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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7. 11 새벽예배]
https://www.youtube.com/live/6DhFAHl-uhk?si=K0ZwqvQ0uEp4-49X
아하시야의 죽음 9:27~29
27 유다의 왕 아하시야가 이를 보고 정원의 정자 길로 도망하니 예후가 그 뒤를 쫓아가며 이르되 그도 병거 가운데서 죽이라 하매 이블르암 가까운 구르 비탈에서 치니 그가 므깃도까지 도망하여 거기서 죽은지라
28 그의 신복들이 그를 병거에 싣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다윗성에서 그들의 조상들과 함께 그의 묘실에 장사하니라
29 아합의 아들 요람의 제십일년에 아하시야가 유다 왕이 되었었더라
이세벨의 죽음 9:30~37
30 예후가 이스르엘에 오니 이세벨이 듣고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고 창에서 바라보다가 31 예후가 문에 들어오매 이르되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평안하냐 하니
32 예후가 얼굴을 들어 창을 향하고 이르되 내 편이 될 자가 누구냐 누구냐 하니 두어 내시가 예후를 내다보는지라
33 이르되 그를 내려 던지라 하니 내려 던지매 그의 피가 담과 말에게 튀더라 예후가 그의 시체를 밟으니라
34 예후가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이르되 가서 이 저주받은 여자를 찾아 장사하라 그는 왕의 딸이니라 하매
35 가서 장사하려 한즉 그 두골과 발과 그의 손 외에는 찾지 못한지라
36 돌아와서 전하니 예후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그 종 디셉 사람 엘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라 이르시기를 이스르엘 토지에서 개들이 이세벨의 살을 먹을지라
37 그 시체가 이스르엘 토지에서 거름같이 밭에 있으리니 이것이 이세벨이라고 가리켜 말하지 못하게 되리라 하셨느니라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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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유다 왕 아하시야가 요람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나 예후의 추격을 받아 므깃도에서 죽습니다. 치장을 하고 예후를 맞이한 이세벨은 내시들에 의해 창밖으로 던져져 죽습니다. 장사하려 그의 시체를 찾으나 두골과 발, 손밖에 없습니다. 이는 엘리야를 통해 하신 하나님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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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시야의 죽음 9:27~29
아합 가문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이어집니다. 요람을 죽인 예후는 요람을 문병하러 왔던 유다 왕 아하시야도 죽입니다. 아하시야는 아합의 딸 아달랴의 아들이기에 아합의 혈통에 속합니다. 예후는 아합 가문의 남자를 진멸하는 과정에서 아하시야까지 죽이지만, 아하시야는 다윗의 혈통에 속하기도 하기에 그의 시신이 다윗성에 묻힙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악한 아합과 교제하며 아합의 길을 따른 유다 왕실의 죄도 심판하십니다.
● 더 깊은 묵상
아합 가문의 심판 중에 아하시야가 죽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심판 자리에 함께 있지 않도록 내가 경계할 죄악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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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벨의 죽음 9:30~37
예후는 이세벨을 죽이기 위해 이스르엘로 진격합니다. 이세벨은 태후로서의 위엄을 보이기 위해 화장과 치장을 하고 높은 곳에서 예후와 맞섭니다. 예후는 그런 이세벨을 무시한 채 얼굴을 보인 내시에게 이세벨을 내려 던지라고 명합니다. 결국 이세벨은 자신을 섬기던 내시의 손에 던져져 비참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한 자에게 어울리는 죽음입니다. 예후는 이세벨의 시체를 밟은 후 그대로 들어가 축하 잔치를 벌입니다. 시체를 버려둠으로써 백성에게 심판받은 자의 비참한 모습을 보여 주려 한 것입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후 예후는 이세벨을 장사 지내라고 허락하지만, 그 시신은 이미 짐승들에게 훼손되고 유실되어 머리와 발과 손만 남았습니다. 이세벨은 죽은 후 시신이 안장되지도 못하는 저주를 받습니다. 예후는 이세벨의 최후가 하나님 말씀의 성취라고 말합니다(36~37절; 왕상 21:23~24). 악인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비록 더딜지라도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 더 깊은 묵상
하나님을 대적한 이세벨의 최후는 어떠했나요?
