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개떡
어제의 일이었다. 대구로 내려가서 큰아들의 여자 친구의 부모님과의 상견례가 끝난 뒤 서울로 되돌아올 때 내 아내의 손에 보자기 하나를 건네준 대학교수의 아내(나와 내자한테는 안사둔이 될 터).
늦은 점심 한 끼를 먹고는 서울로 되돌아왔더니만 무척이나 피곤했다. 몸은 힘이 들어도 pc를 열고 개인카페 여기저기를 기웃거릴 때였다. 오늘에서야, 대구에서 선물 받은 보따리를 끄르던 아내가 '어머, 망개떡이네' 하면서 반가운 소리를 냈다.
망개떡? 무슨 떡인지 모르겠다. 컴퓨터 모니터에만 정신 팔린 나한테 내미는 떡 두 개를 받았다. 찹쌀떡처럼 생긴 떡을 또르르 말고 나뭇잎새로 살짝 감쌌다. 찰기 있는 떡쌀이 서로 엉겨 붙지 않도록 나뭇잎새를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서 쪄 냈다는 듯이 나뭇잎은 누리끼리한 빛깔이었다.
청미래덩굴* 식물의 잎사귀를 망개잎이라고도 한다. 넓적한 잎사귀로 감쌌기에 망개떡으로 부르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얇은 전(煎)처럼 또르르 말아서 빚은 떡을 우악스럽게 씹어 삼켰다. 어떻게 생긴 떡인지는 모르겠고, 또 무슨 맛과 냄새가 색다른지도 모르겠다. 컴퓨터 모니터와 자판기에만 정신집중했으나 망개떡이라는 이름은 또렷이 남았다.
청미래덩굴은 서해안 충남 보령시 웅천읍 구룡리 야산에서 흔히 보는 가시 많은 넝쿨성 식물이다.
대전 사는 누나는 친정에 올 때 이따금씩 송편을 가져와서 아흔 살을 훌쩍 넘긴 어머니한테 드렸다. 청미래 잎사귀로 싼 떡이다.
내가 삽 한 자루를 들고 화망마을 상전산에 올라서 청미래넝쿨의 뿌리를 캐다가 텃밭 몇 군데에 심었다. 날카롭고 억센 가시가 많고, 손가락마디 굵기의 뿌리가 길게 뻗었으나 실뿌리는 참으로 보잘것 없었다. 줄기-뿌리를 돌돌 말아서 텃밭에 이식했으나 기대치 이하로 금새 말라 죽었다. 올봄, 해동되면 산에 올라가서 몇 뿌리 캐다가 더 많이 이식해야겠다.
산야초, 산나물 책에서는 이 넝쿨식물의 잎, 줄기, 뿌리를 활용하는 방법이 수록되었다. 나는 이를 가공하여 먹고 마시는 것보다는 두껍고 넓적한 잎시귀를 뜯어서 송편 등 진기가 있는 떡을 가마솥에 넣어서 찔 때 떡가루, 떡들이 서로 엉켜 붙지 않도록 조리하는 측면으로 활용하고 싶다.
나는 정년퇴직한 뒤 홀로서기를 해서 어느 정도껏 시골생활에 정착은 했으나 설마 하니 떡까지 만들 의도는 전혀 없다. 다만 무비료, 무농약, 무제초제의 친환경적인 텃밭에다가 온갖 작물, 과수, 야생화, 풀을 마구잡이로 섞어서 키우는 재미로 소일하고 싶다. 자연의 산물을 조금씩이라도 활용하겠다는 소박하고 조심스러운 포부이다. 대량화하거나 상품화할 의도는 전혀 없다. 키우는 재미와 취미생활, 소일거리 정도로 관심을 가지면서 식물에 대해서 어떤 배려를 베풀고 싶다.
서울에 올라올 적마다 서점에서 농사에 관한 영농책, 산야초에 관한 책을 한두 권씩 사 모으기 시작했다. 산야초, 산나물에 관한 초보지식이 조금씩 늘어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지난해 며칠간 교육받았던 농업기술센터에서는 농산품 판매에서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야기가 있으면 정감이 생겨서 농산물이 더 잘 팔리고, 농어산촌 관광이 활성화되어서 농장과 전원생활의 묘미를 잠깐이라도 맛보려는 도시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한다. 농작물을 잘 가꾸고 포장한 그런 방식만으로는 미흡하단다. 단순한 정보의 전달, 설명 없는 사진보다는 무엇인가 주저리 옹알거리고, 재미나는 일화를 곁들인 이야기를 들려주면 효과적인 마케팅이 된다고 덧붙였다.
