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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치유사역 2
마 9:27-38
27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28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29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30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고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셨으나
31 그들이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퍼뜨리니라
32 그들이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께 데려오니
33 귀신이 쫓겨나고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거늘 무리가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하되
34 바리새인들은 이르되 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37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38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마 9:27-38 / [맹인 두 사람을 고치시다] 예수께서 그 소녀의 집을 떠나 길을 가시는데 맹인 두 사람이 뒤따라오면서 큰소리로 `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28) 예수께서 집안으로 들어가시자 그들도 따라 들어왔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너희 눈을 뜨게 할 수 있다고 믿느냐?' 하고 물으시자 `예, 주님, 우리가 믿습니다' 하고 맹인들이 대답하였다. 29) 예수께서는 그들의 눈을 만지며 말씀하셨다. `너희 믿음대로 되라' 30) 그들은 그 자리에서 눈을 떴다. 예수께서는 아무에게도 이 일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31) 그러나 그들은 예수의 소문을 온 지방에 퍼뜨렸다. 32) [벙어리를 고치시다] 그들이 떠난 뒤에 사람들이 귀신 들려 벙어리가 된 사람을 예수께 데려왔다. 33)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시자 그 사람은 곧 말을 하였다. 사람들은 너무도 놀라 외쳤다. `우리가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일을 보기는 처음이다.' 34) 그러나 바리새파 사람들은 이렇게 빈정거렸다. `그가 귀신을 쫓아낸 것은 바로 그가 귀신이 들렸기 때문일거야. 그는 귀신의 왕 사단의 힘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있어.' 35) [목자 없는 양] 예수께서는 그 지역의 모든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유대인의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다. 그리고 온갖 병에 걸린 사람들을 다 고쳐주셨다. 36) 또 모여든 군중을 보시며 목자없는 양처럼 불쌍히 여기셨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너무나도 큰데, 그들은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에 가서 도움을 받아야 할지도 모르는 가엾은 백성들이었기 때문이었다. 37)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구나. 38) 그러니 너희는 추수하는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을 보내 달라고 기도하라.'
예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후, 두 맹인과 귀신 들려 말하지 못하는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너희 믿음대로 되라(27-31) 예수께서 야이로의 집을 떠나가실 때 두 맹인의 간절한 호소에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고쳐주십니다. 두 맹인은 주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다윗의 자손이란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 이스라엘을 외압에서 해방시키고 다윗 왕국을 회복시키실 메시야를 지칭하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두 눈을 가지고 메시야이신 주님을 보면서도 믿지 못하는 종교 지도자들보다 비록 세상을 보지 못하는 두 맹인의 눈이 더 밝고 온전했습니다. 주님은 두 맹인의 믿음을 아셨으나 묻고 확인하셨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이적의 원인이요, 또한 결과라는 사실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요 20:31).
무리가 놀랍게 여겨(32-34) 두 맹인을 고치신 후 이번에는 사람들이 귀신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데려왔습니다. 주의 권능 앞에 귀신은 쫓겨나가고 맙니다. 그러자 귀신 들렸던 자의 입이 열렸습니다. 그러고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무리들은 주님의 권능에 놀라워합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주님의 권능을 귀신의 왕의 힘을 빌어서 쫓아낸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주님을 메시야로써가 아닌 사단의 영에 사로잡힌 자로 매도한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는 그들 스스로가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입니다.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부정할 때, 메시야의 증거인 표적과 이적은 질투심과 열등감을 낳습니다. 모든 사람이 증거를 통해서 진실을 보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자만이 볼 수 있는 특권입니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35-38) 예수께서는 이후 여러 곳에 다니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쳐주십니다. 주님은 세상의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이는 무리들이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목자 없는 양이란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의 선한 목자이심을 깨닫지 못했던 대부분의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에게는 지도자가 있느냐 모두 길 없는 산으로 인도해 길을 잃은 채 방황할 뿐이었습니다. 이들을 바라보시던 주님의 긍휼한 마음이 이제는 성도의 가슴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어야 합니다.
