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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2 장 무 쌍 류 는 항 상 혼 자 였 어
1
열 두명의 괴인(怪人)들.
그들의 나이와 행색은 천차만별이었다.
가장 어린 사람은 삼사십 대의 중년으로 보였고, 많은 사람은
머리가 허옇게 세고 허리가 구부정해서 금시라도 무덤속으로
들어갈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체구도 달랐고, 입고 있는
의복도 제각기였다. 심지어 손에 들고 있는 병기 또한 같은
사람이 없었다.
하나 단 한 가지,
그들에게는 공통적인 것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그들의 피부였다.
마치 오랫동안 햇빛을 쐬지 않은 듯 그들의 피부는 유달리
창백했다.
머리를 산발한 중년인도, 백발이 성성한 노인도 하나같이
피부가 창백했고 핏기가 별로 보이지 않았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은 그들의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붉게 충혈된 눈!
창백한 피부!
그것은 모두 한 가지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바로 그들이 오랜 시간동안 폐쇄된 공간에 갇혀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들은 거의 이십여 년 이상이나 동굴속에
갇혀 밖으로 나오지 않았었다.
그들은 천상회 내에서 특이한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거의 대부분이 천상회에서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지위를 누렸던 인물들이었다. 하나 그들의
세력이나 위세가 너무 컸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천상회의
역대(歷代) 회주들에 의해서 제거되었던 것이다.
천상회에서는 그들을 '십이마신(十二魔神)'이라고 불렀다.
열 두명의 마신들!
그들은 누구나가 인정하는 천상회의 최고 실력자들이었다.
그들의 나이가 각기 틀린 만큼 그들이 갇힌 기간도
제각기였다.
그들중 가장 연장자인 구유마존(九幽魔尊) 혁잔심(赫殘心)은
전전대(前前代)의 회주에 의해 갇혔고, 가장 어린
유령신군(幽靈神君) 위당(魏唐)은 사마표향의 아버지인
사마일력에 의해 제거된 인물이었다.
그들 개개인의 무공은 능히 천상회에서도 첫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고, 개중에는 역대 회주보다 더욱 강한 인물들도 상당수
있었다.
천상회의 역대회주들이 그들을 완전하게 죽이지 않고 가두기만
한 것은 언제고 천상회의 위기가 왔을 때 그들의 힘을 이용하기
위함이었다.
- 한 가지의 명(命)을 수행하면 압박을 풀어주겠다!
이것이 역대 회주들이 그들을 가두면서 약속했던 말이었다.
그들은 오랜세월동안 끈질기게 이 약속이 지켜지기만을
기다려왔다.
그리고 이제, 천상회 역사상 처음이자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환마령이 발동되었던 것이다.
노독행은 전신의 피부를 칼날로 난도질하는 듯한 날카로운
예기를 느꼈다. 그것은 그가 출도한 이후 처음으로 느껴보는
강력한 살기였다.
그를 에워싼 열 두명의 마신들은 개개인이 지금까지 노독행이
만났던 어떤 고수들보다도 무서운 절정(絶頂)의
무인(武人)들이었다.
한 두명이라면 모를까, 이런 절정의 고수들이 열 두명씩이나
존재한다는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더구나 그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 노독행이었다.
그들의 붉게 충혈된 눈에서 뿜어나오는 이글거리는 광망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노독행은 양 손을 늘어뜨린 채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십이마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몸에서 뿜어나오는 살기로 주위의 공기가 거의 질식할
듯 무겁게 전신을 짓눌러왔으나 노독행의 마음은 오히려
담담해졌다.
조금전 까지만 해도 자신의 마음을 송두리째 타오르게 했던
복수의 불길은 어느 사이엔가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그
대신에 그 복수심보다 더욱 강한 승부(勝負)에 대한 욕구가
타올랐다.
그렇다.
이건 승부다!
목숨을 건 무인(武人)들만의 승부!
승부라는건 한 순간밖에는 진실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대결을 한다면 무쌍류는 절대로 지지 않는다.
이제야 비로소 나는 전력을 다해 승부할 상대를 만나게 된
것이다.
목숨을 걸고 승부할 상대를...
그 순간 노독행과 열 두명의 마신들은 거의 동시에 서로를
향해 몸을 날렸다.
팔보무상(八步無常) 허지명(許止命)은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애초부터 상대가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다.
아니, 범상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두 번 다시 보기 힘든
무서운 인물이라는 것은 처음 그 자를 보는 순간 누구나가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도 허지명은 확고한 자신이 있었다.
자신을 포함한 열 두 명의 마신들의 능력을 절대적으로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지명은 삼십 년 전에 전대의 천상회주인
사마태강(司馬太崗)의 제일가는 심복이었다.
그의 팔보무상이라는 외호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암기(暗器)와 독공(毒功)의 대가(大家)였고, 어떤 상대이든
자신에게서 여덟 걸음안에만 있으면 반드시 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결국은 그 능력이 문제가 되었다.
사마태강은 허지명이 자신의 여덟 걸음 내로 다가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고, 마침내는 그를 제거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삼십 년동안의 지옥 같은 고통끝에 마침내 환마령이 발동하여
밖으로 나오게 되었을 때, 허지명은 이제 천하는 자신들의
수중에 들어오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우리 열 두 마신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다!
그들 개개인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것은 결코 허튼 소리나
망상(妄想)이 아니었다.
십이마신의 힘은 천상회 전체보다 오히려 강한 것이었다.
그것은 자신감(自信感)을 넘어 하나의 신념(信念)과도 같았다.
그런데 그 신념이 지금 깨어지려 하고 있었다.
그것도 단 한 명,
오로지 단 일인(一人)때문에....
콰쾅!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단천마뢰(斷天魔雷)
해무광(海無廣)의 몸이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십 여장 밖으로 훌훌 날아가는 그의 몸은 이미 산산히
짓이겨져 도저히 살아있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다.
마침내 십이마신중 최초의 희생자가 생긴 것이다.
하나 노독행 또한 그렇게 좋은 상황은 결코 아니었다.
