하였다.
잠에서 깨어난 옥랑은 단숨에 밤재로 달려갔다. 거기서 넋을 잃고 쓰러져 신음하고 있는 윤복을 발견하였다.
전쟁터에서 다리를 상한 채 무리하게 먼 길을 달려 귀향하던 중 고향 뒷산에 이르자 긴장이 풀리어 기진해 쓰러진 것이다.
그러나 하루 만에 윤복이 죽고 말았다. 비통해하던 옥랑도 삼일 후 윤복이 쓰러져 있던 산에 올라 죽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은 두 남녀의 죽음을 슬퍼하여 그녀가 기도하던 산을 기마봉이라 부르게 되었다.
남녀가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죽었다는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서사구조가 단조로워 인과관계가 다소 분명치 않은 부분도 있다.
예컨대 윤복과 옥랑이 서로 교감한 내용은 생략된 채,
전장에 나간 윤복을 위해 제단을 쌓고 무사귀환을 빈 옥랑의 모습이 묘사된 것이 그것이다.
윤복이 옥랑을 마음에 두고 그렸다는 표현만 있을 뿐이다.
또한 기마봉이라는 지명과 옥랑과 윤복의 이야기와는 어떤 연관성도 찾을 수 없다.
옥랑이 기도하던 산의 이름을 기마봉이라 명명하였다는 내용이 있을 뿐이다.
한편 『한국구비문학대계(韓國口碑文學大系)』에 실린 각 편에서는
"옥랑이 말로 변한 채 단숨에 기마봉까지 달려가 자기의 처지를 한탄하였다."는 내용이 있어
기마봉이라는 명칭과의 연관성을 말해 주고 있다.
강릉시 옥계면 금진리에 있는 말을 탄 형상을 하고 있는 기마봉에 얽힌 이야기이다.
이 지역 사람들의 생활과 상상력이 만들어낸 특징적인 전설이다.
/ 디지털 강릉문화대전
Tops 10 Hotel과 망상 해변...
Tops 10 Hotel
평창동계올림픽 공식 지정 호텔이었던 탑스텐호텔은
강릉시 옥계면에 "You are the TOPS"라는 기치로 오픈했다.
탑스텐호텔은 지상 15층 규모로 모든 객실에서 일출을 볼 수 있는 333실의 객실과
350명 이상의 연회 만찬을 수용할 수 있는 웨딩이 가능한 다목적 연회장이 있다.
또한 가장 넓게 동해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스카이라운지와 커피숍, 비즈니스코너, 피트니스센터,
국제 규모의 대형 세미나와 컨벤션 등을 수용할 수 있는 7개의 대 소형 연회장과
450대가 동시 이용할 수 있는 여유로운 주차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심곡리 해안단구 지형 앞에서...
해안단구( 海岸段丘 ) 지형
우리나라 동해안 곳곳에는 해발고도가 다른 여러 단의 해안단구가 발달해 있다.
특히 금진에서 안인에 이르는 정동진 일대에는 해발 70~90m 지점에 폭 800m가 넘는 전형적인 해안단구가 나타난다.
정동진 해안단구에는 저위면(20m) · 중위면(40m) · 고위면(90m) · 고고 위 Ⅱ면(110m) · 고고위 Ⅰ면(140m) 등
모두 5개의 단구면(段丘面)이 나타나는데, 최근 연구에 의하면 해발 160m에서도 단구면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들 단구면은 대개 두꺼운 퇴적층으로 덮여 있다.
그리고 해발고도가 낮은 단구면은 보존이 양호하고 자갈을 비롯한 퇴적물이 신선하나
고도가 높은 단구면은 보존이 불량하고 퇴적물이 심하게 풍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차이는 해안단구의 발달시기를 반영하는 것이다.
정동진 해안단구는 지반의 간헐적인 융기(隆起)로 형성된 것이 아니다.
해수면(海水面)이 높았던 간빙기(間氷期)에 형성된 해안의 평탄면(平坦面)은
빙기(氷期)에 해수면이 낮아지면 단구(段丘)로 변한다.
느리지만 지반이 계속 융기하는 경우, 새로운 간빙기가 다가와 해수면이 과거의 수준으로 재상승해도
시간이 경과한 만큼의 융기로 인해 그것은 계속 단구로 남게 되는 것이다.
