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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기성용은 마치
과거 박지성이 연상 된다
★ 글을 쓰기전
정말 오랜만에 글을 써보는 것 같네요. 일 때문에 바쁘기도 했고 그래도 꾸준히 카페는 들어와서 자료들도 많이 올렸었지만, 이렇게 에세이를 작성하는 것은 약 2개월여만이네요. 이제 여자 월드컵 시즌도 다가왔고 아시안컵 때 처럼 많은 글 올려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본 주제에 대한 글을 한번 읽어볼까요 ~ ?
0. Intro
우선, 이 주제에 대해 파악해보기전에 분명히 알아야 될 점이있다. 모든이들이 알듯이 박지성과 기성용은 한국축구사에서 '카테고리'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혹시라도 일부 이 주제에 대해 오해하는분들이 계시다면 절대 기성용이 박지성의 커리어와 일치한다는게 아니라 서로 상반 된 혹은 공통적인 의미로 연상 된다는 것을 알려드린다.
1. 박지성과 기성용의 대표팀 발탁
박지성과 기성용의 공통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너무나 닮은점이 많다. 우선 출생일부터 둘 다 빠른일자다.(박지성 81년 2월생 기성용 89년 1월생) 대표팀 데뷔년도 역시 박지성은 2000년이고 기성용은 2008년이다. 그렇다보니 이 둘 역시 만 18세에 대표팀에 발탁 된 것이다. 이 둘을 대표팀에 발탁한 수장 역시 '허정무'라는 점도 일치하다. 물론 둘이 갖는 데뷔전의 의미는 약간 다르다. 박지성은 당시 2000년 4월 라오스와의 아시안컵 예선에서 데뷔전을 가졌었는데 당시 허정무 감독은 국대와 올대 모두 겸업하고 있었다. 아시안컵 본선진출을 확정 짓고 비교적 약체인 라오스전에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을 테스트겸 출전 시켰다는 의미가 크다. 하지만 기성용은 당시 이청용과 FC서울에서 어린나이부터 출중한 재능을 뽐내며 미래가 기대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고있었다. 당시 대표팀의 미드필더와 공격수 자원들을 발굴하던중 허정무는 기성용과 이청용 이른바 '쌍용'을 발탁한 것이다. 이렇게 박지성과 기성용의 대표팀 발탁의 의미는 다르지만, 그렇다고 대표팀이 가볍다는 얘기는 아니다. 누구나 알듯이 대표팀의 문턱은 결코 쉽지않다. 좀 잘나간다고해서 들어올수있는 자리는 절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둘이 기록한 만 18세 대표팀 발탁은 정말 대단한 재능이었다는 것을 말한다.
2. 어린나이에 나가본 월드컵, 당당하게 주전으로 나서다
박지성과 기성용은 월드컵 무대 역시 만 21세인 어린나이부터 주전으로 나섰다. 대표팀 발탁 후 2년만에 나가본 월드컵이기에 A매치 경험도 풍부하지않을뿐더러 선배들마저 떠는 무대가 월드컵이니 본인들은 당시 얼마나 떨렸겠는가. 하지만 이 둘은 당시 당당하게 주전자리를 꿰차며 종횡무진 그라운드를 누볐다. 물론 스탯까지 데자뷰가 되는 건 아니다. 박지성은 처음 나갔던 월드컵에서 포르투갈을 상대로 결승골을 기록하며 16강 진출에 큰 공헌을 했었다. 하지만 기성용이 골을 기록하지 못했다고 그렇게 또 데자뷰라는 주제에서 물러설 건 없다. 당시 기성용 역시 조별예선에서 2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충분히 원정 첫 16강에 많은 공헌을 했다고 할수있다. 그만큼 어린나이에 처음 나간 월드컵에서 이 둘의 활약은 주요했다. 성적이야 아무래도 21세에 4강을 경험한 박지성이 더 우위지만, 기성용 역시 한국축구사 최초로 원정 월드컵 16강을 경험했으니 이 둘 모두 다른 의미로 어린나이에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건 부정할수 없다.
3. 가능성을 인정받은 재능, 유럽 무대에 도전하다
세번째 항목에서도 이 둘이 갖는 의미는 상반 된다. 박지성은 당시 한일월드컵을 마친 후 스승인 히딩크의 러브콜로 인해 도전하게 된거지만, 기성용은 K리그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셀틱에서 러브콜이 온 것이다. 방법이 어떻든 러브콜이라는점은 같다. 그래도 공통점을 찾자면, 둘 모두 한국, 일본에서 활약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럽축구 기준으로 겨울 이적 시장에 새로운 팀에 합류한 것이다. 그렇게 이 둘은 일찍이 유럽무대에 진출하며 팬들에게 많은 관심과 응원을 받으며 새로운 출발을 했다.
