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뜨는 집/소순희작>
살구나무에 대하여
지난여름 아파트 화단에 잘 익어 떨어진 살구를 밟고 지나간 곳에
단단한 씨만 튀어나와 있어 아침 산책길에 주워서 운동기구가 설치된 소공원 구석에 묻어 두었다.
날이 쌀쌀해지기 시작한 늦가을부터 겨울이 다 가도록 한 번도 그곳에 산책을 하지 않았다.
매화나무가 꽃망울을 터드리는 봄에 다시 그곳에 나가 가벼운 운동도 하고 꽃눈이 맺힌 나무들을 보며
안양천 길을 산책하다 문득 생각 난 장소에 가 보니 한동안 잊고 있었던 묻어둔 살구씨에서 싹이 돋았다.
이른 봄비가 대지를 몇 번 적신 후, 작은 바위 앞에 뾰롯이 솟아난 살구나무를 본 건 봄날의 환희였다.
그랬었구나! 차가운 땅속에서 깨어날 준비를 했던
그 딱딱한 껍데기 속 (행인은 납작한 심장 모양을 이루며, 윗부분은 뾰족하고 아랫부분은 둔하며 좌우가 균등하지 않다.
길이가 약 1.5㎝, 폭이 1.2㎝이고, 겉은 적갈색을 띤 얇은 껍질로 싸여 있고 가로로 된 쭈글쭈글한 무늬가 있어 쉽게 벗겨진다.
그 속에 흰색의 배태(胚胎)가 있다)
이것은 생명을 품고 있는 근거로 적절한 환경이 되면 발아한다.
나이 들면서 고향을 생각하면 살구꽃이 먼저 떠 오르는 건 소싯적에 각인된 기억 저장고에서 발현되는 심상의 일들이다.
살구나무와의 친숙함은 고향 집 뒤꼍에 봄이면 환하게 피어나던 꽃을 보아왔던 봄날의 따뜻했던 기억과
억새 (초가) 지붕 위로 날리던 현란한 낙화의 분분함이 눈처럼 쌓인 장독대에 고망쥐처럼 들락날락하던 아련한
그 시절이 어린 내 정서를 키웠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뒤꼍 대숲도, 살구나무도 사라진지 오래다. 집터엔 외지 사람이 들어와 번듯한 집 짓고 사는데
내게는 아직도 60여 년 전 그 풍경들이 푸르게 살아온다.
꽃이 피는 것에 마음이 실린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생의 후반기는 풍요롭다.
이제 그 자리에 뿌리 내린 나무가 꽃을 달 쯤이면 또 누군가가 꽃 보며 추억을 떠 올릴지 모르겠다.
그 정서를 찾아주는 살구나무가 잘 자라준다면 얼마나 기쁠까!
그래서 기다려지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
2024년 봄/소순희
첫댓글 그러게요...살구나무가 많이 사라졌죠?
살구 열매도 굿굿굿인데 말이에요.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도 저절로 잘도 자라는 나무들을 보면 신기하더라는.
우리집 살구나무도 엄청난 양의 씨앗들을 떨궈주곤 하는데 심어줄곳이... 정말 잘하셔서 새로운 생명을 갖게되다니 감사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