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식당에 들어서니 아침 시간을 즐기려는 손님들이 몇 테이블에 자리 잡고 있었다. 웨이터의 안내를 받아 밝은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자리에 앉은 아내의 모습이 한결 가벼워 보였다. 감기, 몸살, 코로나로 심히 앓은 후라 얼굴은 핼쑥해 보였다. 웃음 띤 얼굴을 본 지도 무척 오래된 것 같았다.
맞은편 벽에 붙여 놓은 두 개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웃으세요’ ‘삶은 짧습니다. 디저트를 먼저 드세요’ 어쩌면 나와 아내에게 권하는 말처럼 다가왔다. 웃음이 조용히 얼굴을 덮었다. 식당 벽에 붙여 놓은 애교스러운 글귀가 주는 선물이었다.
아내는 심한 몸살감기 증세로 지난 며칠간 고생을 했다. 타이레놀을 먹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쉬었지만 가라앉지 않았고 팔다리가 심하게 쑤셨다. 음식을 입 근처에 가져가기조차 싫어했다. 급히 병원을 찾았다. 몇 가지 증세를 들은 의사는 코비드 검사를 하자고 권했다. 결과는 양성이었다. 최근에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기 시작했다는 말은 들었지만 집에까지 찾아올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의사의 처방을 받아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는데 아내는 약에 취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듯했다. 두 번을 복용하고는 더 이상 약을 먹지 못하겠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대신에 타이레놀을 복용하면서 몸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고통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잃었던 입맛도 차츰 돌아왔고 쑤시던 팔과 다리도 회복되었다. 아내는 잃었던 입맛이 돌아온 듯했다. 이제 회복이 되었으니 가까운 식당에 가서 배부르게 먹고 싶다고 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아내는 오믈렛 한 접시를 거뜬히 먹어 치웠다. 게걸스럽게 먹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보니 즐거웠다. 그동안 먹지 못해 허기진 배를 달래는 듯했다. 집에 돌아온 아내는 더 이상 침대에 눕지 않았다. 부엌을 정리하기도 하고 텃밭으로 나가 도마토도 따고 시금치도 솎는 등 가볍게 몸을 움직였다, 집안에 활기가 도는 듯했다. 가족이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생각하게 했다. 결혼 후 아내는 별로 아픈 날이 없었다. 건강하게 활동하던 아내가 일흔을 넘기면서는 자주 피곤을 호소하곤 했었다. 가끔 어지러워하기도 했고 몸의 균형을 잃기도 했다. 지켜보는 마음이 안쓰러웠다. 돌이켜 보니 결혼생활을 한 지도 올해 들어 51년째가 된다. 그 세월을 함께 걸어온 아내가 자랑스러웠다. 결혼할 당시 신랑감이라고 나타난 사람은 학생의 신분인 데다 가정형편이 넉넉하지도 못했다. 조그마한 시골교회의 전도사로 일하면서 신학을 공부하는 가난한 학생이었다. 그런 나를 신랑으로 맞이해 준 아내가 고마웠다.
우리의 결혼생활은 늘 가난과 함께했다. 가난을 탓하지 않는 아내가 고마웠다. 불평하는 얼굴은 아니었지만 웃는 얼굴을 보기도 쉽지 않았다. 아내의 얼굴에서 웃음이 찾아오는 때는 생일상 앞에서 아이들이 불러주는 축하 노래를 듣는 때였다. 누워 지내던 지난 한 주간 동안 아내의 얼굴은 무척 수척해 보였다. 미국으로 이민을 온 이후 자녀들과의 거리는 멀어져갔다. 한번 만나기도 쉽지 않은 터라 온 가족이 자리를 같이한다는 것은 어쩌면 이 세상에서는 기대조차 하기 어려울 것 같다.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이민 온 후 아내는 처음에는 무척 힘들어했다. 언어, 문화가 다르고 가까이 지낼 만한 이웃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부터 인가 아내는 자주 만나는 미국인들을 반가이 대하고 대화 중에 얼굴 표정과 손짓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법을 터득한 듯했다. 스파에 다니면서 스파 친구들과 잘 어울렸다. 차츰 웃음을 찾기 시작했다.
’웃으세요‘ 라는 식당의 글은 우리 가정에 주는 말이었다. 그동안 이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웃을 수 있는 일보다 슬퍼하고 아파하는 일들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리라. 넉넉하지 못한 살림살이로 첫딸 아이 결혼시킬 때 수저 두 벌을 혼수인 양 넣어 보내던 엄마의 마음에 웃음을 줄 수가 있었겠는가? 그렇다고 변변치 못한 남편이 아내 앞에서 재롱을 부릴 수도 없는 현실이 마음을 더 슬프게 한다. 오늘만이라도 웃음을 간직하고 하루 해라도 넘기고 싶다. 혹시 아내가 나를 보고 실성한 사람이라고 핀잔을 주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도 써야 하리라. 오늘 아침 식당에서 본 메뉴 중 최고의 메뉴는 ’웃으세요‘라는 메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