나는 딱딱한 전문지식의 전달보다는 조금은 야들야들한 이야기가 있는 글을 썼으면 하는 바람이다. 예컨대 위처럼 무심코 들은 한마디의 단어, 문구로도 글감으로 전환시키는 재능을 조금씩 키우고 싶다.
바깥사둔이 될 분은 등산을 좋아하고, 여행도 좋아하신단다.
음식점 식탁 위에는 정성으로 만든 풀요리 음식물에는 바닷가에서 나오는 '톳(해초)' 무침도 있었다.
상견례를 할 때 한정식 레스토랑 창가 너머 화단에서 재잘거리는 작은 새를 보시고는 '빕새'라고 말씀하셨다. 해초와 토종새의 이름까지도 명확히 아는 자연지식에 나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공계열 대학교 교수인데도 자연지식에도 해박함에 내가 놀랐다.
나는 지금껏 어설픈 농촌의 지식과 경험에 아는 체를 했으나 앞으로는 더 정진해야겠다고 반성과 욕구가 살며시 일어났다. 고향 인근의 무창포바다와 마을 뒷산 신안재에 더 자주 찾아가서 견문을 넓히고, 농업기술센터의 귀농인들과도 교류를 더 넓혀야겠다. 귀향해서 제2의 삶을 영위하기 시작한 농촌마을의 생태와 아직껏 벗어나지 못한 도회지의 생활습관과의 간격을 좁혀서 새로운 문화의 창달에 근접해야겠다고 다짐해야겠다. 몸을 놀리지 않고 채찍질하 듯 더 꼼지락거리면서 산약초, 들나물, 약용나무에 더 관심을 갖고, 활용하는 방법까지도 조금씩 터득하면서 나를 더 낮게 내려놓아야겠다. 흙으로 되돌아가는 나를 더 낮춰야겠다.
큰아들의 여자 친구의 부모님과의 상견례가 끝난 뒤 서울로 되돌아올 때 내 아내의 손에 보자기 하나를 건네준 대학교수의 아내(나와 내자한테는 안사둔이 될 터)의 정성 어린 선물.
서울에 도착한 뒤에 나는 손공이 많이 들어간 떡(망개떡) 두 개를 입에 넣고 맛을 보았다.
작은딸의 시댁은 충남 태안군 태안읍 바닷가 쪽이기에 갯바다의 풍광과 짭조름한 소금기를 느껴야 할 것 같고, 큰아들의 예비 처가는 대구이니 영남 내륙지방의 산 높고 물 깊은 풍광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것 같다. 또 내가 사는 보령시 웅천읍 구룡리 화망마을은 무창포 바닷가, 야산에 가까우니 이들 지역의 살아있는 자연지식과 경험을 조심스럽게 접목해야겠다.
나는 대전과 서울에서 오랫동안 살았기에 시골 마을이 지닌 고유의 전통에 관한 지식이 아주 적다. 마을의 역사, 문학, 철학, 생활사에는 다소 등한시했던 내 삶과 엉성한 지식을 반성하면서 지혜의 폭을 조금씩이라도 더 넓혀야겠다. 곁들여서 나날이 건강이 부실해지는 노년기에 와 있기에 자연에서 흔히 보는 먹을거리(식재료, 건강용 산약재)에서도 '나대로의 퓨전 음식물'을 만들어서 먹어야겠다. 또 당뇨병 치료에도 도움을 받을까 하는 욕심도 갖고 싶다. 이런 욕구의 밑바탕에는 흙으로 되돌아가는 연습을 하는 이유 때문이라고 살짝 고백한다.
* 청미래덩굴(Chinaroot, 山歸來) :
명감나무·망개나무·종가시나무·청열매덩굴·매발톱가시이라고 한다. 굵은 뿌리줄기(토복령)는 딱딱하고 회갈색이며 꾸불꾸불 옆으로 길게 뻗으며, 줄기는 마디마다 굽으며 갈고리 같은 가시가 있다. 잎을 금강엽(金剛葉), 열매를 금강과(金剛果)라 하며, 어린잎을 따다가 나물로 먹는다. 넓은 잎으로 떡을 싸서 찌면 서로 달라붙지 않고, 오랫동안 쉬지 않으며, 잎의 냄새가 배어 독특한 맛이 난다. 식용·약용으로 이용되며, 열매는 명감 또는 망개라고 하며 먹을 수 있고 약재로도 사용하며, 어린순은 나물로 무치고 잎은 쌈으로 먹는다. 약으로 쓸 때는 탕(湯)으로 하거나, 가루를 내거나 또는 환제(丸劑)로 하여 사용하며, 술을 담기도 한다. 다쳤을 때 달인 물로 김을 쐬거나 상처 부위를 닦아낸다. 잔뿌리는 한 줌씩 묶어서 솔(부엌 살림용 brush)을 만든다.
