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모토 신이치(이케다 선생님)는 영국 총리 처칠의 모습을 들어,
지도자가 취해야 할 자세를 말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가 지배한
나치스 독일은, 영국의 수도 런던을 폭격했다. 잿더미가 된 시가지에 나타난
처칠은, 궐련을 입에 물고 손가락으로 V자를 만들면서 유유히 걸었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용기를 얻었다. "처칠에게는 '이런 일로 런던은
망하지 않는다! 영국은 지지 않는다!'는 강한 일념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런던 시민은, 그 마음을 느끼고 분발했습니다. 일념은 파동치고, 확신은 공명
하고, 용기는 요원의 불길처럼 번졌습니다. 또 히틀러의 행위를 본 시민들은
'히틀러는 극악무도한 파괴자다. 그런 인간이 지배하는 나치스 독일에 결코
질 리 없다'고 강하게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평화를 갈망하는 식견에서 나온
정의의 불꽃이었다고 해도 좋습니다. 지금 정의로운 학회를 공격하고 파괴
하려는 사람은, 아무리 교묘하게 선(善)을 가장해도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
정법(正法)을 파괴하는 비열한 자입니다. 우리는 그 악(惡)을 예리하게 간파
해 단호히 승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광포의 길'을 열 수 없기 때문
입니다. 리더 여러분은 어떠한 대난이 일어날지라도 커다란 바위와 같은
신념으로, 반드시 이긴다는 강한 일념으로 유유하게 당당하게 '사명의 길'을
뚫고 나아가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 모습을 보고 회원들은 모두 안심하고
용기를 갖기 때문입니다. 리더에게는 다음과 같은 요건이 필요합니다.
'신념과 확신이 넘치는 사람이어야 한다.
성실하고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어야 한다. 또 건강해야 한다.
늘 생기발랄하게 지휘하고, 균형 잡힌 생활을 하도록 유의해야 한다.
일에서, 직장에서 빛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사회에서 내는 실증이,
지도력에 빛을 더하기 때문이다. 지도할 때는 늘 평등하고 판단이 건전해야
한다.' 이 점을 마음에 새기고 나아가기 바랍니다."
14일 저녁, 구마모토문화회관에 돌아온 신이치는 이튿날인 15일 오전, 나가
사키현과 사가현 간부들을 초대해 앞으로 추진할 활동 등을 협의한 뒤, 오후
에는 이 회관에서 자유근행회를 열었다. 상쾌하면서도 성대하게 개최한
근행회에는 구마모토시를 비롯해 조난 지역의 야쓰시로, 히토요시, 미나마타
지역, 아마쿠사의 동지들은 물론 가고시마, 사가, 나가사키, 후쿠오카현 대표
들이 참석했다. 조난지역과 아마쿠사 동지들은 버스를 여러 대로 나눠 타고
왔다. 모두 기쁜 마음에 가슴이 뛰었다. 이들 지역에서는, 악승들의 계략에
넘어가 학회를 그만두고 단도가 된 간부도 있었다. 어제까지 모두 학회 덕분
이라고 말하던 자들이, 승려라는 권위를 내세우는 중들의 앞잡이가 되어
학회에 온갖 욕을 퍼붓고 회원에게 탈회를 부추겼다. 동지들은 분한 마음에,
날마다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절의 단도를 늘리고 싶으면 직접 절복
하면 되지 않는가! 그것도 하지 않으면서, 신심을 잘 모르는 마음 약한 학회원
을 노리고 탈회시켜 절에 데리고 가다니! 비겁한 자들이 하는 짓이다!
신앙자가 할 짓이 아니다!' 동지들은 격렬히 분노했지만 모두 승속화합(僧俗
和合)을 위해 꾹 참았다. 도리에 어긋난 상황이 오랫동안 이어진 터라, 참고
견딜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를 갈면서도 오로지 광포의
전진과 정사(正邪)가 밝혀지기 바라며 거듭 창제했다. 그런 상황에서
'찬연히 쏟아지는 한줄기 빛과 같은 자유로운 학회를 다시 구축하자!'며
자신을 고무하고 홍교하러 뛰어다녔다. 이윽고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긴 고뇌의 시간을 거쳐 드디어 희망 찬 서광이 비치듯 신이치의 구마
모토 방문을 맞았다. 멤버들은 씩씩하게 구마모토문화회관으로 갔다.
고투를 승리한 동지의 가슴에는, 엄연히 스승이 있었다. 신이치도 거듭
고생하며 싸운 동지와 만나, 한사람 한사람을 끌어안듯 격려하고 싶었다.
