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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10일(성령강림절 후 25번째 주일)
요한계시록 2:1~7
첫사랑을 회복하라
본문 접맥 적 주제설교 형식
하늘사랑교회 주일오전예배 설교문
김규태 목사
이제 곧 김장철이 다가옵니다. 배추가 김치가 되려면 일곱 번을 죽어야 한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밭에서 뽑히며 죽고, 두 번째는 날카로운 칼에 쪼개지며 죽고, 세 번째는 소금에 절여지며 죽고, 네 번째는 강렬한 양념에 버무려지며 죽고, 다섯 번째는 항아리에 담겨 땅속에 묻혀 죽고, 여섯 번째는 꺼내어져 잘릴 때 죽고, 일곱 번째는 입속에서 씹히며 분해되어 마지막 죽음을 맞습니다.
죽는 게 고통스러워도 하나님이 정하신 길을 따르는 것이 ‘순리’입니다. 주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가면 ‘역리’가 됩니다. 마치 역류성 식도염에 걸린 것과 같습니다. 순리를 거스르니 몸이 음식을 소화 시키지 못하고 잠도 이루지 못합니다. 속에서 쓴 것이 올라오듯 마음에서 쓴 물이 나옵니다.
이런 징조가 나타나면 빨리 회개해야 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이 정한 길로 가도록 돌이켜야 합니다.
-출처: 김문훈, 「살리는 목회, 살아나는 교회」(두란노, 2022); 「생명의 삶」(두란노, 2024년 11월호), 123쪽에서 재인용.
주님께서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에베소는 지금의 터키 서해안에 있는 도시입니다. 이곳은 거대한 항구도시이며, 아시아 무역 항로의 종착지였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로마 제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였습니다. 당시 로마 총독이 에베소에 거주할 정도로 이 도시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에베소의 또 다른 특징은 이 도시가 이교도들의 중심지였다는 점입니다. 이 도시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로 꼽히는 아데미 신전이 있습니다. 또한, 이곳에는 로마의 여신을 위한 신전과 로마의 도미티안 황제를 위한 신전이 있습니다. 이처럼 에베소는 우상숭배가 심했던 곳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에베소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주 후 50년경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와 함께 이곳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에베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대신 바울은 신실한 동역자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그곳에 남겨두었습니다.
얼마 후 에베소를 다시 찾은 바울은 석 달 동안 회당에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반대가 거세지자 바울은 회당을 떠나 두란노 서원이라는 곳에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했습니다.
이때 바울에게 말씀을 들었던 사람들은 에베소 사람뿐만 아니라 소아시아 각처에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를 소아시아 선교의 센터로 만들기 원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노력이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에베소에서 말씀을 들었던 많은 아시아인이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아시아 각 지역에 교회들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심지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가고 악귀가 떠나갔습니다. 바울이 전했던 복음을 듣고 수많은 사람이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 앞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마술을 행하던 사람들까지 회심해서 그 책들을 모아 불태울 정도였습니다. 그들이 불태운 책값이 은 오만이나 되었다고 기록된 것을 보면, 에베소 교회에 일어났던 부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초기 에베소 교회의 부흥은 다음 한 구절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행 19;20).”
바울이 떠난 후 에베소교회는 바울의 영적인 아들이었던 디모데가 계속해서 사역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수십 년이 흘러 요한계시록이 쓰인 주 후 95년경이 되었습니다. 이때는 로마의 황제 도미티안이 통치하던 시대로서, 네로 황제를 이어 극심한 기독교 박해가 진행되던 시기였습니다.
에베소 교회의 창립 1세대들은 대부분 죽고, 그 2대손과 3대손들이 교회의 주류를 이루던 시기였습니다. 이때 주님은 사도 요한을 통해 에베소 교회의 목회자에게 편지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이 요한계시록이었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입니다.
그렇다면 이 편지를 보낸 주님은 어떤 분으로 묘사되고 있나요? 본문 1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여기서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 즉, 교회의 지도자들이고, ‘일곱 금 촛대’는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를 가리킵니다(계 1:20 참조). 주님께서는 능력을 상징하는 오른손으로 일곱 교회의 목회자를 붙들고 계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사이를 거닐고 계셨습니다. 이 말은 주님께서 교회를 통치하시고, 모든 교회 중에 임재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지금도 우리 주님은 주의 종들을 붙드시고, 교회 중에 임재해 계십니다.
