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칼럼] 강화길의 단편 가원(佳園)에서 보는 여성의 위대한 힘
민병식
강화길(1986 - )작가는 201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방’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대표작으로 소설집 ‘괜찮은 사람’, '화이트 호스' 등과 장편소설 ‘다른 사람’ 등이 있다. 한겨레문학상, 구상문학상 젊은작가상, 2017년 젊은작가상, 2020년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했다.
사진 네이버
그녀의 단편 소설 가원(佳園)은 2020년 출간된 단편 소설집 화이트 호스에 두 번 째로 실린 작품이다. 치과 개원을 앞두고 있는 화자는 엄마로부터 할머니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는다. 할머니를 찾던 화자는 문득 어렸을 때 살던 가원을 떠올리고 그쪽으로 차를 몬다. 그곳에서 할머니는 한 여름 원피스를 입고 발견된다. 계절이한 겨울인데 말이다.
화자인 나는 치과의사이다. 할아버지 박원보 씨를 좋아하고, 할머니를 싫어한다. 할아버지 박원보씨는 음악의 길을 걷는 멋진 예술가 같지만, 사실 집에서 만화책 보고 담배 피우는 게 일인 한량이다. 반면 할머니는 매우 부지런한 사람이다. 사람을 밥값을 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으로 구분한다. 당연히 박원보는 밥값을 못하는 사람이니 그와 사이가 좋지 않다. 화자는 외조부모님의 손에 자랐고, 박원보와 할머니는 정말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각자의 스타일로 나를 대한다.
화자의 외할아버지 ‘박원보’는 유명한 서예가 ‘석당’ 선생의 아들로 음악의 심취해 사는 사람이다. 첫 단독 공연 때 할머니를 만나 결혼했다. 할아버지는 화자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인물이다. 유치원 버스에서 내리면 늘 기다리고 있다가 장난을 쳐주고 정원에 앉아 하모니카를 불어주고 기타를 쳐주는 따뜻함, 드래곤 볼 같은 만화책을 보여주거나, 담배연기로 도넛을 만드는 등 주인공을 즐겁게 해준다.
할아버지와는 반대로 할머니는 정말 무뚝뚝하고 무섭다. 밥 값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늘 입에 달고 살고 생필품은 무조건 아끼고 생리대는 축축해 질 때까지 써야 한다고 가르친다. 할머니는 늦은 저녁까지 화장품 방문 판매를 하며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데 공부를 위해서라면 체벌도 마다하지 않는다. 옷걸이로 팔뚝을 때려가며 구구단을 외우게 하고 독서실에서 일찍 돌아오는 날이면 돈 아까운 줄 모른다고 화를 낸다. 화자가 전교 일등을 하더라고 칭찬 한마디 업이 ‘유지해’라고 딱 한 마디를 건넨다.
할아버지는 화자가 17세경 돌아가신다. 가원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신혼 생활을 지내고 화자의 어머니가 유년시절을 보낸 곳으로 ‘석당’ 선생이 할아버지에게 남긴 유산이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가원을 팔아 신축아파트로 이사를 가려는 기대에 들뜨지만 할아버지 박원보가 투자사기를 당해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는 이혼한 화자의 아버지에게 연락하고 엄마의 명의로 대출까지 받는다. 투자사기 사건 한 달 후 할아버지가 화자의 고등학교 앞으로 화자를 데릴러 오고 가원으로 데려가 도너츠 연기를 보여준다. 그 후 화자는 가방에 있던 학원비 30만원이 없어진 것을 알게 된다. 그 후 할아버지는 투자회사에서 행패를 부리다 결국 차에 뛰어들어 투신을 했다는 소식을 경찰로부터 전해 듣는다.
왜 할머니는 가원에서 발견되었을까. 할머니는 가원을 싫어했다. 제사 때나 명절 때만 그 집을 찾았다. 그런데 왜 그곳에서 할머니는 한 여름 원피스를 입고 있었을까. 치매 증상이 와서 찾아간 곳이 이제는 화자의 눈에도 변해버린 폐허만 남은 가원이라는 것은 할아버지를 전혀 미워하지 않고 좋은 모습으로만 기억하는 화자의 ‘노스탤지어’에 대해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한다. 할아버지가 유산으로 받은 아름다운 정원이었지만 그것은 화자의 할머니와 어머니에게도 소중한 곳이었다. 할아버지를 늘 좋은 모습으로만 기억하는 화자에게 할아버지는 가원을 잃게 한 집안을 망친 주범이라며 화자가 기억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좋은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여성으로써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평생을 아프게 살아간 할머니가 가원에서의 치매 증상을 보이며 누워있는 모습을 통해 통해 끝까지 집안을 유지하고 일으키려던 한 여성의 슬픈 삶과 한을 표현하려고 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하나는 알고 있다. 무엇이 진실이든, 그녀가 온종일 일했기 때문에, 택시를 타지 않고 걸어 다녔기 때문에, 내게 윽박지르고 몰아붙였기 때문에, 때리고 실망하고, "유지해"라고 말했기 때문에, 나는 이 동네를 떠날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게 되었다. 누군가를 돕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것으로 밥값을 하게 되었다. 박윤보와 같은 남자들을 만나고 얼마든지 그들을 떠나고 다시 만나고 잊었다. 그런 사람으로 자랐다. 나만은 그런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살게 되었다. 살고 있다.'
작품 속 이 문장은 이 시대를 온 몸으로 부딪치며 힘겹게 살아온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의 모습과 이 시대를 당당히 살아가는 여성으로 우뚝 선 화자의 모습을 표현했다고 보여져 이 작품의 주제의식을 선명히 드러내는 구절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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