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는 개싸움이라고 한다. 혹자는 진흙탕싸움이라고 한다. 또다른 혹자는 정권을 건 싸움이라고 하고 또다른 누구는 다이너마이트의 심지가 타들어간다고도 한다.
아닌게 아니라 그렇다. 이건 정말 큰 사안이다. 97년 대선을 앞두고 터진 DJ 비자금 문제하고는 차원이 다른 건이다. 그때야 아무리 DJ가 돈이 어쩌구 해도 한 마디면 족했다.
"아니 정치하는 돈이 그럼 어디서 났다고 생각했슈?"
즉.. DJ 비자금은 아무리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시멘트 표'에 별다른 영향은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이회창 후보 아들 이정연씨의 병역면제의혹은 그렇지 않다. 벌써부터 노무현과 격차가 줄어들고 있고, 게다가 정몽준이라는 변수 - 끝없이 새 얼굴을 갈구하며 광야를 헤매는 한국 유권자 30% - 까지 나타나서 곤혹스럽다.
너무너무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 사건. 본지는 지금부터 독자 여러분을 위해 좀 정리를 해 드리도록 하겠다. 미리 경고하는데, 본 기사에 별로 새로운 건 없다. 아마 지금까지 신문 잡지를 열씨미 읽은 독자들이라면 대충 아는 내용일 것이다. 그치만 이거 또 뭔 싸움이냐 하며 대충 지나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조중동만 보면 헷갈릴지도 모르니 정리를 해주겠다는 거다.
신문을 보면 온통, 김대업이 수사관 행세를 한게 법적 문제가 있다느니, 담당검사 누가 누구하고 친하다느니, 법무장관 해임안을 제출한다느니, 하며 점점 복잡한 얘기만 나온다. 새로 관심을 가지게 된 사람은 이게 도대체 뭐가 본질인지 헷갈릴 법도 하다.
단 아직까지 확인된 사실은 별로 없으니 어느 한쪽 편은 절대 안 들기로 하겠다.
98년 1월 참고인 조사를 받을 때의 이정연씨. 아닌게 아니라 정말 마르긴 말랐다...
97년
이야기는 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선을 앞두고 야당인 국민회의는 7월 초순부터 이정연씨의 병역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했다. 국회 대정부질문을 통해 병적기록표, 신검부표 등을 공개하라고 국회에서 정부에 마구마구 요구한 것이다.
국방부 왈, "문서 보존기간 5년이 지나 이미 다 폐기됐고 공식 기록은 한개도 없다." 국민회의 왈, "씨바 말이 되냐 그럴리가 있냐" 뭐 이러면서 한달동안 싸웠다.
그런데 7월 28일, 고건 당시 총리가 국회 답변에서 없다던 병적기록표 얘기를 꺼내버렸다.
문 : 첫번째 신검 당시 62kg이었다고 하는데 총리는 사실인지 답변하라.
답 : 확인해보니까 62kg은 아니고 55kg으로 돼 있더라.
오잉? 없대매 어디서 봤냐?
당연히 난리가 났다. 어디서 튀어나왔냐, 빨리 공개하라... 국방부도 곤혹스러워했다. 없다고 해 놨는데 총리가 나가서 있다고 해 버리다니. 결국 7월 30일, 국방부는 병적기록표를 국회에 공개한다. 거기에는 179cm 45kg으로 기재되어 있었는데, 사진도 없고 도장 찍힌 거도 좀 이상하다고 해서 또 의혹을 받게 된다.
그동안 왜 없다고 했느냐, 하는 질문에 국방부는 "실무자 착각이었다"고 답변했다. 현역입영한 사람들은 보통은 3년, 정밀신검까지 받은 사람들은 5년, 그 중에서 면제받은 사람들은 평생 병적기록표를 보관하는데, 면제자는 보관한다는 걸 깜빡 잊어먹고 5년 지났으니까 없어진 줄 알았다는 거다.
