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이해라고 하는 것은 실제적으로 기독교적인 사상적 전반에 대한 재고를 합목적적으로 다루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좀더 깊이 있는 글을 쓰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황에 밀려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제가 역사 인식에 대한 결여라는 언급하였다는 것과 그것에 대한 책임성과 또한 역사 인식에 대한 언급을 하신 분도 있고 제가 자료를 공개하라고 말씀드렸듯이 자료를 저도 준비해야 한다는 당위성도 가지면서 그래도 개관적인 언급과 견해는 필요하다는 점에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일필휘지라는 측면의 형식으로 잘 정리되어지지 못한 모습과 각주라도 달아서 출처를 밝히거나 소신의 견해에 대한 객관적 언급을 해야 하는데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은 동일한 글에 시간이 되면 각주를 밝혀서 좀더 객관적인 시각을 서로 공유할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1. 문제제기..
칼빈의 사상을 논함에 있어서 역시 '하나와 여럿'이라는 문제를 너무 분별이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칼빈의 신학적 중심과 사실이라는 전체', 즉 그의 신학의 여럿이라고 할 수 있는 것에 대하여서 그것을 평가하는 역사적 사실 하나라는 개념의 상관성에서 전반적인 평가를 하려고 할 때에 상대성 공방이 여기 지성방에서 논의 되어지고 있는 것으로 봅니다.
그 역사적 사실로써의 '하나'로써 칼빈 신학의 전체 즉 그 '여럿'을 평가함에 있어서, 문제는 그 하나라는 역사적 사실(fact)이 과연 칼빈 신학의 전부를 평가하는 즉 성령에서 시작해서 육으로 마친 사람으로 규정하는 것으로써의 기준으로 성립할 수 있는가 그것에 대한 것에 저는 회의적이라고 함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즉, 삼위일체를 부인함에 있어서 그리고 그당시 인신공격적인 측면은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할 때에 칼빈이 그 신앙을 부인하는 것에 대하여서 사형을 받도록 힘쓴 것에 대하여서 그의 인격이 전부 판단되어지며 그의 신학이 육의 신학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러한 한 역사적 사실(?)에 그러한 실제적인 기준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와 여럿 우리 나라 속담의 형식을 빌린다면, '하나를 알면 열을 안다'라는 말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하나에서 그 전체를 판단할 수 있고 짐작하는 실제적인 지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서도 액면 그대로 받을 수 없는 것은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럿을 판단하는 하나라는 개념이 실제적인 기준으로 작용했느냐 아니면 그것을 어느정도 실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느냐가 앞서 언급한 하나와 여럿의 문제에서의 한국적인 인식의 발상의 참됨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턱대로 하나를 보고 전부를 판단한다는 것이 어리석다는 것을 말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와 여럿의 문제는 인간이 지혜를 사랑한다는 철학의 발상에서 부터 시작되어지는 것으로 그 하나와 여럿이 하나님 한분과 피조되어진 여럿의 관계성에서 실제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인데 그러한 것의 사람들의 일반적 인식의 반영이 바로 철학자들에게 있어서는 그 사실을 말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하나와 여럿의 문제로써 언급되어지는 '아르케 논쟁'이 바로 그러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고 아르케라는 헬라어가 바로 '말씀의 초보'라는 개념으로 해석되어진 것임을 본문을 통해 말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초보'를 말한다는 것은 곧 '하나와 여럿'을 말하는 것과 같은 것임을 지적해두는 것입니다.
단지 철학자들의 입장에서는 하나와 여럿을 하나님께로부터의 정당함을 찾지 않는 가운데서 개연적 실제론으로 흐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 사상사적인 개념에서 이미 그로 인한 많은 고통이 있었고 고대의 기독론 논쟁도 바로 이러한 것의 합리성의 충족성을 위하여서 하나와 여럿의 관계를 잘못 이해하는 가운데서 여전히 고통이 있으며 또한 그것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2. 객관적인 칼빈이해에 대하여서..