정동진 해안단구도 이와 같은 과정을 반복하면서 형성되었다.
정동진 해안단구는 2004년 4월 9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지기님의 공지 사항을 들으면서...
'민들레 홀씨' 처럼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 싶은 철없는 할미...
심곡리로 들어선다.
심곡리 深谷里
‘심곡(深谷)’은 깊은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한글로는 ‘짚일’이라고 하는데 깊은 골짜기라는 뜻의 깊일이 짚일로 변했다.
또한 ‘짚일’을 ‘지필(紙筆)’이란 한자어로 사용하여 종이와 붓이라는 뜻으로
마을의 형상이 종이를 땅바닥에 깔아 놓은 듯 평평하고, 그 옆에 붓이 있는 모습이라고 한다는 설도 있다.
심곡리를 처음 개척한 집안은 경주 최씨, 전주 이씨이다. 마을은 심곡항을 앞에 둔 협곡 형태의 산골짜기에 주로 형성되어 있다.
심곡리는 원래 강릉군 자가곡면 지역으로 시밀, 짚일(지필),
또는 심곡이라 하다가 1916년 행정 구역 변경에 따라 심곡리로 개칭되었다.
심곡리는 1955년 9월 1일 강릉읍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명주군 강동면에 편입되었다가
1995년 1월 1일 시군 통합으로 강릉시 강동면으로 편입되었다.
심곡리는 피래산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가 방재를 지나 남북으로 갈라진 산줄기의 북쪽에 있는데,
남쪽으로 뻗은 줄기는 말탄봉을 이루면서 옥계면 금진리에 와서 끝나고,
북으로 뻗은 줄기는 심곡리 마을을 이루며 바다에 와서 끝난다.
해변보다 약 100m 높은 곳에 있는 평평하고 넓은 고원 지대이다.
해변 쪽으로 푹 파인 좁고 긴 골에 포구가 있고, 집들이 모여 있다.
아늑하고 깊은 골에 위치하고 있어 한국 전쟁 때 북한군들이 쳐들어오지 않아 마을 사람들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심곡리에는 오근산 봉수대가 있었는데, 오근산 봉수대는 북쪽으로 해령산 봉수대[강동면 안인진리],
남쪽으로 어달산 봉수대[동해시 어달동]와 이어졌다.
심곡리가 외지인들에게 알려지면서 주말이나 여름 피서 기간에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한다.
또한 심곡리의 바다에서 나는 김, 미역은 특히 임산부에 좋다고 하여 외지에서 온 피서객들이 구입해 간다.
해안 도로[헌화로]를 따라 남쪽으로 가면 옥계면 금진리가 나오는데,
헌화로는 바다에 맞닿아 있어 드라이브 코스로 인기가 높다.
2016년 심곡과 정동진을 연결하는 산책로인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이
목재 데크 형태로 개설되어 도보로 심곡 해안과 정동진 해안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바다부채길은 2천300만 년 전 동해 탄생의 비밀을 간직한 명소이자 동해의 해안단구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주요 지명으로는 큰골, 작은골, 재랑말, 방추골[방축골], 속등, 복구골[폭구골], 용바우,
문바우[분밖엥], 부처바우[부처끝], 국시뎅이, 봉화재, 정동재[해명재] 등이 있다.
그늘진 이곳에서 식사를 했다...(12:34)
식사 후 다시 모이는 장소...(12:49)
심곡리당신화 深谷里堂神話
강릉시 강동면 심곡리 피내골에 자리하고 있는 이 서낭당은 전통한옥의 팔작지붕으로 지어져 있다.
당집 주변에는 돌담이 쌓여 있으며 특이한 것은 마을 중심부의 민가에 서낭당이 건립되어 있다.
이 마을은 한국에서 보기 드문 해안단구 지층이 형성되어 학술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2005년 이 마을은 강원도의 ‘아름다운 동해안 어촌’으로 선정되어 관리 중이며, 얼마 전까지는 고립되어 인적이 드물었다.
최근 옥계로 이어지는 해안도로가 개설되면서 지리적으로 아름다운 동해안의 풍광을 한눈에 엿볼 수 있는 지역이 되었다.