그는 비록 철산벽으로 해무광의 몸을 피떡으로 만들었으나
그때 생긴 격돌의 충격으로 전신의 몸이 짜릿하게 굳어졌다.
몸과 몸끼리 부딪쳐서 이와 같은 충격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전에 특이한 합마공을 익혔던 팔각신주 장문귀와의 격돌때도
지금처럼 온 몸이 저려오지는 않았었다. 해무광의
마뢰강기(魔雷 氣)는 그야말로 살인적인 위력이 있었다.
그의 몸이 순간적으로 멈칫거리고 있을 때 십 여줄기의 강력한
경기가 폭풍노도처럼 사방에서 밀려왔다.
십이마신중 세 명이 동시에 손발을 휘둘러 공격해 왔던
것이다.
꽈르르릉...콰아아!
주위가 온통 그들이 뿜어낸 장영(掌影)과 권풍(拳風)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노독행은 거의 반사적인 동작으로 허공으로 몸을 솟구쳤다.
콰쾅!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가 서 있던 자리가 폐허처럼 변하며
커다란 구덩이가 파여졌다. 그것만 보아도 그를 향해 날아들었던
경기들이 얼마나 가공할 위력을 지니고 있는지 여실히 알 수
있었다.
하나 노독행이 허공에서 채 몸을 가누기도 전에 다시 예리한
소성이 그의 목덜미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쾌액!
이번에 날아든 것은 혈살마조(血煞魔爪) 추립(鄒立)의
혈살조공(血煞爪功)이었다.
추립은 한때 이 혈살조공으로 마도제일고수(魔道第一高手)로
까지 군림했던 무서운 인물이었다.
노독행은 이번에는 피하지 않고 오른쪽 팔꿈치로 자신의 목을
노리고 날아드는 추립의 다섯 손가락을 내리찍었다.
무쌍류의 일곱 가지 팔꿈치 무예중 하나인
태산압주(泰山壓 )라는 수법이었다.
추립은 막 자신의 손가락이 노독행의 팔꿈치에 격중당하기
직전 손가락을 재빠르게 거두며 반대쪽 손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반대쪽 손가락 두 개가 노독행의 양 미간을 향해서 눈부신
속도로 폭사되어왔다.
그의 동작은 그야말로 물 흐르듯 재빠르고 민첩해서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그 순간, 분명히 허공을 가르고 아래로 떨어질 듯 하던
노독행의 팔꿈치가 번개같이 쳐올려지며 그대로 추립의 아래턱을
향해 솟구쳐 오르는 것이 아닌가?
쉬아앙!
막 노독행의 양 미간을 노리고 손가락을 찔러오던 추립은
그야말로 대경실색하여 황급히 고개를 뒤로 제켰다.
파악!
노독행의 팔꿈치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그의 콧등을 스치고
지나가며 아래턱에서 코를 지나 이마에 이르는 부분이 그대로
훌러덩 벗겨지며 핏물이 솟구쳤다. 비록 직접 강타당하지는
않았느나 너무도 막강한 기세로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에 피부가
갈라진 것이다.
추립은 모골이 송연해져서 감히 더 덤빌 생각도 하지 못하고
뒤로 정신없이 물러났다.
노독행은 그의 뒤를 바짝 쫒아가며 연환철주를 사용하려
했으나 그때 다시 두 명의 마신이 그의 양쪽에서 무서운 속도로
다가왔다.
한 명은 검을 들었고, 다른 한 명은 은빛 쇠사슬을 들고
있었다.
바로 육지검마(陸地劍魔)와 은령사신(銀靈死神)이었다.
그들의 연합공세는 그야말로 절륜하기 그지 없어 노독행이
그들을 향해 돌아섰을 때는 이미 그의 주위는 온통 검의
그림자와 새햐얀 사슬의 소용돌이에 휘감겨 버렸다.
팟!
노독행의 오른쪽 소맷자락이 갈라터지며 그의 팔뚝이 훤히
드러났다.
노독행은 주저없이 은빛 사슬의 소용돌이속으로 뛰어들며 왼쪽
팔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쫘아악!
은빛 쇠사슬이 그의 팔뚝에 칭칭 감기며 피가 솟구쳐 올랐다.
하나 노독행은 아랑곳 하지 않고 쇠사슬이 감긴 왼쪽 팔뚝을
세차게 잡아 당기며 오른쪽 팔꿈치를 수평으로 휘둘렀다.
쇠사슬의 주인인 은령사신은 노독행이 설마 한쪽 손을
희생하면서까지 이와 같은 수법을 사용할줄은 몰랐는지라
창졸지간에 주르르 그의 지척까지 끌려왔다.
그 순간에 육지검마의 검이 섬뜩한 광채를 뿌리며 노독행의
옆구리로 날아들었다.
노독행은 그 검을 무시한 채 오른쪽 팔꿈치로 은령사신의
가슴을 그대로 강타해 버렸다.
쾅!
"크악!"
은령사신은 가슴뼈가 으스러진 채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쇠사슬을 놓고 나가 떨어졌다.
찰나 육지검마의 검은 노독행의 왼쪽 옆구리를 그대로 가르고
지나갔다.
파앗!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며 노독행의 신형이 휘청거렸다.
최소한 육지검마의 눈에는 그렇게 비쳤다.
하나 육지검마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다시 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노독행의 몸이 휘청거리는 자세 그대로 그를 향해 돌진해
왔다.
육지검마가 움찔하여 몸을 솟구치려는 순간,
휘리릭!
노독행의 왼쪽 팔뚝에 감겨 있던 쇠사슬이 그의 하체를
휘감아왔다. 육지검마는 뜻밖의 공격에 당황하여 허공으로
솟구치려던 몸을 급히 옆으로 비틀었다.
그순간 노독행의 몸은 어느 새 그의 왼쪽 어깨부근을 사정없이
짓쳐 들고 있었다.
쾅!
굉음이 터지며 육지검마의 왼쪽 어깨뼈가 그대로 부서져
나갔다.