객관적이라고 함을 말한다는 것이 실제론이 분별되어지지 않는 가운데서는 어불성설적인 개념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그러나 실재론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고 좀더 보편적인 사고의 지향성이라고 함과 일반 상식적 개념 그리고 역사 보편적 개념에서의 사실을 말한다는 동의 가능한 측면에서 사실을 재고할 필요성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후스토 곤잘레스'는 그의 '종교개혁사'에서 루터의 신학에서 시작해서 칼빈의 신학에 이르러 잘 정리되어지고 체계되어진 것으로 인정하고 있는데, 그러한 것과 같이 칼빈에 대한 이해하려고 함의 노력이라고 함이 있어왔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러한 것의 인식들이 상대적 차이가 있어왔고 그것은 상식보편이라고 함으로 흐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칼빈의 신학과 전혀 다른 신학의 계보들이 열려진 것으로 말할 수 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은 'R.T 켄달'이 영국의 칼빈주의의 사상적 인식의 불연속성을 말하게 되어지는 것과 그것의 논란성이 아직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은선' 교수님의 '제네바에서의 정통신학'이라는 점에서 칼빈 베자의 신학적 입장이 이미 제네바에서 상실되었음에 대한 언급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견해들의 합리성의 재고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대륙의 칼빈주의와 영국 칼빈주의의 그 실제적인 차이라고 함은 불연속성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 을 말할 수 있다는 점을 저는 동의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하여 칼빈의 신학의 연속성이라고 함을 말함에 있어서는 특히 카돌릭의 신학적 계보의 연속성 그리고 스콜라신학적인 연속성이라고 함을 주장하는 듯한 내용도 볼 수 있는데 얼마 되었습니다만 '리차드 밀러'의 '16세기 배경에서 칼빈주의'에 대한 책이 번역되어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연속성이라고 함과 불연속성이라고 하는 것의 논란은 바로 하나와 여럿이라는 개념을 말할 수 있는 기준으로써 실재론의 인식의 차이라고 함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러한 실재론에 입각한 실제론적 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역사 보편적인 실제론이나 임의적 신론적 실재론에 입각한 실제론적 입장이 있어왔습니다.
칼빈의 소개로써 '프랑스와 방델'(francois wendel)의 칼빈에 대한 소개도 있는데 그는 바르트주의자로서 칼빈의 신론적 실재론을 이해하지 못한 가운데서 그 칼빈의 역사를 해설하고 있다는 점에 많은 객관적인 사실을 나열하고 배열함에 있어서는 참고할 수 있다고 하여도 그를 해석함에 있어서는 그의 실제론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서 그를 이해하지 못한 가운데서 기술함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청교도적 칼빈주의자로써 'THL 파커'의 '존 칼빈의 생애'(생명의 말씀사)에서 아주 상세하게 그의 대한 호의적 기록을 하고 있음은 사실이나 이미 청교도적 개념을 앞선 영국 개혁파와 대륙의 개혁파의 신학적 차이라고 함을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이며 이것은 또한 실재론에 대한 논의로 귀결된다고 하겠습니다.
'에밀두메르그'와 같은 자는 '칼빈 신학의 성격과 구조'라는 책을 쓴 사람으로서 칼빈에 대한 상당한 정보를 주는 분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칼빈의 400주년에 세르베르투스의 죽음에 대하여서 칼빈이 사과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였던 사람들 중에 한 사람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에밀두메르그'의 저서 '칼빈 신학의 성격과 구조'라는 책에서는 칼빈의 불합리적인 합리성의 연속성이라는 것의 표현적 특징을 말하고 있지 그러한 불연속성의 정체성에 대한 정당성을 말하는 그 실재론에 대하여서는 다루지 않고 있다는 것과 오히려 바르트적인 초월과 내재 자체에 대한 이해로 일관하는 것처럼 이해되어질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객관적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다면 이러한 칼빈연구에서는 칼빈의 정황적 모습이라고 하는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보편적인 실재론적 실제규명에 힘쓰고 있지 정작 칼빈의 실제론에 대한 기준으로써의 실재론 규명에 대하여서는 아직 글이 없다는 것입니다.