적 용 : 주님은 제자들에게 추수할 일꾼이 적다고 했습니다. 추수할 일꾼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추수할 일꾼으로 당신을 부르시고 있음을 아십니까?
어느 마을에 양을 치는 목동이 있었습니다. 저녁때가 되면 양을 몰고 산에서 내려오는데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특정한 장소에 이르면 양들이 가벼운 상처를 입는 것이었습니다. 이 같은 일이 계속 반복되자 목동은 그곳에 가서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유심히 관찰해보니 그곳에는 작은 가시나무가 있었습니다. ‘음…이 가시나무가 양들을 찌른 것이었군.’ 목동은 다음 날, 가시나무를 베어내려고 그곳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목동은 그 가시나무를 자를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가시나무에 걸려 있는 양털을 새들이 물고 날아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양들의 상처로 얻은 털이 새들의 포근한 둥지가 되는구나!” 목동은 가시나무를 베지 못한 채 돌아섰습니다.
< 설 교 >
주님을 대신하여 가는 사람들
마태복음 9:35-10:8
우리는 지난주간 엄청난 일들이 터지므로 어떻게 한 주간을 보냈는지 모르겠습니다. 6.13 지방 선거가 끝나고 발표되었는데 정말 충격적인 결과를 접하였습니다. 선거를 치르다보면 이기는 사람들이 나오고, 지는 사람들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일반적인 상식수준을 뛰어 넘었습니다. 그동안 누적되어오던 권력형비리에 대하여 온 국민들이 레드카드를 뽑아들었습니다. 이것은 어느 정당이 더 잘하였기 때문에 성원을 보낸 것이 아니라 부패한 나라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국민적인 분노가 이심전심이 되어 이런 결과를 만들어내었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승리한 이들은 더욱 겸손해지고 온 국민의 공복이란 정신으로 맡겨진 직위에 충실하기 바라며, 패배한 정당과 고개 숙인 사람들은 뼈를 깎는 자기 반성과 과거와의 단절을 통하여 거듭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책임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는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신앙을 가진 우리는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의 창조하셨으며 역사를 주관하시며 섭리하시는 중에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사람은 누구도 예외 없이 그 분 앞에 서야한다는 정신으로 인생을 책임적이며 성실하게 신앙고백적인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주간 흥분의 용광로에 빠져들었습니다. 지금도 흥분과 감격이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축구가 16강에 그것도 자력으로 진출한 것입니다. 뉴스위크지에는 히딩크 감독을 "신화를 만드는 사나이"라고 평하고 있습니다. 우리 대표선수들은 최선을 다하여 뛰었기에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봅니다. 우리 선수들에게 칭찬과 격려를 보내면서 히딩크의 리더십에 대하여 말씀드려봅니다. 이것은 제가 분석한 것이 아니라, 삼성경제 연구소에서 최근에 발간한 연구보고서에는 히딩크 리더십에 관한 상세한 분석을 담고 있습니다.
1) 전문성(Expertise) 그는 세계 최고 수준의 유럽 축구팀을 정상에 올려놓았던 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필요하면 특수한 분야의 전문가를 데려다가 선수를 지도하고 관리하고 있습니다.
2) 공정성(Impartiality) 그는 감독은 명성이 아닌 실력과 선수의 현재 상태를 위주로 하여 선수를 출전시키고 있습니다. 국내 감독 같으면 연고와 파벌과 외압의 영향을 받겠지만 공정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3) 기본의 강조(Fundamental) 체력 강화 훈련 프로그램을 통하여 세계 수준의 체력을 보유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4) 혁신의 추구(Innovation) 창의성에 바탕을 둔 생각하는 축구를 표방하였습니다. 90분 동안 선수들이 적진을 압박하고 경기의 주도권을 잡는 공격 축구를 선수들에게 주문하고 있습니다.