하나님이 당장 심판하지 않으신다고 계속 악의 길로 행하는 사람은 결국 어떻게 될까요?
한절묵상:열왕기하 9장 36~37절
악한 이세벨은 실로 비참한 죽음을 맞습니다. 하나님의 거듭된 경고를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죄인을 향한 하나님 뜻은 그의 멸망이 아니라 돌이킴과 구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심판 전에 거듭 경고의 말씀을 전하십니다. 하나님이 경고하실 때 즉각 돌이키는 것이 지혜요, 살길입니다. 회개하고 돌이키는 죄인은 긍휼을 얻지만, 완고함으로 경고를 무시하는 죄인은 반드시 참혹한 결말을 맞이합니다.
누군가가 죄에 사로잡히면 일단 그는 하나님과 어긋나게 되고, 세상 모두와 어긋난다. - 오즈월드 체임버스
오늘의 기도
하나님,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인의 삶을 하나님이 얼마나 미워하시는지 봅니다. 제 심령을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셔서 말씀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죄에서 속히 돌이키게 하소서. 하나님이 세우신 자리에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믿음을 세워 가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
(새 290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36,37절 엘리야를 통해 예언하신 말씀(열왕기상 21장 23절)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이세벨을 개들의 먹이로 삼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벌은 예고한 것보다 더욱 잔인하게 성취됩니다. 그의 몸은 성벽에 부딪히며 땅에 곤두박질쳤고, 말과 병거들이 짓밟고 개들이 먹어 치웠습니다. 하나님의 분노가 그의 몸에 쏟아졌습니다. 분노가 그처럼 큰 것은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만큼 컸기 때문입니다.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27~29절 아하시야가 비참한 죽음을 맞습니다. 그는 유다 왕이었지만 아합의 딸이자 어머니였던 아달랴의 영향 아래 아합 왕조의 일원이 되었고, 그들의 배교 행위에 가담했습니다. 아하시야는 다윗의 자손이기보다, 아합의 손자가 되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 결과 아합 왕조가 멸망할 때, 그 땅에서 함께 소멸합니다. 악한 자와 거리를 두지 않고 악에 참여한 결과입니다. 죄의 세력과 연대한 손을 거두어 들이지 않으면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30,31절 이세벨은 예후가 찾아오자 이미 각오했다는 듯 초연히 화장을 하고 머리를 꾸밉니다. 그는 예후를 향해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라고 부르며 조롱합니다. ‘시므리’는 역모로 왕이 된 후 칠 일 만에 오므리에게 죽임을 당한 이스라엘 군대의 지휘관입니다(열왕기상 16장 8~18절). 그처럼 예후의 모반도 ‘칠일천하’가 될 것이라고 저주하는 것입니다. 온 이스라엘을 우상의 소굴로 만든 주범이면서도, 여전히 오만하고 굽힐 줄 모르는 악인입니다. 곱게 얼굴을 단장하고 머리를 빗었지만, 내면의 추악한 형상을 감출 수는 없습니다.
32~37절 이세벨은 가장 비참한 최후를 맞습니다. 수종 들던 측근들이 그를 들어 창밖으로 내던집니다. 그리고 그의 몸뚱이는 개들의 먹이가 됩니다. 이로써 하나님 나라를 혼란과 부패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던 장본인이 제거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기에 불의한 권세는 반드시 심판 받습니다. 가장 높은 곳에 자리를 잡지만, 가장 낮은 곳까지 추락할 것입니다.
기도
공동체-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눈앞의 악에 굴복하지 않게 하소서.
