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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람에게로 가는 예후 9:14~20
14 이에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가 요람을 배반하였으니 곧 요람이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아람의 왕 하사엘과 맞서서 길르앗 라못을 지키다가
15 아람의 왕 하사엘과 더불어 싸울 때에 아람 사람에게 부상한 것을 치료하려 하여 이스르엘로 돌아왔던 때라 예후가 이르되 너희 뜻에 합당하거든 한 사람이라도 이 성에서 도망하여 이스르엘에 알리러 가지 못하게 하라 하니라
16 예후가 병거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요람왕이 거기에 누워 있었음이라 유다의 왕 아하시야는 요람을 보러 내려왔더라
17 이스르엘 망대에 파수꾼 하나가 서 있더니 예후의 무리가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내가 한 무리를 보나이다 하니 요람이 이르되 한 사람을 말에 태워 보내어 맞이하여 평안하냐 묻게 하라 하는지라
18 한 사람이 말을 타고 가서 만나 이르되 왕의 말씀이 평안하냐 하시더이다 하매 예후가 이르되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내 뒤로 물러나라 하니라 파수꾼이 전하여 이르되 사자가 그들에게 갔으나 돌아오지 아니하나이다 하는지라
19 다시 한 사람을 말에 태워 보내었더니 그들에게 가서 이르되 왕의 말씀이 평안하냐 하시더이다 하매 예후가 이르되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내 뒤를 따르라 하더라
20 파수꾼이 또 전하여 이르되 그도 그들에게까지 갔으나 돌아오지 아니하고 그 병거 모는 것이 님시의 손자 예후가 모는 것같이 미치게 모나이다 하니
요람을 죽인 예후 9:21~26
21 요람이 이르되 메우라 하매 그의 병거를 메운지라 이스라엘 왕 요람과 유다 왕 아하시야가 각각 그의 병거를 타고 가서 예후를 맞을새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토지에서 만나매
22 요람이 예후를 보고 이르되 예후야 평안하냐 하니 대답하되 네 어머니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이 있으랴 하더라
23 요람이 곧 손을 돌이켜 도망하며 아하시야에게 이르되 아하시야여 반역이로다 하니
24 예후가 힘을 다하여 활을 당겨 요람의 두 팔 사이를 쏘니 화살이 그의 염통을 꿰뚫고 나오매 그가 병거 가운데에 엎드러진지라
25 예후가 그의 장관 빗갈에게 이르되 그 시체를 가져다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밭에 던지라 네가 기억하려니와 이전에 너와 내가 함께 타고 그의 아버지 아합을 좇았을 때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그의 일을 예언하셨느니라
26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제 나봇의 피와 그의 아들들의 피를 분명히 보았노라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기를 이 토지에서 네게 갚으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의 시체를 가져다가 이 밭에 던질지니라 하는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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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요람을 배반한 예후가 부상당한 요람을 만나러 이스르엘로 갑니다. 요람은 한 무리가 오는 것을 듣고 한 사람을 보내 평안하냐 묻게 하는데, 그 사람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요람과 아하시야가 예후의 반역을 알아채고 도망하나, 요람은 예후의 화살에 맞아 죽고 그 시체가 나봇의 토지에 던져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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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람에게로 가는 예후 9:14~20
이스르엘은 북 이스라엘 왕들이 거하던 겨울궁이 있던 곳입니다. 아람과의 전쟁으로 부상을 당한 요람은 이스르엘에 머물며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받은 예후는 반역을 철저히 감추고, 부상당한 요람에게로 갑니다. 예후와 함께하는 무리가 이스르엘에 가까이 오자 요람은 사람을 보내 아람과의 전황이 어떤지 알고자 “평안하냐”(히브리어로 ‘샬롬’)라고 묻습니다. 예후는 평안의 소식인지 아닌지 알 필요가 없으니 자신의 뒤로 물러나 가만히 있으라고 하며 요람이 보낸 사람을 돌려보내지 않습니다. 군대 장관이었던 예후는 이스르엘성에 들어갈 때까지 자신의 반란을 철저히 숨깁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계획을 철저히 수행할 강력한 인물로 이러한 예후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 더 깊은 묵상
반역에 성공하기 위해 예후는 어떤 조치를 취했나요?