2013. 2. 17. 일요일. 바람의 아들
서해안 촌놈이 경북 내륙지방까지 내려갔다가 상경한 신상 일기를 장황하게 늘여 썼시유.
그냥 읽어만 주슈. 심심하니까요, 나도.
* 후기 :
큰아들은 곧 결혼을 했고, 며느리는 곧바로 아이를 가졌다.
2023년 4월인 지금. 친손녀는 초등학교 3학년, 친손자는 초등학교 2학년이다.
첫댓글 저도 어릴적 먹어본기억이나네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
댓글 고맙습니다.
마스코트 님은 망개떡을 아시는군요.
서울 송파구에 있는 산림조합중앙회 건물 앞에서는 요즘 산나물, 산약재 등을 팔대요.
토복령(망개나무 뿌리)도 팔고요.
예전 옛사람들의 지혜를 엿봅니다. 먹을거리에 대해서 인간은 무한한 창조능력을 지녔지요.
겨울철 한 밤중에 메밀묵 망개덕 장사
지금은 아득한 옛날 지난간 추억이지예
부산 자갈치 시장 가몬은 가끔 눈에 보였었는데예
언제 길일 잡아서 기차여행 함 댕겨 와야 할 곳 부산임당 ㅎ
댓글 고맙습니다.
메밀묵, 망개떡 장수....
그거 맛이 있지요. 서민들이 먹는 토속음식이기에.
여... 기회가 되면 기차여행.. 부산 자갈치시장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저는 시골사람이라서 그럴까요? 서울 송파구 잠실재래시장, 방이시장, 성남 모란시장 등으로 장구경 가지요.
그렇고 그런 물건을 팔고 사는 서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으니까요.
저도 먹어보았답니다
정성이 많이 들어가간떡으로 기억이 되네요
평온한 주말 되세요
댓글 고맙습니다.
예... 정성이 무척이나 많이 들어가겠지요.
최 선상님!
한의사의 야그를 빌리자면
해쑥이 봄향기를 가득 품어 당뇨에도 좋다고 합니다.
많이 잡수실 것을 권유합니다.
햇쑥... 그거 어디에서 뜯어야 하나요?
지난해 봄에는 제 아내는 처음으로.. 한강 잠실대교 아래 빈터에서 쑥을 뜯었지요.
올해도 뜯을까 싶어서 잠실대교로 갔더니만 자연식물을 뜯지 말라는 경고 안내판을 봤지요.
쑥도 포함될 터. 아내한테 쑥 뜯으면 안 된다고 미리 일렀지요.
법과 규정은 지켜야 하니까요.
저는 박 선생님이 무척이나 부럽습니다. 늘 삶에서 일 열심히 하고, 맛있는 음식도 잡수시기에...
오늘 재래시장에서 저는 미나리, 생고구마를 조금 샀지요. 수수한 음식이 저한테는 어울리기에.
서해안 제 시골집 주변 텃밭 세 자리에는 쑥이 엄청나게 번졌겠네요.
저는 농약을 전혀 치지 않기에.... 친환경으로 농사를 짓다가... 지금은 서울에서 살자니...
쑥버무리, 쑥개떡, 쑥송편 등을 먹고 싶군요.,
망개떡 요즘 보기 드믄 떡 추억이 깃든 떡이죠
댓글 고맙습니다.
저 사실은 망개떡 몰랐지요.
청미래덩굴 넓고 두툼한 잎사귀로 떡을 감싸서 솥안에 넣고 찐다는 사실을 몰랐지요.
예비사돈과 상견례를 끝난 뒤 안사돈이 싸 준 선물꾸러미. 망개떡을 처음 봤지요.
충남 보령 산골마을 태생이기에 청미래넝쿨 식물을 엄청나게 많이도 봤지요.
그거 자칫하면 금방내 번식해서.....
빨갛게 자잘하게 익는 열매는 아이들의 입정거리이기에 저도 이따끔씩 따서 냠냠했지요.
제 텃밭에 심었더니만 죽더라고요. 죽으면 어때요. 한 15분만 걸으면 마을앞산인 서낭댕이 넘어 제 소유의 산에는
이런 청미래넝쿨이 무척이나 많이 있지요.
저는 날마다 생활일기를 씁니다.
남은 것은 일기(메모지 등)와 사진 뿐이대요.
기억이 자꾸만 흐려지는 세월에 와 있기에...
이런 삶의 이야기가 든 일기 가운데 하나를 골라서 문학지에 올리지요.
위 글도 5월호에 올리려고 전송했기에 5월 말에는 책으로 나오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