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쟁이 / 김영래
저놈은 완전 방수된 몸을 가졌다.
*********************************************
소금쟁이가 물위에 사뿐사뿐 걸을 수 있는 것은 물의 표면보다 더 넓은 마음을 지녔기 때문에 가능하리라 본다.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의 삶은 기적과도 같은 일을 가슴에 꿈으로 놓고 살아가게 한다. 정말 이 세상 물위에 사뿐사뿐 걸을 수 있다는 것은 두려움을 벗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에게도 그 두려움을 버리는 일이 일생의 과제일 것이다. 그러나 그 두려움을 벗어 버리는 일이 삶의 종착점인지도 모른다. 부와 명예도 두려움을 벗는 일에 도움이 안된다. 진실하게 사는 일만이 두려움을 벗는 일이다. 소금쟁이가 물 위를 두려움 없이 걷는 것처럼, 김영래 시인은 소금쟁이를 통해 그 가볍고 날쌘 몸의 유영을 배우고 있는 듯 하다
소금쟁이 / 송재학
지금 물 위에 떠있는 게 아니라 물의 살점을 움켜쥐었다 수면 아래 물의 정강이뼈까지 만졌다 저수지와 드잡이질 채비를 했다 저가 가볍기에 더 가벼운 게 무언지 궁금했던 게다
소금쟁이, 날아오르다 / 최정희
그녀가 오늘 한쪽 유방을 들어냈어 무거워진 한쪽이 사면처럼 기울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어 기울기를 가진다는 건 양팔저울 한쪽에 슬픔을 더하거나 덜어내는 것
가끔 또는 자주 비가 내렸어 그녀의 눈 속에 살고 있는 소금쟁이는 언제나 눈물의 표면을 단단히 움켜쥐었어 그렁그렁한 표면장력, 그 힘으로 소금쟁이는 침몰하지도 날아오르지도 못했어
오늘 그녀는 기울기를 가졌어 x축과 y축 사이 그리고 삶과 죽음 사이 걸음을 걸을 때마다 가슴에서 눈물이 호수처럼 출렁였어 그녀는 비로소 너무 오래 울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어 남은 한쪽의 젖꼭지가 짓무를 때까지 오늘 울기로 했어
소금쟁이가 떠났다는 걸 그제야 알았어
******************************************************** 경상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훈풍같은 시로 따뜻한 위로가 되길” 불혹을 꿈꾸었다. 그때쯤이면 세상 그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을 줄 알았다.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2월의 끝자락에서 쏟아지는 햇살을 보았다. 겨울의 햇살과는 다른, 맑고 따뜻함이 아련하게 묻어나던 햇살을. 시집 한 권을 샀다. 그것이 내 시의 출발이었다. 흔들린다는 건 내가 살아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나는 흔들리며 바람의 족적을 기록하고 싶다. 미풍, 혹은 훈풍의 바람 같은 시를 쓰고 싶다. 내 시가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과 경상일보에 감사드립니다. 남편과 아들 지산, 딸 지인과 이 기쁨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심사평]생애의 비의가 배어있는 사랑스러운 작품 그만큼 응모작의 수준이 기성의 수준을 뺨칠 만큼 높았다. 깊은 생각 없이 그냥 유행의 물살을 타고 있거나 또 현란하게 변해가는 시대의 낌새를 눈치채지 못하고 고색창연한 시의 습관에 무심코 젖어있지는 않은지 자세히 살펴보았다.