하나님의 계획을 철저하게 수행하기 위해 내가 맡은 역할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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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람을 죽인 예후 9:21~26
요람과 아하시야는 의심 없이 예후를 맞으러 나갑니다. 그들은 예후가 아람 군대를 무찌르고 돌아오는 것으로 생각한 듯합니다. 요람이 예후를 만난 곳이 마침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 자리입니다. 그 장소는 하나님이 왜 예후를 왕으로 선택하시고 그에게 아합 가문의 사람을 모두 죽이라고 명하셨는지를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예후는 평안을 묻는 요람에게 이세벨의 죄를 언급하며 자신의 반역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도망하는 요람에게 화살을 쏘아 그의 심장을 꿰뚫습니다. 예후는 요람의 시체를 ‘나봇의 포도원’에 던지게 합니다. 이는 나봇과 그 아들들의 피를 갚으시는 하나님 심판의 성취입니다(왕상 21:19).
● 더 깊은 묵상
예후가 요람을 만난 ‘나봇의 포도원’은 어떤 장소인가요?
죄를 지은 그 자리에서 내가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이킬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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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추수하시는 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세상 돌아가는 형세를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실망하거나 때가 되기 전에 질서를 바로잡고자 독자적으로 행동하려는 유혹을 받기도 합니다. 사회 공동체에는 주님의 길을 따르는 선한 사람들의 고통이 있습니다. 그것은 악한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무질서, 폭력, 오만, 그릇된 생각으로 인해 생겨납니다. 어떤 때는 무성히 자라는 가라지 같은 악한 사람들을 모조리 뽑아서 다른 곳으로 옮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추수 때가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며, 낙심하지 말고 인내로 기다려야 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성취되기 때문입니다.
추수 때에 선한 사람들의 고통은 끝날 것이며, 악한 자들은 그들을 위해 마련되어 있는 운명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역사의 주인이자 심판자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으시고 그분의 목표를 향해 모든 것을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보호 아래 충성되고 선한 이들이 마르지 않고 한데 묶여 하늘 곳간에 쌓이게 될 것을 약속해 주십니다. 이 비밀을 모르면 초조해하고 성급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깊은 이해와 사랑과 성숙한 지혜가 필요합니다.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겠다”(롬 12:19, 새번역)라는 말씀을 항상 기억하십시오.
나의 앞날이 주께 있나이다 / 임영수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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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열왕기하 9장 24절
악인을 향한 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집행됩니다. 예후의 반역으로 아합 가문은 신속하게 종말을 맞습니다. 때늦은 후회보다 불행한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회개를 촉구하실 때는 지체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왕을 세우거나 폐하는 권한은 왕에게나 백성에게 있지 않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이 그분 주권으로 왕을 선택하시고 세우십니다. 이는 권력자가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선과 공의를 실천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죄의 결과는 대개 금방 나타나지 않고 한참 뒤에 알 수 있으나 마지막 심판에서는 반드시 밝히 드러난다. - 마이크 플린
오늘의 기도
하나님, 택하신 백성의 억울함을 잊지 않으시고 완벽히 갚아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위로와 힘이 됩니다. 지금은 악인이 더 잘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결국이 자명함을 깨닫고 말씀대로 행하게 하소서. 하나님 말씀을 선명히 듣고 그 계획에 과감히 동참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253 그 자비하신 주님)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25,26절 억울하게 죽은 나봇과 아들들의 피를 아합과 그 아들의 피로 갚으십니다. 나봇의 죽음은 오므리 왕조의 죄를 낱낱이 드러냅니다. 그들은 왕권을 사유화하고 율법을 무시하고 정의를 굽게 했습니다. 아합 가문의 죄를 심판하지 않고는 이스라엘을 회복하고 정의를 세울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간과하시는 분이 아니며, 억울한 자를 지나치시는 법이 없습니다.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14~16절 요람에게 닥친 위기는 아람의 칼이 아니라, 여호와의 심판의 칼입니다. 예후가 요람을 배반하고 이스르엘로 진격합니다. 그러나 이 위기는 아합 왕조가 자초한 일입니다. 그들이 탐욕과 기만으로 하나님 나라를 더럽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진짜 적은 악을 행한 그들 자신입니다. 더 크고 심각한 위기는 밖에서 오지 않고 안에서부터 시작됩니다.
