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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56년3월12일 전북 진안읍 마이산이 신비롭고 다정하게 우뚝서있는 작고 아주깊은 산골에서 태어낳다. 아스팔트 콘크리트길 생각도못하고 덜컹대며 어딘가를 돌진해가는 완행버스가 허ㅡ이연 비포장 자갈밭신작로 먼지를 연막탄처럼 일으키며가면 우리는 한참을 눈을감고 입을 틀어막으며 케~에 켁 케~에 켁 거리며 20리길을 남.녀공학인 초.중학교를 걸어서다녔다. 타이어표고무신 검정고무신을 아끼고 또 아끼고 신다가떨어지면 5일만에 20리길읍에서서는 장날 어머님은 때워다주셨고, 어쩌다 장날따라나서면 어머님이사주신 짜장면이 왜그리도맛있었던지 ㅡ 중학교입학했다고 어머님이 고추,콩, 달걀등을팔아 까만 일본식교복과 까만3구멍짜리 운동화를사주시면 어찌나 소중하던지 소중히감춰놓고 학교갈때아니면 절대안신었고 안입었던 나. 새벽밥을 먹는둥 마는둥 냅다달려 학교에도착하여 가방을열어보면 어머님께서싸주신 정성스런밴도밖에 김치국물이 주위를진동시켜 챙피하기도했지만, 벨이울려 점심시간이되어 친구들과어울려 먹으면 왜그리도 꿀맛이던지........... 나는 어려서부터 공.사를 분명히하고 표현을숨기지않고 때로는직선적이며 매우 낙천적인형 이었다. 지금도 그렇다고들하며 주위에서 그렇게 많은평가를받고있다. 우리식구는 누나 셋, 남동생, 여동생해서 6남매다. 매우잉꼬부부셨다는 우리부모님은 어머님38세에 42세인아버님과 사별하셨다. 내 나이8살 초딩1학년. 어머님은 나에게 안계시면안될 훌륭하고 강한 울타리이셨다. 산골 비오지않으면 짓지못하는 몇마지기안되는 논에 조그마한 텃밭으로 누나들을 중.고등교육 다시키고 우리이하를 대학까지 끝마쳐준 어머님이셨다. 난, 고등학교때부터 전주로나와서 유학을 했다. 자취했다. 학비 이외 취미생활, 용돈은 고교시절부터 전주근교 친구집 비닐하우스에서알바하여 벌어모아 부잣집애들보다 하고자하는건 다 해봤다. 여행이면여행 사진촬영이면촬영 미술이면미술 운동이면운동 잘살던아이들보다많은걸 해본것같다. 군대생활도 남자라면 해볼만한 낙하산부대인 공수특전단에서 강인한정신을 갖게된것이다. 복학하기전 학비를벌기위해 2년동안 춘천에있는 관광회사 가이드도했다. 단체관광 아줌마들의 단골메뉴 미스타전이란이름으로 인기를 누린적도있다. 전공을찾아 울산 . 거제도에서도 4년동안 회사집단생활을 잘적응하며 생활해오다 고향인 전라도 전주로와서 인생의목표를 설계한대로 현재를 살고있다. 돈도없고 조상이물려준재산도없고 오로지혼자만이 개척해야만 나의목표를 이룰수있다고 결심을했었다. 비즈니스맨이되어 인적자원과 사회정보가 나의 재산이됨을 감지하고 레미콘회사 영업사원.영업부장이되어 4년만에 전라북도 영업1위를 6년동안 고수하며 나에 첫목표 10년만에 회사를차리게된것이다. 무일푼으로 차린회사라 자금이 넉넉하진않았지만, 내힘으로 일궈낸것에 자부심을느꼈고, 2004년10월팔고 지금은 화학콘크리트혼화제회사를 OM방식운영하고있다. 규모는작지만 방만하고 신경많이쓰이던 레미콘회사보담은 머리가맑고 시간여유가있어좋다. 나의 가족은 아내 혜숙. 그리고, 아들3명이다. 큰아들이의경, 둘째가 서울한양대2년아이스하키선수 , 막둥이가 중딩2학년15세이다. 항상 애교스런아내와 듬직하고 각 각 특색있는 아들들을보면 기분좋은 하루 하루이기도하다. 나의 생활의 지표는 첫째 가정 , 둘째 일에대한 집념 , 셋째 세상을어떻게살면 재밌게 살다 후회없이 미련없이 죽을까이다. 사람사귀는 나의 기준은 의리가있는 사람인가, 이중성격자인가만 판단하고사귄다. 사람을 처음 만날때나 회사인력을 받아들일땐 첫째 성씨를 먼저보고, 둘째 관상을보고, 셋째는 혈액형을보고, 넷째는 어려운 시련속에 목표가확실한 기질을보고, 다섯째 가정의 환경을 파악한다음 채용한다. 학력은 중요히보지않는다. 하루일과는 아침 8시출근 한시간 직원과커피타임을 갖고, 오전 거래처방문. 거래처약속없으면 주로 아내와점심외식을한다. 오후는 주로 거래처방문과골프연습장을가고 수, 토요일 오후2시에서6시30분까진 눈이오나 비가오나 축구클럽에서 축구시합을한다. 