5) 소신과 가치의 공유(Hardness & Value sharing) 몇 번의 부진 속에도 소신을 가지고 팀을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제가 설교하는 시간이기에 그의 리더십에 대하여 더 자세히 말씀드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16강에 올랐으니 최선을 다하여 8강 4강에 들어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축구는 1명의 감독과 11명의 선수가 경기하는데, 초대교회는 예수님이라는 감독과 12명의 제자들이 뛰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선발하신 12명의 제자들은 불완전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선량하다거나 역량을 갖추었다거나 준비된 사람이기에 앞세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중요한 일일수록 사람을 채용할 때에 신중하게 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을 영입하기 위하여 힘을 기울이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 주님과 그의 사역에 대하여 알아보아야 합니다.
1. 우리가 만나는 주님은 목자이셨습니다.
35절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면서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쳐주셨습니다. 주님은 앉아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아주신 것이 아니었고, 여러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가시는 곳마다 회당에 들어가서 가르치시고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시고 여러 많은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다 고쳐주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적극성을 띄고 사람들을 만나시고 복음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서 우리도 많은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요, 예수님의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하면 복음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찾아가고 그들을 섬기며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려고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36절입니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우리 주님은 사람들을 볼 때 불쌍히 여기시는 미음 민망히 여기시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마치 목자도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고 기진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 하나님의 심정과 우리 주님의 마음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사람들을 보실 때에 무리로만 보지 않으시고 그들을 목자 없는 양같이 보셨습니다.
양이라는 동물은 목자가 있어야 사는 짐승입니다. 양은 목자가 없으면 자기 밥도 제대로 찾아먹지 못하고 갈 길을 올바로 가지 못하며 위험한 처할 때 자기 방어능력이 전혀 없어서 맹수의 밥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당시에 무리들을 보시면서 그런 안타까운 심정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디모데전서4:2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베드로후서 3:8-9에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신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복음 전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심장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빌1:8)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성도들을 사모하고 있었는데, 빈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증인이 되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현대인들은 물질적으로는 넉넉하게 살고 부족함이 없다고 말하지만 영적인 눈으로 보면 참으로 가난하고 가련한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마지막 세대의 교회를 상징하는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은 상태에 빠져있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계3:17) 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의 많은 사람들이 그가 처한 형편과 처지를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더욱 큰 문제입니다. 오늘과 같이 살기 좋은 시대에 교회에 이 세상에 존속해야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무슨 성령을 받아야 하며, 천국과 지옥의 의미가 무엇이냐며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심정을 가지고 목자 없는 양처럼 고생하는 이들의 상처를 싸매어 주어야 합니다. 홀로 있어 고독을 벗삼아 지내는 이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말벗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2. 예수님은 추수할 일꾼을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을 보내어주소서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안목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의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하는 이들을 불쌍히 여기셨는데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보시면서 지금은 영적으로 추수할 때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하는 사람들의 현실을 보면서 예수님은 추수할 때라고 하셨습니다. 이젠 서둘러서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치고 병자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추수하는 시기는 아주 중요한 시간입니다. 추수하는 시간을 놓치면 안됩니다. 예수님은 외견상으로 나타나는 현실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깊은 곳에 있는 인간을 보았습니다. 인간의 영적인 상태를 눈여겨보시고 사람의 심령이 병들어 고통하는 때는 거두어들일 때가 되었다는 신호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성이 돌아오는 모습을 보시면서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요4:35)고 말씀하셨습니다. 농사에 있어 씨뿌리는 것도 중요하고 김을 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추수는 시간을 다투는 문제입니다. 일년동안 땀흘려 일하였어도 추수하는 시기를 놓치면 한 해 농사를 망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추수는 알차게 영글고 익어가야 추수하지만, 인간은 고통 당하고 실의에 빠질 때 추수해야 한다는 이상한 법칙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추수하는 주인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추수하는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기도의 대상이 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추수하는 일꾼을 보내어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추수할 일꾼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영혼을 구원하고 구원의 방주로 불러들이는 일을 위하여 헌신할 일꾼을 부르고 있습니다. 사람을 만나면 그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며 복음을 받아들이고 주님을 영접한 사람인지 아닌지에 관심을 가지고 영혼을 구원하려고 힘쓰는 이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은 영적인 추수꾼으로 부르셨습니다. 추수는 참으로 보람된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심고 어떤 사람은 김을 매주고 물을 주고 약을 치느라고 수고하지만 거두는 사람은 큰 기쁨과 보람을 얻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추수하는 일에 힘쓰지 않으면 하늘의 큰 기쁨과 보람을 누릴 수 없습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전도하는 것은 신앙의 큰 기쁨을 누리는 것이요, 살아있는 영력을 얻는 길입니다.
