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바로크 시대의 작품들은 화려했던 왕정시대를 반영하는 우아한 곡들이 많습니다만 이 음악은 매우 소박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기도 하거니와 내용상으로도 바로크 궁정의 화려함 보다는 작곡자인 쿠프랭의 신앙심을 읽을 수 있는 영적인 음악이라 하겠습니다.
실제 이곡은 궁정의 음악으로 작곡된 것이 아니라 수도원의 기도를 위한 음악으로 작곡된 것이며, 쿠프랭은 이 작품을 작곡하기 이전에 수도원의 수녀들을 위해 샤르팡티에가 작곡한 9개의 Lecon에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Tenebre란 부활절 전후의 마지막 3일간 행하는 그리스도 수난 기념의 朝課 및 찬미가를 말하며, 여기서의 Lesson의 의미는 "아침, 저녁 기도 때 읽는 성서의 일부분"을 말합니다. 즉 "부활절 기도를 위한 찬미가"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이 곡은 종교음악이라는 선입견을 버려도 곡 자체 만으로도 너무나 아름다워 마치 천상의 음악을 듣는 듯 합니다만... 탄탄한 원곡의 구조적인 면을 살펴 보며 감상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몇자 올려 봅니다. 이 곡은 3개의 Lecon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는 선지자 예레미아가 남긴 통렬한 예언에서 그리스도의 수난까지의 과정을 읆조리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번째 Lecon은 전통적인 헤브리 알파벳에 의거한 순서로 첫 어구를 시작하고 있으며 각 Lecon의 종결부에는 반드시 아래의 구절을 삽입하여 종지를 짓고 있습니다.
"Jerusalem, convertare ad Dominum Deum tuum(=Jerusalem, turn to the Lord your God)." 쿠프랭은 각 라틴어 텍스트의 기도문 구절을 몇개의 작은 구절들로 나누어 각 구절들을 프랑스 바로크 음악에서는 보기 드문 이탈리아식의 강렬한 선율적인 노래와 이에 대조되는 서창을 배치하는 형식(소위 arioso-recitative form)에 대입함으로써 곡의 호소력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처음 두 Lecon은 솔로 보칼로 노래되며 세번째 lecon에 이르러 보컬 듀엣으로 바뀌게 되는데 이는 예배 중에 서서히 촛불을 끄고 어두워지는 조명(그리스도의 죽음을 상징하는 의식)을 고려한 것으로 각 보칼은 프랑스 바로크 특유의 섬세한 장식음 처리를 통해 통렬하고 애절한 느낌을 효과적으로 이끌어 나가고 있습니다.
이와는 매우 대조적으로 3곡의 Lecon이 끝나고 곧 이어지는 부활절 Motet인 "Victoria"에 이르면 그동안의 수난이 끝나고 그리스도가 영광스럽게 부활하는 모습을 두명의 보컬에 의해 그야말로 희열에 찬 목소리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호그우드의 잔잔한 챔버 오르간 반주에 맞춰 Judith Nelson과 Emma Kirkby 두 소프라노가 들려주는 목소리는 정말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의 빅토리아의 이중창은 그야말로 압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