국민회의 천용택 의원은 "말도 안 된다. 그거 때문에 얼마나 많이 병무청을 괴롭혔는데 지금와서 착각이라고 하느냐. 거짓말이다" 라고 했었다.
그런데, 사실 국방부가 거짓말을 한 건 아니었다. 국방부에서는 진짜로 찾아보았더니 없어서 없다고 답변했던 것인데, 문제의 이 병적기록표는 병무청의 문서보관 창고가 아니라 당시 김길부 병무청장이 그거 하나만 따로 빼서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당연히 창고를 아무리 뒤져봐도 없었겠지.
나중에 기자들이 김길부 청장(3성장군 출신)에게 "왜 그거만 따로 빼서 보관했냐"고 물어보자 그는 "그거 때문에 온 나라가 뒤흔들리고 있는 판에, 누가 와서 슬쩍 빼가면 큰일이라 특별관리했다"고 했다. 뭐, 나름대로 말이 되는 얘기였다.
그래서 당시 언론에 자주 나오던 말은 "병역비리"가 아니라 "고의감량 의혹"이었다. 입영해서 신검 받을 그 당시만 졸라 굶어서 치사하게 면제받은 거 아니냐는 거다.
사실 "고의 감량"이라는 건, 대통령을 하겠다는 후보 아들이 군대를 기피했으니까 치사하고 도덕적 책임이 있다는 거지, 그 자체로 법적인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약간 절차적인 문제는 있지만 어쨌거나).
사실 그런 친구들 한두명쯤 알고 있지들 않냐? 억지로 살찌워서 방위나 면제판정 받거나, 신검이 다가오면 어두운 방안에 촛불 하나 켜놓고 하루종일 들여다봐서 "고의시력감퇴"라는 자해를 하는 웃지못할 한국적 비극들... 일부러 무릎수술해서 연골 떼어내기도 하고..
암튼간에, 병역 공방은 대충 이렇게 마무리되었고, 다들 아시다시피 그 덕분에 이회창은 대선에서 떨어졌다.
2002년
그런데 이번에 불거진 문제는 5년전 문제의 재탕은 아니다. 재탕이면 뭐 얘기할 건덕지도 없겠지.
이번에 나온 이슈는 뭐냐면, 97년 당시 이정연씨 문제를 은폐하기 위한 대책회의가 있었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뭐, 정치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터져나왔는데 관계자들이 지들끼리 대책회의도 당연히 했겠지, 그게 뭐가 문제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니다. 그런 대책회의가 아니고 당시 신한국당 관계자들(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두사람)하고 병무청 관계자들이 만나서 "병적기록표를 조작했다"는 게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병적기록표 없다고 오리발 내밀던 그 한달 정도 사이에, 앞에선 없다고 해놓고 뒤에서는 졸라게 '가라'로 만들어서, 그게 완성되는 순간 "앗 찾았다" 하면서 세상에 내놨다는 게 요지 되겠다. 병적기록표에 사진이 없는 거는 83년(처음 작성된 시점) 당시의 정연씨 증명사진을 당연히 구할 수 없으니까 그랬던 거고...
병적기록부가 97년에 새로 만들어진 '가라'냐 하는 건 아주 중요한 이슈다. 왜냐하면 만약 그렇다면 정연씨의 면제는 '고의감량을 통한 치사빤스 면제'가 아니라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비리 면제'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대통령의 꿈도 물건너가게 된다.
뉴스에 잠깐씩 나오는, 전태준 전 국군 의무사령관하고 한나라당 관계자가 언제 만났냐 하면서 싸우는 게 바로 이 때문이다. 김대업씨는 '7월에 만났다'고 주장하고, 전태준씨와 한나라당은 '만나긴 만났지만 10월인가 11월에 만났다'고 하는 것이다. 만약 7월에 만났다면 '가라 병적기록표'를 만든 거고, 나중에 만났다면 아닌 거고.