17~20절 왕의 신복들이 반역에 가담하더니, 이제 전령들조차 돌아오지 않습니다. 힘으로 사람을 굴복시킬 수는 있지만 마음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불의한 권력을 유지하는 것은 오직 칼과 돈으로 쌓은 ‘힘’뿐입니다. 그 힘이 사라지면, 그 권력은 모래성처럼 순식간에 허물어지고 소멸합니다. 지도자가 옳은 길을 걸으면, 마음을 주며 함께 따르는 사람이 생길 것입니다.
21~24절 요람과 예후가 조우합니다. 왕과 반역자의 만남입니다. 그러나 나봇의 토지 위에서 두 사람의 지위는 역전됩니다. 예후는 심판의 집행자가 되고, 요람은 아합 왕조의 범죄 현장에 불려나온 죄인이 됩니다. 지금 내가 선 자리가 하나님 앞에서 판단 받는 증거의 현장이 될 것입니다.
17,19,22절 요람의 “평안하냐”는 물음에 나봇의 ‘평안 없음’이 생각납니다. 잠시도 평안을 얻지 못했던 백성들을 도외시한 채 자기 안전에 몰두하는 이기적인 왕의 모습도 겹칩니다. 남의 평화를 짓밟으면서, 자신은 평안하길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은 억울한 자의 편에 서시는 하나님과 맞서야 할 것입니다. 남을 평안케 하는 사람이 참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마태복음 5장 9절).
기도
공동체-정의를 행하며, 하나님의 평화를 이루는 자로 살게 하소서.
죄가 있는데 어떻게 평안이 있겠습니까? 하나님 없이 평안은 결코 없습니다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롬3:17~18)
평강의 길은 오직 주 여호와 하나님 안에만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렘6:16)
그러나 사람들은 이 평강의 길을 거절하고 세상의 평안을 구하다가, 요람처럼 갑자기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5:3)
그러나 우리는 주께로 가서 평안을 얻기 원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11:28~30)
북 이스라엘에서는 유일하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름 붓고 왕으로 부르심을 받은 이가 예후라는 인물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루실 공의의 심판의 도구로 선택되었습니다. 북 이스라엘 왕조의 흐름은 솔로몬을 이은 통일왕국의 르호보함에 대한 여로보암의 반역으로부터 시작하여 바아사, 시므리, 오므리의 반역으로 이어지는 모반의 역사였습니다.
그때까지 일부 그 통치에 대해 하나님의 예언이 있었지만, 선지자를 통해 기름 부음을 받아 세워진 자는 없었으며 오직 예후만이 예외적이었습니다. 그때는 이미 아합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이 예언되고도, 그가 죽고 나서 첫째 아들 아하시아 2년, 둘째 아들 여호람(요람) 12년 동안 징계는 미뤄졌습니다.
이세벨의 영향력 역시 그때까지 살아 있었고, 잠시 아합이 회개한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긍휼을 베푸셨지만 (왕상 21:17~29),
결국 그 집안의 죄악이 북 이스라엘과 남유다까지 계속 퍼져나가는 것을 관과 하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결코 굴복되거나 타협될 수 없고, 그분의 신실하신 언약은 회개한 자나, 돌이키지 않는 자에게나 동일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반드시 이뤄진다는 것을 기억하는 하루 되길 소망합니다.
선지자 엘리사의 메시지에 따라 기름부음 받은 예후는 최전방 길르앗 라못에서 아람 왕 하사엘의 공격 때문에 부상을 입고, 아버지 아합이 나봇을 죽이고 빼앗은 그 땅이 있는 이스르엘의 피신처에서 회복 중인 요람을 향해 달려갑니다. 파수병의 보고에 따라 두 차례나 보낸 전령은 평안의 메시지가 무안하게 모두 예후의 편이 되어 버리고, 결국 요람은 그의 전차를 타고 부상당한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부터 찾아온 유다 왕 아하시야와 동행하여 예후를 만나게 됩니다.
평안을 묻는 요람 왕에게 죄악에 대한 심판만이 남아 있음을 선포하고, 활을 쏘아 그의 가슴을 뚫어 죽인 뒤, 아합 왕을 도우며 예후와 함께 전장에서 싸우던 전차 사령관 빗갈에게 명하여 예언대로 나봇의 땅에 던져지게 합니다.