글이 없다는 것과 칼빈의 실재론적인 중심이 없다는 것은 다른 개념인 것입니다. 저는 그의 실재론에 주목하고 있는데 그 부분에서 먼저 주목함이 정황적 표현을 현상적 입장에서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보다 앞선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3. 작금의 칼빈이해에 대하여서
지금 언급되어지는 칼빈의 신학에 대한 부정 즉 성령으로 시작하여서 육으로 마친 사람이라는 판단을 하게 되어진다는 입장과 같은 맥락에서의 표현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언급되어진 그리고 통념으로 주장하게 되어지는 세르베르투스의 사형에 관련되어진 칼빈의 입장에 대하여서 그러한 입장이해가 칼빈의 신학이 황당하다는 당위성을 규정할 수 있는 실제적 기준으로써의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논하도록 하겠습니다.
칼빈의 실재론이라고 함을 언급한 후에 그의 정치사상과 그 왕국이론에 대한 것과 그러한 가운데서의 그의 제네바에서의 섬김을 판단하는 것이 인식의 자연스런 순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칼빈의 실재론에 입각한 실제론이라는 사실을 여기서 지면상 다 언급할 수 없음을 양해를 구하면서 그의 왕국 이론적 입장에서 그 때 당시에 세르베르투스의 사건을 사회적 정황을 통하여서 읽어야 한다고 하겠습니다.
통설적으로 그 때에 루터의 사상적 입장의 프로테스탄트라는 개념과 그 일치적 개념으로 지역에 따른 후기적 정치적인 것은 '에라스티안주의'적인 것으로 흐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국가가 교회에 대하여서 간섭할 수 있는 그 타당성에 대한 것을 열어놓았던 시대입니다.
물론 칼빈은 그것에 대하여서 달리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만큼은 분명합니다. 그의 실재론이라고 함이 이미 기정사실로 그의 중심이 완성되어진 것이라고 함을 말할 수 있는 역사적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신앙에 관한 것을 국가적인 정치적인 개념으로 판단하고 그 판단을 현실적인 실제의 최고형인 사형을 집행하는 것이 그 때 당시의 정황적 사상적 이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국가의 질서를 따른 판단이라고 함이 교회의 판단으로 나타남에 있어서 교회의 판단을 받아야 할 사람에 대한 그 질서이해로써 정치적 입장을 취한 것으로 보아야 함이 시대를 분별하는 가운데서의 그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정치에 대한 그 상관성을 말하는 '에라스티안'적인 국가관에서의 칼빈의 입장은 그의 주관적이면서도 실제적인 입장의 옳음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인 판단에서는 시대를 달리 할 때에 판단받게 되어지는 상황적 당위성에 놓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주관적으로 옳지만 역사적 상대성에서 판단을 받는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주관적으로 옳다는 것이 상대적인 판단의 보편성을 재가하는 실재론이라고 한다면 작금의 비판적 판단은 그 당위성을 잃게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상대적 객관성이 일반적 당위성을 가진다는 것을 존중할 때에 그러한 칼빈의 세르베르투스의 사형을 받게 함에 대한 관련성의 있음에 대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그 역사인식의 판단은 임의적으로 비판되어질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른 사소한 것들로써의 칼빈의 성격과 인격을 판단받게 되어질 수 있는 언급들은 그 역사가의 주관적 언급이라고 함의 과장적 요소가 전혀 없었다는 것을 말하지 못하는 가운데서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결론에 즈음해서..