구 소련 연방을 창설하였던 "트로츠키"(Lev. Trotskii)는 미국 뉴욕에서 4년 동안 기자 생활을 하였는데 아무도 자기에게 전도하는 사람을 만나보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이는 말을 하였습니다. "교인이라는 사람들이 기독교의 천국에 대하여 믿지 않거나 자신이 없다는 증거라"고 꼬집었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것 같은데 십자가의 복음에 대하여 확신이 없다는 말입니까? 우리 모든 성도들이 우선 나만 구원받으면 된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닙니까?
3. 예수님은 파송하실 제자들을 선택하였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사람들이 필요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확장하기 위하여 헌신하려는 사람들을 필요로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대신하여 생명을 살리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할 사람들이 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귀하고 소중하기 때문에 더욱 신실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면 우리 예수님은 당시에 멸시받고 천대받는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을 불러 세우고 있습니다.
10:1-8에는 12제자를 선택하시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유능하고 진취적인 생각을 가진 않고 당시에 멸시와 천대받는 이들을 부르시고 세우시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 운동을 위하여 간부 요원으로 12제자를 뽑고 경영연구소에 의뢰하여 그들 12제자들의 자격을 따지게 한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이런 대답이 왔을 것입니다. "귀하가 의뢰한 12명의 이력서를 검토하고 심리테스트와 적성검사를 모아 컴퓨터에 넣어 결과를 분석하였습니다. 요약하면 그들은 귀하가 계획하는 새 단체의 간부로는 자격 미달입니다. 우선 학력이 너무 낮고 경험이 부족합니다. 그들은 단체 관념이 없고 협조 정신이 약하여 경영관리자로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정서적으로 안정성이 결여되어 있고 성격이 너무 과격합니다. 안드레는 한마디로 무능력자입니다. 남을 지도할 사람이 못됩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귀 단체의 이익은 제쳐놓고 개인의 이익이나 추구할 사람입니다. 마태는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사람입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이 두 사람은 사회혁명을 노리는 과격한 불온 사상에 감염되어 있어 귀하가 생각하는 온건한 집단에는 해로울 것입니다. 귀하가 추천한 12명 중 긍정적인 해답을 드릴 자격이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입니다. 그는 가룟유다입니다. 그는 능력과 가능성이 있고 사회 지식도 풍부하며 똑똑한 경영자로서의 감각과 판단력이 있습니다. 사교성이 있어 상류 권력층과 접촉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강한 동기와 의욕에 가득 차 있습니다. 따라서 본 경영연구소에서는 유다 한 명만 추천하고 남은 사람들은 다시 찾아보실 것을 권고하는 바입니다"는 글이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터를 닦고 2천년 세계사를 주름잡은 사람들은 당연히 실격될 수밖에 없었던 11명이었고 오히려 그렇게 유능하게 보았던 가룟유다는 실격하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적인 좋은 조건 때문에 하나님의 종들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영적인 감각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은 나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며, 우리 주님이 부탁한 일을 한다는 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고 합니다.
➊ 채권자형이 있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당연히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부모는 나에게 당연히 베풀어주어야 하고 나는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직장에서 내가 수고한 만큼 당연히 받아내야 한다는 사람입니다. 그는 내가 수고한 것보다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불만 속에서 세상을 사는 사람입니다.
