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칼럼] 조남주의 서영동 사람들 속 단편 ‘이상한 나라의 엘리’에서 보는 인간의 의무
민병식
82년생 김지영으로 커다란 울림을 주었던 조남주 작가의 소설집 ‘서영동 사람들’, 이 작품은 소설집에 있는 7개의 작품 중에서 마지막에 들어있다. 소설집의 작품 모두가 부동산 문제를 통해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계층 갈등과 이기, 욕망, 부끄러움 등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민 낮을 여과 없이 묘사하고 있는데 이 작품을 제외한 여섯 개의 단편은 이미 아파트가 있거나 그 정도의 재력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면 이 단편은 아예 서영동의 아파트에 접근할 수조차 없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데서 차이점이 있다고 하겠다.
사진 네이버
아영은 2년제 대학을 나와 학원에서 보조 강사로 일한다. 단어 시험 선생으로 일하지만 정규강사로 일하고 싶다. 그러나 학벌도 딸리고 유학을 다녀온 적도 없다. 그녀는 편의점, 고양이 호텔, 카페테리아에서 투 잡, 쓰리 잡을 뛰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나이는 서른이 넘었고 같은 보증금과 월세로 구할 수 있는 방은 점점 질이 낮아져 간다. 결국 고시원에 살다가 다세대 원룸에 들어가지만 건물이 재개발되어 나오게 된다. 재개발 아파트의 피해자가 된 아영은 짐을 빼내어 학원에서 잠을 자게 되는데 원장이 이를 알고 자신의 집에 방이 하나 있으니 들어오라고 한다.
아영은 원장의 마음 씀에 이해가지 않는다. 남의 일인데 말이다.
"그걸 왜 원장 선생님이 고민하세요?"
"그럼 모른 척해요?"
"그럼요. 남 일인데.“
원장의 집에 들어가는 대신 아영은 공평한 기회를 요구한다. 영어 전임 강사로 채용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하는 것이다. 원장의 집과 아영의 집은 다르다. 원장의 집은 ‘영끌’이라도 해서 장만할 수 있는 힘들지만 불가능하지 않은 목표이며 소유 후에는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빌려줄 만큼 여유 있는 공간이며 일이 끝나거나 외출한 후 돌아가 사는 생활공간이며 휴식공간이고 안식처이지만 아영의 집은 거처할 곳도 마땅치 않아 이리 저리 옮겨 다녀야 하는 생존의 공간이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원장의 집 같은 것은 꿈도 못 꾸는 ‘영끌’조차 할 수 없는 처지인 것이다. 그 해결법을 아영을 공평한 기회에서 찾고 있다.
우리 사회는 어떤가.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고 있는가. 자신의 아파트 근처에 지하철철이 들어오고 GTX가 들어온다고 하면 두 손 들어 환영하고 장애인 시설이나 요양 시설이 들어온다고 하면 집값 떨어진다고 극렬히 반대하고 주변에 자신 들이 생각하는 혐오시설이 있으면 언제 이사가느냐고 수시로 민원을 넣고 지역구 국회의원은 주민들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고 행여 이사라도 가면 자신의 치적으로 돌린다. 그렇다면 이 땅의 장애인학교, 요양 시설 등은 모두 산속 깊은 곳이나 섬에 만들어야 하는가.
결국 원장은 정규직 채용 기회를 주며 “남 일이기만 한 일은 세상에 없더라고요.” 라고 말한다. 바로 서로의 삶과 고민을 “남 일”로 여기지 않는 것이 변화와 연대의 시작일 수 있다. 나남들보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인간의 기본적이고도 당연한 욕구이기에 큰 집에서 살고 좋은 집에서 사는 것을 욕할 수는 없다하더라도 학원 원장의 마음 씀씀이처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늘 고민하고 간직해야할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의무이며 인간다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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