[채록/수집상황]
1995년도 강원도에서 발행한 『강원 어촌지역 전설 민속지』, 1996년 강릉문화원에서 발행한 『강릉시사(江陵市史)』,
1999년 강릉문화원에서 발행한 『강릉의 서낭당』, 2003년 동녘출판사에서 발행한
장정룡·이한길 채록의 『강릉의 설화』 등에 실려 있는 채록본이 큰 차이 없이 거의 내용이 비슷하다.
2004년에 이승철의 『동해안 어촌 당신화 연구』에서 당신화 전반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가 이루어졌다.
[내용]
약 200여 년 전 심곡마을에 사는 이 씨의 꿈에 한 여인이 나타났다.
그녀는 자신이 함경도 길주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동해안의 바닷물을 따라 떠내려가다가
심곡과 정동진 사이의 부채바위에 걸려 표류하고 있으니 구해달라고 간청을 하였다.
너무나 꿈이 생생하여 이 씨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지난밤 꿈에서 여인이 알려준 부채바위를 찾아갔다.
그곳에 도착해 보니 바위 끝에 나무궤짝이 걸려 있었다. 안을 열어보자 세 분의 여신 화상(畵像)이 있었다.
그 궤짝을 가지고 육지로 돌아온 이씨는 마을사람들에게 지난밤 꿈에서 여신이 당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심상치 않은 징조라 생각한 마을사람들은 회의를 거쳐 세 분의 여신을 서낭당에 모시기로 하였고,
그 후 이 마을에서는 단 한 번의 해난사고도 없었으며 해마다 풍어를 가져왔다.
[모티브 분석]
마을사람의 꿈속에 한 여인이 나타나 부채바위에 걸려 있으니 도와달라고 부탁하고,
마을사람들이 이를 서낭당 신으로 모시고 어촌의 풍년과 안전을 기원하였다는 것은
‘현몽+부래+영험’을 모티브로 한 동해안 어촌 당신화에서 나타나는 기본 모티브라고 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동해안 어촌 당신화에서 주로 나타나는 입향조·현몽·원혼·부래·신벌·영험 등의 모티브 중
세 가지 이상의 모티브를 가지고 있으며, 특히 동해의 조류를 따라 이동하는 부래의 모티브는
동해안 어촌문화의 특성을 밝혀내는 데 중요한 자료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식사 후 잠시 망중한...
자칭 양반 김.....씨 자매님들...
두 분은 친구...
오후 걷기를 기다리면서 담소(談笑)를...(막걸리 몇 잔에 알딸딸한 국땅님...ㅎ)
심곡항을 내려 다 본다...(13:10)
심곡항(深谷港)은 강릉시 강동면 심곡리에 위치한 어항이다.
어촌정주어항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본래 마을 모양이 종이를 바닥에 깔아 놓은 듯이 평평하면서
그 옆에 붓이 놓여 있는 형국이라 하여 이전에는 지필(紙筆)로 불리었다.
그러나 1916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깊은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심곡이라 하였다.
마을이 다른 마을과 멀리 떨어진 오지이고 마을 양쪽에 산맥이 가로막고 있어,
이 마을 주민들은 6.25 사변 때에도 전쟁이 일어난 줄도 모르고 지냈다고 한다.
약 30 가구 정도가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주요 어장인 연안어장의 해상거리는 1~4km 정도 된다.
조용하고 아늑하여 가족단위로 쉬기에 좋은 조그마한 항구로서
낚싯배를 임대하여 항구 앞바다에서 잡아보는 가자미 잡이가 유명하다.
이곳에서 채취하는 자연산 돌김(바위에 붙은 김을 손으로 뜯어서 말려 생산함)은
옛날에 임금님께 진상했을 정도이며 지금도 최고의 자연식품의 하나로 각광을 받고 있다.
또 배를 타고 바다에서 항구 쪽을 보면 마치 북유럽의 해안절벽을 보는듯한 절경이 볼만하다.
현재 옥계면 금진에서 심곡을 거쳐 정동진항까지 연계되는 해안도로가 건설되어 있어,
금진·심곡지구 관광개발사업이 완공되면 강릉지역의 또 다른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인근에 위치해 있는 항구로는 금진항이 육상으로 2km, 해상으로 1km 정도 떨어져 있다.
하늘을 닮아 가는 바다와 등대...