거기에다가 한인옥씨 얘기가 들어있다는 한인옥여사 문제, 김대업씨의 전력과 배후, 수사에 참여한 절차 등등 부수적인 문제들까지 곁들여져 아주 헷갈리게 되어 버렸다. 물론 한나라당은 그런 것들이 부수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하겠지만.
이걸 알기 위해서는 일단 김대업이라는 인물 얘기를 잠깐 해야한다.
김대업
김대업 이 사람은 과거에 병무비리로 처벌받았던 장본인이다. 게다가 협박 등으로 해서 실형까지 살았다.
이제 시점을 다시 98년으로 돌리도록 하겠다. 당시 김대중 정부 출범과 함께 병무비리 근절을 위한 대대적인 조사가 시작되었다. 너무나 공공연하게 이루어졌고 높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관련되어서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던, 심지어 그 불도저 같은 YS 조차도 건드리지 못했던 병무비리를 대대적으로 수사한 건 김대중 정권이 잘한 점 중 하나라고 할 만하다.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이 수사로 인해서 벌써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처벌되었고, 수사 시작되는 순간 병역 면제 비율이 13%에서 4%로 뚝 떨어져 버렸다. 물론 정작 거물급 인사들은 다 빠져나갔고, 수사가 초기에 비해서 흐물흐물해지고 있다는 비판도 있지만...
그 병무비리 수사의 주역이 바로 김대업씨였다. 아마 98년 99년경 시사월간지들을 눈여겨 본 독자들이라면 김대업이라는 사람 이름이 그다지 낯설지 않을 것이다. 당시에도 언론에 자주 나왔으니까.
이런 후일담이 전해진다. 군검찰의 병무비리 수사팀(팀장 이명현 소령)은 수사 초창기 난관에 처해 있었다. 부정의 커넥션 구조를 잘 알지도 못했고 전문지식을 가진 수사관도 없어서, 군의관들이 정당한 면제라고 강력 주장하면 속수무책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드높았던 수사 의지와는 달리 두어달 동안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진 건 단 2건에 불과했다.
그런 어느날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신문을 보고 수사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저는 출소한지 이틀됐는데, 이제 오명을 씻고 국가를 위해 봉사하고 싶습니다. 병무비리라면 손바닥 보듯 다 알고 있습니다."
확인해보니 거짓말은 아니었다. 결국 그는 수사팀에 합류하게 되는데, 이 인간은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와 자비를 들여 호텔방에 기거하며 몇달동안 밤새워가며 병역 관련 서류들을 검토했다. 돈도 한푼 안 받고, 게다가 자기돈 써 가면서... 저 인간의 속셈이 뭔지 의심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데 그 솜씨가 귀신이었다. 서류만 척 보고 "얘가 수상하다"고 찍어주면 영락없이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병역면제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훤히 꿰뚫고 있던 그는, 무슨 병명으로 어디서 어떻게 면제를 받았는지 하는 서류만 보고 족집게처럼 부정면제자들을 골라냈다. 기억력도 비상했다. 몇년전 누가 무슨 옷을 입고 찾아왔는지까지도 귀신처럼 기억했다.
그는 병무비리 수사의 귀재였다. 오죽하면 동료들이 "저 사람은 병무비리 수사를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라며 혀를 내둘렀을까.
그의 의도가 뭐였든지간에 수사는 아무튼 대성공이었다.
그런데 당시 언론에는 "군검찰과 기무사 간에 알력이 있다"는 기사가 계속 나왔다. 김대업씨가 마구잡이로 성역을 건드리자 기무사 쪽에서 "민간인이 왜 수사에 참여하느냐"며 태클을 걸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1차 수사팀이 해체되고 2차 수사팀이 결성되며 김대업씨는 수사에서 빠지게 된다.
물론 그가 완전히 빠지게 된 건 아니었다. 군 쪽에서는 빠졌지만 검찰쪽에서 여전히 그를 찾았고, 그만한 전문가도 없었기 때문에 그는 계속 수사에 참여하게 된다. 처음엔 호텔방에 앉아서 서류검토만 하던 그가 이제는 심문할 때도 같이 들어가게 된다.