육지검마는 입과 코로 검붉은 선혈을 내뿜으며 옆으로 열
두걸음이나 정신없이 물러났다. 그가 쓰러지지 않은 것은 일단
바닥에 쓰러지면 두 번 다시 일어날 기회가 없다는 것을 알고
필사적으로 몸을 곧추 세웠기 때문이었다.
노독행은 이 장 밖으로 물러난 육지검마를 향해 노도처럼
돌진해 들어갔다.
그때 미약한 음향과 함께 무언가 차가운 기운이 노독행의
뒷통수쪽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스스스....
노독행은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기도 전에 돌진해 가던 자세
그대로 바닥을 떼구르르 굴렀다.
파아앗!
한웅큼의 쇠털 같은 암기가 그의 몸을 스치고 바닥에 꽂혔다.
바닥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며 매퀘한 연기가 코를 찔렀다.
실로 무시무시한 암기였다.
그것이 바로 팔보무상 허지명이 당년에 천하를 휩쓸었던
대봉남망(大蓬藍茫)이었다.
노독행의 몸은 탄력좋은 공처럼 바닥을 굴러 검마의 지척까지
다가오더니 그대로 튕겨지듯 일어나며 육지검마의 앞가슴으로
뛰어올랐다.
육지검마로서는 도저히 피할 수도, 예상할 수도 없었던 폭풍
같은 질주였다.
육지검마의 얼굴이 시커멓게 변할 순간,
펑!
무서운 속도로 육지검마의 앞가슴을 금시라도 박살낼 듯
돌진해 오던 노독행의 몸이 옆으로 튕겨졌다.
때마침 흑혈신권(黑血神拳) 유패(劉覇)의 혈정권(血鼎拳)이
노독행의 등판을 강타했던 것이다.
노독행의 안색이 핼쑥해지며 입가로 가느다란 실핏줄이
흘러나왔다.
그의 몸이 바닥으로 튕겨짐과 동시에 서 너명의 마신들이
내뿜는 무서운 공세가 온통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콰콰쾅!
부서진 돌조각이 사방으로 비산되었고, 먼지가 허공을
자욱하게 수놓았다.
그 먼지속에서 무언가 하나의 희끗한 인영이 빠른 속도로
유패를 향해 다가왔다.
그것의 정체를 채 파악하기도 전에 가공할 경기가 유패의
옆구리를 가격해왔다.
유패의 몸이 자신도 모르게 반대쪽으로 미끄러지듯 이동했다.
하나 그때 그가 이동하고 있는 쪽에서 다시 하나의 그림자가
빠르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너무도 갑작스럽고
쏜살같이 날아들었기 때문에 한때 마도제일권사(魔道第一拳師)로
불리웠던 유패조차도 더 이상은 피할 수가 없었다.
뿌드득!
유패는 자신의 갈비뼈가 다섯 개나 부러진 다음에야 그것이
하나의 발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노독행은 처음에 오른발로 유패의 몸을 공격함과 동시에
반대쪽 발로 그의 옆구리를 가격했던 것이다. 이 두 번의 연이은
발길질은 '연환쌍각(連環雙脚)'이라는 흔한 수법이었으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 펼쳐지자 천하무쌍의 절기 못지 않은 위력을
발휘했다.
유패는 옆구리가 으스러지는 고통을 억지로 눌러 참으며
자신의 옆구리를 치고 빠져나가는 노독행의 발을 덥썩 움켜
잡았다.
발이 잡히자 유패는 힘껏 그것을 비틀었다.
휘릭!
발이 붙잡힌 상태에서 노독행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치며
유패가 비트는 방향으로 몸을 회전시켰다. 동시에 반대쪽 발이
유패의 턱을 향해 날아들었다.
유패는 황급히 잡고 있던 노독행의 발을 집어 던지며 머리를
숙였다.
파아....
그의 머리끈이 풀어지며 산발한 머리가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유패는 비록 노독행의 살인적인 발길질은 피했으나 이마가
발에 스치면서 깨져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로 변해 버렸다.
그 순간에 하나의 허깨비 같은 인영이 노독행의 머리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빡!
인영의 접근이 너무도 교묘하고 신속하게 이루어 졌는지라
천하의 노독행도 인영의 손에 어깨를 강타당하고서야 그의
접근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인영이야 말로 마도제일영(魔道第一影)이라 불리웠던
유령신군 위당이었던 것이다. 위당의
유령무영신법(幽靈無影身法)과 유령귀수(幽靈鬼手)는 천하에서
가장 표홀한 수법으로 알려져 있었다.
유령귀수에 격중당한 노독행의 오른쪽 뼈는 탈골해 버렸는지
금세 퉁퉁 부어 올랐다.
노독행은 외눈을 번뜩이며 몸을 왼쪽으로 바닥까지 누이며
오른쪽 무릎으로 위당의 앞가슴을 후려쳐 왔다. 하나 그의
무릎이 채 반도 뻗어나오기 전에 위당의 몸은 어느 새 이 장이나
옆으로 이동해 있었다.
노독행의 무릎이 허공을 가르고 지나갔다.
위당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다시 노독행의 우측으로 빠르게
접근해왔다.
그때가 바로 노독행이 기다리고 있던 순간이었다.
휘잉!
허공을 지나갔던 노독행의 무릎이 쭉 펴치더니 발꿈치가
직각으로 꺾여 위당의 뒷통수를 그대로 가격하는 것이 아닌가?
피하고 자시고 할 사이도 없었다.
쾅!
위당은 발꿈치에 정통으로 뒷통수를 강타당하고 입과 코로
뜨거운 피를 왈칵 쏟아냈다.
"큭!"
그는 술취한 사람처럼 휘청거리며 다섯 걸음쯤 달려나가더니
피투성이로 변한 머리를 붙잡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이것이 바로 무쌍류의 필살무예중에서도 무섭기로 유명한
'탄절퇴(彈折腿)'였던 것이다.
탄절퇴는 상식을 벗어난 파격적인 각도에서 돌발적으로 꺾여져
들어오기 때문에 일단 탄절퇴의 영역권내에 들어오면 누구도
피할 수가 없었다.
2
이제 장내의 격전은 그야말로 피비린내나는 사투(死鬪)의
연속이었다.
