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말았다. 파란색 롯드에 어설프게 걸터앉아있는 풀이 죽은 흰 머리카락을 옥죄어 또르르 말아서 꼼짝 못하게 고무줄로 질끈 동여맸다.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나는 파마약에 흠뻑 취한 엄마의 팔순이 훌쩍 지난 작은 두상 위에는 파란롯드, 노랑롯드, 빨간롯드, 초록롯드 들이 저마다 노란 고무줄에 단단하게 몸통을 결박당한 채 무작정 몸통의 겁박이 풀릴 때를 기다리고 있다. 파마롯드 중 가장 굵은 파란색의 롯드는 덩치 값 좀 하느라고 정수리를 가장 넓게 차지하고 밑의 연약한 이웃들에게 좀처럼 설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노란색의 롯드도 파란롯드 밑에 가까스로 세를 들어 자리를 꿰찼고, 그 밑으로는 도긴개긴인 빨간색과 초록색 롯드들이 사이좋게 적당히 타협하여 들어앉았다.
“이제 파마 좀 그만 하자. 노인정 나오는 내 또래 사람들은 컷트 치고 잘만 다니던데 언제까지 귀찮게 파마를 해야 돼?”
“엄마, 그 소리 한번만 더하면 백 번도 넘어.”
“귀찮아서 그래. 너도 파마 마느라고 힘들고.”
“난 하나도 안 힘들어. 내가 항상 말하잖아. 사람은 어디를 가더라도 초면에 물 한잔 얻어 마실 정도로 단정하게 하고 다녀야 한다고. 처음 본 사람은 그 사람의 행색을 보고 판단하는데
엄마처럼 화장도 안하고 머리는 부스스해서 초라하게 다니면 누가 없어 보이는 시골 할머니한테 물 한 모금 주기나 하겠어?”
파마를 그만하고 싶다는 엄마의 바람을 단칼에 거절하고 익숙하게 비닐캡을 씌운 다음 전기모자를 푹 덮어서 형형색색의 파마롯드들을 한증막에 가두었다. 엄마는 전기모자에 연결된 전기 콘센트 때문에 옴짝달싹 못하고 다소곳이 쇼파에 앉아서 무심하게 거실 벽면의 텔레비전에 시선을 둔다. 화면 속에서는 엄마의 삶에 꽤나 친숙할 농촌 들녘이 나타났다. 그놈의 농촌 들녘이 사단이다. 다시 화면을 바꿀까 망설이던 찰나, 언제 끝날지 기약할 수 없는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내가 징그럽게 억울한 세월 살었어. 하지도 않은 도둑질 했다고 도둑 누명을 다 쓰고. 네 고모 결혼 할 때, 할아버지가 할머니한테 혼수 장만할 돈을 주었어. 그런데 중신애비한테 사위 양복해주라는 말을 듣고 그 돈을 할아버지랑 상의도 없이 할머니가 홀랑 시댁식구 옷사주는데 다 써버린 거야. 그래놓고 매일 할아버지 몰래 쌀을 퍼냈어. 혼수를 전부 외상으로 해놓고 그거 갚느라고. 하여튼 매일 그렇게 퍼냈으니 쌀이 금세 떨어졌지. 네 할아버지는 쌀 떨어졌다니깐 내가 친정에 퍼낸 줄 알고 이번 한번은 눈감아 줄 테니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말라고 나를 야단 쳤어. 기가 막혀서...... 내가 친정에 가보기나 하고 그런 소릴 들었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아니라고 따지지 그랬어. 엄마도 잘못 했네. 그런 소릴 듣고도 가만있었어? 내가 안 그랬다 하고 집구석을 발칵 뒤집어 놨어야지.
“네 할아버지는 남의 집 일도 당신이 맞춰놓고 다니고 나더러 그 집 가서 일 해주라 하고 돈은 당신이 받아다 썼어. 며느리 품삯도 당신이 다 받아 챙겼어. 나는 그 집에 살 때 돈이라고는 일절 모르고 살었어. 섶 빠지게 머슴 노릇만 했어.”
“할아버지도 그렇지만 아빠가 더 나빴어. 마누라는 개고생 하는데 남편이 돼가지고 맨 날 양복입고 밖으로만 돌았잖아. 그렇게 싹수가 노래면 애초에 이혼을 했어야지, 엄만 왜 그걸 참고 살았어? 참지 말았어야지.”
자식들이 있었기에 그 험한 세월을 투박하게 견뎌냈다는 것을 잘 알지만 언제나 엄마와의 대화는 안 맞아도 너무나 안 맞는 로또 같다.
“하루는 당신이 벽장 속에 잘 두었던 돈이 없어졌다고 나를 의심했어. 네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이 집에는 도둑이 있다고, 서울 사는 작은 아들한테 얘기를 하러 간대나 어쩐대나 해가면서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데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야. 내가 돈이 있는지 알기를 하나. 그렇게 며칠을 사람 속 시커멓게 태우더니, 그 돈이 서울 작은 아들네 가려고 옷 갈아입다가 당신 입고 있던 저고리 안쪽 주머니에서 나왔어. 돈이라도 찾았으니 망정이지 지금 생각해도 그 세월이 지긋지긋해. 친정이 없이 산다고 그렇게도 사람을 무시하고 참말로 너무했어.”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요새 살았으면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방송에 나와서 유명해졌거나 명예훼손죄로 법정에 섰을지도 모르는데 이미 돌아가셔서 다행이지.”