멀리 떨어져 있다 해도 광포를 위해 함께 싸우는 사제(師弟)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다이아몬드와 같은 유대로 맺어져 있다.
자유근행회는 희망 넘치는 새로운 여정에 오르는 모임이 되었다. 구마모토
현장(縣長)을 비롯한 현 간부들 인사에 이어, 지역 광포를 굳게 다짐하는
'아마쿠사선언'과 '조난선언'을 각각 채택했다. '아마쿠사선언'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아마쿠사는 역사적으로 너무나 불행한 땅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의 위대한 불법(佛法)을 근본으로, 낙토(樂
土) 아마쿠사 건설을 위해 노력할 것을 굳게 결의한다." "우리 '묘법(妙法)의
아마쿠사 시로'는 생애청춘이라는 신심으로, 생기발랄하게 광선유포 모범의
땅을 만들 것을 이 자리에서 굳게 결의한다." 이후 각 현장들이 등단했다.
가고시마 현장은 내년 안에 가고시마문화회관을 완공할 예정이라고 보고하고,
사가 현장은 내년 봄에 2만명이 모여 현우호총회를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나가사키 현장은 내년 봄 이사하야문화회관을 완공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기뻐하는 참석자들에게 마이크를 잡은 신이치는, 구마모토를 방문하기 전
13년 만에 오이타를 방문했다고 말하고, 세이난전쟁에서 보여준 오이타현
나카쓰부대의 전투를 말했다. "1877년 사이고 다카모리군과 정부군은
다바루자카에서 격전을 벌여, 사이고군이 패배하고 후퇴했습니다. 한편
오이타현 나카쓰에서는 마스다 소타로와 함께 의용군 수십명이 거병했습니다.
이것이 나카쓰부대입니다. 이들은 아소에서 사이고군과 합류해 전투에서
훌륭한 성과를 올렸지만, 마지막에는 정부군에 패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용감하고 씩씩하게 싸웠지만, 최후는 무척 비참했습니다. 광선유포의 전진
에서 단 한 사람도 희생자가 나오면 안 된다는 것이, 제 결의이자 신념입니다.
또 전쟁으로 가장 괴로워한 사람은 민중입니다. 민중은 늘 쓰라린 고통을
맛보았습니다. 그 고통을 행복과 희망의 발걸음으로 전환하는 것이 니치렌
대성인의 정신이자, 창가학회 운동의 원점이기도 합니다."
'그대의 거친 손이 떨리고, 소박한 얼굴에 빛나는 생(生)의 환희를
이 지상에서 획득할 때까지 싸운다'는 일절은, 신이치가 쓴 시(詩) '민중'의
한 구절이다.
신이치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광선유포를 위해 살아가고 홍교에 힘쓰면, 경문과 '어서'에 비춰 틀림없이
난(難)이 다투어 일어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받아온 난도 모두 법화경의
신심을 했기에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개목초>에서 설하는 대로 난즉
성불(難卽成佛)입니다. 광선유포를 위해 싸우고 난을 불러일으켜 그것을
발판 삼아 위대한 인생을 향해, 무상(無上)의 행복을 향해 크게 비약하는 힘이
신심입니다. 또 백계를 다했지만 생활이나 인생에서 패배한다 해도 우리에게
는 어본존이 있습니다. 신심만 무너지지 않으면 반드시 마지막에는 승리합니
다. 아니, 지금까지 모든 고생을 앞으로 인생에서 재산으로 살릴 수 있습니다.
안온한 인생이 꼭 행복한 것만은 아닙니다. 또 난이 있다고 해서 불행한 것도
아닙니다. 요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지 않는' 강한 자신을 만들면, 마치
유유히 파도타기를 즐기듯 시련의 거센 파도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를 위한 신심이고 불도수행입니다. 따라서 어떠한 대난이 일어나도 감상에
젖지 말고 밝게, 명랑하게 신념에 찬 인생을 꿋꿋이 살기 바랍니다.
구마모토 하면 '다바루자카' 노래가 유명한데, 인생에는 여러 고개가 있습니다.
광선유포의 길에도 '넘으려야 넘을 수 없는' 험로가 있습니다. 그러나 광포의
사명을 위해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든 그 숙명이라는 고개를 하나하나
넘어야만 합니다. 그 싸움이 인생이고 신심입니다. 작은 고개를 넘다 지치면
절대로 안 됩니다. '다바루자카' 노래에 '오른손에는 피 묻은 칼, 왼손에는
말고삐 늠름하게 말을 타는 미소년'이라는 가사가 나옵니다. 우리는
'오른손에는 자비, 왼손에는 위대한 생명철학'을 쥐고, 늠름한 후계의 청년부
에 차대의 일체를 의탁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조난 동지와
아마쿠사 동지가 더욱 정진하고 단결해, 복운과 영광의 인생을 걷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며 인사를 마쳤다.