서로가 펼치는 초식 하나하나는 모두 치명적인 위력을 담고
있어서 단 한 순간의 실수나 방심도 용납치 않았다. 순식간에
생사(生死)가 뒤바뀌어져 상대의 숨이 완전히 끊어지기 전에는
누구도 안심을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노독행은 위당을 쓰러뜨린 후 재빠르게 장내를 돌아보았다.
십이마신중 세 명이 쓰러지고, 둘은 심각한 부상을 당한
상태였다.
하나 아직도 일곱 명이 마신들이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채
호시탐탐 그를 노리고 있었고, 부상당한 두 명의 마신들도
그들에 합세해 노독행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자신은 거듭되는 격전으로 몸의 여기저기에 적지
않은 부상을 당했다.
특히 위당의 유령귀수에 정통으로 강타당한 오른쪽 어깨의
부상이 심각했다. 어깨뼈가 빠져서 오른팔을 제대로 들어올리기
힘들 정도로 통증이 심했던 것이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아직 체력이 떨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무쌍류의 필살무예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상태에서야만이
비로소 익힐 수 있었던 것도 어떠한 상태에서 어떠한 상대와
싸우더라도 결코 체력이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무쌍류
선조(先祖)들의 치밀한 배려때문이었다.
체력이 남아 있는 한, 어느 때고 무쌍류의 필살무예를 펼칠 수
있다.
그리고 필살무예를 펼칠 수 있는 한, 누구도 무쌍류를 당해낼
수는 없는 것이다.
"가공스럽군...이것이 무쌍류인가?"
늙수그레한 음성이 들려왔다.
노독행을 에워싼 채 금시라도 덤벼들 듯 하던 아홉 명의
마신들중 하나의 입에서 흘러나온 음성이었다.
그는 머리에 유생건(儒生巾)을 쓰고 검은 학창의를 입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다.
그가 바로 십이마신중 가장 연장자인 구유마존 혁잔심이었다.
혁잔심은 온화하고 청수한 외모와는 달리 육십 년 전에
강호제일마(江湖第一魔)라고 까지 불리웠던 불세출(不世出)의
마두(魔頭)였다.
노독행은 외눈을 번뜩이며 그를 노려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혁잔심의 주름살 가득한 얼굴은 무표정하게 굳어 있었다.
"소문으로 듣던 것 보다 더욱 무섭군. 노부는 아직 이토록
처절하면서도 살기짙은 무예를 본 적이 없다."
노독행은 말없이 왼손을 뒤로 돌려 자신의 오른쪽 어깨를 움켜
잡았다.
그리고는 사정없이 앞으로 잡아 당겼다.
뿌드득!
괴이한 음향과 함께 어긋낫던 그의 어깨뼈가 다시 맞춰졌다.
그 광경을 본 아홉 명의 마신들은 모두 자신의 어깨뼈가
부러진 듯한 기분이 들었는지 몸을 흠칫 떨었다.
혁잔심의 주름진 눈가에도 희미한 떨림이 일어났다.
아홉 명의 초절정 고수들에 둘러 쌓여 있으면서도 태연하게
탈골된 어깨뼈를 맞추고 있는 노독행의 모습은 보는 사람을
섬뜩하게 만들기에 족한 것이었다.
혁잔심은 문득 자신이 오래전에 들었던 말이 생각이 났다.
- 무쌍류는 단순한 무예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무예를 익힌 사람 자체를 나타낸다.
무쌍류!
무쌍류란 다시 말하면 필살무예를 익힌 자(者), 절대로 패할
리가 없는 '무적(無敵)의 고수(高手)'라는 뜻이었다.
당시 혁잔심은 그 말속에 숨은 뜻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
노독행을 보자 그 뜻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쌍류의 후계자가 강한 것은 단순히 필살무예를 익혔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사람 자체가 남들보다 월등하게 강했던 것이다.
무슨 무예를 익혔건 그들은 강했을 것이다.
그 강함에 천년의 노력이 만들어낸 필살무예가 결합되었기에
영원히 꺾이지 않는 무적의 신화(神話)가 탄생될 수 있었던
것이다.
혁잔심은 한동안 노독행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느릿느릿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솔직히 예전이었다면 너 같은 자와 싸우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달리 선택할 여지가 남아 있지
않다. 네가 죽든 우리가 죽든 결판이 나야 하는 것이다."
그때 노독행이 불쑥 말했다.
"그런데 무얼 망설이고 있나?"
혁잔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여덟 명의 마신들도 모두 안색이 변해
노독행을 노려보았다.
그렇다.
그들은 대체 무얼 망설이고 있는 걸까?
애초에 싸움터에서 이런 저런 말은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오직 맹렬하게 수족(手足)을 움직여 상대를 쓰러뜨리면 그
뿐인 것이다.
가장 먼저 노독행을 향해 달려든 것은 그들중 가장 성질이
급한 금사혈신(金梭血神) 종리악(鍾里鄂)이었다.
종리악은 한마디 말도 없이 노독행의 정면으로 날아오며 다섯
개의 금사(金梭)를 내던졌다.
쾌애애....
금사의 파공음이 주변의 공기를 갈가리 찢을 듯이 울려퍼졌다.
종리악의 금사는 특이한 곤오금(昆烏金)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일단 격중하면 제아무리 강력한 호신강기라도 두부처럼 뚫고
들어가는 가공할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지금도 다섯 줄기의 금선(金線)을 그리며 노독행의 양쪽
옆구리와 이마에서 인후혈을 지나 명치로 이르는 삼개대혈을
노리고 날아드는 금사는 아무것도 거칠 것이 없는 공포의
뇌전(雷電)을 연상케했다.
노독행은 막 몸을 날려 그 금사를 피하려다가 무서운 속도로
짓쳐오는 금사의 바로 뒤에 하나의 희끗한 인영이 따라오는 것을
보았다.
그 인영의 손에서 시커먼 도기(刀氣)가 구름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는 한때 천하무림에 무서운 살명(殺名)을 떨쳤던
절명도(絶命刀) 향개(向開)였다.
