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 농군의 꿈
홍성숙
안녕 하세요 전 농민 수기 란을 보면 해마다 가슴이 일렁이는 글을 좋아하는
초년생입니다, 내년에는 꼭 도전하리라 몇 해를 미루어 오다가 올해는 용기를
내어 두서없이 적어봅니다.
경상도 산골 가난한 집 육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아버지도 일찍 여의고 언니,
오빠, 시집 장가 객지로 떠나고 어머니와 소농으로 산골 비탈 밭을 일구는
힘겨운 생활에도 무슨 미련인지 늘 처녀 농군이 된다고 입버릇처럼 얘기 했죠.
남자만 있으면 곧 성공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웃 전작에서 농사를 짓던 아주머니 아저씨를 지금 생각해도 앞서가는
농민이셨던 것 같아요.
어린 눈에도 아저씨 아주머니의 농사법을 예사로이 보지 않고 늘 눈여겨
보았죠.
70년도에 벌써 청도, 백도, 금도를 심어서 깨끗이 포장해 내시고 원두막에서
직판도 하시며 어떤 일을 한 가지 하시려면 두 분이 다정히 의논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손쉽게 또, 새벽에 일찍부터 일하시고 낮에는 쉬는 모습을 전 알게
모르게 부러워하며 배워왔나 봅니다.
경상도 산골 고추밭에서 꿈꾸던 나의 미래는 30년이 된 지금 충북의
비닐하우스 토마토 밭에서 처녀농군의 꿈을 이루고 있습니다. 남자 일꾼이
없어 부러웠고 농기계가 없어 부러웠지만 지금엔 일 잘하는 남편 만나
농기계도 다 갖추고 비닐하우스 삼천 평에다 논농사 사천 평을 어릴 적 배운
농사법을 이용하고 또 새로운 농사법에 도전하고 배울 수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뛰어다니며 배워가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저희도 비닐하우스 20년을 넘게 하면서 평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사람이 열심히 뛰는 것은 부족함 없이 했지만 농사란 반은 하늘이 지어준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맞나봅니다 하늘이 내리는 재해는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봄이면 봄바람에 새로 피복해 놓은 비닐과 파이프까지 날려 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고 여름이면 장마에 주렁주렁 달린 오이, 토마토가 물에 잠겨 시들
때 겨울이면 폭설로 잠도 못자며 눈을 쓸어내려주고 왕겨불도 피우던 중 한 쪽
하우스는 눈에 무게를 못 이겨 쓰러지고 마음 편한 날이 없었죠.
2001년도엔 큰 폭설로 6,000평 큰 하우스와 1.600평 작은 하우스가
주저앉아 정말로 어디서 어떻게 손대야할지 막막하여 한숨만 쉬고 있을 때
정부에서 공공근로요원을 보내주셔서 그 때의 고마움은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한 달이 넘게 공공근로요원과 보수공사를 하여 토마토를 정식할
6,000평 큰 하우스만 고쳐서 토마토를 심어놓고 남편과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1,600평 작은 하우스는 이제 천천히 따뜻해지면 고칩시다. 예쁘게 자라는
토마토를 보며 마음에 위로를 살 때 이 무슨 날벼락 인가요.
눈도 비도 바람도 아닌 생각지도 않았던 전기 과열로 불이나 양액 재배기
기계실과 하우스 일부가 완전히 전소되어 한 순간에 다 날아가고 애써 고쳐서
심어놓은 토마토와 많은 돈을 들여 시설한 양액 재배 배드를 다시 뜯어내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 고비를 어떻게 넘겼나 싶습니다. 워낙 잘 놀라고
소심한 난 속에서 뭔가 쿵하더니 오히려 대담해 지더군요. 큰일에도 대담하던
남편은 약해지는 것 같아 다른 무엇을 잃은 것보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여보 건강하면 돼, 내가 꼭 올해 복구 할 거야 걱정하지 마, 힘들어하는
남편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약체질인 난 강한 척하며 밤마다 무슨
작물을 심어 복구를 할까 고민했죠.
