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히 알고 있다시피 로마 역사에서는 얼마나 많은 전쟁이 기도되었으며, 얼마나 많은 피가 뿌려졌으며 … 얼마나 많은 정치적 수완과 신중함, 의연함과 절제, 용기가 발휘되었던가! 그러나 온 세상을 정복하려던 계획, 그토록 치밀하게 세워지고 수행되고 완성되었던 그 계획의 종착지는 어디였던가? 기껏해야 대여섯 명의 괴물들만 원 없이 행복하게 해 주고 끝나버릴 일이었던가? 대체 무엇 때문에?” (<로마의 성공, 로마제국의 실패>, 몽테스키외 지음, 김미선 옮김, 사이, 2013, 213~214쪽)
페이스북에 글을 쓰지를 못하겠다. 무엇을 써도 한가한 소리가 되어 버린다. 세상 어느 곳에서나 파열음이 들리고 비명이 들린다. 그리고 그 비명만큼이나 크게, 탐욕에 찌든 아귀들의 쩝쩝대는 소리가 들린다.
대체 무엇 때문일까? 대한민국은 경제대국이 되었다고 한다. 등수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들 말로는 세계에서 열 몇 번째로 꼽히는 경제규모라는 것이다. 요컨대 우리는 부자가 되어버렸다. 자연히 뜯어먹을 덩어리도 덩달아 커졌고 그만큼 그걸 좇는 사람들, 세력들도 많아졌다. 부끄러움 같은 것은 애저녁에 내버린 사람들, 무리들이다.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삼켜도 삼켜도 허기를 느끼는 악귀처럼 여기저기 집어삼킬 것을 찾아 돌아다니는 괴물들.
얼마 전에는 용산에서 사람 여섯을 삼키고 주차장을 토해 놓더니 쌍용에서는 스물넷의 사람들을 삼키고 거기 꽃밭을 토해내 놓았다. 생전 처음 보는 ‘악의 꽃’이다. 제주에서는 강정 구럼비를 삼키고 무엇을 토해 놓으려는가. 군함이며 미사일이며 전쟁의 전조를 토해 놓으려는가. 괴물의 아가리 앞에 맨몸으로 서 있는 문정현 신부님과 활동가들이 위태위태하다. 이 괴물은 이제 밀양의 할매들까지 삼키려 하는가보다.
자본은 탐욕으로 움직인다. 일본이 2차 대전을 일으켰을 때 배후에는 미쯔비시나 미쯔이, 스미모토 같은 재벌들이 있었고 그들은 전후에 미국에 의해 해체되었다. 강정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이들이 삼성 같은 재벌이라는 사실은 두려움마저 불러일으킨다. 이 괴물들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한수진 기자
어제 저녁 가톨릭 신도 1만인 시국기도회에 갔다. 사람들이 촛불을 켜 들고 노래하고 기도하고 있었다. 우리는 얼마나 미약한 것일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저희 어머니의 땅, 저희 아이들의 땅, 이 땅은 민주공화국 어서 오소서, 당신의 평화.
이 땅에서 어두운 권력 사라지게 하시고 이 땅에서 오로지 당신의 정의만 흐르게 하소서. 가난하여 눈물 흘리는 사람 없게 하시고 억울하여 하소연 하는 사람 없게 하소서.
저희 어머니의 땅, 저희 아이들의 땅, 이 땅은 민주공화국 어서 오소서, 당신의 평화.
이 땅에서 착한 사람이 대접받게 하시고 이 땅에서 의로운 사람이 인정받게 하소서. 당신의 법에 따라 죄인들이 참회하고 국민들이 주인 되는 민주주의 이루소서.
저희 어머니의 땅, 저희 아이들의 땅, 이 땅은 민주공화국 어서 오소서, 당신의 평화.”
‘국정원 대선 불법 개입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시국기도’라는 거창한 제목의 기도문은 정작 소박하고도 아름다웠다. 탐욕을 이기는 것은 가난한 마음이고 폭력을 이기는 것은 평화로운 마음이다. 그들이 이웃을 삼키고 죽이면서 스스로 죽였던 자신을 되찾아 주는 것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에. 괴물을 사람으로 되살려내는 것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에. 스산한 이 밤 내 안의 가난과 평화를 더듬어 다독거리며 나도 중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