종리악이 금사를 날린 순간, 향개 또한 전력을 다해 금사를
따라가며 노독행을 향해 칼을 휘둘러 오고 있었던 것이다.
금사를 피하면 그 순간 향개의 절명도가 노독행의 몸을
두동강이 내 버릴 것이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 있다가는 금사에
의해 전신이 갈가리 찢기고 말 것이다.
그들의 이 수법은 단인혼(斷人魂)이라는 것으로, 그들이
지하뇌옥에 갇힌 세월동안 서로 연구하여 창안한 무서운
합격술이었다.
그들은 이 합격술을 만든 다음 제아무리 가공할 무공을 지닌
고수라 할지라도 일격필살(一擊必殺)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노독행의 왼손 가운데 손가락이 까닥거렸다.
차아!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시퍼런 도광(刀光)이 일어나 그의
몸을 짓쳐오던 다섯 개의 금사에 맞서갔다. 노독행이 마침내
월영도를 뽑아든 것이다.
노독행이 선택한 방법은 가장 원시적인 것이었다.
그는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자신의 전신 요혈을 노리고
날아드는 다섯 개의 금사를 월영도로 일일이 튕겨냈다.
말은 쉽지만 무시무시한 속도로 몸의 구석구석을 향해
날아드는 금사를 하나하나씩 쳐낸다는 것은 너무도 무모한 일
같았다.
까깡!
귀청이 찢어지는 듯한 음향이 연신 터져나오며 불똥이
사방으로 튕겼다.
다섯 개의 금사중 네 개가 다시 날아온 방향으로 되돌아갔다.
하나 마지막 하나남은 금사는 정확하게 노독행의 오른쪽
옆구리를 뚫고 들어왔다.
팟!
노독행의 옆구리에 시뻘건 구멍이 뚫리며 핏물이 솟구쳐
올라왔다.
그 순간 노독행의 몸은 다섯 개의 금사뒤로 날아오는 형개의
전면으로 급격하게 쏘아져 들어가고 있었다. 형개는 막
노독행에게로 덮쳐가다가 네 개의 금사가 자신을 향해 되돌아
오자 다급한 경호성을 내질렀다.
"으헛?"
그는 황급히 수중에 들고 있던 칼로 네 개의 금사를 쳐냈다.
노독행을 베기 위해 구름처럼 끌어올렸던 도기가 금사에 닿자
금사들이 맥없이 허공으로 튕겨져 올랐다.
따땅!
형개가 막 네 개째의 금사를 쳐낼 순간 무언가 차갑고 서늘한
것이 그의 몸을 그대로 뚫고 들어왔다.
파앗!
형개는 금사를 쳐내던 동작 그대로 몸이 굳어졌다.
그가 마지막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몸을 관통하고
지나간 것이 여인의 장신구같이 생긴 자그마한 칼이라는
것이었다.
그 칼이 자신의 바로 뒤에 서 있던 종리악의 목까지 함께
궤뚫어 버렸다는 것은 그도 알 수가 없었다.
"크아악!"
합창하는 듯한 두 가닥 비명이 장내를 뒤흔들었다.
형개와 종리악은 각기 가슴과 목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
몸을 몇 번 휘청거리다가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실로 무시무시한 도법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단번에 한 사람의 몸을 뚫고 지나가 그 뒤에 서
있는 사람의 목까지 궤뚫어 버린 이 수법은 붕추권을 도로
시전한 '붕추도(崩錘刀)'였던 것이다.
하나 상황은 아직도 끝난게 아니었다.
노독행이 형개와 종리악을 대꼬챙이에 꼬인 꼬치 같은 신세로
만드는 순간 나머지 일곱 명의 마신들이 일제히 그를 향해 덮쳐
들었다.
콰쾅!
노독행이 채 몸을 뒤로 빼내기도 전에 그의 등짝이 갈라
터지며 핏물이 솟구쳤다.
음수구혼(陰手拘魂) 누만루(婁萬樓)의 대유장(大幽掌)이
작렬한 것이다.
뒤이어 허지명의 대봉남망이 허공을 자욱하게 뒤덮으며
날아들었다.
노독행은 입가로 검은 피를 쿨룩쿨룩 토하면서도 필사적으로
앞으로 전진했다.
솜털 같은 대봉남망의 대부분은 그의 귓등을 스치고
아슬아슬하게 지나갔으나 그중 일부가 어깨에 격중당해 말할 수
없이 화끈거렸다.
하나 그 순간 노독행은 허지명의 턱 밑까지 접근할 수가
있었다.
허지명은 안색이 시퍼렇게 변한 채 뒤로 몸을 날렸으나 그때는
이미 노독행의 월영도가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시퍼런 도광이 허지명의 몸을 휘감으며 처절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아악!"
진한 피비린내와 함께 뜨거운 액체가 노독행의 몸을 감쌌다.
허지명의 몸이 반으로 갈라지며 뿜어나온 핏물이 노독행의
몸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송두리째 뒤덮었던 것이다.
전신을 쑤셔오는 강렬한 통증....손끝에 느껴지는 묵직한
촉감....그리고 후끈한 열기....
노독행은 피를 뒤집어 쓴 채로 웃었다.
그래....바로 이거야!
싸움이란 바로 이런 맛이 나야 하는 거야!
이 정도는 되어야 진짜 싸운다고 할 수 있지!
적어도 이런 팽팽한 긴장감이 없고서는 승부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지!
이게 내가 하고 싶었던 싸움이라구...
이렇게 목숨을 내건 짜릿한 격투를 나는 지금껏 하고 싶었단
말이다...!
노독행은 월영도를 들어 대봉남망이 격중당한 자신의 왼쪽
어깨부근 살점을 한 덩이나 후벼 파냈다. 파여진 살점들은 이미
반이상이나 썪어들어가 심한 악취를 풍겨내고 있었다.
아무런 기척도 없이 다시 누만루의 대유장이 날아왔다.
노독행은 거의 반사적인 동작으로 옆으로 다섯 자쯤 이동했다.
꽝!