여전히 군 쪽에서는 그를 견제했다는 게 김대업씨의 주장이다. 과거에 그가 저질렀던 비리를 군이 캐내서 그걸로 구속시키려고 했고, 김대업씨는 위기의식을 느껴 언론에다가 자기 처지를 하소연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당시 언론에 김대업씨 기사가 많이 실렸다. (녹음도 같은 이유로 했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런데.. 그러다가 결국 사건이 하나 터진다. 김대업씨가 사기 혐의로 구속되고 유죄판결을 받은 것이다.
그가 구속될 당시의 정황은 마치 한편의 영화를 방불케 한다. 어느날 동교동에서 경찰이 관내를 순시하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다가와서 "요 앞 피씨방에 무슨무슨 혐의로 수배된 사람이 앉아있는데 연행하쇼" 라고 말하고 사라진다. 주민등록번호와 신상명세, 그리고 친절하게 사진까지 건네주고.... 확인해보니 그런 사람이 수배된 게 사실이었다. 경찰관은 웬떡이냐 하면서 졸지에 수배자 한명을 잡아왔다. 그를 연행해 오고 난 후, 이번에는 어디서 왔는지 모를 괴전화가 파출소로 한통 걸려온다. "연행해 왔습니까?" 게다가 군검찰 내부에서 작성된 그에 관련된 서류가 누군가에 의해 경찰에 전달된다.
김대업씨의 주장은, 군 기무사가 자신을 잡아넣기 위하여 감찰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즉 기무사 음모에 당했다는 거다. 자기는 당시에 수배가 된 것도 모르고 있었고, 게다가 돈을 빌린 것 뿐이지 사기쳤다는 건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수사팀에 관련이 있는 사람을 뭐하러 수배까지 하냐는 것이다.
어쨌거나 그는 유죄를 선고받았다. 사기의 내용을 보면, 조모씨에게 "수사요원들을 시켜 떼인 돈을 받아주겠다"고 하고, 자동차 의류 등을 사야하니까 활동비를 달라고 해서 받아내고, 나중에는 부동산 사라고도 하고... 자기를 감사원 특수요원이라고 속였다는 거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피해자 말이 더 일리가 있는 듯하다. 김대업씨 본인은 물론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암튼간에, 그는 수감되었는데, 병무비리 수사팀에서는 여전히 그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를 자주 불러다가 썼다. 그는 수감된 상태에서 검찰에 가서 남을 수사하는, 희한한 이중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김길부 전 병무청장 사건이 터지게 된다.
공방
전 병무청장 김길부씨는 인사비리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런데 처음 잡혀오고 나서 조사를 받게 되었을 때 자기가 왜 잡혀온지도 모르고 이정연씨 관련된 얘기를 술술 털어놓았다(김대업 주장).
김대업 : 다 알고 있다. 아는 대로 다 말해라.
김길부 : 아아.. 쩝... 이얘기 하면 안 되는데..
김대업 : 괜찮아. 다 얘기해라.
김길부 : 97년 7월에 이정연 면제 은폐대책회의가 있었다. 누구누구를 어디어디서 만났고...
97년 당시 국회에 나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던 김길부 당시 병무청장
그때 방에 다른 사람은 없었고 그 얘기는 김대업씨만 들었다는 거다. 일단 얘기를 다 듣고 나서, 옆방에 있는 노명선 검사에게 가서 "이런이런 얘기를 들었는데 얼른 정식 조서를 받으십시오" 하고 말했다. 그런데 그 때 김길부씨는 담당변호사를 잠깐 만났는데, 갑자기 태도를 바꿔 그런 말 한 적이 없다고 잡아뗀다는 것이다.
김대업씨는 나아가서 "잡아떼던 김길부씨가 나중에 기소되고 나자 그때 대책회의 털어놓으면 봐줄 수 있냐"는 말까지 했다고 주장한다.
