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8일은 김기순님이 세상을 달리하신 날입니다.
김기순님은 등단하신 작가이고도 하고, 문학 영재원에서 소설을 가르쳐오셨습니다.
또한 김기순님은 저희 참학에게는 몹시 각별한 분입니다.
저희 회 회원일뿐만 아니라, 학교운영위원으로도 열심히 활동하셨습니다.
그리고 부군과 함께 그간의 우리 소식지를 주욱 맡아 인쇄를 해주셨습니다.
올해 마흔 여섯의 나이에 위암으로 서둘러 떠나신 김기순님의 부군과 지인들이 함께 그녀의 유작을 모아 유고집을 펴냈습니다.
제목은 ‘순이’입니다.
참교육학부모회의 좋은 벗이었던 김기순님의 명복을 빕니다.
그녀가 떨구고 간 ‘순이’
김기순 유고집 ‘순이’를 읽고
수유리 회원 김수현
소설을 밤새워 읽어보기는 참 오랜만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허구’와는 자꾸 거리를 두게 됩니다. ‘허구’가 이끄는 길을 따라 가다보면, 핍진한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치게 되는 것이, 마치 사기를 당하는 듯이 억울하고, 힘겹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돌아가더라도, 그 쪽 동네로는 잘 안 다니게 됩니다.
그런 저를 ‘순이’가 불러세우네요.
“그렇게 돌아서 다니느라고 더 힘들지 않니? ”
아, 그녀는 어떤 삶을 산 것일까,
어떻게 그녀는 보따리 장수를 하는 노인네를 따라,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이런 곳에 동네가 있을까 싶은 곳에 다다라서, 당당해지는 노인네의 보퉁이를 이해하고 있을까.
또 다른 주인공은, 친구와 백화점에서 주최하는 음식 여행을 가서 ‘오리진흙구이’를 보고, 오리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 “제발 빨리 끝내줘” 오리가 속삭였다.
...남기지 말고 깨끗이 먹어줘. 뼈까지. 그래, 날아가지 못하게 날개에 붙은 살을 쪽 빨아먹고, 뛰어가지 못하게 허벅지 살도 뜯어먹고, 똥을 밟고 다닌 발바닥도 먹고 소리 높여 울던 혓바닥도 먹고, 눈도 빼 먹을게. 너의 정액까지 모두 먹어버릴게.“‘
'보이지 않는 방‘에는 반지하방에서 오버룩을 치는 여인이 있습니다. 여인은 대접에 물을 받아, 창 너머로 보이는 나무 밑동에 물을 뿌리지만, 몇 방울의 물만 뿌리 근처로 가고, 나머지는 창 밑으로 떨어집니다. 연거푸 몇 컵을 던져도 소용이 없자, 여인은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벌컥벌컥 들이킵니다. 여인은 며칠째, 창 밖에서 자신을 들여다보는 눈에 신경이 쓰인다.
여인이 나가보니, 녀석은 도망을 가버리고 없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보는 것일까”
그녀는 난생 처음, 자신의 반지하방을 들여다봅니다.
“환한 스탠드 불빛 아래서 여자가 드륵드륵 오버룩을 치고 있다. 여자의 한쪽 볼이 불빛에 달아 빨갛다. 모터 소리와 환풍기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여자의 머리에 하얀 실밥이 하나 붙어있다. 나는 살그머니 손을 뻗어 그것을 떼어주었다.”
그녀의 소설에는, 집 나간 남편을 기다리며, 남편이 와서 몰래 가져갈지도 모르는 장롱 속에서 잠을 자는 여인이 있고, 낡은 성경책과 곱게 접은 손수건이 든 가방을 들고 어쩔 줄 모르는 순이가 있습니다. 순이를 돌보는 핑계로 돈을 받아 챙기면서도, 그에게 온갖 폭행을 가하는 공무원, 그를 아버지라 부르는, 어딘가 모자른 순이.
그녀의 소설을 보면서, 그녀의 삶이 지나간 자리를 미루어 짐작해봅니다.
그녀가 떠나고 없는 지금, 그 자리마다, 그녀가 피워낸 질곡한 한송이 꽃에 소름이 돋습니다.
그녀의 글을 모두 읽은, 새벽, 끝내 잠들지 못했습니다.
나도 ‘살그머니 손을 뻗어 내 머리에 하얀 실밥을 떼어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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