방금전까지 그가 있던 자리가 움푹 꺼지며 돌조각이 사방으로
난비(亂飛)했다.
노독행이 누만루를 향해서 돌진해 들어갔을 때 혈살마조
추립과 흑혈신권 유패가 양쪽에서 달려들었다. 두 사람 모두
얼굴이 피투성이였으나 몸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는 듯 가공할
경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노독행의 돌진해 가던 몸이 허공에서 빠르게 선회하며
우측에서 달려오던 추립을 향해 날아갔다. 돌진하던 자세 그대로
방향만 바꾼 것인데,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한 동작이었다.
추립은 이마에서 턱까지 피부가 훌렁 벗겨져 보기 흉한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채 사력을 다해 양 손을 휘둘렀다.
쐐쐐쐑!
그의 열 손가락이 시뻘건 색으로 물든 채 노독행의 목덜미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추립이 비장의 절학으로 생각하는
혈홍쇄혼조(血虹碎魂爪)였다.
그 갈쿠리같이 구부러진 손가락 끝에 일단 걸리기만 하면
철판이라도 종이장처럼 찢겨져 나가고 말 것이다.
노독행은 주저없이 추립의 앞가슴으로 뛰어들며 오른팔뚝으로
목을 막았다.
콱!
추립의 열 손가락이 노독행의 오른팔뚝에 꽂히며 열 개의
시뻘건 구멍이 뚫렸다.
그 순간 노독행의 왼손은 추립의 아랫배를 사정없이 강타하고
있었다.
쾅!
추립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안광이 급격히 흐려졌다.
추립은 열 손가락을 노독행의 팔뚝에 꽂은 채로 몸을 덜덜
떨었다.
코와 입에서 시커먼 선혈이 주르르 흘러 내려 그의 얼굴은
그야말로 흉신악귀(兇神惡鬼)처럼 변하고 말았다.
노독행의 왼손은 거의 손목부근까지 추립의 아랫배에 파묻혀
있었다. 노독행은 그 상태에서 왼손을 빼지 않고 추립의 몸을
번쩍 쳐들었다.
들어올린 탄력을 이용해 노독행의 몸은 빠르게 상하(上下)로
회전했다. 허공에 떠 있던 추립의 몸이 땅으로 내려 꽂히며
노독행의 몸은 반대로 공중에 뜬 상태가 되었다.
쿵!
추립의 상반신이 바닥에 쳐박혀 완전히 형체조차 제대로
알아볼 수 없을만큼 처참하게 뭉게졌다.
그것은 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인지라 유패가 혈정권을
휘두르며 달려들었을 때는 이미 모든 상황은 종료된 후였다.
이것이 바로 무쌍류 필살비기중 하나인 '법륜구전'중의
'선전건곤(旋轉乾坤)'이었다.
법륜구전은 상대의 몸을 붙잡고 상하(上下)나 좌우(左右),
혹은 앞뒤로 몸을 회전시켜 상대를 격살시키는 수법으로, 일단
걸리기만 하면 도저히 살아나올 수 없는 말 그대로 필살(必殺)의
무예였다.
"이 악마 같은 놈!"
유패의 입에서 거친 숨소리가 흘러나오며 허공에 떠 있는
노독행을 향해 질풍 같은 십이권(十二拳)이 퍼부어졌다.
꽈르릉!
허공에 떠 있던 노독행의 몸이 뚝 떨어지며 유패를 향해
연거푸 일곱 번의 발길질을 해댔다.
파파팡!
노독행의 발과 유패의 주먹이 허공에서 대 여섯번이나
정면으로 격돌했다.
"큭!"
유패는 오른주먹이 으스러지는 듯한 통증을 느끼고 뒤로 주춤
물러났다.
고통스럽기는 노독행도 마찬가지였다. 하나 노독행은
물러서기는커녕 오히려 유패의 앞으로 뛰어들며 양 무릎을
번갈아가며 내질렀다.
똑같이 부딪쳤는데 한 사람은 물러서고, 한 사람은 다가섰다.
그 차이는 미약한 것 같았으나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유패는 두 팔을 늘어뜨려 노독행의 살인적인 무릎공격을
막았으나 그 바람에 상반신이 완전히 노출되었다. 그 순간
노독행의 왼쪽 어깨가 질풍처럼 유패의 앞가슴을 강타했다.
콰앙!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고 했는데 유패는 자신도 모르게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고 말았다.
"크악!"
가슴뼈가 송두리째 박살이 나고 내장이 토막토막 끊어져 입을
벌리는 순간 시커먼 선혈과 함께 잘려진 내장조각이 뿜어져
나왔다.
하나 유패는 쓰러지지 않고 오히려 노독행의 몸을 바싹
끌어안았다. 체구가 집채만큼 거대한 유패가 두 팔을 벌려
노독행의 몸을 끌어안자 노독행의 몸은 가려져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으드득!
뼈마디가 부딛치는 음향과 함께 유패는 사력을 다해 노독행의
허리를 부둥켜 안았다.
유패의 팔뚝에서 힘줄이 팍팍 곤두서며 그의 전신 피부가
시뻘겋게 변했다. 노독행은 두 팔과 허리가 유패의 우람한
팔뚝에 갇혀 옴짝달싹도 할 수가 없었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남아 있는 서 너명의 마신들이 전력을
다해 달려들었다.
노독행은 몇 번이고 유패의 팔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쳤으나 유패는 요지부동, 꿈쩍도 하지 않았다.
유패의 온 몸은 붉은 색이 지나쳐 오히려 거멓게 변했고, 뱀이
지나가듯한 굵은 힘줄이 사방으로 불거져 나와 끔찍스럽기조차
했다.
이것이 바로 유패가 천하에 자랑하는
대흑마력(大黑魔力)이었다.
3
쉬아앙!
한 자루의 검(劍)과 하나의 핏빛 도끼, 그리고 아무런 소리도
없이 다가오는 공포의 대유장!
세 줄기의 무시무시한 공세는 유패의 대흑마력에 갇혀
꼼짝못하고 있는 노독행을 향해서 가공할 기세로 짓쳐 들었다.