죄악 가운데 행하던 예후와 같은 자에게도 이스라엘의 징계를 위한 도구로 세우심을 묵상하며, 죄 없는 자,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 가운데 육신 가운데 보내셔서,
의의 심판 대신 은혜의 용서와 죄 사함의 기쁜 소식을 먼저 선포하게 하시고, 다시 오실 때까지 그 징계를 미루고 평강을 주시며, 그 긍휼히 여기시기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그분의 놀라운 사랑을 대비하게 됩니다. 날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좀 먹는 악한 것들을 성령의 불로 태우고, 믿음의 유산을 받은 자로서 세상 가운데 소금과 빛으로 쓰임 받는 주님의 거룩한 제자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거룩한 배반[개혁]의 사람 예후 [9:14]
반백년 동안 막강 권력을 휘둘렀던 아합의 집을 송두리채 뒤집어 놓고 새 역사를 쓰게되는 이 사람 "예후"라는 인물은 어떤 사람인가.(?)
물론 이 사람에 대해서는 여러 각도에서 접근하며 쓸만한 이야기가 많겠지만 하나님의 나라로서 이스라엘을 우상숭배의 길로 몰아넣은 오므라 왕가를 심판하고 역사의 물줄기 바로 돌려놓은 개혁가 "예후"의 관점에서 생각해보게 된다.
예후가 그의 장관 빗갈에게 이르되 그 시체를 가져다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밭에 던지라 네가 기억하려니와 이전에 너와 내가 함께 타고 그의 아버지 아합을 좇았을 때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그의 일을 예언하셨느니라[9:25]
아합과 아합의 그의 아들 대에 이르기까지 두 대에 걸쳐 악의 가담자가 되어 좇았던 자신을 반성하며 자신의 부관 빗갈에게 하는 말 속에서 그의 반성과 새로운 결단을 보며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의 준행자가 되고 있는 변화를 본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대의와 명분을 붙잡는 사람 [9:26]
예후가 아무리 강심장의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왜 그가 자기 주군을 향해 반기를 드는 일에 두려움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그로 하여금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대의적 명분을 갖게 하고 용기를 내어 과감히 일어서게 한 것은 그가 엘리사가 보낸 제자가 전달해준 말씀과 또 이전에 그가 아합의 부하로 있었을 때 자신의 귀로 들었던 엘리야의 심판 메시지를 기억했기 때문이다.
예후가 그의 장관 빗갈에게 이르되 그 시체를 가져다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밭에 던지라 네가 기억하려니와 이전에 너와 내가 함께 타고 그의 아버지 아합을 좇았을 때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그의 일을 예언하셨느니라[9:25]
예후는 엘리사의 예언을 전해 듣고 기름부음을 받아 쿠데타의 정당성을 얻었고 엘리야가 예언한 오므리 왕조의 심판자로 행동한다.
중요한 것은 예후의 인격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믿거나 말거나, 인정하거나 않거나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도 이와 같을 것이다.
예수님은 그것을 소돔과 고모라 성이 유황불에 멸망하던 롯의 때, 홍수로 심판받던 노아의 때로 비유를 하시는데 그 순간까지 사람들은 사고 팔고 먹고 마시고 집짓고 장가가고 시집가며
정신없이 살다 갑작스럽게 만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때를 잘 분별하고 준비해야만 한다.
우리는 헛된 평안을 구하고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할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진정한 평안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에 순종하는데서 온다는 것을 다시 확신합니다.
오늘의 말씀요약
예후가 부상당한 요람 왕을 만나러 이스르엘로 갑니다. 요람은 한 무리가 옴을 듣고 사자를 보내 평안하냐고 묻지만,
사자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요람과 아하시야가 예후의 반역을 알아채고 도망하나,
요람은 예후의 활에 맞아 죽고 그 시체는 나봇의 토지에 던져집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예후의 반역(9:14~20)
사명을 이루기 위해 추진력과 지혜를 갖추고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뜻에 따라 기름 부음을 받은 예후는 나라를 새롭게 할 사명을 이루기 위해 먼저 모반이 알려지지 않도록입단속을 합니다. 거사 시점은 이스라엘 왕 요람이 요양하기 위해 이스르엘 별장에 머물고, 유다 왕 아하시야가 병문안하러 요람을 찾아온 때로 잡습니다. 아합 가문을 단번에 심판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손수 병거를 이끌고 열정적으로 달려오는 예후에게 요람이 전령을 보냅니다. 그런데 전령마다 예후의 대의명분과단호함에 압도된 듯 그의 부하가 됩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사람 편에 서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뜻을 좇아 주도면밀하게, 전략적으로, 열정을 쏟아 하나님의 일을 행해야 합니다.
- 묵상 질문: 예후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는 리더십은 어떤 것인가요?
