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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버려두고(2월 9일 주일 오전 예배 설교)
성경 : 누가복음 5:1-11(신약 95)
오늘 말씀에 게네사렛 호수라고 기록했는데 이곳은 갈릴리 바다의 별칭입니다. 이 외에도 이 바다는 여러 명칭으로 불리웠는데 구약 시대에는 ‘긴네렛 바다’(민 34:11, 수 13:27) 또는 ‘긴네롯 바다’(수 11:2)로 그리고 신약 시대에는 ‘긴네렛 호수’, ‘디베랴 바다’(요 21:1)로 불려졌습니다.
이 바다는 남북의 길이가 20 km, 동서의 폭이 12 km이고 면적이 144 km에 달한다고 합니다. 요단 강의 여러 지류가 갈릴리 호수로 유입되며, 이후 호수를 지나 다시 남쪽으로 흘러 사해로 이어집니다.
갈릴리 호수는 신선한 담수호로, 이스라엘의 주요 식수 공급원 중 하나 입니다. 갈릴리 호수 인근에는 지열 활동으로 인해 바다 주변에 온천들이 여러 곳이 있었고 따뜻한 온천수가 호수로 흘러 들어옴으로 이 바다에는 엄청난 양의 물고기들이 번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을 에워싸고 있는 계곡들은 비옥한 땅으로 날씨가 따뜻하고 물이 풍부하여 밀, 보리, 무화과, 포도, 야채 등의 농작물 재배에 아주 적합하다고 합니다. 이 바다는 하아프 모양을 이루고 있으며 주변에는 높은 산들이 둘러 서 있으므로 바다 한복판에서 이따금씩 돌풍 현상이 일어나곤 합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돌풍 현상에 대해서 복음서에 기록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갈릴리 호수라고 말하지만 히브리인들은 바다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번역할 때 원어에 충실하게 번역하기 때문에 바다라는 번역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성경 기록자들은 갈릴리 호수를 "얌"(히브리어) 또는 "탈라사"(헬라어)라고 표현했으며, 이것이 번역될 때 "바다"로 옮겨진 것이고 오늘 본문에서는 림네 (λίμνη) 라는 단어를 썼는데 이 단어는 호수, 바다라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신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공관복음 즉 마태, 마가, 누가 복음에서 예수님이 베드로와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신 장면과 요한 복음에서 이 사람들을 부르시는 장면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공관복음은 예수님이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잡이하는 사람들을 직접 부르셨다고 기록한 반면에 요한복음에서는 안드레와 요한은 침례 요한의 제자였는데 침례 요한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증거 한 것을 듣고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고 안드레가 베드로를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고 기록했습니다.
이 기록으로 보면 부르심이 다른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관복음(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예수님이 직접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시는 순간을 강조한 것이고, 요한복음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처음 만나고 따르게 된 과정과 그들의 영적 여정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서로 다른 기록처럼 보이는 것은 모순이 아니라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가 발전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고 공관복음은 역사적 과정을 중요시 한 것이고, 요한 복음 영적 여정을 강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베드로라고 불려지게 된 시몬과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이 부름을 받는 장면을 통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하는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제자들은 11절을 보면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라고 기록했습니다. 이 구절에 기록된 “모든 것을 버려두고”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그물을 씻는 어부들
오늘 말씀은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1절을 보면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갈릴리 호수 주변에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말씀을 들으려고 몰려들었습니다.