등대와 아버지 / 이생진
육지에서 보는 등대는 허수아비 같지만
해상에서 보는 등대는 아버지 같다
아버지가 왜 이런 데서 나를 맞으실까
실은 어머니를 찾아 나섰다는 의중(意中)의 말
그 말씀은 하시지 않았다
그리운 섬 우도에 가면 (책이 있는 마을, 2000)
헌화로 獻花路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낙풍리 낙풍 사거리에서 강동면 정동진리 정동진역 앞 삼거리에 이르는 도로.
헌화로는 농어촌 관광 도로이기 때문에 통행량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나 해수욕 철과 봄가을 관광 철이 되면 차량 통행량이 많이 증가한다.
[명칭 유래]
헌화로(獻花路)는 신라 성덕왕(聖德王) 때 지어진 「헌화가(獻花歌)」에서 유래한 도로명이다.
순정공(純貞公)이 강릉 태수가 되어 부임하던 길에 그의 부인 수로(水路)가
바닷가 절벽 위에 핀 철쭉을 탐냈으나 위험한 일이므로 아무도 응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 소를 끌고 가던 한 노인이 나서서 꽃을 꺾어 바치면서 부른 노래가 바로 「헌화가」이다.
[건립 경위]
헌화로는 1998년 11월 강동면 심곡리와 옥계면 금진리를 잇는 해안 도로가 개설되면서 활성화되었다.
심곡-금진 구간은 해안 단구의 바다 쪽이 절벽으로 되어 있어 도로가 개설되기 전에는 양쪽이 통할 수 없었다.
원래 이 지역은 명주군에 속하였으나 1995년 강릉시와 명주군이 통합하면서 강릉시에 편입되었다.
시·군 통합 이듬해인 1996년 3월에 시작하여 1998년 11월 강동면 심곡리와 옥계면 금진리를 잇는
해안 도로가 강릉시에 의해 개설되었다. 이 구간이 개설되고 나머지 구간을 연결하면서 헌화로가 되었다.
헌화로는 옥계면 낙풍 사거리에서 시작하여 금진 해안, 심곡 마을을 거쳐 정동진역 앞 삼거리에 이르는 도로이다.
낙풍 사거리는 율곡로, 풍동로, 동해 대로, 동해 고속도로 옥계 나들목과 연결되는 교차로이다.
여기에서 해안 쪽으로 도로를 따라가면 금진 해수욕장, 금진 항구가 있고,
이어 심곡까지 해안 단구상에 조성된 약 2㎞ 길이의 도로가 있다.
이 구간이 옥계면 금진리에서 강동면 심곡리를 이어 주는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해안 도로 구간이다.
이 구간 지형은 높이 60m 안팎의 해안 단구로 이루어져 있고,
이 해안 단구의 절벽을 따라 도로가 개설되어 있어 도로 일대 해안 경관이 절경이다.
구불구불한 도로의 바다 쪽에 방파용 철제 펜스가 설치되어 있고,
그 안쪽으로 차를 세울 수 있는 소규모 주차 공간과 벤치도 드문드문 설치되어 있다.
바로 뒤에는 해안 절벽을 따라 군 경계용 철책과 초소들이 있다.
헌화로는 강릉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필수적으로 찾는 드라이브 코스이기도 하다.
특히 30~40대의 젊은 층과 연인이 많다.
헌화로는 여름 해수욕 철, 겨울 해돋이 관광 철에는 특히 차량 통행이 급격히 증가하여 매우 붐비는 도로가 된다.
정동진역 앞 삼거리에서 율곡로와 합류하여 강릉 시내 방향으로 이어진다.
아래에서 기다리면서 쉬고 있는 애지람 식구들과 바우님들...
하이에나 1
먹이를 노리는 하이에나 2
수로부인과 노인을 생각하면서 헌화로를 걸어간다.
헌화가(獻花歌)
신라 성덕왕(재위 702~737) 대에 소를 끌고 가는 한 노인이 지은 4구체 향가이다.
성덕왕 때 순정공(純貞公)이 강릉 태수로 부임해 가는 도중에,
길 옆 벼랑에 철쭉꽃이 피어 있는 것을 보고 공의 아내인 수로 부인이
그 꽃을 꺾어 달라고 했지만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 마침 소를 몰고 가던 어떤 노인이 위험을 무릅쓰고 꽃을 꺾어다 바치며 노래를 지어 불렀는데,
이것이 '헌화가(獻花歌)'이다.