우리 주님의 관심은 교회입니다. 이 마지막 세대에 주님께서는 연약한 종들을 더욱 강한 오른손으로 붙들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교회가 앞으로 당할 모든 환난과 핍박을 이겨내고 최후의 승리를 얻도록 교회 중에 보이지 않게 임재해 계십니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입니다. 사람이 아닙니다. 목사도 주인이 아니고, 평신도들도 주인이 아닙니다. 어떤 분은 교회를 사교모임이나 계모임 정도로 이해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혹 일부 어린 학생들 같은 경우에는 교회를 일요일마다 정기적으로 나가는 학원 정도로 이해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것은 주님의 임재입니다. 주님의 임재가 없는 모임을 교회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모일 때마다 주님이 우리 교회의 주인이심과 주님의 임재가 이곳에 머물고 계심을 믿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에베소 교회가 주님으로부터 받았던 칭찬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주님을 위해 수고하며 인내한 것을 칭찬받았습니다.
2~3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또 6절은 말합니다.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에베소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안다”라고 칭찬받았습니다. 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일까요? 만약 우리가 “내 수고와 인내를 주님이 다 알고 계신다.”라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큰 위로를 받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은 미국의 타임즈 지(紙)가 선정한 20세기 인물 중 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미국 최초의 흑인 앵커이기도 한 그녀의 이름은 ‘오프라 윈프리’(Oprah Gail Winfrey, 1954년~현재)입니다. 그녀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냐면, 그녀가 토크쇼에 나와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이 책 한 번 읽어보십시오. 좋습니다.”라고 말하면 그 책은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입니다.
흑인 여성으로서 미국 사회에 이렇게 막강한 영향력을 끼쳤던 여인은 역사상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미국 최고의 미즈니스 우먼 2위고, 미국인이 존경하는 인물 3위에 선정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삶을 보면 눈물과 아픔 그 자체였습니다.
그녀는 18세의 미혼모에게 사생아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습니다. 그녀는 세 살 때부터 할머니에게 맞으면서 자랐는데, 할머니로부터 자라면서 한 번도 칭찬을 들을 적이 없었습니다. 매일 몽둥이로 맞을 때, 그녀는 마구간으로 쫓겨나 쭈그리며 다음과 같이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백인이 되게 해 주세요. 백인들은 자기 자식을 때리지 않는데 왜 흑인들은 이렇게 날마다 맞나요?”
그녀는 아홉 살 때 십 대의 친척에게 강간을 당했고, 그 후에도 여러 남자에게 성적인 학대를 당했습니다. 그녀는 14세에 임신을 했는데, 그만 조숙아를 낳다가 아이를 잃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십 대까지 남자와 마약으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하던 어두운 인생이었습니다. 그녀는 아무에게도 그런 사실을 말하지 않은 채 수치와 불안감으로 지내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진행하던 토크쇼의 주제가 ‘성폭행’이었습니다. 방송이 시작되고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이 나와서 자신이 당했던 끔찍한 일들과 고통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그 이야기들을 듣고 있던 오프라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성폭행을 당한 한 여성을 끌어안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다 털어놓았습니다.
그러면서 오프라가 그 여성에게 한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I know your pain." “나는 너의 아픔이 무엇인지 다 안다”였습니다. 그 한마디 말로 인해 방송국에 있던 모든 사람이 울었고, 전국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모든 사람이 울었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나는 너의 아픔이 무엇인지 다 알고 있다.” 그 한 마디가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겠습니까? 하물며 주님께서 자신을 위해 수고하고 인내하던 에베소 교인들을 향해 “내가 다 알고 있다.”라고 말씀하셨다면, 이 소식을 들은 에베소 교인들은 얼마나 큰 위로를 얻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서는 주님을 향한 여러분의 수고와 인내를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비록 이 세상 사람들이 다 몰라줘도, 여러분의 수고와 인내를 주님이 다 아시고, 기억하고 계십니다. 저는 이 사실로 인해 여러분이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그들의 수고와 인내가 무엇이었습니까?