우상 숭배 죄악의 조장자이며 원흉인 이세벨은
두 왕을 처단하고 지금 자신을 처단하러 온
야후의 칼날이 지금 자신을 향하고 있는데도
요란한 화장으로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다가
졸지에 창밖으로 던져져서
몸의 오장육부가 터져 나오고 피투성이가 되어 죽었으니
과연 엘리야의 예언처럼 저주 받은 자의 죽음이 되었다.
나도 언제가는 이 세상을 작별하고
주님께 부름 받아갈 그 날에
나는 나의 최후를 어떤 모습으로 남기고 갈 것인지
내 죽는 날의 초상을 미리부터 생각하며 기도하게 된다.
나는 오늘의 말씀에서 보여주는 여호람이나 아하시야 처럼
그들이 천하를 호령했던 왕들 이었어도
하나님의 심판에 바람같이 날리는 검불처럼 되어서
좇기는 자와 도망자가 되어서 비참하게 죽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이세벨처럼 자신의 최후가 목전에 이르렀는데도
자신의 살아온 날에 대한 아무런 후회나 반성도 없이
여전히 자신이 살아왔던 지난날들처럼
음행과 술수의 눈을 그리며 머리를 꾸미다가
창밖으로 내던져 시체도 수습하지 못하는
저주받은 자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기를 기도한다.
사도 바울이
임종에 가까이 이르러했던 고백으로써
말로 다할 수 없는 영원한 행복의 시간으로 들어가는
문턱으로서 죽음의 시간을 맞이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어 있음으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나뿐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말씀을 무시하며 내 마음대로 사는 데도 그대로 내버려 두시는 일이
어쩌면 가장 무서운 징계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길을 가는 날들을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요람을 죽이고 북 이스라엘의 권력을 실질적으로 장악한 예후는 아합의 딸과 결혼하여 그와 연합한 여호사밧의 아들, 유다왕 아하시야까지 좇아가서 공격함으로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이후에 그는 이스르엘에 있는 아합의 아내 이세벨을 향해 돌아갑니다. 이세벨은 시돈의 왕 엣바알의 딸로 북이스라엘을 바알 우상으로 물들게 한 사람이며, 잔인하게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이스르엘 포도원의 주인 나봇을 죽이고 자신의 탐욕을 이루기 위해 살아왔던 하나님의 대적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엘리야까지 죽이려고 위협하였는데, 그 엘리야의 입술을 통해(왕상 21:22-24) 그녀의 마지막이 예언되기도 했습니다. 예후는 평생을 그녀를 섬겨왔을 내시들을 배신하도록 선동하여 그녀를 창밖으로 내던지게 하고, 이미 죽은 그녀를 발로 짓밟았으며, 엘리야의 예언대로 개들이 그녀의 살을 먹음으로 그 해골과 발과 손바닥만 남아 아무도 그녀를 알아볼 수 없는 형체가 되어 밭의 거름이 되어버리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심판은 이미 예언되었으나 아합의 가문이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는 시간은 14년이나 미뤄진 것이었지만, 패역한 인생은 자신의 어리석음과 한계를 끝까지 깨닫지 못함을 보게 합니다.
우리 인생 가운데, 지금 이 시대에도 그 이세벨은 언제나 악한 것으로 유혹하는 다양한 세상적 우상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세벨을 피해 다녀봐야 더 강한 이세벨을 만날 뿐입니다.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는 포탄이 떨어지고, 재해로 신음하고, 분노와 미움, 다툼과 살인, 동성애와 퇴폐 향락으로 가득합니다.
때로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이 계신 것 같지 않고, 계시다고 하더라도 그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세상이 되어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그 이세벨을 당장에도 제거하고 불태울 수 있으나, 아합과 같은 하나님을 알고 경외할 수 있는 이들이 회개하여 그 중심이 돌아오고,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할 수 있도록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헤세드의 사랑을 여전히 드러내고 계십니다.