누가 보기에도 노독행은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어 보였다.
"크흐흐...."
유패는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로 변한 채로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음산하게 웃었다.
바로 그때였다.
그의 품속에 안긴 채 꼼짝도 못하고 있던 노독행의 머리가
한껏 뒤로 제켜지더니 그대로 맹렬하게 유패의 이마를 향해서
내려 꽂히는 것이 아닌가?
콰직!
뼈와 뼈끼리 강력하게 부딪치는 음향이 터지며 핏물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유패는 이마가 깨진 채로 몸을 휘청거렸다.
"크윽...!"
그 순간 그의 팔에 감겨 있던 노독행의 오른쪽 무릎이 그의
낭심을 세차게 걷어찼다.
쾅!
유패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입을 딱 벌리며 그 자리에
허물어지듯 주저앉았다. 하나 그의 몸이 바닥에 앉기도 전에
다시 노독행의 왼쪽 무릎이 그의 숙여지는 아래턱을 사정없이
강타해 버렸다.
콰아....
유패의 머리통이 잘 익은 수박처럼 부서지며 진한 피비린내가
주위를 진동시켰다.
노독행도 이마가 깨어져 얼굴이 피로 얼룩져 있었다.
하나 그는 흘러내리는 피를 닦을 사이도 없이 몸을 뒤로
뒤집어 등뒤에서 날아오는 검날을 오른손으로 덥썩 움켜 잡았다.
손바닥이 검날에 갈라져 선혈이 샘솟듯 솟아 나왔으나 검을
놓지 않고 맹렬하게 위로 끌어올렸다.
육지검마는 거의 성공할 줄 알았던 자신의 일검이 무위로
돌아가고 오히려 노독행의 손에 검을 잡히자 사력을 다해 검을
뽑으려 했다.
그 순간에 혈부(血斧) 양수광(揚修光)의 도끼가 벼락같이
날아들었다.
도끼는 정확하게 노독행의 양 미간 사이를 노리고 날아왔다.
하나 그때 노독행이 육지검마의 검을 잡은 채로 필사적으로
끌어당겨 미간 사이로 날아드는 도끼를 막아냈다.
깡!
불똥이 튀기며 양수광의 도끼는 육지검마의 검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두 사람의 신형이 주춤할 순간 노독행은 빠르게 그들의 사이로
파고들며 왼손을 움직여 월영도를 뽑아냈다. 월영도가 왼쪽
팔뚝에서 반쯤 뽑혀져 나올 때 누만루의 대유장이 노독행의
옆구리에 정확하게 격중되었다.
콰드득!
한순간 노독행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는 보지 않아도 자신의 오른쪽 갈비뼈가 모조리 부서져
나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꿀꺽!'
노독행은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선혈을 억지로 되삼키며
자신의 오른쪽 옆구리를 산산히 부수고 빠져나가는 누만루의
손을 팔꿈치 사이로 끼었다.
그런다음 세차게 옆으로 몸을 회전시켰다.
콰직!
뼈마디가 으스러지는 음향과 함께 그의 팔꿈치 사이에 끼어져
있던 누만루의 손목뼈가 그대로 부러져 나갔다.
"큭!"
누만루의 답답한 신음성이 들려왔다.
노독행은 여전히 누만루의 부러진 손목뼈를 옆구리에 낀 채로
오른 손등을 맹렬하게 신음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튕겨지듯
후려쳤다.
탄양타의 수법이었다.
빠아!
노독행의 손등은 누만루의 콧등을 송두리째 부수어 놓았다.
하나 그 순간 노독행은 왼쪽 어깨에 강력한 통증을 느꼈다.
팍!
어느 사이엔가 시뻘건 도끼 하나가 그의 왼쪽 어깨에 깊숙히
박혀 있었다. 노독행이 누만루와 격돌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양수광이 달려들어 도끼로 노독행의 어깨를 내려 찍었던 것이다.
동시에 육지검마가 끝이 부러진 검을 양 손으로 움켜잡고
노독행의 목덜미를 향해 몸을 날려왔다.
쾌애애...
사람과 검이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어 무서운 속도로
쏘아져왔다.
누만루 또한 손목과 코뼈가 부러진 통증을 억누르고 반대쪽
손으로 노독행의 척추를 후려쳐왔다.
우우웅.....
여지껏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던 그의 대유장이 괴이한
소음을 내는 것으로 보아 공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게 분명했다.
노독행은 누만루의 콧등을 부수었던 오른손등을 등뒤로 가져가
자신의 어깨에 박힌 도끼자루를 잡았다.
그의 몸이 세차게 앞으로 숙여지며 그 탄력을 이용해
도끼자루를 뽑아 앞으로 던졌다. 그와 함께 그는 사력을 다해
월영도를 뽑아 휘둘렀다.
촤촤촤촤.....
기이한 음향이 터져나왔다.
수십 개의 도기(刀氣)가 폭죽처럼 피어올라 얽기섥기 허공을
그물처럼 뒤덮었다. 그것은 마치 수십 가닥으로 된 그물이
허공에 자욱하게 펼쳐진 듯한 광경이었다.
그 도기의 그물은 순식간에 누만루와 육지검마, 그리고 그의
등뒤에 서 있던 양수광을 휘감아 버렸다.
파파팍!
"크아악!"
"으악!"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며 처절한 비명이 연이어 장내를
뒤흔들었다.
정면에서 달려들던 육지검마는 노독행이 뽑아 던진 도끼를
이마에 격중당한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누만루와 양수광은 더욱 비참한 몰골이었다.
그들은 온 몸이 붉은 혈선(血線)으로 뒤덮힌 채 휘청거렸다.
그것은 마치 붉은 그물을 뒤집어 쓴 것 같은 모습이었다.
파아아...
다음 순간, 붉은 혈선에서 핏물이 뿜어나오며 그들의 몸은
수십 개의 조각으로 잘려져 사방으로 터져나가 버렸다.
실로 너무도 끔찍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무쌍류의 십대절학중 하나인 '망응홍(網凝紅)'이
빚어낸 참혹한 결과였던 것이다.
노독행도 무사하지는 못했다.