먼저는, 그들이 거짓 사도들에 대항해서 싸운 수고를 말합니다.
에베소 교인들은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았고, 자칭 사도라 하지만 실제로는 사도가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드러냈습니다(2절). 또한, 그들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했습니다(6절). 그들은 교회 내에 침투한 이단과 거짓 사설들을 배격하는 수고를 감당했던 것입니다.
교회는 진리를 바로 수호하는 수고를 감당해야 합니다. 오늘날에도 자기를 목사니, 전도사니, 신학생이니 하며 교회 내에 몰래 침투해 오는 거짓된 자들이 있습니다. 혹 어떤 이들은 성경을 기가 막히게 가르치는 곳이 있다며 목사님 몰래 그곳에 가서 성경공부를 하자고 성도들을 유혹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아주 은혜로운 Q. T 나눔 모임이 있다며 성도들을 유혹하거나, 자신이 어젯밤에 꿈을 꾸었는데 꿈에 하나님이 이 교회를 보여주시면서 이 교회에 다니라고 말씀하셨다는 식으로 성도들을 유혹합니다.
그들은 자기를 광명한 천사처럼 가장해, 할 수만 있다면 성도들을 넘어뜨리고, 교회를 분란 시키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가 더욱 깨어서 진리의 말씀 위에 든든히 서서 이단의 세력에 단호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어떻게 에베소 교회가 거짓 사도들과 대항해 싸울 힘을 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개척 초기에 바울이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동안 날마다 말씀을 가르쳤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목회자가 성도들을 말씀으로 철저히 양육시켜서 이단 사상으로부터 성도들을 보호하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혼탁하게 하는 악한 세력에게 성도들을 빼앗길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듣고 성경을 연구하는 일에 더욱 열심을 내십시오. 말세에는 하나님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악한 역사가 더욱 거세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원래 ‘니골라’는 예루살렘 교회의 존경받던 일곱 집사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행 6:5). 그런데 어떠한 이유인지 니골라 당(黨)은 초대교회를 어지럽혔습니다. 그들은 한번 하나님을 믿은 사람은 어떠한 행동을 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며 도덕폐기론과 무(無) 율법주의를 주장했습니다. 율법의 때는 지나갔기 때문에 지킬 필요가 없고, 육은 악하고 영만 선하다는 극단적인 주장이 과연 성경적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그들을 가리켜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발람은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발람은, 이스라엘 자손이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고 음란한 짓을 하게 했습니다(14절).
니골라 당은 오늘날의 세속주의를 가리킵니다. 그들은 “교회가 왜 이렇게 보수적이고 고리타분하냐?”라면서 “교회 전통은 무시하고 세상에서 허용되는 새로운 것, 유행하는 것을 교회에도 도입하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과연 그들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교회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우고자 합입니까, 아니면 교회를 합리주의, 세속주의에 물들게 해서 교회를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로 만들고자 함입니까?
우리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6절).” 무 조건적인 사랑이 사랑이 아니요, 오히려 미워할 것은 미워하고, 지킬 것은 지키는 것이 참된 사랑임을 기억하십시오.
오늘날에는 입술로 교회 개혁을 부르짖으면서 자신은 신식 사고를 한다고 우쭐대지만, 실제로는 교회의 근본을 깨트리는 악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도 존재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조심하십시오! 신앙에는 타협과 양보가 필요한 부분도 있지만, 결코 물러서서는 안 될 부분도 있습니다.
교회의 전통은 소중히 지켜져야 합니다. 왜 교회에 그런 전통이 있는지를 이해하려고 하기 전에 무조건 교회 전통은 전통이니까 배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근본도 모르고 떠드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진정한 개혁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일어나야 합니다.
개혁의 대상은 목회자나 함께 신앙 생활하는 성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먼저 자신을 개혁하지 않고서야 어찌 다른 사람을 개혁하겠다고 나설 수 있겠습니까? 폭넓게 사고하지 못하고, 대화를 통해 상대방과 마음의 간격을 줄이려는 노력도 없이, 교회 개혁을 빌미로 자신의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자들은 마치 니골라 당과 같은 자들입니다.
