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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은 올시즌보다는 2007-08시즌 승부를 걸겠다는 의지를 밝혔다.(사진 김재현) |
미들스브로 클럽하우스는 미들스브로가 아닌 달링턴에 있다. 미들스브로에서 승용차로 30여 분 떨어진 달링턴은 전형적인 잉글랜드의 시골 마을이다. 사람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이동국이 부인 이수진 씨와 살고 있는 집도 달링턴에 있다. 이동국은 "잉글랜드에 처음 왔을 때 운동 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 한국에 있었으면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데 ‘뭐하러 고생해서 이곳에 왔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경기에 나가는 시간이 짧아서 그런 생각이 더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동국은 지난 1월 미들스브로행이 확정된 뒤 "서두르지 않겠다. 2007-08시즌을 위해 이번 시즌은 적응하는 기간으로 생각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 어디 그럴까. 이동국은 SPORTS2.0과의 인터뷰에서 "(입단 소감에서)말은 그렇게 했지만 골 욕심이 났던 것이 사실"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마음이 급해지자 경기는 더욱 안 풀렸다. 큰 소득 없이 잉글랜드 생활도 4개월째를 넘겼다. 이동국은 “이제는 정말 골에 연연하지 않는다. 꼭 골이 아니더라도 내가 팀을 위해 할 수 있는 플레이가 얼마든지 있다. 축구뿐만 아니라 이곳 생활도 그렇다. 아내가 온 뒤에는 안정되는 것 같다. 시내에 나가면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이 있고 쇼핑할 수 있는 곳도 있다. 크진 않지만 작은 것에서 재미를 찾고 있다”며 낯선 타지 생활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음을 알렸다.
축구화와 이력서
이동국의 지난 길을 되돌아보면 애처롭다. 2006년 독일월드컵 개막을 두 달여 앞둔 지난해 4월 5일 포항과 인천의 경기가 벌어진 스틸야드구장. 이동국이 그라운드에 쓰러지며 무릎 통증을 호소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이동국은 오른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돼 최소 6개월 이상의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재활과 수술의 갈림길에 선 이동국은 "10%의 가능성만 있어도 독일월드컵에 출전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지만 독일 프랑크푸르트 스포렉 스포츠재활센터의 최종진단 결과 수술을 택했다. 수술은 월드컵 출전 포기를 뜻했다. 당시 이동국은 도저히 경기를 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이동국의 A매치 기록은 64경기에 22골이다. 굳이 기록을 들추지 않더라도 이동국은 최근 수년 동안 한국 대표팀의 간판 공격수로 활약했다. 19살의 어린 나이에 출전한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대성 가능성을 보이며 축구팬과 관계자들의 기대를 받았지만 한 단계 전진을 위해 발걸음을 뗄 때마다 불운의 그림자가 그를 덮쳤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는 개막 직전에 부상했고 독일 분데스리가 베르더 브레멘에 진출했으나 6개월 만에 돌아와야 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는 최종 명단에서 빠지며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이동국은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혔던 악연에 대해 회상했다. "대표팀에서 오래 활약했지만 정작 월드컵에서 뛴 시간은 15분이 고작이다. 2002년 월드컵에서 뛰지 못했기 때문에 독일월드컵에서 한을 풀어보겠다는 생각으로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이동국이 스트라이커로 뛰어야 한다'는 축구 전문가와 여러 감독님들의 말씀도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그만큼 좋은 위치에 있었고 실제로 컨디션도 좋았는데 부상을 당해 아쉬움이 컸다. 며칠 전이 무릎을 다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었다. 아내와 '벌써 1년이 됐다'며 웃었는데 시간은 정말 빨리 가는 것 같다. 결과적으로는 2002년에 쓴맛을 봤을 때보다 쉽게 어려움을 이겨낸 것 같다. 아내의 힘이 컸다."