무엇이 사실인가.. 그 질문에 아직 세상은 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사실을 위한 실제와 그 근거로써의 실재를 제시하고 있고 그것 중에 잘 알려지고 있는 스코틀랜드 상식철학이라고 함의 입장이나 그러한 특정 지역이 아닌 일반 상식적 입장에서 보편을 말하거나 주관적인 역사 보편적 인식 특히 시간론에 대한 인식에서 재각기 사실을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현대 사상과 현대 철학이라고 함을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러한 사실규명이라는 인식론적인 실재론 앞서 출발점이 되어지는 파르미데스의 인식론에서의 실재론은 버트란트 러셀이 그의 서양철학사에서도 언급한 바가 있는데 역시 그는 불가지론으로써 그 사실을 현상적인 실재론적 일뿐 진리의 본성은 알지 못함에서 한 말에 지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실재론의 부재는 사실의 대한 부재를 말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실재론적 입장에서는 그 모든 것을 구별하고 판단한다는 것을 말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운데서 데오도르 베자의 상식보편적 입장의 해설이 바로 전천년설적인 예정론이었고 이것은 알미니우스의 상대적 반론으로 그 알미니우스의 탄생을 예고하였던 것입니다. 실재론에 대한 언급은 도르트 회의에서도 이루어지지 않은 가운데서 칼빈주의 5대 강령만 알미니우스의 상대적인 개념에서 설정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실재론의 부재에서 칼빈에 대한 판단을 하고 있고 역사적 사실이라고 하는 것의 이해라는 해설이라는 개념은 마음에 두지 않은 가운데서 액면적으로 칼빈에 대한 신학적 전체를 부정할 수 있는 것으로 말한다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것이라고 함을 말해두겠습니다.
교회의 역사와 교회의 역사를 판단하는 사상사가 같이 생각되어야 하는데, 그 앞서는 것은 그러한 것을 판단할 수 있는 실제적 기준으로써 실재론이 있는가 그리고 그 실재론의 자체적 정당함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현대신학에서는 그리고.. 에서는 찾기 어렵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각주를 다는 것이 객관적인데.. 여기에서는 잘난척한다는 식의 받지 못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같군요.. 받지 못할 장황함이라고 함을 말함은 의미가 없을 것같군요.. 다만 역사 인식의 결여라는 말에 객관적인 다른 언급들과 사상적 평가를 할 수 있다는 점만 보이면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대방이 받지 못하는 가운데 굳이 각주 달아서 아는체한다는 소리 듣는 것보다도 받을 수 있을 때에 그러한 일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물론 매이는 것이 아니라 당분간 제가 각주를 밝혀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각주를 표현하는 것은 하지 않겠습니다.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생각나는데로 기록했는데 각주를 통하여서 좀더 객관적인 자료를 나중에라도 공개하겠습니다. 그리고 좀더 수정하게 되어지는 경우가 있지만 지금의 내용적 일관성을 말할 수 있음을 언급해두겠습니다.
교회의 역사와 교회의 역사를 판단하는 사상사가 같이 생각되어야 하는데, 그 앞서는 것은 그러한 것을 판단할 수 있는 실제적 기준으로써 실재론이 있는가 그리고 그 실재론의 자체적 정당함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현대신학에서는 그리고.. 에서는 찾기 어렵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각주를 다는 것이 객관적인데.. 여기에서는 잘난척한다는 식의 받지 못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같군요.. 받지 못할 장황함이라고 함을 말함은 의미가 없을 것같군요.. 다만 역사 인식의 결여라는 말에 객관적인 다른 언급들과 사상적 평가를 할 수 있다는 점만 보이면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의 글쓰는 블로그에는 준비해놓겠습니다. 그래서 어떤 부분은 어떤 근거로 어떤 사람의 사상적 판단에서 언급한 것인가 구체적인 질문이 있을 때에 그 때에 답변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상대방이 받지 못하는 가운데 굳이 각주 달아서 아는체한다는 소리 듣는 것보다도 받을 수 있을 때에 그러한 일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물론 매이는 것이 아니라 당분간 제가 각주를 밝혀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각주를 표현하는 것은 하지 않겠습니다.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요구되어지는 정황이나 또는 필요에 따라서 글의 출처와 근거를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양해를 구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