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향
장석노
이른 아침 창 밖에 까치울음소리가 구성지게 귀 끝을 스친다.
언제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으며 정감이 가는 내 고향 까치 울음소리다.
고향의 무슨 소식을 전하는 것일까? 좋은 일일까? 불길한 일일까?
아침에 울음소리는 길조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근심이 되었다.
내 고향은 ‘호명(虎鳴)’리, 말만 들어도 얼마나 산골인지 짐작이 간다.
'삼보산’과 ‘늠보산’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듯, 양팔로 활처럼
감싸 안고 있다. 동네 사람들은 삼태기 속에서 옹기종기 모여 이마를 맞대며
오순도순 살고 있었다. 가야금 연주곡처럼 들리는 개울물을 중심으로 새텃말,
양달말, 응달말로 구분되어 있다.
마을 한복판 빨래터에서는 아낙네들이 모여 동네소식과 이웃소식들을 전하며
하하 호호 깔깔대며 빨래방망이 소리는 산울림 되어 안방까지 소식을
전해준다.
오일장이 되면 닭을 몇 마리 가지고 가는 집 소쿠리, 고추, 깨, 등을 챙겨
가지고, 등에 지고 머리에 이고 사리문을 찌그리고 떠나간다. 아침이슬 채여
가며 숨이 턱에 닫도록 헐떡거리며 늠보산 고갯마루에 오르면 서낭당에 앉아
이마에 땀방울을 씻어준다. 힘들게 가지고 가는 물건들은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담고 담배 한대를 피우며 피로와 불안도 떨군다.
장에 가신 분들이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을 때는 저마다 마중 가는 등불들이
줄을 선다. 반딧불이 번쩍번쩍 거리며 계곡까지 빛을 비추어 주며 등불과 서로
어울려 장 마중을 간다.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실 적에는 빈손으로 오시지를
않으신다. 오 일간에 가사에 필요했던 물건들과 내 양말 한 켤레도 사가지고
오신다. 날이 밝으면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고 싶어 머리맡에 놓고 밤잠을 설친
적도 있었다.
아버지 지게뿔에는 목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기다렸던 동태 한 코도 사가지고
매달고 오신다. 부엌 광에서 도깨비불처럼 밤새도록 서기를 한 동태는 그
이튿날은 아침밥상에 올라온다. 나에게 돌아오는 국의 양은 꼬리 반 토막과 무
첨 반 그릇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앞과 옆을 둘레둘레 돌아보다 어머니
국그릇으로 눈길이 간다.
상 밑에 감추어 놓으신 국그릇 속에는 무 첨만 보인다. 어머니는 우리들의
눈치를 보시며 이쪽저쪽 덜어 주시다보면 국물도 못 잡수실 때가 허다하다.
어머니는 우리도 언젠가는 배불리 먹는 날이 돌아오겠지 하시며 가난에
푸념을 하신다.
요즘 우리는 가끔 동태국을 끓여 먹을 적이 있다. 머리는 아무도 먹지를
않으며 빈 그릇에 덜어 놓는다. 동태머리는 항상 내 차지다 식사가 끝난 후
머리를 빨아먹으며 옛 생각을 떠 올려본다. 어린 시절 아무생각 없이 어머니가
주시는 대로 먹은 것이 지금에 와서야 내 가슴을 쓰리게 할퀸다.
비 오는 날 애호박 부침개를 먹을 적에도 옛 생각을 잊을 수가 없다. 앞집,
뒷집 흙담 용고새 위로 뒤엉키어진 호박넝쿨 애호박과 호박잎은 서로가
마음을 털어놓고 따먹은 후덕한 인심이 있었다. 입맛이 없을 적에는 아욱죽을
쑤어서 형님 동생하며 담 위로 넘어 가는가하면 쑥떡 보리개떡이 오고 가기도
한다. 담 밑에 발돋움 돌은 반질반질 하고 윤기가 나도록 훈훈한 온정이
오고가고 한 흔적들이 머릿속에 남아돈다.
그러했던 내 고향은 지금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가? 초가지붕도 흙담과 발돋움
돌들도 다 허물어져 버리고 현대식 건물로 변해 가고 있다. 웃음을 나누시던
어른들은 정이라도 두고 가시지! 몸도 정도 다가지고 떠나 가시여 지금은
그때의 정을 찾을 수가 없다 옛 분들은 묘 봉건 위에 할미꽃처럼 마주보며 꽃
수술이 흔들려 속삭이듯 정을 나누고 계시겠지!
새끼줄로 공을 만들어 축구와 야구를 하고, 돼지 오줌보에 바람을 불어넣어
공놀이를 하던 형들은 하나 둘씩 꽃상여를 타고 산허리로 몸을 감추셨다. 나무
가지를 꺾어 자치기를 하다 미아에 피를 흘리며 놀던 소꿉친구들도 이승으로
가고 놀이터 마당은 시내버스 종점으로 변했다. 동리 한복판에 연자방아가
있던 곳은 어떻게 변했나!
보리 고개시절 풋보리를 가마니나 바구니에 담아 연자방아를 돌린다. 햇빛에
얼굴을 그을리며 물래 방아처럼 돌다보면 어지러움에 뒤뚱거리고 소도 힘에
겨워 설사를 하며 입 멍에서 거품이 뚝뚝 떨어지고 설사 똥에 소를 쫓다 옷을
다 버리곤 했다. 그러던 연자방아간은 지금은 농기구 창고로 변해 버렸다.
마을입구 제방 둑길에 아카시아 꽃을 죽죽 훑어 볼이 메어지도록 먹다 벌에
쏘여 입술이 돼지 구들처럼 부르터서 혼 줄도 났었다. 뒷산에 참나무
틈사이에서 집게벌레도 잡고 먹을 것을 준비하기 위해 뒷발로 굴리던 쇠똥구리
길들은 아스팔트길로 변해 버렸다. 모든 것이 다 변했지만 까치울음소리만은
변함없이 내 고향 소식을 전하고 있다.
2004 18집
첫댓글 웃음을 나누시던
어른들은 정이라도 두고 가시지! 몸도 정도 다가지고 떠나 가시여 지금은
그때의 정을 찾을 수가 없다 옛 분들은 묘 봉건 위에 할미꽃처럼 마주보며 꽃
수술이 흔들려 속삭이듯 정을 나누고 계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