평일밤은 생활화되어버린 접대생활과 친구나 선,후배들 여자들과 어울리는일이 거의다. 난, 우리나라에서 고질적인 사업에 필수적으로 되어있는 접대생활을 24년동안해왔다. 목표를 달성하려면 상대의 요구를 어떤식으로던 만족시켜줘야되었다. 룸사롱을원하면 가야되었고, 요정을원하면, 여자를원하면, 건강식품보양을원하면, 돈을원하면 돈을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토요일 일요일만은 어떠한일이 있어도 가정의날로 정해놓고 가족과함께했고, 지금도 거의그렇게하고있다. 나는 별 별 사람들을 다 만나고 다닌다. 그러다보니, 금방만난사람을보면 알수있는영감이생겼다. 현대사회의 흐름을이해하지못하고 적응치못하는사람들은 나를보면 처음엔 이상한사람, 바람둥이로보기 쉽상이다. 특히, 우리세대에살아온 여자들이 더한다, 그러나, 그런건 얼마가지않는다. 나는 실속있고 냉정한판단으로산다. 나를 몇번보면 자기가얼마나 고리타분하게 살아왔는가를 금방느끼며 후회하고 항상 즐거운마음으로 살아갈수있게 해달라고 도움을 요청해온다. 우리세대의 여자들은 똑같은 나이라도 남자의 생각과 많은 차이가있다. 그도 그럴수밖에 여자들은 50대중후반남편의 사고방식에 물들어 있기때문이다. 우리 남자들은 똑같은나이라도 40대초반 아니면 40대중반의 아내와살고 사귀는여자라도 40중반이하를대하기때문에 사고개념이 젊고 개방진보적으로 가고있는것이다. 같은 나이라도 여자와남자는 대화차이부터가많이나고 그럴수밖에 없을것도같다. 다 그렇지는 않다는 전제로는 쓰고싶지만 거의 그러더라. 나는 여자들과도 나이에구별없이 주어진 노는시간만큼은 만족하리만큼논다. 영원히 기억에 남을정도남자라고 표현을해도 과언은 아닐성싶다. 만나는사람마다 항상기분좋게 하고싶고 나를만나는순간만은 근심과걱정을모조리 없애주고싶다. 하긴 지나온세월을보면 상대를 기분나쁘게는안하고 살아왔다. 선배,친구,후배들이 따르는 여자들이 천명정도 되느냐고 할정도로 농담을걸어온다. 난, 어떤사람이던 무시한적도없고 불편치않게했으며 많은즐거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30대서 49.50.60대 여자분들까지는 무조건 오빠라부른다. 그러나, 난 일대일로는 사귄적이없다. 상처를준적도없다. 사귀는여자나 남자를 먼저 배신한적도없다. 전주서 나에별명이 " 빠리오빠" ' "전국여성봉사단체협의회회장" 즉, 전 .여 협. 회장이라는 별명을 붙여 부른다. 빠리오빠 는 프랑스에서건너온 애로영화감독이라는뜻이고, 현재 유럽서 흥행하고있는 내작품은 <저 뽕밭에 저 등짝은 누구에등짝이냐 1.2탄>이있고, 현재 국내서 촬영하고있는작품은 < 피조개 불말뚝을삼키다>1탄을 변산반도를배경으로 촬영중이며 국내상영은안할까?한다. 전. 여. .협 회장은 모든여자분들의 고민과스트레스등을 풀릴때까지 상담해준다는데서 붙여진이름이다. 내가 글을 올릴때는 정확하고 세밀한관찰력과 상상력 창작력을 총 집약해서 80%넌픽션으로 쓴다. 이런건 경험과체험에서오는건데 이해못하는 사람이많다. 그리고, 알면서도 내숭떨며 손가락벌려 안본척 흘끔 흘끔 쳐다보며 눈으로인정하고 입으로는 비판하는사람도있다. 이건 세대차이기도하고 자기수준과비교하면서 내수준을 격하시키기도 할것이다. 그러나 난 후회없는 인생을살고있고 앞으로도 이렇게살것이다. 여기 저기서 일어나는일들을 솔직하고 재미있게 계속해서 올릴것이다. 그리고, 애로영화는 계속 제작하고, 상담은ㅡ 부부갈등해소문제, 애들교육및환경조성 인성문제, 경제적해소방안등 다양하게 경험과식견을 토대로 게을리 하지않을것이다. 가정을 제일로 일은 불우한사람을 좀더 많이돕고 보람을안고 여생을 성공적으로마치기위해서열심히, 놀게되는 시간은 마냥즐거우니까 최고조로 높여 즐긴다. 오늘은 오늘만을 생각하고 내일의 복잡함을 받아들이지말자. 오늘 눈을감고잠들면 내일 영원히 못일어날수도있다. 내가 올린 체험수기들은 내눈이보고 나에 뇌가 정확히 판단한 글이므로 있는그대로 받아들이기바란다. 살아있는동안 그 대 내칭구들과 아름다운우정나누며 살고싶다. |
첫댓글 이걸 읽으려면 인내가 필요할 듯... 자서전인 것 같긴한데 줄이나 내리 쓰던지 원~ 읽는사람 생각은 하고 올리는 거니?