➋ 독립형입니다. 내가 누구로부터 받을 것도 없고 내가 누구에게 줄 것도 없다고 말합니다. 너는 너요, 나는 나로 살아갑니다. 누구의 간섭도 필요 없고 도움도 싫고 도와줄 생각도 없습니다. 교만하고 자신만만하며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우리 사회야 어찌되든, 남이야 어떻게 되든지 자기 고집대로 인생을 살아가고 할 말 다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➌ 윤리형의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윤리 도덕을 중시합니다. 이 사람은 최선을 다하여 살면서 많은 사람을 이롭게 해야 한다는 도덕적인 의무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의무감이 마침내 자만심으로 발전하고 교만을 낳습니다. 내가 도와야 할 많은 사람이 있으며 이 의무감이 마침내 자만심으로 발전하고 그들 위에 군림하려고 합니다. 그는 항상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➍ 채무자형이 있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부모에게 빚을 지고, 스승에게 빚을 지고, 교회에 빚을 지고, 하나님에게도 빚을 지고 있다는, 일생 빚을 갚는다는 심정으로 열심히 선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이 4가지 형이 있다고 말하지만 나를 위하여는 독립적인 심정과 남을 위한 채무자라는 심정이 결합되어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산다는 정신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12제자를 세우시고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12제자들 세우시면서 보내셨습니다. 마을로 보내셨습니다. 전도할 장소로 보내셨습니다. 그러면서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처음부터 사마리아를 복음화하겠다고 도전하지 말고, 이방인의 타문화권에 도전하겠다고 거창하게 말하지 말고, 우선 우리 주변의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을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변에 잃어버린 양은 없는지 찾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전파하여야 하는 내용은 천국이 가까웠다고 외쳐야 합니다. 이것은 메시아의 오심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시대에 이 땅에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해야 합니다. 교회는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해주고, 귀신을 쫓아내어야 하는데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하셨습니다. 거저 받은 것이기에 거저 나누어주라는 말씀은 은혜가 진정 은혜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이 공짜로 받은 것이기에 우리 역시 공짜로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올 때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었습니다. 벌거벗고 빈손으로 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받았는데 거저 받았습니다. 생명, 건강, 재산, 사업, 가정, 자식, 구원과 은혜 모두 하나님으로 받았는데 거저 받은 것들입니다. 다윗이 왜 훌륭한 신앙을 가졌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 29:14)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은혜로 산다는 생각과 신앙고백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나의 노력으로 재물을 얻었다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내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신8:18)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하며 돈을 버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재물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을 내려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받아야 할 것이 있다면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성경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되다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 주님은 당신의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고 내려주셨습니다. 우리가 가진 많은 것을 가지고 아낌없이 내어주고 베푼 것만 하늘나라에 가지고 간다는 정신으로 거저 주고 나누는 기쁨을 누려야겠습니다.
우리가 나누어줄 때 보상심리에서 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기 만족을 위하여 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알아주던 몰라주던 아무런 보상도 기대하지 말고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이 알아서 갚아주실 것입니다.
지금도 죽어 가는 수많은 영혼들이 있습니다. 저들에게 구원받을 수 있는 놀라운 소식을 전해줄 수 있는 지구상의 단 한 사람이 바로 나라는 정신을 가지고 복음을 전해주어야겠습니다.
미국 택사스주의 달라스에 있는 제일 침례교회의 크리스웰 목사님이 수요일 저녁 기도회를 인도하는데 그 날 처음으로 나온 트럭 운전사인 젊은 사람이 설교 시간에 계속하여 서 있었습니다. 설교하는데 신경이 쓰여서 젊은이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고 했습니다. "네 저는 지난 주일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저는 과거에 이 달라스 시내에서 18년 간 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동안 저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말해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누군가가 저에게 18년 전에 예수님에 대하여 말해주었다고 하면 저는 과거 18년을 불행하게 낭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앉았습니다. 교인들은 이 날 아주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도시에 1,000개의 교회가 있고 침례교회만도 235개나 있는데 우리끼리만 좋다고 믿으면서 이리 이웃에서 18년간이나 살던 그 청년에게는 복음을 전하지 못하였습니다. 교인들은 회개하는 마음으로 복음 전도에 힘쓰자고 다짐하였습니다. 복음 전도는 어떤 구제보다도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뜨겁게 사랑해주신 그 열정을 가지고 우리도 가지고 저 죽어 가는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증언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우리 주님의 뜨거운 심정을 가지고 한 영혼을 건져내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