“감기 몸살 와서 기침하고 며칠씩 끙끙 앓아도 감기약 한번 구경 못했어. 남의 집 개가 아파도 그렇게는 안하겠지. 나한테는 그랬는데 작은 동서가 어느 날 아침에 콜록거리니까 네 할아버지, 아침상 물리고 바로 작은 며느리 기침한다고 약 지으러 나가더라. 그럴 때 얼마나 서럽던지. 친정이 잘 살아야 무시당하지 않지, 나는 친정 못 살아서 늘 끕끕수만 당했어.”
“친정이 못 산다고 누구나 다 그렇지는 않아. 할머니 할아버지가 유별났던 거지.”
“가을 농사만 끝나면 방에 있는 재봉틀 들썩거리고 우리더러 이 집에서 나가라고 소리소리 질렀어.”
“그럼, 감사합니다하고 얼른 나갔어야지. 왜 또 살았어?”
“나는 나가고 싶었지. 네 아빠랑 시내에 살 집도 보러 갔었고. 그랬더니 네 할아버지가 당신 죽거든 초상 치루고 나가라고 못 나가게 붙잡았어. 바보 천치 같은 네 아빠가 아픈 부모 두고 못나간다고 도로 주저앉아서 그 모양 그 꼴로 살았지. 평생을 자식 대접 못 받고 무시당하고.”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이 이어지는 한숨 속에는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한 결말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의 기억 속에 여전히 생생하게 존재하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는 모두 오래 전에 요단강을 건너가 버리셨다. 무책임하게도.
그 분들이 그 강을 건너기 전에 엄마에게 지난날에 대한 사과를 단 한 가지라도 제대로 해줬더라면 엄마는 아프고 힘들었을 그 기억들을 조금은 떠나보내고 지금 홀가분하게 살 수 있을까. 날이 갈수록 쇠잔해지는 몸에 비해서 녹슬지 않고 어제 일처럼 선명하기만한 아픈 기억들
의 부피가 조금씩 더 커지면서 안 그래도 점점 작아지는 엄마의 가냘픈 몸통을 힘껏 짓누르고 있다.
어릴 때 기억 속의 엄마는 행색이 늘 초라했다. 할아버지가 아프다는 이유로 할머니는 엄마에게 밝은 옷을 못 입게 하셨다고 했다. 삼년이 가도 절대로 안 풀릴 것 같은 꼬불꼬불한 라면머리에 시커먼 몸빼바지를 입고 아궁이에 불을 때며 숨죽여 혼잣말로 넋두리하며 눈물을 훔치던 모습은 어린 내게 붙박이가 되었다. 그 장면을 떠올리게 되면 지금도 여지없이 내 가슴 속에선 멈추지 않는 소낙비가 내린다.
아마 그 때부터였을 것이다. 엄마의 초라한 라면머리와 무릎을 기운 몸빼바지가 눈에 거슬렸던 그 순간부터 엄마의 슬프고 우중충한 삶을 바꿔주지 못하는 무기력함을 사사건건 반항하고 말대답하며 할머니에게 날을 세웠다. 그 결과 수시로 매를 벌었고, 계집애가 징그럽게 사나워서 어디에 쓰냐는 말을 원 없이 들었다.
그 사나운 계집애는 마나님에게 몹시도 무심했던 아빠가 돌아가시자마자 엄마를 고향집에서 도려냈다. 이 일로 친척에게 출가외인이 왜 친정 일에 나서냐는 질책도 들었다. 개의치 않았다. 다만 이제부터라도 내 엄마가 울지 않도록 온전하게 지켜주고 싶었고, 그 누구에게라도 무심하게 하대당하는 꼴을 더는 안 볼 심산이었다.
중화제를 바를 시간이 되어 전기모자를 벗겼다. 파마약에 장아찌처럼 푹 절여진 희끗희끗한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더운 김이 났다. 알록달록 색색이 둥글게 말려진 컬을 단단하게 고정시켜줄 중화제가 밭이랑처럼 경지정리가 된 롯드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열심히 제 할 일을 한다. 하기 싫은 파마를 억지로 하며 지루하게 기다리던 엄마에게는 반가운 시간이다. 중화제를 바른다는 것은 곧 파마가 끝난다는 신호이니까.
파마머리의 컬을 박제하듯이 정리정돈해 주는 중화제처럼 엄마의 시간 속 슬픈 기억들을 모두 모아서 휴지통 속에 구겨넣고 다시는 밖으로 못 나오도록 발로 꾸욱 밟아놓고 간단하게 버튼을 눌러서 영구삭제를 해버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뒤늦게 그토록 엄마의 옷차림이나 파마머리 모양에 집착하게 된 속마음을 알 리 없는 엄마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다시 내뱉는다.
“노인정 나오는 내 또래 사람들 대부분 파마 안하고 간단하게 컷트만 치고 다녀.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그래야 너도 편하고.”
“응. 난 하나도 안 귀찮아. 엄마 그 하나마나 한 소리 이제 백 한 번째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한 많은 여인의 삶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그녀의 머리를 파마하는 딸의 모습, 아름다운 천사같습니다.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