그는 비록 육지검마의 살인적인 일검을 직접 목에 격중당하지
않았으나 검기(劍氣)가 목 아래를 스쳐 그곳의 피부가 쩌억
갈라진 채 시뻘건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또한 척추를 노리고 날아들었던 누만루의 대유장은 마지막
순간에 노독행이 몸을 비트는 바람에 왼쪽 옆구리에 틀어박혀
있었다.
누만루의 몸이 갈라터져 쓰러지자 노독행의 옆구리에 박혀
있던 그의 오른손도 서서히 빠져나갔다. 그와 함께 그곳에
시뻘건 구멍이 뻥 뚫려 선혈이 콸콸 쏟아져 나왔다.
노독행은 전신이 만신창이가 되고 너무나 많은 피를 흘려
정신이 어지러웠다.
하나 아직도 끝난게 아니었다.
주위가 피바다를 이룬 가운데 한 사람이 천천히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검은 학창의....눈부신 백발....그리고 온화한 미소...
그는 바로 구유마존 혁잔심이었다.
혁잔심은 온 몸에 피칠을 한 채 몸을 휘청거리고 서 있는
노독행을 응시하며 빙그레 웃었다.
"허허....너는 과연 대단한 인물이다. 단신으로 이와 같은
업적을 이룬 자는 백 년내 무림에서 네가 처음일 것이다."
혁잔심의 주름살로 뒤덮힌 얼굴 한 가운데 박혀 있는 두
눈에서는 기이한 살기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입으로는 웃고 있는데 눈은 살기로 번들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왠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싹 소름이 돋게 하는
모습이었다.
"네 무쌍류가 무적(無敵)의 무예(武藝)라는건 인정을 하지.
하지만 그 전설도 이젠 마지막이다."
그의 살기어린 시선은 누더기처럼 변한 노독행의 전신을 흝고
있었다.
"너는 지금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이 없을 것이다. 그런
몸으로는 결코 노부의 구유천마인(九幽天魔印)을 막지 못한다."
그는 천천히 양 손을 들어올렸다.
그의 주름진 손은 이상하게도 백옥(白玉)처럼 하얀 빛을 띄고
있었다.
그 백옥의 빛은 점차 진해져서 종내에는 거의 투명한 색으로
변하고 말았다.
무색투명한 양 손을 든 채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혁잔심의
모습은 괴이하고 음산해 보였다.
혁잔심은 천상회 역사상 가장 강한 고수중의 하나였으며, 특히
장공(掌功)에 관한한은 백년 내 마도(魔道)에서 최고의
인물이었다.
구유천마인은 혁잔심이 이미 육 십년 전에 천하무림을 석권할
때 그를 공포의 존재로 군림케 한 절세(絶世)의
마공(魔功)이었다.
혁전심은 구유천마인을 끌어올린 채 노독행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한 자 한 자 힘주어 말했다.
"너의 무쌍류는 비록 무적이었으나 혼자라는게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동시에 그의 몸은 거의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노독행을
향해 쏘아져갔다.
고오오오....
한 줄기 괴이하면서도 거역하기 힘든 거대한 기운이 노독행의
전신을 짓누를 듯 다가들었다.
팟..팟!
그 기운이 내뿜는 압력이 어찌나 강력했던지 기운이 채
다가오기도 전에 노독행의 피로 물든 옷자락이 여기저기
갈라터져 나갔다.
사방이 온통 보이지 않는 무형(無形)의 강기벽( 氣壁)에 둘러
싸인 것 같았다. 그 강기벽은 노독행을 향해 급속도로 압축해
들어갔다.
노독행은 여전히 온 몸에 질펀한 피를 흘린 채 위태로운
모습으로 서 있었다.
이마가 깨어져 흘러내리는 피가 얼굴 전체를 불게 물들였고,
코와 입에서도 간헐적으로 검붉은 선혈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양쪽 옆구리와 어깨, 양쪽 팔, 심지어 허벅지에 이르기 까지
구멍이 뚫리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런 상태로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상태 같았는데 믿을 수 없게도 그의
몸은 서 있는 자세 그대로 혁잔심을 향해 날아갔다.
동시에 번뜩이는 섬광(閃光) 하나!
번--쩍!
허공이 정확하게 반으로 쪼개졌다.
그리고 그 사이에 혁잔심의 몸이 놓여졌다.
혁잔심이 펼쳐 냈던 그 무시무시한 기운은 어느 새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쿨룩...쿨룩...."
노독행은 나직한 기침을 토해 냈다.
기침을 할 때마다 시커먼 선혈이 한웅큼씩 흘러나왔다. 그는
몸을 곤두 세우며 소매로 피묻은 입가를 쓰윽 훔쳤다. 그런 다음
혁잔심을 보며 나직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무쌍류는 항상 혼자였어... 그래도 무적이지. 그래서
'무쌍류(無雙流)'야."
혁잔심은 그의 앞에서 이 장쯤 떨어진 곳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무어라 딱 꼬집어 표현하기 힘든 이상야릇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는 노독행을 보며 무어라고 말하려는 듯 입술을 가늘게
떨었다.
하나 끝내 입을 열지 못하고 허무러지듯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쿵!
바닥에 닿는 순간 그의 몸은 허리 아래로 정확하게
두동강이났다.
스릉!
노독행은 그제서야 들고 있던 월영도를 다시 왼쪽 팔뚝에
매달았다.
장내에는 한 폭의 지옥도가 펼쳐져 있었다.
십이마신!
천상회 내에서도 공포스런 존재였던 열 두명의 초절정고수들이
단 일인(一人)에 의해 모두 처참한 시신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실로 천하가 경동(驚動)할 것이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쿠쿠쿠.....
어디선가 굉량한 폭음소리와 함께 땅이 마구 뒤흔들리는 것이
아닌가?
첫댓글 즐감~!
ㅈㄷ
즐감하고갑니다.
감사해요~~~^~
감사
ㅎㅎㅎㅎ
♡감사합니다♡
즐겁게 보고갑니다!
즐독요
즐독했습니다~~감사합니다.
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