갈릴리 호수는 해발고도가 약 -209 m 에 위치해 있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담수호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호숫가에서 보면 호수는 완만한 경사 지대이기 때문에 호수에서 배를 타고 있으면 호숫가에 사람들이 배를 보면서 앉으면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형태이고 갈릴리 호수 주변 곳곳에는 밑에서 이야기 하면 위에서 음향 장치가 없어도 잘 들릴 수 있는 지형적 특징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말씀을 전하시기 위해서 호숫가로 내려가셨고 사람들 호수가 주변에 자리 잡고 앉아서 예수님을 말씀을 듣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는 상황에서 오늘 같은 음향 장비도 없는 상황에서 말씀을 전하셔야 했는데 가장 효과적으로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곳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호숫가에 오셨을 때 그곳에 있던 어부들은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고기를 잡지 못했습니다. 5절을 보면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시몬과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은 갈릴리 호수에게 물고기를 잡은 어부들이었습니다. 호수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그들은 고기를 가장 잘 잡을 수 있는 시간이 밤이었기 때문에 밤새 고기를 잡는 작업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그 밤에 같이 작업을 한 어부들은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오랫동안 고기 잡이를 했을 것인데 지난 밤처럼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날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곳에 오셨을 때도 전날 밤부터 고기 잡이를 했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어부로 살아가는데 밤이 새도록 그물을 던졌는데 한 마리도 잡지 못했을 때 느끼는 실망감과 좌절감이 컸을 것입니다. 고기를 잡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인데 고기를 잡지 못했을 느끼는 절망감을 컸을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 비슷한 경험들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일은 분명히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런 수확이 없는 헛수고를 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시몬과 동업자들은 간밤에 고기를 잡지 못해서 절망하고 그렇기 때문에 더 피곤했지만 다음을 위해서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2절을 보면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밤샘 작업에서 성과가 없었지만 그물을 씻어야 오늘 밤에 또 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밤새 지친 몸을 이끌고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밤새 아무런 성과도 없이 헛수고 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허탈한 상태에서 그물을 씻고 있는 그들의 지친 모습을 예수님께서 보셨습니다.
시몬과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은 밤새 헛수고했는데 그물을 씻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밤새 아무런 수확도 없는데 그물을 씻어 뭐하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가서 한 잠 자고 와서 그물을 씻자 할 수도 있었지만 밤새 아무런 수확이 없었음에도 그들은 다음 작업을 위해서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 아무런 수확을 얻지 못했을지라도 다음을 위해서 준비해야 합니다. 헛수고한 것 때문에 속상하고 힘들지만 그래도 다음을 위해서 그물을 씻은 것처럼 우리는 지금 실패했어도 다음을 위해서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밤새 아무런 소득이 없이 그물을 씻던 시몬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3절에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피곤한 상태에서 지쳐있던 시몬의 배에 예수님이 타셨습니다. 그리고 시몬에서 배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하신 것은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집중하게 하기 위한 것이고 예수님께서 배에서 말씀을 전하시면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더 잘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의 배에서 말씀을 전하실 때 시몬은 그 배가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해 놓고 피곤하고 졸립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시몬이 나중에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그물을 던질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시몬의 마음에 감동이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말씀을 듣는 데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감동을 주시고, 말씀이 내게 주시는 레마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할 때 믿음이 생기고 그 말씀이 능력이 되어 임하는 것입니다.