당선작으로 뽑힌 〈소금쟁이, 날아오르다〉는 아주 세밀하게 직조된 ‘작품’이다. 도드라지거나 으스대지 않으면서 나직한 어조로 세계와 통화하는 태도가 무엇보다도 인상적이다. 참신한 시적 상상력으로 형상화한 시 속의 ‘그녀’는 지금 이 혼탁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우리의 영혼 속에는 표면장력을 잡아주는 소금쟁이 한 마리가 늘 있는 법이다. 곰곰 읽어볼수록 우리들 생애의 비의가 함초롬히 배어있는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 심사위원 오탁번
소금쟁이 / 신현정
수련 핀 연못가에 고요히 앉아본다 난 처음에 검불이 이리저리 밀려다니는 줄 알았다 소금쟁이들이다 소금쟁이들이 이따금 물방울 듣는 파문 위를 긴 다리로 왔다갔다 하면서 파문을 놀고 있다 그걸 보자니 아 다리 한 쪽 빠지지 않고 살아온 내 지난(至難)한 삶이 감사하기만 했다
소금쟁이의 연애 / 손택수
바람 한 점 없는데 못물 위에 파문이 번지는 건
소금쟁이 한 쌍의 은근한 수작 때문에
소금쟁이 검객들의 이야기 / 박정대
나 언제 까치발로 그립게 서본 적 있던가
소금쟁이 / 구광렬
그를 만나기 전엔 그가 쟁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 막연히 유전해오는 소금 부스러기를 이용해 마냥 물 위를 걷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피부보다 얇은 수면은 거울보다 단단했다 피보다 묽은 물의 단결력을 보여주려는 듯 밑을 받치고 있는 힘은 쉬 보이지 않는 법이라고 아편주사 바늘 같은 다리로 라스베이거스 마술사처럼 연신 수면을 찌르고 있었다 시퍼런 작두도 견뎌낼 것 같던 부드러운 물의 분자들, 소금기도 없는 그를 소금쟁이로 만들어버린 그 단단함으로 논두렁에서 깨금발로 검정 고무신 한 짝을 찾아 헤매던 내 물러빠진 두 다리를 사정없이 후려치었다
소금쟁이뿐! / 이은봉
물빛 너무도 푸르른 호수 위, 사뿐히 내달릴 수 있는
긴 다리 휘청대며
바람처럼 안개처럼 호수 위 내달리고 있는, 예수님의
버들잎 살랑대며 노래하는 호수 위
무엇으로 너는 소금쟁이겠느냐 아아야, 사람아 도대체
소금쟁이 아저씨 / 김내식
가볍다
거품座의 별에서 / 최승호
변기의 소용돌이 뒤에
눈부신 생도 있다 / 박기동
물에서
무얼 먹고 무얼 입는지 도무지...
소금쟁이 / 홍해리
오월 / 송찬호
냇물에 떠내려오는 저 난분분 꽃잎들 술 자욱 얼룩진 너럭바위들 사슴들은 놀다 벌써 돌아들 갔다 그들이 버리고 간 관(冠)을 쓰고 논들 이제 무슨 흥이 있을까 춘절(春節)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
염소와 물푸레나무와의 질긴 연애도 끝났다 염소는 고삐로 수없이 물푸레나무를 친친 감았고 뿔은 또 그걸 들이 받았다 지친 물푸레나무는 물푸레나무 숲으로 돌아가고 염소는 고삐를 끊은 채 집을 찾아 돌아왔다
그러나 그딴 실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돗자리 말아 등에 지고 강아지풀 꼬릴 잡고 더듬더듬 들길을 따라오는 저 맹인 악사를 보아라 저 맹목의 초록이 더욱 짙어지기 전에,
지금은 청보리 한 톨에 햇볕과 바람의 말씀을 더 새겨넣어야 할 때 둠벙은 수위를 높여 소금쟁이 학교를 열어야 할 때 살찐 붕어들이 버드나무 가랑이 사이 수초를 들락 날락해야 할 때!
늪 / 김춘수
늪을 지키고 섰는
소금쟁이 같은 것, 물장군 같은 것,
산도 운다는
갈대가 가늘게 몸을 흔들고
***************************************************
Y 에게
가끔은 마음둘 곳 없어 되지않은 글을 쓰기도 하고...섬처럼 살아가는 일에 익숙해져가고, 뭐 그런 날입니다. 통렬한 시, 그건 우리가 꿈꾸는 불꽃같은 삶입니다. 소금쟁이를 떠다니는 가벼움을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한 신선같다고 했습니다.
저녁에 화기애애한 가운데, 애들 앞에서 '요 모양, 요 꼴'이라는 말이 아내의 입에서 불쑥 나왔습니다. 물론 나는 그 말을 아내가 수없이 속으로 뇌었을 것을 압니다.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것은 비록 이번이 처음이지만, 나를 만나서 자기가 요 모양이라는 말에 나는 속으로 반론을 하였습니다만, 그 상냥했던 아내와의 첫 만남을 잊지않고 사는 나는 그저 아내에게 주머니 속같이 편한 사람이 되고 싶을 뿐 입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간혹 실수가 아름다운, 실수를 인정하는 그 사람은 더 아름다운 아주 인간적인, 어디 비집고 끼어들 수 있는 세상을 그립니다.
잊혀질만 하면 메일이라도 날릴 수 있는,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다 김 시인의 '소금쟁이' 함께 보냅니다
(2007)
/ 동산
|
출처: 淸韻詩堂, 시인을 찾아서 원문보기 글쓴이: 동산
첫댓글 소금쟁이의 사는 법...
시에서, 자연에서 한 수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