4. 쉽지않았던 첫 시즌, 그러나 포기란 없다
도전과 미래라는 타이틀을 갖고 진출했던 유럽. 하지만 노력의 시간은 '배'로 필요했다. 3번 항목에서 언급했듯 둘의 유럽 진출 배경은 상반 된다. 그래서 의미 역시 달랐지만, 관심도는 같다고 볼수있다. 그만큼 한국 축구의 미래를 책임질 이 둘의 유럽 무대에서의 활약을 기대한 팬들이 많았다. 하지만 첫 시즌부터 결코 쉽지않았다. 박지성은 기대에 못 미친 활약으로 홈팬들에게 야유를 받기 일수였고 결국 히딩크 감독은 원정 경기에 출전 시키는 배려를 보였었다. 기성용은 팀 동료들에 의해 제대로 경기를 나서지 못하며 자칫 경기 감각이 떨어지는 것 아닐까에 대한 상심이 컷다. 그에 반해 당시 박지성과 팀 메이트로 함께 진출했던 이영표와 쌍용 유닛의 이청용은 첫 시즌부터 무난한 활약을 했다. 동료이자 절친의 활약도는 간결하고 본인들은 매끄럽지 못했으니 정말 답답했을 것 이다. 당시 박지성은 한 다큐를 통해 그 시기에 선수생활을 처음 그만두고싶다는 생각을 해봤었고 기성용도 다시 K리그로 리턴하거나 은사인 '세뇰 귀네슈'감독이 지휘하고있는 트라브존스포르로 이적을 물색할 정도였으니 이 역시 둘은 상반 된 마인드로 괴로워했다. 하지만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고 했던가. 둘은 다시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여태해왔던 노력을 배로했고 끝내 팀의 주전이자 핵심으로 우뚝 서게 된다. 역경을 딛고 일어선 점 역시 같다. 보통 멘탈을 가지지않고서야 해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5. 세계적인 무대 EPL에 입성하다
끝없는 노력으로 유럽에서의 가능성을 인정받고 드디어 둘은 빅리그로 향하게 된다. 박지성은 챔피언스리그라는 최고의 무대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세계적인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에게 러브콜을 받아 이적하였고, 기성용은 셀틱에서의 좋은 활약을 기반으로 런던 올림픽으로 눈도장을 찍고 '스완지 시티'로 이적하였다. 그리고 둘은 첫 시즌부터 많은 기회를 부여받으며 종횡무진 자신의 기량을 뽐내는데 주력했다. 물론 팬들이 생각하는 기성용의 EPL 첫 시즌은 박지성이 받았던 기회와는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기성용 역시 첫 시즌에는 충분히 기회를 부여받았다.
6. 2년차 시즌에 맞이한 수술과 마찰
박지성 2년차 시즌 후반기가 시작할 무렵 무릎 부상으로 다시 수술대에 올랐고 기성용은 2년차 시즌 당시 '미카엘 라우드럽'과의 마찰로 박지성은 시즌 아웃 기성용은 임대를 하게 됐다. 박지성은 비록 부상으로 일찍이 시즌을 마감했지만 리그에서 5골을 기록하며 자신의 EPL 입성 후 최다골을 터뜨렸고 기성용 역시 임대를 통해 한 단계 진보한 기량을 보이며 3골을 기록했다.
7. 에이스라는 특명 하지만 부상을 안고 출전했던 두번째 월드컵
박지성과 기성용의 두번째 월드컵은 대표팀에서 둘의 존재감이 클때였다. 박지성은 당시 자타공인 대표팀의 에이스이자 키플레이어였고 기성용 역시 키플레이어였다. 혹자 일부는 당시 성적과 기성용 사건 등이 맞물려 기성용의 활약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필자는 당시 기성용의 분위기 때문에 저평가 받았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되면 그때 경기를 다시 확인해보자. 기성용은 당시 3경기 모두 제 역할을 톡톡히 해줬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이렇게 팀의 중심으로 출전했던 두번째 월드컵이지만 그들은 부상 통증을 안고 진통제를 맞아가며 매 경기를 소화했다. 박지성은 발목 기성용은 무릎이었다. 하지만 이 둘 모두 국민들의 걱정과 상대 팀들에게 전력 노출을 줄이기위해 통증을 감추며 내색하지않고 월드컵을 소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둘 모두 준수한 활약을 했다. 그리고 이 둘의 두번째 월드컵은 첫 월드컵의 좋은 성적과 달리 조별예선 탈락으로 아쉬운 고배를 마셨다.
8. 20대 중후반 어엿하게 대표팀의 캡틴으로 거듭나다
박지성과 기성용이 대표팀 주장으로 임명 되었을 시점은 둘 모두 EPL 진출 햇수로 3년차일 때다. 박지성은 당시 허정무호에서 이운재, 김남일 등 그전 베어벡호에서 주장직을 수행하던 여러 대표팀 선배들로부터 주장직을 물려받았고 기성용 역시 슈틸리케호 부임후 정식으로 주장직을 받았다.