이동국은 독일월드컵 출전은 좌절됐지만 무릎 치료를 위해 독일에 머물며 월드컵을 관전했다. 이동국은 순전히 팬의 입장에서 독일월드컵을 지켜보며 다시 한 번 유럽 진출의 의지를 다졌다고 고백했다. 이동국은 "축구에 대한 유럽 사람들의 열기에 큰 감동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유럽 무대에서 뛰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품었다. 한국에서는 인정을 받지만 유럽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초심으로 돌아가 축구화와 이력서를 들고 다시 한 번 해보자는 마음을 먹게 됐다. 베르더 브레멘 소속일 때와는 다르다. 결혼을 하고 시련을 이겨내면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성장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동국은 지난 1월 7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땅을 밟았다. 이동국의 에이전트인 일레븐의 김기훈 대표는 "미들스브로뿐만 아니라 여러 구단을 돌아다녔다. 말 그대로 이력서와 축구화 하나만 달랑 들고 여러 구단을 찾아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미들스브로의 가렛 사우스게이트 감독이 이동국에게 관심을 보였다. 이동국은 입단테스트 뒤 미들스브로와 정식 계약한 것으로 전해졌고 마침내 한국선수로는 4번째 프리미어리거가 됐다. K리그에서 프리미어리그로 직행한 최초의 한국선수다. 또 한국의 정통 스트라이커가 유럽 무대에 진출했다는 데 큰 의미를 둘 수 있다.
이동국의 미들스브로 이적에 관여한 유럽 에이전트 캄(KAM)의 데이브드 달시는 "유럽에서 바라보는 아시아 선수들의 개인 능력은 K리그보다는 J리그가 조금 높은 편이다. 어쩌면 이동국은 순전히 실력으로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마지막 한국선수가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미들스브로에서 이동국의 활약 여부가 앞으로 한국선수의 유럽진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동국, 무엇을 했나
이동국이 지난 1월 미들스브로에 합류했지만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뜸을 들였다. 이동국은 영국에 도착한 지 49일째인 2월 24일이 돼서야 후반 교체멤버로 미들스브로 홈구장인 리버사이드의 잔디를 밟을 수 있었다. 이동국의 데뷔전 상대는 올시즌 프리미어리그 승격팀이자 대표팀 동료 설기현이 뛰고 있는 레딩이었다. 설기현 또한 지난해 8월 19일 미들스브로와 경기를 통해 프리미어리그에 데뷔했으니 이들의 관계가 흥미롭다.
미들스브로는 영국 티스사이드 공업지대의 중심 도시다.(사진 김재현) |
이동국은 레딩과 치른 데뷔전에서 후반 40분 아예그베니 야쿠부와 교체된 뒤 약 9분간 녹색 그라운드를 누볐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강렬했다. 레딩 수비진의 오른쪽 뒷공간을 파고들던 이동국은 스튜어트 다우닝의 왼쪽 크로스를 오른발 발리슈팅으로 연결해 골포스트를 때렸다. 평소 발리슈팅과 가슴 트래핑에 자신감을 보였던 이동국은 데뷔전 뒤 말을 아꼈지만 곧이어 "잊혀지지 않는 데뷔전이 될 것 같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언론의 반응도 괜찮았다. 영국의 <스카이스포츠>는 이동국의 레딩전 활약에 평점 7점을 줬고 미들스브로 지역지 <이브닝가제트>의 에릭 페일러 기자는 "동화 같은 데뷔전이었다. 이동국은 골을 넣을 수 있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호평했다.