에베소 교회가 주님께 칭찬받았던 두 번째 이유는 그들의 인내 때문이었습니다.
과연 그들이 어떤 인내를 했습니까? 3절에 보면, 그들은 주님의 이름을 위해 인내했습니다. 마가복음 13장 13절에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세에 나타날 징조들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약속하셨습니다.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말세에는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믿는 자들이 많은 미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미움을 견디고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현재의 고난을 참고 인내하는 것이 미래에 우리가 받게 될 구원의 전제조건이라는 것입니다. 과연 그들이 당하는 고난이 어떤 고난이었나요?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시기는 로마의 도미티안 황제 말기였습니다. 그는 자기를 신이라 호칭하며 로마에 자신의 금은(金銀) 형상을 만들고, 기독교인들에게 우상숭배를 강요했습니다. 그는 기독교인들 때문에 로마의 모든 신이 노했다고 주장하며, 기독교인들의 모든 재산을 압수하고, 기독교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했습니다.
그는 심지어 기독교인들을 불순한 자들로 몰아 맹수와 결투하게 시켰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제자 중 한 사람인 사도 요한도 밧모 섬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고, 우리에게 지하 처소로 알려진 카타콤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극심한 핍박의 시기에 에베소 교인들은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견디며, 주의 일에 게으르지 아니했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귀한 믿음입니까?
첫사랑을 회복하라
그런데 에베소 교회가 주님으로부터 칭찬만 들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 책망도 들었습니다. 4~5절에서, 주님은 그들을 다음과 같이 책망하셨습니다. 우리 한 음성으로 4~5절을 읽어봅시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에베소 교인들은 주님으로부터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라는 책망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과연 ‘처음 사랑’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모두를 가리킵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복음이 오직 사랑’임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행위를 실천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교회는 사랑의 가르침을 잃어버렸고, 그 결과 사랑의 행위 또한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께서 다음과 같이 경고하실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참된 회개는 의식의 각성으로부터 나옵니다. 어디서부터 떨어졌는지 의식을 각성하는 데서부터 참된 회개가 나옵니다. 그러나 참된 회개는 의식의 각성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참된 회개는 손과 발의 변화로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의식의 각성이 따르지 않는 회개, 행위의 변화까지 이어지지 않는 회개를 참된 회개로 볼 수 없습니다. 주님은 에베소 교인들이 의식의 각성에서부터 손과 발의 변화로까지 이어지는 참된 회개에 이르기를 원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첫사랑의 회복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처음에 들었던 그 가르침과 행위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첫사랑의 감격이 사라지고, 우리의 머리만 커지고 내가 찾아야 할 권리만 크게 보인다면 우리는 빨리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께서 촛대를 옮겨버리실 것입니다.
혹 어떤 이는 “나는 일평생 교회를 출석하면서 주님을 섬겼습니다.”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잃었던 첫사랑을 회복하십시오. 어디서부터 여러분의 사랑이 식었는지를 잘 되돌아보십시오. 그리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십시오.
생명 나무의 열매를 주리라
이제 이 편지의 결말에 도달했습니다. 이 편지는 하나의 희망찬 약속으로 끝을 맺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7절).”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주께서는 장차 생명 나무의 열매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기서 ‘주께서 주시는 생명 나무의 열매’는 장차 신자들이 얻게 될 구원을 의미합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약속을 주신 이유는 핍박받고 있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주님에 대한 첫사랑을 회복하여 현실의 고난을 이겨나가도록 격려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래전 태국 치앙라이의 어느 시골 마을에 조그마한 교회가 하나 있었습니다. 이 교회에는 12명의 성도가 있었고 대부분이 어린아이였지만 담임 전도사와 함께 아주 은혜롭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배당이 너무 낡아서 비가 올 때면 지붕에서 주룩주룩 빗물이 떨어져 예배를 드릴 수 없었습니다.