2. 두 배에 가득 찬 물고기
예수님은 시몬 일행이 고기를 잡지 못한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곧 바로 고기를 잡게 하신 것이 아니라 먼저 시몬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다 전한 다음에 시몬에게 고기를 잡게 하셨는데
예수님은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절을 보면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은 갈릴리 바닷가 태생으로 어려서부터 고기잡이로 잔뼈가 굳은 전문 어부였습니다. 반면 예수님은 목수로서 생활해 오시던 분으로서 한 번도 그물을 던져본 적이 없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목수 출신이신 예수님께서 평생 어부로 살아온 베드로에게 깊은 곳으로 가서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 대해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밤새 고기 잡이를 하면서 그물을 안 던져 본 곳이 없었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곳에도 그물을 던져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몬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5절에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여기서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그물을 내리겠다고 대답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평생 어부로 살아온 베드로의 경험으로 볼 때 이 계절에 아침에는 고기가 잘 안 잡히는 때 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밤새 고기 잡이를 하고 아침에 작업을 그만 두고 그물을 씻은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물을 던지라고 할 때 시간 적으로 고기가 잘 안 잡히는 시간입니다. 라고 대답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이미 다 던져봤는데 고기를 못 잡았습니다. 밤이 새도록 수고했다는 말속에는 이미 그곳에도 우리가 그물을 여러 번 던져봤습니다. 라는 의미가 포함되었을 수 있습니다. 시몬이 생각하기에 거기에 그물을 던져봐도 소용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예수님이 전하신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말씀에 믿음이 생겼던 것입니다. 시몬이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지금 그곳에 그물을 던져도 고기가 안 잡할 것 같았지만 말씀을 듣고 믿음이 생겼기 때문에 내가 밤새 수고해서 잡은 것이 없지만 그리고 지금 던져 봐도 소용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러나 말씀을 의지해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의지해서 그물을 던진 시몬과 같이 말씀을 의지해서 살아갈 때, 말씀을 붙들고 살아갈 때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말씀을 덮어두면 우리에게 아무런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말씀을 의지해 그물을 던진 시몬처럼 말씀을 의지해서 믿음으로 나아가고, 말씀을 의지해서 믿음으로 도전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고 성령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베드로가 던진 그물로 잡은 고기가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졌습니다. 6-7절을 보면
5: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5: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같이 고기잡이를 하던 야고보와 요한은 두고 시몬이 아마도 그의 형제 안드레와 함께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고기가 잡혔는지 그물이 찢어질 정도였습니다.
잡은 고기가 너무 많아서 자기 배에 모두 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배에 있던 동업자들에게 빨리 와서 그물을 같이 끌어올리고 고기를 나누어 싣자고 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배를 몰고 와서 함께 그물을 끌어 올리고 두 배에 고기를 나누어 실었습니다. 그리고 배를 몰아서 물가로 나왔습니다. 시몬과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은 이런 일을 경험한 적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함으로 전혀 경험하지 못한 놀라운 일을 경험한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상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3.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시몬은 상상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경험했습니다. 밤새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는데 단 한번 그물을 던짐으로 엄청난 고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시몬과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시몬은 이런 놀라운 일을 경험하고 주님 앞에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8절을 보면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의 탁월하신 신적 권능을 목격하고서 상대적으로 나약하고 비천한 자신의 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깨달은 것이 자신의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을 보면 죽는다는 사상이 있었는데 시몬은 자신에게 이런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하신 분은 신적인 존재라고 생각하고, 나 같은 죄인이 어떻게 신적인 존재이신 당신 앞에 설 수 있습니까 하는 표현을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은 죄인인데 죄인이 신적인 능력을 가진 분을 만났으니 죽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시몬 베드로는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소서 라고 고백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 앞에 인간은 연약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시몬과 같이 나는 죄인임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달을 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런 시몬에게 예수님은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9-10절을 보면
5:9 “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5: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마 4:19에서는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라고 기록했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시고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가 취하리라고 기록한 것은 같은 의미입니다.
지금까지 물고기 잡이를 하던 어부들은 그들에게 너희가 나를 따라오면 이후에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후로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은 사람을 낚는 어부 즉 죽어가는 영혼들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영적 어부가 되어 많은 영혼을 주님께 인도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들은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11절을 보면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그들은 두 배에 가득한 물고기 까지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의 결단과 헌신은 예수님을 따르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헌신과 결단이 무분별한 희생이나 복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책임을 회피하거나 책임을 전가시키는 것을 말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복음 사역자로서의 특별한 헌신을 뜻하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적용해 볼 때 모든 사회적 책임까지도 버린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새로운 삶의 질서를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우리들의 삶의 가장 첫 자리에 놓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즉 가족과 생활 터전을 다 버리고 전적으로 주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헌신하라는 의미라고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욕심과 정욕을 따라 살던 것에서 돌아서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실패를 경험했을 때 다시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에 순종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실패를 넘어 새로운 일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말씀을 의지해 그물을 던져서 기적을 경험하고 나의 모든 것들이라고 할 수 있는 믿음 이전의 삶과 세상을 따라가려던 삶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삶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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