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960조, 위기 상황이 아닌가?
미래경영연구소
연구원 김지혜
최근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가계부채 위기 상황이 아니다’라고 발언하였다. 국회에서 가계 부채 현황 질문에 "가계 부채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지만 규모, 증가 속도, 금융시스템으로 볼 때는 위기상황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또 미국의 양적 완화 축소 움직임과 관련해 "이는 경제 회복을 전제하기 때문에 우리 경제에도 일자리, 소득 증대를 가져올 수 있어 아주 위기사항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다만 가계 부채 구성에서 변동금리를 고정금리 쪽으로 바꾸면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의 말을 살펴보면 전반적으로 지금의 경제상황이 위기상황이 아니라는 진단이었다.
그러나 과연 우리 경제가, 개개인의 가계의 경제력이 지금 위기상황이 아닐까? 미국의 양적완화와 중국의 위기 분위기, 무리한 아베노믹스가 과연 어떤 결과를 드러낼지 궁금한 일이다. 연방준비제도의 벤 버냉키 의장의 출구전략 발언에 대해서도 진단이 각기 달리 나오는 시점에서, 위기가 아니라면 무언가 반응이 나올 때도 되었지만 아직 뉴스에서 그런 소식을 접하지 못했다. 유로존도 ‘버냉키 쇼크’로 출구전략에 대한 우려의 분위기로 인해 시장이 냉각되고 있다. 특히 재정 취약국으로 거론되는 스페인, 이탈리아는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계속 오르고 있다. 이는 결국 스페인과 이탈리아 국민들이 짊고 가야할 나라 빛이 계속 쌓인다는 뜻이다. 이미 이탈리아의 경우 세계 3위의 부채국이다.
원래 출구전략은 경기 부양책들의 부작용을 덜기 위해 서서히 시행되어야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전략이다. 여기에는 ‘서서히’라는 시간적 부분이 중요 요소 중에 하나이다. 이 부분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으면 애써 올려놓은 경기가 부작용을 남긴 채 주저앉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기 부양책은 마치 스테로이드제와 같아, 시장의 고통을 반짝 치료할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치료법으로 보기에는 부작용이 많다는 것이 함정이다. 경기 부양책에는 뿌린 돈만큼의 인플레이션과 가계 부채의 증가, 양극화의 심화가 강화될 여지가 높다. 따라서 근본적인 위기의식에 따른 해결책이 필요하다. 이미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960조로 1천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특이 여기에는 소득의 양극화가 반영되어 저소득․고령층일수록 가계부채의 증가 속도가 빠르다고 한다. 그래서 뉴스에서는 지금 우리 경제 경기 회복의 최대 장애물로 가계부채를 손꼽는 것이다.
최근 아시아에서 최초로 SED(경제동학학회)의 연례 학술대회가 27~29일 서울에서 열렸다. SED는 1989년 세워져 지금까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7명이나 배출된 수준 있는 학회이다. 특히 SED 학술대회는 그 개최 자체로 자국 연구 수준을 공인받는 것과 같아 유치전도 치열하다고 한다. 이번 학회에서 26일 사전 콘퍼런스에 노벨 경제학상(1995년) 수상자 로버트 루카스 시카고대 교수와 에드워드 프레스콧 애리조나주립대 교수(2004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가 참가했다. 여기서 시카고 학파의 대표적인 수장격인 로버트 루카스 교수는 “통화정책만으로는 미국의 경제를 회복시킬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또 에드워드 프레스콧 교수도 “양적완화만으로 소득이나 소비가 늘어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실물경제에는 거의 영향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하였다.
특히 로버트 루카스 교수는 미국 또한 출구전략을 구사할 만큼 경제가 회복되었다고 보지 않았다. 연평균 성장률 2.9%로 복귀하는 것을 회복이라고 볼 때, 그에 훨씬 못 미치는 성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 ↑로버트 루카스 교수가 PT에 사용한 그래프. 빨간 원형 점이 실질 미국의 GDP
즉, 진정한 회복이라 볼 수 있는 실물경제는 아직 회복이라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또 이 회복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하다며, 미국의 1929년 발생한 은행 공황으로 인한 유동성 위기는 1933년 해결됐지만 경제 불황은 1942년까지 계속됐다는 말을 하였다. 그동안 미국이 무리를 하면서 시행한 양적완화의 효과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이 느껴진다. 또 에드워드 프레스콧 교수는 일본의 아베노믹스를 가르켜 “일본의 양적완화는 성장과 고용에 미치는 효과가 크지 않고, 결국 일본 정부 부채만 늘릴 것이다”고 말했다. 두 세계적인 석학 모두 지금의 경제 위기에 대한 각국의 양적완화 정책은 근본적인 대책이 아님을 지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각국의 금융위기는 침체의 원인이 아니라 침체의 한 증상이라고 본 것이다. 실제로 일본의 대다수 샐러리맨들은 아베노믹스에 대한 불신이 크다고 한다. 아베노믹스의 수혜가 자신들에게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반응이다.
여기에 저명한 미래학자인 요르겐 랜더스 노르웨이 경영대학원 교수는 세계 경제에 대해 이렇게 전망했다.
“전 세계 GDP는 2050년대까지 조금씩 늘다가 결국 멈추게 된다. 스태그네이션이 정착되고 경제호황은 더 이상 없을 것”
이런 전망은 성장의 한계가 다가오고 있음을 말한 것이다. 경제의 위기라기보다는 더 나아가 성장이 정체되는 현상이 강해져 장기 불황에 적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오늘 정책 청문회에서 가계부채가 위기상황이 아니라고 말한 것은 유감스럽다. 위기의식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 위기의식이 진정성 있는 해결책을 낼 수 있을 만큼 강해야 그나마 의미 있는 정책이 나올 수 있지 않겠는가? 세계적인 석학들은 세계 경제의 위기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 시선을 가까운 곳으로 돌려, 당장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도 암담하다. 주머니 사정이 도통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빚을 지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도 아직 위기상황이 아니라고 말 한 것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경기가 계속 나쁘다는 전망은 사람들을 움츠러들게 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의 두려움을 지우기 위해 현실과 괴리된 낙관적인 전망을 확신하는 부분도 문제가 있다. 경제는 위기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 국가의 중요 직책에 있는 사람이라면 좀 더 냉정하고 신중한 시선이 필요하다. 아베노믹스만 하더라도 당시 언론들이 굉장한 해법인 마냥 칭찬하지 않았는가? 지금 현재까지의 아베노믹스의 성적이 그렇게나 훌륭한 것인지 의문이다. 오늘 회의를 통해 가계부채 채무조정에 지원해준다는 내용을 의논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단기적인 비상대책이 아닌 좀 더 성실한 대책이 필요하다. 마침 한마음금융, 희망모아, 신용회복기금 등 공적 채무조정 기관들이 채권회수 과정에서 나온 이익금을 다시 금융회사들에게 돌려주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무려 1조 3천억이 금융회사에게 돌아간 것이다. 채무조정 과정에서도 이런 식의 서민 주머니 털기가 나오는 상황에 허탈하기만 하다. 국민들에게 진정 도움이 되는 정책이 나오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