전도사는 성도들과 회의를 하여 예배당을 신축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전도사가 다른 교회로 사역지를 옮기게 되어 예배당을 신축하는 일이 막막해졌습니다. 그런데 주로 어린아이들로 이루어진 이 교회 성도들 가운데 17살 된 어린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 소녀는 교회학교 교사였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기도회도 하고, 매일 아침 성전에 가서 기도하는데 “새 예배당을 건축하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매일같이 기도하던 어느 날, 그 소녀는 하나님으로부터 “네가 하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심코 지나쳤지만, 기도할 때마다 “네가 하라.”는 하나님의 감동이 강해졌습니다. 그때마다 소녀는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항변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할 수 없어요. 나이도 어리고, 돈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힘도 없는 것 하나님이 아시잖아요?”
그러던 어느 날, 소녀는 신문잡지를 보는 중에 “눈을 삽니다.”라는 광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생각 없이 지나쳤는데 다시 그 광고를 보게 되어 자세히 읽어보니 어느 안과병원에서 눈을 산다는 광고였습니다. 그때 그녀의 마음에 “새 예배당 건축을 네가 하라”는 생각이 들어서 며칠 기도 끝에 결심하고 읍내에 있는 그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의사를 만나 눈을 팔기 위해 왔다고 하니까 의사가 깜짝 놀라면서 “어떻게 그렇게 예쁜 어린 소녀가 눈을 팔려고 하지?”하며 물었습니다. 그 소녀는 교회 예배당을 건축하기 위해 돈이 필요해서 그런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의사는 더 놀라며 묻기를 “도대체 교회가 무엇인데 눈까지 팔아서 예배당을 건축해야 하냐?” 하며 한 주간 시간을 줄 테니 더 생각해보고, 그래도 정말 눈을 팔 것이라면 그때 다시 오라고 하며 돌려보냈습니다.
의사는 소녀를 돌려보내고는 그때까지 전혀 알지 못하고 지내온 교회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멀리 있는 한 교회를 찾아가 목사를 만나고 교회에 관하여 물어보았습니다. 의사의 방문과 질문을 받은 목사는 교회에 대하여 자세히 그에게 설명하면서 예수님에 대해, 죄와 복음과 영생과 천국 등에 관해 말해주게 되었습니다. 복음에 대하여 듣는 가운데, 그 의사는 교회에 관하여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일주일 후에 그에게 눈을 팔러 왔던 소녀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의사가 그 소녀에게 “아직도 눈을 팔아서 예배당 건축할 생각을 바꾸지 않았니?” 하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 소녀는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의사가 소녀에게 말하기를 “눈은 팔지 않아도 된다.” 하면서 그 교회 예배당을 자기가 지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 동네에 새 예배당이 건축되었고 그 의사도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의사는 소녀를 자기 집에 데려가서 학비와 생활비를 대주며 대학공부까지 시켜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소녀를 자기 아들과 혼인시켜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했습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를 다른 나라 사람 이야기라고 막연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제가 아는 우리 교단 목사님 중에 전주 아름다운 교회를 섬기시는 목사님이 있는데, 그 목사님의 아버님이 실제로 이와 똑같은 일을 하셨습니다.
그분도 예배당 건축을 위해 가진 것이 없어 자신의 눈이라도 빼어드릴 요량으로 전주 예수병원을 찾아가셨다고 합니다. 그 마음에 감동한 외국인 선교사들이 모국에 이 사실을 알려 많은 금액을 모금해서 교회당을 건축해준 일화가 실제로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우리교회 성도들이 교회를 위해 얼마나 많이 수고하고 애쓰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때마다 제 마음속으로 감동이 되고, 때로는 보이지 않게 감사의 눈물을 흘릴 때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저는 “왜 성도들이 교회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헌신적으로 섬기는가?”를 생각할 때, 성도들이 주님을 깊이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해답을 찾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을 목양하는 목사도 여러분의 수고를 알겠거든, 하물며 살아계신 우리 주님께서 그것을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에 바로 서서 주님과 교회를 위해 수고하고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여러분을 기억하시고 반드시 생명 나무 열매를 먹게 하실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주님에 대한 첫사랑이 식은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어서 속히, 어디서부터 내 첫사랑이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함으로 처음 행위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첫사랑을 회복하십시오. 첫 행위를 회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