세상이 악할 수록 선하신 하나님의 그 선함이 더 드러나고, 인간을 향한 사탄의 유혹이 더 다양하고, 집요할 수록 우리를 향해 포기하지 않으시는 그 사랑은 더 커지고 그 은혜는 더 넓게 퍼집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진리와 공의를 드러내고, 맡겨주신 이들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담대한 증인으로 살아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의 말씀요약
아하시야가 요람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나 예후의 추격을 받아 므깃도에서 죽습니다.
치장을 하고 예후를 맞이한 이세벨은 내시들에 의해 창밖으로 던져져 죽습니다.
장사하려 그의 시체를 찾으나 두골과 발, 손밖에 없습니다. 엘리야를 통해 하신 여호와의 말씀이 이뤄진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아하시야의 죽음(9:27~29)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거나 죄인의 길에 서지 않습니다. 당시 유다는 악한 이스라엘과 연합하고 있었습니다.
유다 왕 아하시야의 어머니는 아합과 이세벨의 딸이었는데, 아하시야는 어머니를 좇아 다윗의 길이 아닌
아합의 길을 따르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대하 22:3~4). 아하시야의 죽음도 아합 가문의 다른 왕들처럼
심판의 결과입니다. 아하시야는 병거에 타고 있다가 예후의 공격을 받아 죽었는데,
이는 아합이 죽을 때의 상황과 비슷합니다(왕상 22:34~37). 아하시야가 유다를 다스린 기간은 1년입니다.
열왕기에서 왕의 통치 기간이 짧은 것은 그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음을 보여 줍니다.
세상과의 타협은 우리를 죄로 이끌어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나게 함을 명심하십시오.
- 묵상 질문: 예후가 유다 왕 아하시야까지 쫓아가서 죽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눈앞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을 하려 한 적은 없었는지 생각해 보세요.
이세벨의 죽음(9:30~37)
하나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것만큼 큰 죄는 없습니다. 눈 화장과 머리치장을 화려하게 한
이세벨은 풍요의 신 바알의 아내를 연상시킵니다. 온 이스라엘을 바알 숭배에 빠뜨린 이세벨은 바알교의 화신과 같습니다.
이세벨이 예후에게 ‘시므리’라고 한 것은 7일 천하로 막을 내린 시므리의 쿠데타처럼, 예후의 모반도
곧 좌절될 것이라는 조롱입니다. 교만하고 사악한 이세벨은 비참한 최후를 맞습니다.
예후의 명을 따른 내시에 의해 창문 밖으로 내던져진 것입니다. 아하시야는 그나마 조상의 무덤에 묻혔으나,
이세벨은 엘리야의 예언대로 개들의 밥이 됩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우상과 은밀하게 마음을 사로잡는
무형의 우상을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우상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 묵상 질문: 이세벨의 처참한 최후는 무엇을 알려 주나요?
- 적용 질문: 하나님보다 더 마음을 쏟는 대상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것은 어떤 면에서 위험한가요?
오늘의 기도
제 생각과 삶 속에 세상의 풍요를 추구하는 바알 우상이 자꾸만 자리 잡는 것을 고백합니다.
죄의 결국은 심판과 죽음임을 날마다 마음에 새김으로 죄악의 길에 서지 않고,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서게 하소서.
열왕기하 9:25~37 삶은 죽음으로 말합니다.
북 이스라엘 왕 중에서 우상 숭배가 가장 심했던 왕
악한 왕의 대명사인 아합 가문의 멸망을 본다.
바알을 숭배하는 시돈의 왕 엣바알의 딸 (왕상16:31) 이세벨과 정략 결혼함으로
이스라엘 온 땅에 바알 숭배와 우상 숭배를 를 퍼뜨리게 했던 장본인 이고
딸 아달랴를 다윗 왕가와 결혼 시킴으로 바알 숭배를 남 유다에 까지
악한 영향을 주었던 아합 가문의 완전한 몰락을 본다.