- 적용 질문: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오늘 나는 삶의 현장에서 리더십과 열정을 어떻게 발휘할 수 있을까요?
요람의 죽음(9:21~26)
사람들이 연약한 이웃을 자기 이익의 수단으로 삼는 것을 하나님은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과거에 이세벨이 나봇을 죽이고 아합이 그의 포도원을 빼앗았을 때 엘리야는 아합 가문에 대한
저주를 선포했습니다(왕상 21장). 이후 아합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 지연되었던 심판은
그의 아들 요람 때에 성취됩니다. 그러나 요람이 아무 잘못 없이 아버지의 죗값을 대신 치르고 죽은 것은 아닙니다. 요람 역시 이세벨의 영향을 받아 아합 못지않게 악을 자행했습니다. 약자의 것을 부당하게 빼앗고,
영적 음행 곧 우상 숭배에 빠져 끝없이 죄짓는 이들을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응징하십니다. 죄가 가득한 곳에는
평안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뿌리내린 자리에는 참된 평안이 꽃핍니다.
- 묵상 질문: 예후는 요람의 죽음을 어떻게 해석하나요?
- 적용 질문: 평안이 없는 공동체(가정, 학교, 직장,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오늘의 기도
가정과 일터와 교회에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저는 어떤 모습으로 있었는지 돌아봅니다.
주님을 향한 열정으로 저를 새롭게 채우셔서 무엇이든
오직 주님 뜻을 위해 지혜롭게 선택하고 담대하게 행동하게 하소서.
무너진 아합왕가(14-26절)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큰 번영을 이루었던 오므리왕조는 6-9대까지 왕위를 차지하고 막을 내립니다. 약 45년간의 통치를 마무리하게 됩니다. 어느 때나 동일하듯이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 한 마디도 떨어지지 않도록 하십니다.
오므리왕가는 자신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자신들을 위하여 잘못 사용하였습니다. 우상을 숭배하고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였습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귀한 역할을 그릇되게 사용하다가 예후에 의하여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일을 할 사람들을 세우십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청지기 사명을 가지고 소중하게 여기고 감사하며 행하여야 합니다. 맡은 일을 자신의 욕심에 이끌려 사는 사람은 결코 가만두지 않으시는 분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내게 맡겨진 일을 청지기 사명으로 잘 감당하고 있는가?
예후는 자기 부관 빋갈에게
`너는 이 시체를 나봇의 밭에 던져라. 너도 기억하겠지만 너와 내가 마차를 타고 저 사람의 아버지 아합왕의 뒤를 따라갈 때 여호와께서 나는 어제 나봇과 그의 아들들이 살해당하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하셨고 또 나는 네가 이 밭에서 그 댓가를 반드시 치르도록 하겠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너는 여호와의 말씀대로 저 시체를 이 밭에 던져라.'라고 말합니다.
요람에게 닥친 위기는 아람의 칼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대적한 하나님이 그의 원수요, 심판의 칼입니다. 예후가 요람을 배반하고 이스르엘로 진격한 것은 아합 왕조가 자초한 일입니다. 그들이 탐욕과 기만으로 하나님 나라를 더럽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진짜 적은 악을 행한 그들 자신입니다. 더 크고 심각한 위기는 밖에서 오지 않고 안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억울하게 죽은 나봇과 아들들의 피를 아합과 그 아들의 피로 갚으십니다. 나봇의 죽음은 오므리 왕조의 죄를 낱낱이 드러냅니다. 그들은 왕권을 사유화하고 율법을 무시하고 정의를 굽게 했습니다. 아합 가문의 죄를 심판하지 않고는 이스라엘을 회복하고 정의를 세울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간과하시는 분이 아니며, 억울한 자를 지나치시는 법이 없습니다.
기도-정의를 행하며, 하나님의 평화를 이루는 자로 살게 하소서.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우리의 인생을 돌아 보시고
그 죄악과 심판의 순간에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놀라우신 아버지의 손길을 굳게 붙을 길 소망합니다.
이 땅 가운데 연약한 육신으로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게 감당하시므로 구원의 문을 여시고 부활의 능력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더 알고 쫓아가는 복된 인생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가정과 사역위에 기름 부어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아버지께서 풍성하게 채워 공급하여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모든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회복과 치유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아버지의 놀라우신 사랑을 붙들고,
그 전능자의 은혜의 날개 아래 거하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