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팔백열다섯 번째
흥선 대원군은 억울하다
본디 드라마를 즐기지 않는 편이지만, 특히 사극은 본 적이 없습니다. 극劇은 말 그대로 연극이기에 그렇습니다. 극은 시청자들의 재미를 돋우어 시청률을 높여야 합니다. 그래서 극적인 반전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과장하기 일쑤입니다. 아마도 조선 말기에 빠질 수 없는 인물 ‘흥선 대원군’이라고 하면 ‘상갓집 개’를 떠올릴 겁니다. ‘상갓집 개’의 사전적 의미는 돌봐 줄 주인을 잃은 상갓집 개처럼 천대받으면서도 비굴하게 얻어먹으러 기어드는 가련한 꼴을 비유한 말입니다. 대원군이 되기 전 흥선군이 그랬다는 겁니다. 조선 말기 왕위는 사도세자의 후손들이 차지했습니다. 흥선군도 사도세자의 증손자입니다. 그런 그가 상갓집 개처럼 행동했다는 것은 역사를 조금만 관심 있게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의아해할 겁니다. 아무리 몰락했다고 해도 그렇게 처신할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흥선 대원군은 ‘상갓집 개’에서 왕의 아버지로 화려하게 변신했다고 믿습니다. 널리 알려진 김동인의 장편소설 <운현궁의 봄>에서 그리 묘사했고, 이후 여러 사극에서도 김동인이 묘사한 것을 따라 했습니다. 그래서 독자들과 시청자들은 그것을 역사적 사실로 믿은 겁니다. 조선왕조실록 <철종실록>에 기록으로 남아 있는 상소문 한 구절을 보겠습니다. “임금의 친족들이 한결같이 남연군·흥인군·흥선군을 본받도록 하소서.” 남연군과 흥인군은 흥선 대원군의 아버지와 형입니다. 얼마나 처신을 잘했으면 신하들이 왕에게 이렇게 상소했을까요. 단지 아들(고종)의 등극을 위해 일부러 조심했던 것뿐이었습니다. 이런 일은 우리 주변에 널려 있습니다. 미국 대선에서도 유권자들이 가짜뉴스에 휘둘렸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저런 환경 탓에 왜곡된 정보와 편견으로 세상을 보게 됩니다. 좀 더 눈을 크게 떠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