헌화가 원문
紫布岩乎过希 (자포암호변희)
執音乎手母牛放敎遣 (집음 호수모우방교견)
吾肸不喩慚肸伊賜等 (오힐불유참힐이사등)
花肸折叱可獻乎理音如 (화힐절질가헌호리음여)
헌화가 해석
붉은 바위 가에
잡고 있는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겠나이다.
합궁골(合宮谷)
금진항에서 심곡항으로 가는 '헌화가'의 배경이 된 헌화로 중간에 있다.
합궁골은 자포암과 함께 일출을 보며 자녀가 생기기를 바라는 기도를 올리던 곳이다.
동릉 끝머리인 절벽지대가 V자 모양으로 갈라진 작은 골짜기 초입 가운데에 세로로 뚫린
구멍바위가 있고, 이 바위에서 약 10m 아래에 높이 4m가량 되는 남근을 닮은 입석이
구멍바위 쪽을 향해 자리 잡고 있다.
입석 밑 양쪽으로는 자연석으로 된 동그란 공알 바위가 놓여 있다.
부부가 함께 이곳에 오면 금실이 좋아지고 바라던 아기가 생긴다고 한다.
또한 자녀를 점지해 주는 신통력으로 비를 내려준다고 하여, 합궁골 꼭대기는 가뭄이 들었을 때
기우제를 지내는 장소로도 사용되었다.
합궁골 앞의 남근석은 헌화가(獻花歌)의 첫 소절인 「자줏빛 바위 가에(紫布岩乎邊希)」 에
나오는 자포암(紫布岩)이라는 설이 있다.
즉, 자포암은 「발기했을 때의 검붉은 색을 띠는 남성의 성기(性器)」를 표현한 것이며,
헌화가는 이 남근석(男根石)을 숭배하는 노래라는 것이다.
금진리 쉼터에 도착해서... 울트라 1구간의 출발지 이기도 하다... (13:52)
금진리 金津里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에 속하는 행정리.
금진리의 동쪽으로는 동해 바다, 서쪽으로는 낙풍리, 강동면 산성우리,
남쪽으로는 낙풍리, 현내리, 주수리, 북쪽으로는 강동면 심곡리와 접해 있다.
금진리 뒷산[말탄봉]의 형국이 ‘금(金)’ 자처럼 생겼고, 고기잡이배를 대는 나루가 있어 금진이라 했다고도 하며,
‘금진’의 금(金) 자는 ‘검다’는 뜻을 나타내기 때문에 땅이 검고 나루가 있어 생긴 이름이라고도 한다.
금진리는 본래 강릉군 옥계면 지역으로 땅이 검고, 개(浦)가 있어서 검은 개라는 뜻의 먹진, 묵진이라 했는데,
1916년 행정 구역 변경에 따라 건남리를 합병하여 금진리가 되었다.
1955년 9월 1일 강릉군에서 명주군으로 소속이 바뀌었고, 1995년 1월 1일 도농 통합으로 강릉시에 편입되었다.
[자연환경]
금진리 앞에는 동해 바다와 백사장이 있으며, 뒤편으로는 말탄봉이 솟아 있고
그 줄기가 남북으로 내려가면서 마을을 감싸고 있어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금곡리의 남쪽에는 주수천이 흐르며, 넓은 들판과 개(浦)가 있다.
북쪽으로는 강동면 심곡리와 경계가 되는 지필재가 가로막고 있으며 지필재 아래쪽에는 항구가 있다.
[현황]
금진 3리는 원래 건남리[근남리] 지역으로 마을 앞에 포구가 있어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이 있고,
금진 1리 쪽은 넓은 들을 끼고 있어 농사짓는 사람이 많이 있다.
바닷가 쪽에 인구가 밀집되어 있으며, 금진리의 앞에 해수욕장이 있는데
모래가 곱고 수심이 얕아 가족 단위로 조용히 피서를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금진리에는 금진초등학교와 한국여성수련원, 해양경비안전서 출장소가 있고
금진해변, 옥계해변, 금진항이 있으며, 특히 천연미네랄이 함유된 붉은빛의 온천수 금진온천이 있다.