물론 김길부씨는 다 생구라라고 펄쩍 뛴다. 게다가 한나라당측은, 김대업이 지목한 문제의 변호사는 그때 당시엔 변호사 선임도 안 돼 있을 때라고 주장한다. 게다가 수감된 사람이 어떻게 수사관 행세를 하느냐 하며 법적인 문제까지 들고 나왔다.
두 사람은 서로 아는 사이인가 모르는 사이인가부터 서로 말이 틀리다. 그런데 이 부분은 녹음테이프도 없고 조서도 없고 아무 증거가 없다. 김대업씨 주장에 의하면 그냥 자기 혼자 들은 얘기에 불과하다. 김대업씨가 노명선 검사에게 가서 보고한 것이 증거라면 증거인 셈이다.
또 하나의 쟁점은 신검부표 파기에 관한 것이다. 김대업씨 주장에 의하면 신검부표는 97년 여름에 상부의 지시로 파기되었다고 한다. 원래는 그 전에 파기되었어야 하는 건데, 담당자가 미처 파기하지 않는 바람에 그때까지 남아있다가 '일부러' 없앴다는 거다. 이 부분은 녹음된 테이프가 있다는 게 김대업씨의 주장이다.
만일 그때 일부러 없앴다면, '은폐대책회의'가 있어서 조직적인 증거인멸이 있었다는 방증이 될 수 있다.
이상이 대충의 줄거리이다. 물론 곁가지를 치고 나가다 보면 박노항 원사도 얽혀 있고, 신검 부표 파기로 인한 징계문제, 사건 배당에 따른 한나라당 측의 항의 논쟁, 복잡한 상호간의 고소 고발 건, 한나라당의 법무장관 해임 요구 등등 수많은 작은 사안들이 있다. 아마 책으로 써도 한 권 쓸 수 있을 거다.
한나라당측은 이 사건에 대해, 김대업이라는 인물이 괜히 이런 평지풍파를 일으킬 이유가 없는데 저러는 건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다고, 게다가 사기전과자니까 믿을 수 없다고 몰아가려는 전략을 쓴다. 그러나 그건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병역비리가 없었다면 김대업이 사기꾼이고, 병역비리가 있었다면 이회창이 물러나고, 결국 중요한 건 병역문제이다.
한나라당은 지금 엄청나게 격앙돼 있는데, 사실 뭐 그럴 만도 하다. 지금까지는 일방적인 김대업씨의 주장만 있고 사실이 하나도 안 나왔기 떄문에, 제2의 설훈으로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반면 민주당은, 이정연씨가 비리를 저질렀는지, 은폐대책회의가 실제로 있었는지가 핵심이지 그게 뭐가 중요하냐, 하며 촛점을 이회창 후보에 맞추는 전략을 쓴다.
본 기사를 쓰는 이 시점(8월 11일 일요일), 내일이면 김대업씨가 테이프를 제출하겠노라고 한다. 83년에 최초 작성된 이정연씨의 병적기록부 안에 있는 글씨체가 담당직원의 것이 아니라는 기사도 나온다.
암튼간에.. 이번에도 역사 대한민국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모든 프로그램 중에서 뉴스가 제일 재미있는 지구상 몇 안 되는 나라라는 명성에 걸맞게, 월드컵 끝나자 서해교전, 민주당 분당/창당, 마늘파동, 홍수, 병역문제... 우리는 숨쉴틈이 없다.
이번엔 정말 사생결단을 내는 것처럼 보이니.. 그래 사생결단 한번 내 보기 바란다. 늘 그렇듯이 삽입 순간 시들어버리지 말구. 한나라당 말대로 대선 전에 이쪽이든 저쪽이든 결론을 내 보자구.
그런데 말이다.. 딱 한 마디만 하자. 대구 내려가서 김대업씨 뒷조사하는 국회의원 나리들, 서류 끊으러 병무청에 정연씨와 같이 갔다는 모 의원님... 사장님 아들 데리고 놀이동산 가는 힘없는 평사원같이 보이는 건 왜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