3월 17일 맨체스터 시티와 홈경기에서 첫 기회가 찾아왔다. 사우스게이트 감독이 이동국을 선발명단에 포함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조커'로 뛰며 골을 넣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공격 성향이 강한 공격수와 미드필더들을 대상으로 이번 시즌 활약한 프리미어리그 조커들의 득점을 조사한 결과 올레 거나르 솔샤르(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매트 더비셔(블랙번) 정도를 빼면 대부분의 선수들은 1골을 넣기까지 100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여기서 100분이란 순전히 교체로 뛴 시간을 말한다. 프리미어리그의 조커들은 교체로 활약하며 넣은 골보다 선발로 나가 넣은 득점이 더 많다(SPORTS2.0 43호 65p 참조). 때문에 3월 17일 맨체스터 시티전 이동국의 선발 출전은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선수에 대한 믿음을 확인해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확률상 프리미어리그 데뷔골을 넣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이동국은 맨체스터 시티전에서 전반 초반 한차례 헤딩슈팅 기회를 잡을 뻔했을 뿐 이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못했다. 이동국은 후반 시작과 함께 벤치에 앉았다. 이동국의 지인은 "맨체스터 시티전에서 특별히 몸상태가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그날따라 유난히 그라운드에 물기가 많았다. 자꾸 미끄러지자 이동국이 벤치에 축구화를 바꿔 신겠다는 신호를 보냈는데 축구화를 바꿔 신을 기회를 잡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동국은 "스스로도 실망이 컸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45분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면 더 악착같이 플레이했을 것이다. 그동안 K리그와 한국대표팀 경기를 치르면서 나도 모르게 90분 풀타임을 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어느새 그런 것들에 익숙해졌던 것 같다"며 자신을 질책했다.
아쉬운 첫 선발출전 경기를 마치고 사우스게이트 감독이 이동국을 불렀다.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실망하지 마라. 팀을 옮긴 뒤 적응기간 없이 제 실력을 발휘하는 선수는 드물다. 한국에서 왔으니 환경과 문화적인 차이도 클 것이다. 시간은 분명 필요하다. 난 너의 적응기간을 1년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동국은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말을 들은 뒤 "마음이 편해졌다"고 했다. 이어 "'뭔가 변화가 필요하겠구나'라고 느꼈다"고도 했다.
이동국, 무엇을 할까
미들스브로는 4월 14일 아스톤 빌라를 홈구장으로 불러들였다. 지난 시즌까지 스코틀랜드리그 셀틱 글래스고의 지휘봉을 잡았던 마틴 오닐 감독이 이끄는 아스톤 빌라는 스틸리안 페트로프와 숀 말로니 그리고 빠른 발을 자랑하는 가브리엘 아그본라허와 애슐리 영의 활약으로 최근 안정세를 찾고 있다. 그러나 유소년 출신의 어린 선수들과 베테랑들이 고르게 베스트11을 구축한 미들스브로에게 어려운 팀은 아니었다.
미들스브로는 이날 파비오 호쳄바크의 프리킥 골로 기선을 잡았지만 크레이그 가드너, 루크 무어, 페트로프에게 연속골을 내주며 1-3으로 무릎을 꿇었다. 승리를 확정짓는 아스톤 빌라의 세 번째 골이 터지자 리버사이드 홈팬들은 미들스브로 허리의 중심인 조지 보아텡을 뺀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선택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보아텡의 빈자리는 측면과 중앙 미드필더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리 카터몰이 대신했다. 보아텡을 대신해 투입된 선수는 공격수 이동국이었다. 미들스브로는 후반 31분 보아텡이 빠지고 이동국이 들어간 지 1분 만에 페트로프에게 쐐기골을 내줬다. 1-2로 뒤진 상황에서 공격의 필요성을 느낀 사우스게이트 감독이 펼칠 수 있는 작전이었다. 다만 결과가 좋지 않았고 이동국의 활약이 기대에 못 미쳤다. 여기저기서 사우스게이트 감독을 비난하던 팬들은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떴다. "이동국은 프리미어리그에서 뛸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는 어느 팬의 냉정한 평가가 귓가를 스쳤다.
이동국은 후반 37분 왼쪽 외곽에서 자리를 잡고 동료들에게 공을 달라는 신호를 적극적으로 보냈다. 그러나 왼쪽 측면을 파고들던 앤디 테일러는 이동국이 아닌 야쿠부에게 패스했다. 2분 뒤 다우닝의 왼쪽 돌파가 위협적으로 전개되자 페널티 지역 정면에 있던 이동국이 다시 공을 달라는 손짓을 했다. 그러나 다우닝의 크로스 역시 이동국이 아닌 야쿠부를 향했다. 후반 40분 말콤 크리스티의 논스톱 패스 또한 이동국이 아닌 오른쪽 측면의 다우닝을 향했다. 팀이 궁지에 몰리자 미들스브로의 미드필더들은 급한 마음에 주전 투톱 가운데 한 명인 야쿠부에게 패스를 집중했다.
