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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영화 ‘저 산 너머’를 보고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
수환의 부모가 두 형제에게 하느님 전해 주었듯이…2020.06.07 발행 [1567호] 김수환 추기경님의 어린 시절을
그린 영화 ‘저 산 너머’를 감명 깊게 보았습니다. 영화가 시작되자 맑은 구름이
떠 있는 파아란 하늘과 초록 물결들이 넘실거리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농촌의 풍경이
수채화처럼 펼쳐집니다. 그리고 저 멀리에는 겹겹의 산들이 보입니다. 어린 수환은
그 산들을 바라보며 저 산 넘어는 어디고, 누가 살고 있을까 생각하고 꿈을 꾸며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 수환의 아버지는 옹기를 지게에 져다 장에
팔아 생활을 했고, 아버지가 병으로 몸져눕자 아버지 대신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나섰습니다. 어머니를 무척 좋아했던 수환은 장에서 국화빵을 만들어 팔 때도 어머니를
따라나섰고, 국화빵 장사가 시원치 않아 먼 곳으로 장사 나갔을 때도 수환은 어머니를
기다리느라 집 근처에 있는 커다란 나무에 올라가 몇 시간이고 앉아 있었습니다.
마침내 어머니가 오시면 마치 멀리 여행이라도 갔다 오시기라도 하듯이 어머니를
반갑게 맞이하였습니다.
영화의 대부분은 수환의 작은 초가 풍경과 그 안에
사는 네 식구의 이야기입니다. 이 단순한 배경이 말해주듯이, 이 영화의 핵심은 수환의
가정과 네 식구에 담겨 있습니다. 나자렛 성가정이 작은 교회였듯이 수환의 가정도
작은 교회였습니다.
어린 형제에게 부모는 자주 하느님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고, 잠자다 일어나서도 기도를 드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형제들은 자랐습니다.
오랜 병고를 치르며 고생하는 아버지를 보며 슬퍼하는 수환에게 아버지는 신앙의
핵심을 이야기해주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 것이며, 죽는다는 것은 새 옷을
입고 하느님께 가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한 발짝 한 발짝 하느님께 가는 것이다.”
그 아버님이 임종이 가까워져 병자성사를 주시기 위해
본당 신부님이 오셨습니다. 가족들은 모두 두 손을 모아 기도하였고, 아버지는 병자성사를
위해 고해성사를 보셨습니다. 병자성사를 마치고 성당으로 가시는 신부님을 따라가
형 동환은 고해성사를 보았고, 신부님은 수환도 불러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수환 집안의 가족사, 순한 집안의 뿌리를 들려주십니다.
수환 집안의 뿌리는 신앙이었습니다. 젊은 선비셨던 할아버지는 교우들을 모아 강론을
합니다. 할아버지의 강론은 상당히 감동을 주는 말씀이었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재산을 많이 모으고, 명예를 얻고 출세를 하더라도 우리를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하느님만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고 우리 마음을 채워 주십니다.”
저의 젊은 시절 실존적인 방황을 할 때 교회 교부들이
주신 깨달음이 그런 것이었습니다. 병인박해 때 선비인 수환의 할아버지는 모진 고문을
받고 순교하셨습니다. 수환의 가족 뿌리는 신앙이었고, 순교의 피였음을. 그런 집안의
어머니답게 수환의 어머니는 신학교로 떠나 버린 큰아들 동환처럼 이제 머지않아
떠나게 될 막둥이 수환을 위해 이별의 대화인 듯 이야기를 합니다. 하느님을 가르치는
역할을 맡은 것이 부모임을 깨닫게 해주는 대목입니다.
어머니는 말합니다. “부모의 임무는 자식들을 하느님의
자식으로 잘 키우는 것이다. 내가 너를 후레자식이 되지 않기를 바라듯이 너는 하느님의
후레자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너는 내 자식이지만 하느님의 자식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머니의 말에 수환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어무이
자식이지 내가 왜 하느님의 자식이고.” “왜 다들 나를 떠나려 하는가.”
이렇게 눈물로 나눈 모자간의 대화가 너무나도 심금을
울렸습니다. 이 영화의 메시지는 가정과 신앙이며, 부모의 의무는 신앙의 전수임을
말해줍니다.
코로나19로 신앙생활에서 여러 가지 제한을 받고 있는 우리에게 이 영화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포스트 코로나 사목을 이야기하면서 가정 사목의 중요성이 다시 강조되고 있습니다. 혼인성사로 부모가 된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는 신앙 전수의 임무를 맡기셨습니다. 수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두 형제에게 하느님을 전해 주었듯이, 이제 가정에서 부모는 하느님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여야 합니다. 수환의 어머니처럼 기도하며 기도를 가르쳐야 하고, 수환의 아버지처럼 하느님을 말해주어야 합니다. 많은 분이 영화 ‘저 산 너머’를 보며 추기경님을 만나고 우리의 가정 안에 예수님을 새롭게 모시면 좋겠습니다. ▲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