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합니다. 안녕安寧에서 '안'은 '편안할 안'安, '녕'은 '편안할 녕'寧입니다.
즉, 안녕한지를 묻는 것은 상대방에게 아무 탈 없이 편안한지를 묻는 것입니다. 외세의 침입과 전쟁이 잦던 시기 밤사이 무탈했는지 서로의 안부를 묻는 말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식사하셨습니까?" 혹은 "진지 드셨나요?"라고 인사하는 것이 흔했습니다. 당시에는 끼니를 거르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지요. 요즘에는 시대가 바뀌어서 이렇게 인사하는 일이 드물어졌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평소에 쓰는 언어 습관에는 역사적 상황과 문화적 특성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는 영어의 영향으로 젊은 세대나 친한 사이에서는 '하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스라엘인들은 대개 인사를 나눌 때 '샬롬'이라고 말합니다. 인사말 속에 각 언어마다의 고유한 특성이 투영되어 있다면 '샬롬'이라는 인사말에는 과연 어떤 의미가 숨겨져 있을까요,
히브리어 단어 중 아마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바로 샬롬일 것입니다.
히브리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이 단어의 뜻이 '평화'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것입니다. 샬롬의 의미를 '평화'로만 알고 있다면 이 단어의 아주 작은 부분만 알고 있는 것입니다.
어원적으로 '쉰-라메드-멤'은 '온전함'wholeness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고 말씀하실 때 (창 15:16) '가득 차다'로 번역된 단어가 바로 이 어근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아모리인들의 죄가 아직 충분하지whole 않은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 단어를 '평화'로 이해한다면 창세기의 본문은 '죄가 평화롭지 않다'는 이상한 뜻이 됩니다.
출애굽기 21:36에서 자신의 소가 다른 소를 받아 죽이게 된 경우 "소로 소를 갚을 것이요"라고 하는데, 여기서 '갚다'라는 단어 또한 같은 어근이 사용되었습니다.
소가 죽음으로써 피해자는 온전하지 못한 상태가 되기 때문에 그만큼 갚아 주어 상대를 온전한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출애굽기 22장에서 "배상"이라고 번역된 경우 또한 이 어근이 동일하게 사용된 경우입니다. 도둑맞아 온전하지 못하게 된 피해자를 다시 온전한 상태로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배상'이니까요.
영미권에서 샬롬을 'peace'로 해석해 온 역사가 깊다 보니 쉰-라메드-멤이 들어간 단어는 대부분 "평화", "화평", "화목", "평강" 등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제바흐 쉘라밈'을 영어로 'peace-offering', 우리말로는 '화목제'和睦祭로 번역한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우리가 흔하게 사용하는 의미로서의 '화목'은 다투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는 상태입니다. '화목'에 대한 이러한 개념은 마치 화목제를 '화가 난 신을
달래는 제사' 정도로 이해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해석에는 전통적인 샤머니즘적인 개념이 밑바탕에 다소 깔려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어원의 의미나 성경에서의 쓰임을 볼 때 제바흐 쉘라밈은 '화목제'보다는 '온전함의 제사'wholeness-offering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온전함의 제사에서 말하는 온전함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하나는 '개인적인' 온전함입니다. 죄를 지었거나 상해를 입어서 자신의 상태가 온전하지 못한 상태가 되었을 때 제사를 드림으로써 온전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를 온전한 상태로 회복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온전함은 동시에 '수직적인' 온전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온전함의 또 다른 측면은 나를 둘러싼 가족, 이웃, 세상과의 관계적이고 수평적인 온전함입니다. 성경을 꿰뚫는 핵심적인 공식,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온전함'이라는 단어 속에도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 측면의 온전함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가족 혹은 이웃 등 자신을 둘러싼 인간관계가 다 깨어진 상태로 개인적인 온전함을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주변과의 관계가 다 깨어진 사람이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헌대 히브리어에서 우리말 "안녕하세요?"에 해당하는 인사는,
남자에게는 "마 쉘롬카", 여자에게는 "마 쉘로메크"입니다.
직역하자면 "당신의 온전함은 무엇입니까?"What is your wholeness?라고 서로 묻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신학적인 질문이기도 합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주신 개인적인 온전함을 잘 지키고 있습니까? 그와 동시에, 당신은 주위의 이웃과의 관계적인 온전함을 잘 유지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온전함을 지키게 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아론의 축복'이라 불리는 민수기 6장의 축복문은 '베아셈 레카 샬롬'으로 끝을 맺습니다.(민 6:26)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는 개역개정의 번역은 "주님께서 당신을 온전하게 만드시기를 원합니다'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샬롬의 온전함에는 수직적이고 수평적인, 개인적이고 관계적인 두 가지 차원의 온전함이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둘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는 점 역시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송민원 <히브리어의 시간>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