온천욕도 좋지만 찻집으로 구성된 휴식공간이 동해바다를 감상하는 여유를 갖게 한다.
머리에 꽃을 꽂은 ...참으로 집요한 할미...^^
령관엄마, 에셈. 맘모스. 구름...
금진항 (金津港)
원래 땅이 검은 포구라는 뜻의 먹진, 또는 흑진이라 불렸으나
1916년에 행정구역을 변경할 당시에 건남리를 병합해 금진으로 개명됐다.
강릉의 대표 관광지 중 하나인 정동진과 옥계 해수욕장 사이의 해안도로를 지나는
관광객들이 중간 경유지인 금진항에서 이따금씩 차를 멈춰 세우기도 한다.
이 해안도로의 구간 중에서도 특히 심곡항 ~ 금진항 사이의 헌화로는
일부러 찾아오는 관광객이 적지 않을 정도의 풍광이 아름다운 해안도로로 유명하다.
옥계 해변 쉼터에서...(14:20)
갯메꽃
중부지방 이남의 바닷가 모래땅에 흔하게 자라는 덩굴성 여러해살이풀로
전 세계 온대 및 아열대지역에 폭넓게 분포한다. 땅속줄기는 굵고, 옆으로 길게 뻗는다.
꽃은 5-6월에 잎겨드랑이에서 난 꽃자루에 한 개씩 피며, 분홍색이다.
화관은 희미하게 5각이 지는 깔때기 모양이다.
덩굴성 여러해살이풀이다. 땅속줄기는 굵고, 옆으로 길게 뻗는다.
줄기는 땅 위를 기거나 다른 물체를 감고 올라가며, 길이 30-80cm다.
꽃은 5-6월에 핀다. 바닷가 모래땅에 흔하게 자라는 해안 사구식물이다.
옥계 ! ... 다시 올게 ...
옥계해변
1982년 4월 10일 관광지로 지정되어 있으며,
깨끗하고 넓은 백사장과 수령 30~40년생 이상 된 송림지역을 갖춘 해변이다.
인근의 석병산에서 바다로 흘러드는 물줄기의 영향으로 수온이 비교적 따뜻하여 하계 휴양지로 적지이다.
여름철 해수욕장 최대 수용능력은 2만 명 정도이고, 아름드리 소나무 숲에 강원도 여성수련원이 자리 잡고 있다.
옥계해변은 깨끗하고 넓은 백사장과 오래된 송림지역을 갖추어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으로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특히나 동해 특유의 물빛이 맑아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이며
푸른빛이 햇볕을 받아 일렁이는 모습 또한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또한 그 옆에 있는 옥계항은 파도가 세차기로 소문났고 겨울바다가 아름다운 곳이다.
특히 옥계항은 옥계도시계획사업에서 시멘트를 운송하는 항구로 허가받아
강릉 옥계산업단지가 그 옆에 건설되었고, 강원특별자치도의 시멘트 사업의 큰 부분을 담당하는 산업단지이기도 하다.
옥계해변에서 서핑과 캠핑을 즐기는 것도 하나의 즐거운 추억거리이다.
옥계해변 옆에는 송림이 조성되어 있기 때문에 허가된 공간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보내면
강릉에서만 볼 수 있는 하늘에 촘촘히 박힌 별들과 바닷바람, 파도 소리 모든 것이 여유로우며 운치를 느낄 수 있다.
오후의 평화로움 ...
여성 수련원 소나무 숲 길을 걸어 간다.
백두대간 백봉령 근처 자병산 봉우리....
고개를 우측으로 90도 꺾어서 보면 사람 얼굴 형상이 보인다...(목이 아픈 건 책임 못 짐)
자병산 (紫昞山)
자병산은 강원도 강릉시 옥게면,동해시 신흥동,정선군 임계면의
경계에 위치하면서 백두대간 상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산이었다.
자병산의 붉은 뼝대(절벽)는 산계 팔경에 들어간다고 칭송하였고,
어떤 가뭄에도 자병산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온다는 말이 전해 오듯이 이 고장의 진산이기도 하였다.
그런 자병산 아래에 한라시멘트 공장이 들어서서 1985년경부터 자병산에서 석회석을 파내면서
산이 흘리고 찢겨서 이제 그 정상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산전체가 흉한 모골로 내려앉고 있다.
