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부자의 원류는 서부 경남의 남강이다. 라고 말들을 한다.
의령으로 가는 관문엔 남강이 흐른다.
남강(南江)은 지리산에서 발원하는 덕천강과
덕유산에서 발원하는 경호강이 진주에서 만나 흘러서,
창녕 남지읍에서 낙동강 본류와 합류한다.
* 남강은 지리산과 이 지역의 중심 도시인 진주의 옛 관아가 있던
진주성의 남쪽으로 흘러서 얻은 이름이며
* 낙동강은 고대 사벌국 도읍지(경북 상주) 이름인
낙양의 동쪽으로 흐르는 강이라 붙은 이름이다.
이 남강에는 정암(鼎岩: 솥바위)이라는
기묘한 바위가 하나 솟아 있는데,
세인들은 이 바위를 부자바위라고 부른다.
솥(鼎)은 발이 세 개라 숫자 3을 뜻하기도 한다.
이곳은 옛 정암진 나룻터로
임진왜란 때 홍의장군 곽재우가 왜병을 섬멸시킨
정암진 전투 승첩 지로 의병장 곽재우 동상과 강 언덕엔 정암루가
있다.
예전에 이곳을 지나던 한 도인이 예언을했다.
남강 물속에 정암의 다리가 뻗은
세 방향 20리 부근에서 세 부자가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말이 구전되어 오고 있었다.
※ 그 삼부자(三富者)는
삼성 창업주 湖巖 이병철, LG의 蓮庵 구인회,
효성그룹 晩愚 조홍제라고 세인들은 말한다.
◇이병철(삼성그룹)
湖巖 이병철 회장은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에서 경주 이씨의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옛날에는 부자를 천석군, 만석군이라고 불렀다.
(천석 이상은 임금 군자를 쓰고
이하는 지기라고 했다ㅡ예, 오백석 지기)
연 소득 1,000석(섬)을 거두려면
경작지가 500마지기(10만평)는 돼야 한다.
유교와 농경사회에서는 장남은 고향에서 가업을 지키고,
차남이나 막내가 밖으로 나가 출세를 하거나 사업을 일으켰다.
남강이 멀지 않은 작은 농촌 마을에서 태어난 호암은
일본 유학을 통해 선진문물에 눈을 뜨고,
농업 소출을 자본으로 마산에서 합동정미소를 시작으로
1938년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운영하며 무역업으로 뻗어 나갔다.
◇구인회( LG)
LG는 럭키(Lucky) 금성(Gold Star)의 약자다.
蓮庵 구인회 회장은 능성 구씨로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에서 태어나,
1931년 진주 중앙시장에서 구인회 상점 (포목점)을 했다.
그때 번 자본과 같은 마을 사돈인
만석꾼 曉洲 허만정(김해 허씨, 진주여고 설립자)과
합작으로 부산에서 1947년 럭키 화학 (화장품)으로 출발한다.
그때는 고무신도 나오기 전 짚신을 신었는데,
그것마저 아까워 들고 맨발로 다니다가
사람들 앞에 나갈 때 신었단다.
또 담배는 두 종류를 갖고 다니다가
손님에게는 비싼 것을, 본인은 싼 것을 피우며
오직 근검절약으로 부를 쌓았다.
동업을 하던 구씨(LG)와 허씨(GS)는
2005년 매출액 6:4 비율로, 두 그룹으로 분리되었다.
조홍제( 효성그룹)
晩愚 조홍제 회장은 함안 조씨로
출생지 함안군 군북면 동촌리는 이병철 생가와 멀지 않았다.
만우 부친은 사천 석군 이었으나 만우가 금융조합을 하면서
만석 군이 되었다.
만우는 이병철의 형과 동갑으로 이병철 회장이 무역업을 할 때,
800만 원을 빌려주고 뒤에 200만 원을 더 투자해
삼성물산 부회장으로 동업을 시작했다.
1957년 56세에 동업을 청산하고
효성 물산을 세워 한국타이어, 동양 나이론, 효성중공업 등으로
70년대엔 한국 5대그룹이 되기도 했다.
※ 그 외 진주지역 기업인
김삼만: 대동공업 (경운기.트랙터)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 농기구 회사
강병중: 넥센 타이어(前 흥아 우성 타이어)와 프로 야구 넥션 히어로즈 구단주
한때 명성을 떨치다가 사라진 한보그룹의 정태수 회장도 진주 출신이었다.
※ 또 의령군 용덕면 정동리 출신 한국의 기부왕 삼영화학 冠廷 이종환 회장이 있다.
삼영화학은 포장용 필름(식품.과자.라면.음료 용기) 등 합성수지 회사이다.
이 분은 8,000억 원을 투입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장학재단을 설립했으며,
300억 원을 들여 서울대 제2 도서관인 관정도서관을 지어준 분이다.
* 진주시 지수면 지수초등학교는
삼성, LG, 효성의 창업주들과 LG 허정구 공동 창업주가 수학한 학교로
대기업 사장들을 60여 명이나 배출한 학교로 유명하다.
지수초등학교는 만석군 허씨 집안에서 땅을 기부해 1921년에 개교한 학교로,
인근에 신식 교육기관이 없어 그분들은 이 학교에 다녔다.
이 학교는 한때 입학생이 적어 폐교 위기에 몰렸으나,
이 학교 13회 졸업생이며 교사로 근무한 구자경 LG회장이,
체육관을 건립하고 특별 장학금으로 학생들을 모집해 폐교 위기를 넘겼다.
남강 주변에서 태어난 부호들은 농업자본이 상업자본을 거쳐
산업자본으로 발전하는 한국 시장경제의 원류라고 할 수 있다.
천년 고도 진주는 대학이 6개나 있는 오랜 전통의 교육도시며
신식 교육의 요람으로, 이들 재벌 탄생의 산실이 되었다.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무리수도 있었겠지만,
이분들은 이웃을 돕고 학교를 세우며 독립자금을 희사하기도 했다.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쓰신 분들이다.
근검절약하면 소부(小富)는 될 수 있다.
그러나 거부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 나아간 선구자들이다.
남강의 이 솥 바위 (부자바위)는 지금도 치성을 드리고
기(氣)를 받으면 소원성취를 한다는 속설로,
많은 사람들이 입시나 창업을 앞두고 찾아와 기원을한다.
인근에서는 당일, 1박 2일이면 전국 어디서나 이 부자마을을 방문할 수 있다.
여행사에서는 부자 기(氣) 받기 투어도 있단다
진주 남강
호암 이병철선생 생가(湖嚴 李秉喆 先生 生家)
[생몰년] 1910 년~ 1987년 / 壽77歲
[소재지]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 호암길 22-4(중교리 723)
삼성그룹의 창업자 호암 이병철(1910년~1987년) 선생께서 태어난 집이다.
1851년 호암선생의 조부(祖父) 문산(文山) 이홍석(李洪錫)깨서 578평의 대지위에 전통 한옥양식으로 손수 지었으며, 호암선생은 이곳에서 태어난 후 결혼하여 분가 하기전 까지를 이집에서 보냈다.
첫댓글 여러 부자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