9. 세번째 월드컵을 목표로 은근슬쩍 언급하는 '마지막'
박지성은 자신의 세번째 월드컵인 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 미디어에 대놓고까지는 아니고 슬쩍 '마지막'이라는 의미에 코멘트들을 날렸었다. 그 뜻은 곧 자신의 마지막 월드컵이 될 것이라는 의미였다. 우리는 당장 몰랐다. 말은 저렇게 하지만 실감이 안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월드컵을 마치고 아시안컵까지 마친 후 박지성은 자신이 말한대로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그의 나이는 30세였다. 축구선수로서 은퇴하기에는 정말 이른나이다. 하지만 박지성의 은퇴는 결국 '무릎'이었다. 그랬다, 그는 세번의 무릎수술로 인해 영국에서 한국을 건너올때마다 무릎에 물이찼고 결국 선수생명을 위해 중대하고도 어려운 결정을 한 것이다. 본인도 자신 인생 최고의 영광은 대표팀이었다고 누누히 말한다. 그래서 대표팀 은퇴는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다행히 팬들은 박지성의 무릎을 생각하며 은퇴를 만류하지않았고 그동안의 업적을 감사해하고 팬으로는 미안해하며 찬사를 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니 선수 본인을 위해서도 한국축구를 위해서도 박수칠때 떠난 최고의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박지성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익히들 알고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기성용이다. 기성용 역시 박지성 처럼 은근슬쩍 러시아 월드컵이 대표팀의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혀왔다. 하지만 이 것 역시 일부만 알고있을뿐 전부 알고있지는 않다. 아직 러시아 월드컵은 오랜 시간이 남아있고 기성용은 현재 대표팀의 주장이자 핵심이다. 어찌보면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고 반응하는게 당연하다. 하지만 기성용은 아시안컵을 마친 후 어느 매체와의 정식 인터뷰에서 "러시아 월드컵을 목표로 꼭 본선에 진출해서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대표팀에서 멋있게 떠나고 싶다."라는 이야기를 한 바있다. 기성용의 열혈팬인 필자는 위에 언급한 것 처럼 처음에는 대수롭지않게 생각했지만, 얼마전 기성용의 수술 이야기를 전해듣고 나서는 기성용의 인터뷰가 백번 이해 된다.
★ 글을 마치며
이렇게 박지성과 기성용의 닮은점은 찾아보면 신기하게도 상반되지만 일치하는 것들이 있다. 박지성 역시 당시 대표팀의 핵이었고 오늘날의 기성용 역시 박지성의 존재감의 바톤을 이어받아 없어선 안 될 존재가 됐으니 말이다. 그는 올 시즌 정말 미드필더로서 EPL에서 훌륭한 업적을 쌓았다. 아마 모든 축구팬들에게 14-15 시즌의 기성용은 가히 '역대 최고의 퍼포먼스'라고 불릴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대한민국은 아시아 최고의 미드필더를 보유하고있다."라고 말할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됐다. 하지만 우리가 박지성을 대표팀에서 '무릎'으로 너무 일찍 보냈듯 그리고 지금 기성용 역시 수술로 인해 월드컵 2차예선 첫 경기부터는 보지 못한다. 세상에 월드컵전부터 부상 통증을 안고 진통제를 맞아가며 현재까지 이런 환상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줬다는게 말이 되는가. 그가 언급한 '마지막'이라는 의미를 이제 대수롭게 생각하기엔 이젠 우린 일찌감치 알아버렸다. 기성용의 경기를 보며 즐거운 낙을 쌓는 팬들이 있고 그의 존재감을 강조하며 대표팀 경기에서 핵심으로 만드는게 오늘날 한국축구의 위치지만, 우리는 더이상 과거 박지성을 보낸 것 처럼 다시 한번 슬퍼지고 싶지는 않다. 그렇기 위해서는 지금 기성용이 안고있는 '책임감'이라는 짐을 덜어주지는 못하지만 선수를 보호해줘야 되지않을까? 늘 경기에서 든든하게 꾸준히 잘해주는 기성용이지만, 팬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와 격려는 아마 기성용을 보호할수있는 팬들의 최선이자 본인에겐 최고의 회복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번 계기를 통해 기성용이 없는 대표팀의 전력을 체크하는 기간이 될텐데 필자 역시 기성용팬이기는 해도 기성용을 색다르게 대체할수있는 좋은 선수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K리그를 중계되는 경기들만 봐서 자세히 언급을 할 자격은 안된다. 하지만 좋은 선수들을 확인할수있는 좋은 기회인만큼 다가오는 월드컵 예선에서 기성용의 공백은 생략하고 돌아온 이청용과 새로운 원석들의 플레이를 즐겨보자.
소중한 시간내어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0^
삭제된 댓글 입니다.
당장 최근 아시안컵만 봐도 헌신 그 자체였죠.
월드컵때 기성용의 실력은 너무 저 평가되서 슬펐죠...아팠다고 아무리 말해도 늘 비난만 몰아치니 스스로 아프단 소리를 하지 않는 선수가 되었죠ㅜㅜ
다시 보면 정말 잘해줬었죠 ~
이제 한국축구팬분들은 기성용 선수의 실력을 아니까 문제는 안되지만
부상 관리는 철저히 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