후발업체인 한라시멘트가 동해안의 항만시설과 아파트 건설을 위해
시멘트를 생산하면서 정부의 독려 속에 자병산을 마구 파헤쳤던 것이다.
그리고 부분적으로 복원공사를 하기는 하였으나 외래종 식물이나
해송을 옮겨 심어 오히려 생태계 교란을 부추긴다는 비판의 소리가 높다.
옛말에 이르기를 산이 부서지면 사람들에게 불행이 생긴다라고 했는데,
자병산이야말로 사람에 의한 재난의 대표적인 사례이고,그로 인한 홍수 피해등 아랫동네에 재해 또한 끊이지 않고 있다.
붉은 뼝대도 사라지고,정상도 145m정도 낮아질 것이라고 하니 자병산(紫昞山)은 이제 자병산(刺病山)이 되어가고 있다
한국여성수련원 앞에서 스탬프를 찍으면서 발걸음을 마무리한다.,.(14:50)
한국여성수련원 韓國女性修練院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금진리에 있는 여성 전용 교육 시설.
한국여성수련원은 여성의 사회활동 참여와 복지 증진, 그리고 여성과 가족을 위한 안전한 쉼터 제공을 위해 설립되었다.
2008년 12월 한국여성수련원 법인 설립 허가 및 한국여성수련원 건축 공사 준공을 마쳤으며,
다음 해인 2009년 1월에 법인 설립 등기를 마쳤다.
같은 해 4월에 한국 양성 평등 교육 진흥원과 MOU를 체결하였으며, 6월에 개원식을 가지고,
8월에 한국여성단체협의회와 MOU를 체결하였다.
이어 10월~12월에 각각 강원도 인재개발원, 한국예술총연합회 강원도연합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등과 MOU를 체결하였다.
2010년에는 월정사 문수청년회, 코레일 관광개발, 이화리더쉽개발원,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충북대학교 인력개발원,
가톨릭대학교 수치료사업단, 국립평창청소년수련원, 한국행정 DB 센터 등과 MOU를 체결하였다.
같은 해 12월에는 상지 대학교 여대생 커리어 개발 센터, 한국 여성 재단, 국제 여성 가족 교류 재단 등과 MOU를 체결하였다.
2012년 5월에 일산 명지 병원과 MOU를 체결하였고, 9월에 지방 행정 연수원과
10월에 강원 도박 중독 예방 치유 센터와 각각 MOU를 체결하였다.
또한 같은 해 7월에는 홈페이지 개인 정보 보호 우수 사이트로 선정(ePRIVACY 마크 인증)되기도 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
여성 교육 문화 공간으로서 성 평등 의식 함양 및 영향력 강화 교육을 비롯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여성 교육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교육 프로그램으로는 성별 영향 분석 평가 관련 교육, 역량 개발 및 파트너십 교육,
리더십 및 역량 강화 교육,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차세대 리더 양성 교육 등이 있다.
문화 프로그램으로는 건강하고 화목한 가정 만들기를 위한 가족 역량 강화 캠프나 건강 부부 캠프가 있고
지역 주민이 문화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지역 문화 안내사 과정 등이 있다.
시설은 부지 면적 4만 3000㎡, 건물 면적 1만 126㎡[연수동 3,300㎡, 숙박동 6,826㎡]의 5층 건물이다.
1층에는 다목적실, 식당, 전시실이 있고, 2층에는 대강당, 헬스장, 사우나, 강의실, 휴게실, 유아 놀이방이 있으며,
3층에는 대강당, 강의실, 휴게실, 숙박 시설, 4층에는 휴게실과 숙박 시설,
5층에는 휴게실, 숙박 시설, 스카이라운지 및 매점이 있으며, 야외에 산책로와 소공연장을 갖추고 있다.
하이! 지영씨 ~ 테라씨...
완주 봉사회에서 시원한 수박을 가져와 나누어 주고 있었다. (사랑초,쟈스민님 고맙고 감사합니다)
Bus를 타려는 바우님에게 금품 갈취(?)를 하고 있는 씬씨아님이 무서워 오늘 발걸음 끝!
제법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라는 이름으로 함께한 바우님들 대단히 수고하셨습니다.