우리는 도로변에서 해마다 토마토 직판을 하는데 이쪽 밭에 늦게 심은
토마토와 불난 곳에는 오이, 호박을 같이 심어 직판을 했다. 오이, 호박은
많은 일손이 가는 것도 생각지 않고 한 가지 잃어버린 자존심과 돈에만
집착했지요. 오이, 호박과 토마토를 같이 수확해 판매했지만 토마토만 팔리고
오이, 호박은 잘 팔리지 않았습니다. 수입은 생각했던 것에 삼분의 일도
미치지 않고 거기다 토마토 값까지 폭락하고 일만 힘들고 숨쉴 여가도
없었습니다. 쌓인 토마토를 집어던지며 참고 쌓여있던 눈물이 터져 나와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습니다.
이게 아니구나. 억지로는 안되는 것이구나 이러다가 건강을 잃으면 도전할
기회도 없지 않는가. 그래 욕심 버리고 정신 차려 또 도전하리라. 몸 건강하고
아이들 착하게 잘 자라주고 있으니 무엇을 더 바라리오. 마음을 스스로
달래가며 좀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재해에도 오랜 경험으로 조금씩
피해가는 법도 터득하고 한해 두해 열심히 하다보니 빛도 갚아가며 두 아들.
대학 가르치고 밥 먹고 삽니다. 그리고 시골의 참맛도 느끼며 살려고 오십 평
텃밭에다 여름 내내 먹을 반찬과 간식으로 봄이면 감자 고구마 옥수수,
고추 가지 등등 심어먹고 담장에 붙여지어 놓은 닭장에는 토종닭 다섯 마리가
우리식탁에 싱싱한 유정난의 단백질 공급, 가을이면 묵나물로는 호박, 무, 고추
잎 등등 말려서 겨울 내내 밑반찬용 논둑에 심어놓은 질금콩, 메주콩, 밥에
넣어 먹는 검정콩, 모두는 우리 집 가족의 일년 먹거리랍니다.
내 손으로 직접 지어 싱싱한 재료를 먹고 싶을 때 바로 조리해 먹을 수 있는
이런 기쁨은 아마 해 보셔야지 아실 겁니다. 전 이런 것이 좋아 농촌을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또 요즘엔 바쁜 틈을 내 가까운 산에도 오르고 2002년엔 충북대학교 농대
최고 경영자 과정도 수료하고, 작년엔 어릴 적 좋아하던 낙서를 멋진 글로
옮기고 싶어 충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 반에 등록해서 존경스러운 교수님과
교우들을 만나 영광이고 많이 배우며 백일장에서 부족한 글로 장원의 상을
받아 저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추억도 만들었습니다.
올해도 주어진 내 생활에 만족하며 열심히 노력하며 살렵니다.
이제 앞으로 꿈이 있다면 우리 부부 건강하게 아이들 결혼시키면, 황토
흙집 지어 알콩달콩 노년을 사는 게 꿈이랍니다.
흙과 초원에서 살아있는 생명을 다루며 정년퇴임이 없는 내 직장은 최고의
직장이 아니겠어요. 배고픈 시대는 가고 양으로 먹는 시대는 지났으니 맛과
건강 생각하는 농사 즉 내 가족이 먹는다는 생각으로 우리 국민의 먹을거리는
우리가 책임진다면 FTA 협상도 무섭고 두려울 게 없을 겁니다.
농민 여러분, 여성 여러분, 희망을 잃지 맙시다. 파이팅 해요.
2004.18집
첫댓글 이게 아니구나. 억지로는 안되는 것이구나 이러다가 건강을 잃으면 도전할
기회도 없지 않는가. 그래 욕심 버리고 정신 차려 또 도전하리라. 몸 건강하고
아이들 착하게 잘 자라주고 있으니 무엇을 더 바라리오. 마음을 스스로
달래가며 좀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재해에도 오랜 경험으로 조금씩
피해가는 법도 터득하고 한해 두해 열심히 하다보니 빛도 갚아가며 두 아들.
대학 가르치고 밥 먹고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