가만 보면 누구에게나 이런식의 말투더라? 아가라든지 귀엽다든지 하는등의 말투는 자제했으면 좋겠어. 말투를 친구에게 대하듯 편안하게 바꿔봐라. 매사에 이런식으로 쓰던데 자칫 신뢰감도 떨어지고 진실성이 없어보여. 우린 모두가 동격이거든~
숙아~ 너로인해서 내가 점점 철이들어가는것같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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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들만 만났어? 짜슥들~~~그래 대전서 추억에밤을 만들어보자.
모든 분야에 열정을 가지고 살아온 친구인것 같네 만나서 반갑다
반가워~ 볼날을기다릴께.
승근아~~~~승근이 글을보다 문득 생각이나서 쓴다~처음은 애잖하고 동화감이 가고 이해가 되다~그 글이 중도에와서 조금은 희석되고 마지막에 진솔한글이 뻥으로 느껴지는것은 뭘까? 글이던 이야기던 픽션 (Phixion)과 논픽션 (Non Phixion)이 있는데~~난 도져히 뭐가 진실인지 모르겠다~~글이란 내가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독자와의 교감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다~~이 글이 사실이라면 대단한 승근이고~~이글에 조금이라도 거짓이 있다면 잘못된거자~~글에도 픽션(Phixion)과 논픽션(Non Phixion)의 구분이 있어야 된다 생각된다~글을 쓸때는 글이 전하는 분명한 생각들이 .........
이를테면 "주제"가 명확해야 한다~~진실한 글은 마음을열고 써야하며~재미있는 글은 읽는이의 교감은 흔들어야 한다고 생각이 든다~글을쓰는 이유,내가전하고져 하는이유,그리고 함께하는 동질감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이 든다~~
옳은 말씀~ 앞으로 입맛에맞는 글을 맛있게쓰고싶다.
그래 난 외국에 있으면서 친구들의 글을 많이 읽었다 허나 친구의글이 길어도 끝까지 읽고 우리들의 이야기를 과감없이 올린 친구의글에 ..그래 맞아를 몇번했는지 모르겠다 .. 친구의 말대로 오늘 눈을 감고 잠들면 내일 영원히 못일어날수도있다 .... 그러나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우리 열심히 살자 ..
깊은 배려에감사한다.
회사 경영과 영화 제작의 두마리를 쫒고 있다구? 욕보네~ ㅎㅎㅎㅎ 빠리오빠. 잘보고 가네.
너와내가만날날이있겠지만 너를만나면 난 가만히있을란다.ㅎㅎ
자슥 귀엽게도 흘려놨군!! 글쓰면서 쏘주개나 깠겠구려.. 역시 자네는 나의 죽마고우야! 너의글을 읽고나니 엤날 그시절이 떠오른다(강냉이 죽밭아서 서로싸우면 먹던 그시절)
석환아~ 잘갔어? 내구역까지침범한너에게 위기감을느낀다. 잘생긴녀석이 설쳐대면 전주에서 나는 떠나련다.
ㅎㅎ 우리 초딩때그랫징~ 그래도 넌 한약방집아들였자나 ㅡ 강냉이죽. 가루.분유배급받은생각이난다.ㅎㅎ
빈몸에서 짦다면 짦은 동안 자수성가 하기가 얼마나 힘들지 잘 안다 ! 앞으로 더욱 빛나길~~
땡큐~ 도전은 계속된다.
잘보고갑니다
공감..



능력이 있다는건 베풀것이 많고 포용력이 있다는거지? 근데 애로영화 찍는거 정말야? 그대목이 아닌거 같단말야...ㅎㅎ
너무 깊이가지마라~~ㅎㅎ
내 삶의 이야기를 .............
고생 했구만~~~대전에서 만나세~~~
준비하느라 애쓴다. 전주모임까지와준너에게 갚을기회인가보다.
아이고.......이쁜 마눌님 자랑은 꼭 낑가 넣는구만.............ㅎㅎ 잘 봤데이........끝에 적은 마음 변치 말고 나눔을 실천 할수 있어 그 기쁨 을 누리고 사시길........
ㅎㅎ넌 언제까지 춤만춰댈꺼냐. 계속추는구만~ 고맙다.
반갑다~ 가끔 이렇게 승근이 흔적이래두 볼수있으니 지루하지않게 죄다 읽어보고 간다~ㅎ
기창아~ 바쁜철이구나. 대전서 너에 순수함을보련다. 그때보자.
그래서 계룡산에는 오는감? 나는 그것이 젤로 궁금해~ㅎ
갈거야. 니가보고싶거든 ~~
ㅎㅎ그래~다 그렇고 그렇게 살았지....그시절 그 순간 순간 들이 흑백 영화 처럼 지나 가는 구나~대전에서 보자구 친구~
그래~ 종훈아.ㅎㅎ 궁금하다.
그려, 편하게 살자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