그 도구로 사용되는 사람이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이다(25)
첫번째 심판 받는 자가 아합의 아들 요람이다(25)
먼저는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고 왕권을 남용하여 나봇을 죽이고
나봇의 포도원을 (물론 이세벨의 계략으로) 빼앗았다.(왕상21:1~16)
그 때에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통하여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있었는데
바로 그 말씀이 오늘 이루어 지고 있다.
여호와의 말씀대로 요람의 시체를 취하여 나봇의 밭에 던지라 하신다.(26)
역시 하나님의 말씀은 반듯이 이루어 짐을 본다.
말씀의 살아 역사 하심을 본다.
말씀의 능력을 본다.
두번째는 아합의 외손자 아하시야의 멸망이다.
아합의 딸 아달랴와 정략적 결혼을 했던 여호람이 낳은 아들이 아하시야이다.
나봇의 포도원에 죽은 요람과는 외삼촌이 되는 자이고
아합과는 외 손자자가 되는 자이다.
다윗 왕가의 사람 여호람이 결혼 한번 잘못해서 패가 망신을 할뻔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예루살렘에 다윗 성에서 그 열조와 함께 장사 된 것만이
불행중 다행한 일이라 할수 있다.(28)
세번째는 아합의 아내 이세벨의 멸망이다.
아들 요람의 죽음과 외손자 아하시야의 죽음을 듣고도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고 창으로 예후의 들어옴을 보고(30)
주인을 죽인 시므리여 평안하냐고 인사한다.(31)
시므리는 북이스라엘 왕이 되어 7일 동안 통치했던 인물이다.(왕상16:15)
지금 예후에게 옛날 시므리의 실패한 쿠테타를 이야기 하고 있다.
예후가 내 편이 될자가 누구냐 누구냐 하니(32), 몇명의 내시가 예후를 본다.
저를 내려 던지라 하니 그대로 실행한다(33)
디셉 사람 엘리야로 말씀하신 것과
이스르엘 토지에서 개들이 이세벨의 고기를 먹을찌라 하는 말씀이
그대로 성취된다.
전체적으로 한 악한 사람의 영향력과 죄의 영향력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와 예언의 이루어 짐을 분명히 본다.
아합 왕가의 완전한 멸망을 보면서 선택의 중요성을 본다.
하나님을 선택 할수도 있고 우상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편에 언제나 서기를 결단한다.
(비록 내가 하나님을 선택 한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날 선택 해 주셨지만....)
말씀을 볼수도 있고 안볼수도 있지만 말씀을 묵상하고 읽기로 결심한다.
믿음의 가문과 결혼을 할 수도 있고 믿지 않는 가문과 결혼을 시킬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믿음의 가문을 선택하기로 결정한다.
거짓과 진실 중에서 손해가 있더라도 진실을 선택하시로 결정한다.
사랑과 미움 중에서 아픔이 있더라도 사랑을 선택하기로 결심한다.
거룩과 죄악 중에서 거룩을 택하기로 작정한다.
겸손과 교만 중에서 언제나 겸손의 편에 있기로 소망한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아 무런 소망도, 생명도 없었던 우리 가운데 오셔서
산소망과 영원한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날마다 새로워지고 더 강한 군사로 성장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의를 허탄한 곳에 빼앗기지 말고,
오직 진리와 은혜로 채워 세상 가운데 드러나지 않을 수 없는
산위에 마을과 세상의 빛으로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풍성하게 채워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자연 재해로 말미암아
고통 받고 신음하는 이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회복과 치유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저 북한 땅에도 아버지의 은혜가 변함 없이
흐르고 있음을 믿음의 눈으로 보게 하시고,
이 나라와 백성을 긍휼히 여기사,
어리석은 위정자들이 주님의 지혜 앞에 엎드리고,
허락하신 거룩한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하는
믿음의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고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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