신이치가 이야기를 마치자 장내에 큰 박수가 일었다. 특히 조난과 아마쿠사
동지들은 대부분 볼이 빨갛게 달아올라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결의에 찬 박수를 계속 보냈다. 자유근행회는 감동 속에 막을 내렸다.
참석자들은 구마모토문화회관을 나와 빠른 걸음으로 회관에서 2분 거리에
있는 잇초바타공원으로 갔다. 신이치가 이곳에서 기념사진을 찍자고 제안
했기 때문이다. 공원에는 전망대를 세워 두었다. 1500명이라는 많은 인원을
촬영하려면, 높은 곳에서 사진을 찍어야 카메라에 모든 사람이 들어오기 때문
이다. 모두 공원에 모이자 신이치가 모습을 나타냈다. 날씨가 화창한 봄 날씨
같았다. "자, 함께 사진을 찍읍시다! 여러분은 꿋꿋이 견디고 싸워 승리했습
니다. 진정한 사자(師子)입니다. 상쾌하게 출발하는 기념촬영을 합시다.
이 사진은 세이쿄신문에 크게 싣도록 하겠습니다." 환성이 일었다.
신이치는 모든 동지에게 제안했다. "여러분은 시련의 고개를 훌륭히 넘어
'승리의 봄'을 맞았습니다. 함께 가슴을 펴고 '다바루자카'를 대합창합시다!"
구마모토의 애창가답게 향토의 자부심이 배어나는 노래다.
느긋하고 힘찬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비가 주룩주룩 인마(人馬)는 젖는다 / 넘으려야 넘을 수 없는 다바루자카
오른손에는 피 묻은 칼, 왼손에는 말고삐 / 늠름하게 말을 타는 미소년
모두 근행회에서 들은 신이치의 지도를 되새기면서 '앞으로 어떤 고난의
고개가 있어도 단호히 넘겠다!'고 다짐하며 목청껏 노래했다.
동지의 눈은 결의로 불타 빛나고 있었다. 결의는 강인함을 끄집어내는 힘이다.
기쁨에 넘친 생기발랄한 '다바루자카' 노랫소리가 푸른 하늘에 울려 퍼졌다.
구마모토 동지들은 열심히 노래를 부르면서, 악승들과 공방을 벌이고 인내한
나날들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승리한 기쁨을 음미하고
있었다. 신이치는 과감히 싸운 구마모토 보우(寶友)들에게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마음속으로 몇번이나 외치면서 함께 합창했다.
천하를 얻을 때까지 / 소중한 이 몸
벼룩에 물려서야 / 되겠느냐
합창을 마치자 신이치가 이렇게 제안했다.
"드높이 개가(凱歌)를 울렸습니다. 지금 우리는 멋지게 다바루자카를 넘었
습니다. 만세삼창을 합시다! 여러분의 대승리와, 21세기를 향한 구마모토의
출발을 축하하는 만세입니다." 모두 양손을 높이 들고 자랑스럽게 하늘에
닿을 듯 외쳤다. "만세! 만세! 만세!" 사진기자가 셔터를 눌렀다.
구마모토현에서 찍은 이 사진은, 17일자 세이쿄신문 2, 3면에 크게 실렸다.
무명의 서민들이 개가를 울리는 광포의 대서사시가 또 하나 그려진 것이다.
이날 신이치는 조난과 아마쿠사 대표 동지에게 시를 선사했다.
"묘법의 조난에 부는 폭풍우를 / 끝까지 견딘 벗이여 존귀하도다"
"아마쿠사에 노인도, 젊은이도 당당히 / 광포를 위해 살아가는 웃는 얼굴
잊지 않으리"
신이치가 9일간에 걸친 규슈 지도를 마치고 도쿄로 돌아온 날은 12월 16일
이었다. 그리고 22일에는 가나가와연수원에서 가나가와현 오다와라와 시즈
오카현 고텐바 방면 대표가 모여 개최하는 근행회에 참석했다. 이 지역에서도
학회원은, 악승들에게 비도한 처사를 당해 괴로워했다. 그러나 사제의 서원에
살아가는 동지들은 결코 지지 않았다. 사제는 혼의 기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