미들스브로 투톱인 야쿠부와 마크 비두카의 입지는 확고하다. 야쿠부와 비두카는 5월 3일 현재 리그에서만 23골을 합작했다. 팀의 40골 가운데 60%에 가까운 골이 야쿠부와 비두카의 발끝에서 터졌다. 미들스브로 투톱의 득점비율은 프리미어리그 20개 팀 가운데 최고로 꼽힌다. 첼시의 디디에 드록바와 안드리 셰브첸코 조합이 23골을 기록했으나 두 선수의 득점차가 크다. 드록바가 19골을 넣은 반면 세브첸코는 4골에 그쳤다. 미들스브로는 야쿠부가 12골을 넣었고 비두카가 11골을 기록했다. 이들은 도움도 각각 4개, 5개씩을 기록하고 있어 미들스브로 공격에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동국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이동국은 "비두카와 야쿠부가 공격을 잘 풀어나갈 때 미들스브로가 이기는 경기가 많다. 반대로 이들의 플레이가 꼬이면 지는 경우가 많다. 이들에 대한 비중이 그만큼 크다. 야쿠부와 비두카 모두 웬만해서는 몸싸움에 밀리지 않고 공을 확실하게 보유한다. 내가 프리미어리그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들의 플레이 특징을 잘 살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동국은 이들과의 차이점도 분명히 했다. 이동국은 "사우스게이트 감독이 (우리 팀 투톱의 특성이)기동력을 이용한 플레이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감독님은 내게 수비 뒷공간을 파고들면서 크게 움직이라는 주문을 한다"고 설명했다.
미들스브로 팬들이 선수들의 사인을 받으려 하고 있다.(사진 김재현) |
야쿠부는 골을 넣을 뿐만 아니라 자주 2선까지 내려와 공격을 펼치는 재주까지 보이고 있다. 최근 이동국은 야쿠부를 대신해 후반에 교체 출전하는 횟수가 늘고 있다.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단기 처방일 수도 있고 다음 시즌을 고려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사우스게이트 감독이 야쿠부의 플레이를 이동국에게도 요구하는 것이라면 '타깃 맨' 성격의 공격수인 이동국은 작게나마 플레이의 변화를 생각해 봐야 한다. 어렵지만 풀어야 할 숙제다. 이동국은 이렇게 말했다. "꼭 골이 아니더라도 내가 이 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됐다"고.
이동국은 소원한다
이동국은 4월 14일 아스톤 빌라전에 앞서 에버튼과의 리저브(2군) 경기에 출전했다. 리저브 경기였지만 1군 선수 4~5명이 뛰었으니 수준이 낮지 않았다. 이날 미들스브로는 0-0으로 비겼다. 크리스티와 투톱을 이룬 이동국은 90분 전경기를 교체없이 뛰었고 이날 경기의 '맨 오브 더 매치(최우수선수)'로 뽑혔다. 미들스브로에서 이동국과 우애를 쌓아가고 있는 수비수 토니 맥마흔은 "(이동국은)머잖아 미들스브로의 주전 공격수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두카가 몸살로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스톤 빌라전은 이동국의 프리미어리그 두 번째 선발 출전이 조심스레 예상됐다. 그러나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고심 끝에 크리스티를 야쿠부의 파트너로 선택했고 이동국을 후반 교체멤버로 활용했다. 이동국의 실망이 적지 않았다. 추가시간까지 약 20분간 뛰었으나 동료들에게 제대로 된 패스조차 받지 못했으니 실망감은 더했다. 이동국은 이날 경기가 끝난 뒤 "나보다 크리스티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지"라며 분을 삭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스톤 빌라전을 통해 이동국과 크리스티의 희비가 엇갈렸다.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보인 크리스티는 아스톤 빌라전 이후 3경기에서 단 한 번도 교체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일반적으로 5명의 교체선수 명단에 1명의 공격수를 올리고 있는데 최근에는 이동국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공격수가 4명인 가운데 이동국은 미들스브로 제3의 공격수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큰 무리가 없다.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4월 28일 토트넘 핫스퍼전이 끝난 뒤에는 "이동국은 충분히 위협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이동국에 대한 믿음은 여전히 두텁다. 