사랑 할수록 / 부활 한참 동안을 찾아가지 않은 저 언덕 너머 거리엔 오래전 그 모습 그대로 넌 서 있을 것 같아 내 기억보단 오래돼 버린 얘기지 널 보던 나의 그 모습 이제는 내가 널 피하려고 하나 언젠가의 너처럼 이제 너에게 난 아픔이란 걸 너를 사랑하면 할수록 멀리 떠나가도록 스치듯 시간의 흐름 속에 내 기억보단 오래돼 버린 얘기지 널 보던 나의 그 모습 이제는 내가 널 피하려고 하나 언젠가의 너처럼 이제 너에게 난 아픔이란 걸 너를 사랑하면 할수록 멀리 떠나가도록 스치듯 시간의 흐름 속에 이제 지나간 기억이라고 떠나며 말하던 너에게 시간이 흘러 지날수록 너를 사랑하면 할수록 너에게 난 아픔이었다는 걸 너를 사랑하면 할수록 * 사랑할수록(김태원 작사/작곡)은 1993년 발표한 부활의 3집 기억상실의 타이틀 곡으로 김재기(1968~1993)가 불렀다 이 곡은 정식으로 녹음되지 않은 곡으로, 본 녹음에 앞서 가이드 형식으로 연습 삼아 단 한 번 불렀으나, 직후 김재기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을 거두면서 어쩔 수 없이 해당 데모 트랙을 앨범에 수록하게 되었다 김재기 사후(死後), 동생인 김재희가 보컬 자리를 이어받아 활동 하였으며, 이후 1994년에 SBS TV가요 20에서 7월 5주 1위, KBS 가요톱10에서 2주 연속으로 1위를 했고, 앨범도 120만 장 이상 팔리게 되어 1994년 앨범 판매고 2위를 달성했다. 단 한 번의 라이브로 녹음 된 데모 트랙이었음에도 높은 완성도를 가졌으며, 120만 장 이상의 판매액을 기록하여 부활 역대 최다 판매액을 가지는 음반이 되었다. 김태원은 녹음 과정이 상당히 까다롭기로 유명한데, 그가 제대로 녹음하였다면 분명 세계적인 곡이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다른 가수들이 부른 노래를 듣다가도 어느새 다시 원곡을 찾아서 듣게 되는 매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사랑할수록 은 음악 취향 Y가 선정한 발라드 베스트 100 중 16위에 랭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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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랜만에 반가웠습니다. 오늘도 즐거이 잘 걸었습니다!^^ 수박은 닉네임 "노간주나무"님 께서 지원해주시고 완주봉사회에서 수고해주셨습니다.감사히 잘 먹었습니다.고맙습니다~^^ 즐감합니다 ~
청량한 바람과 적당한 햇살~
날씨덕에 콧노래에 흥이 더 실린
즐거운 날이였어요~
걷자님~얼굴 뵈어서도 좋았구요
수고 많으셨고 감사합니다~^^
걷기에는 더 없이 좋은 날이었어요 ^^
출발지에서 걷자님 얼굴을 뵙는 순간 어찌나 반갑던지요,, ^^
오랫만에 걷자님의 후기를
반갑고 감사하게 봅니다
감사합니다~걷자님 ^^
글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안나오시면 재미없어요~^^ 식물이름 맞추다가 해안단구를 놓쳤네요. 다음엔 꼭 봐야지~!^^
늘 짬짤한 정보와 이야깃거리 제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동진역이 세계에서 바다와 젤 가까운 역이라니 놀랐습니다. 해안단구가 옛날 해수면이었으면 강릉은 바다속?
감사히 읽었습니다 ~~~^^
옥계 기마봉의 전설, 정동진 해안단구
심곡리당신화의 설화, 심곡리 마을과 심곡항의 유래
헌화로와 헌화가, 합궁골의 남근석
금진리 마을과 금진항의 유래, 자병산 봉우리의 사람 얼굴, 갯메꽃 등
걷자님께서 올려주신 많은 깨알정보로
헌화로 산책길이 더욱 새롭고 의미 있는 길로 각인됩니다
다음에 다시 걸을때는
유심히 잘 살펴보면서 걸어 봐야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늘 앞으로 뒤로 바쁘신 걷자님께 또다시 무한 감사를 드리며 내가 좋아하는 막걸리 한잔 사드려야겠네요~~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