처음부터 이동국의 빠른 패스 타이밍을 마음에 들어 했고 미들스브로에서 활용가치가 높다고 생각한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이동국의 영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그러나 팀에서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영향력이 아직은 크지 않다는 얘기가 들린다. 미들스브로의 수석코치 말콤 크로스비와 스티븐 해리슨, 스티브 라운드 코치 등이 경험이 적은 사우스게이트 감독을 보좌하면서 선수 선발 등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얘기다. 올해 37살인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미들스브로 선수로 뛰었다. 백발이 성성한 미들스브로 코치들은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선수 시절 은사이기도 하다. 선수단이 식사할 때 코치들에게 커피를 타주는 사우스게이트 감독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4월 21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전은 미들스브로 코칭스태프의 역할 구분을 분명히 알 수 있는 한판이었다. 1-1로 맞서던 후반 중반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체력이 떨어진 야쿠부를 대신해 제임스 모리슨을 투입하려 했다. 그러나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허리춤에 있던 무전기를 통해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더니 갑작스레 선수를 바꿨다. 경기에 나설 채비를 갖추던 모리슨 대신 이동국이 야쿠부와 교체됐다. 사우스게이트 감독과 무전기로 대화를 나눈 인물은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해리슨 코치였다. 해리슨 코치가 마지막 순간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짐작키란 어렵지 않다. 이동국은 이날 경기에서 후반 막판 2선에서 한 번에 올라온 패스를 가슴으로 절묘하게 트래핑한 뒤 페널티 지역 안에서 슈팅 동작을 하다 맨유의 존 오셔에게 발이 걸려 넘어졌다. 이동국이 페널티킥이라는 몸짓을 보였지만 휘슬은 울리지 않았다. 이 장면은 <스카이스포츠>가 뽑은 '이번 주의 논쟁거리'가 됐다.
미들스브로 지역지 <가제트이브닝>은 "사우스게이트 감독이 이번 시즌 썩 만족스러운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지만 지도력에 대해 평가하기에는 이르다"고 말했다. 이어 "다가오는 여름 이적시장에서 어떻게 전력을 보강할지가 다음 시즌 성적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미들스브로 이적설에 휘말린 공격수는 아스날의 제레미 알리아디에르와 웨스트브로미치의 디오망시 카마라다. 팀의 얼굴과 다름없는 비두카가 미들스브로와 재계약을 계속 피하고 있는 가운데 이동국은 플레이의 다변화 말고도 시시각각 변하는 팀내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이동국이 프리미어리그에서 성공할 것이라고 보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대표팀 선배 노정윤은 "한국의 차세대 공격수에 대한 논쟁이 많지만 난 개인적으로 이동국이 첫 번째 후보라고 생각한다" 말했다. 노정윤은 이동국을 차세대 공격수 1순위 후보로 꼽은 데 대해 "그가 이제껏 겪은 온갖 시련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보라. 어떤 악조건에 처하더라도 (이)동국이는 적응해 나갈 것"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이동국은 "부상으로 2006년 독일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하게 됐을 때 심정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한국에서는 선발 출전을 당연하게 여겼지만 여기서는 그렇지 않다. 긴장되고 떨린다. 또 K리그에서 처음 뛰었을 때의 마음가짐을 되살리려고 한다. 잉글랜드에서 난 스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SPORTS2.0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이어진 사진촬영을 위해 이동국에게 앉은 자세를 요청했다. 이동국은 "지난해 부상 이후 오른쪽 무릎이 완벽하게 굽혀지지 않는다"며 양해를 구했다. 이동국 측 관계자는 다음 시즌 이동국이 가장 원하는 것을 이렇게 귀띔했다. "골을 넣은 뒤 꼭 해보고 싶은 세리머니가 있다고 했다. 두 무릎을 그라운드에 대고 미끄러지며 관중들의 환호에 답하는 것이라고."
SPORTS2.0 제 50호(발행일 5월 7일) 기사
잉글랜드=김덕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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