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 白雪이 ㅈ 자진 골에 /이색(李穡)
白雪이 ㅈ 자진 골에 구루미 머흐레라
반가온 梅花는 어니 곳이 퓌엿ㄴ고
夕陽에 홀로셔 이셔 갈 곳 몰 나 ㅎ 노라
백설이 잦아진 골에
백설이 녹은 골짜기에 구름이 머무는구나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석양에 홀로 서 있어 갈 곳 몰라 하노라
[ 해설 및 감상 ]
작품 속에 시어는 상황에 따라 맥락에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닐 수 있다. 그리고 시어의 다의성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그 작품성의 含意는 높아지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이 작품은 작가의 외적 상황을 배제한 채 살펴보면, 단순히 아름다운 경치를 옲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작자가 고려 말 충신인 이색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작품이 주는 의미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화자는 저녁 무렵 어느 경치 좋은 곳에 서있다. 그리고 그 시선은 골짜기에서 땅으로 그리고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 골짜기에는 구름만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다. 흰 눈도 함께 있다. 구름이 가지고 있는 하얀색의 이미지는 배경의 이미지와 중첩 된다. 흰색이 도드라져 보이려면, 검은 색이나 빨간 색과 같은 이미지가 등장해야 할 듯 하지만, 중첩된 흰색의 이미지는 초장부터 시인이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확연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 의미는 중장의 매화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흰 눈으로 덮인 골짜기에 구름까지 덮혀 있다. 그 안에서 희망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은 겨우내 추위를 뚫고 피어나는 매화 일 터이다. 하지만, 어느 곳을 살펴봐도 매화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그리고 화자의 시선은 하늘로 올라간다. 저녁의 석양에 아무도 없이 홀로 서 있는 화자의 모습은 의미심장하다. 어느 곳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인생은 언제나 선택의 연속이지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 희망조차 찾을 수 없고, 날도 저물어 가는 가운데 홀로 남아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모습은 단순히 인생의 외로움 만을 드러내는 것은 아닐 것이다.
흰 눈과 구름으로 가려져 있는 골짜기는 고려 말의 사회 상황을 반영한다. 망국의 실상이 눈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그 안에서 뜻을 가지고 있는 매화 같은 인물이 있다면 , 망국의 슬픔을 막아 볼 수도 있겠지만, 매화는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그리고 날은 저물어 간다. 이색 스스로가 고려에 끝까지 충절을 바친 인물이긴 하지만,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려말의 끝자리, 바로 그 석양에 화자는 아무도 없이 혼자 서 있다. 이제 시적 화자에서 남은 것은 선택이다.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 이곳에 남아 뜻을 지킬 것인가?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자신의 선택을 되돌릴 수는 없다. 이색의 선택은 석양에 홀로 남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이색은 홀로 남는 선택을 했기에, 지금까지 역사 속에 남아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색]
고려 말의 충신이자 문호이다. 고려 삼은(三蘟)의 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본관은 한산, 자는 영숙, 목은이란 호로 널리 알려져 있다. 고려 말 대사성에 올라 성균관 학칙을 새로 제정하고 김구용, 정몽주, 이숭인 등과 강론, 성리학 발전에 공로 했다. 철영위 사건에는 화평을 주장 하였고 이듬해 위화도 회군으로 우왕이 강화로 유배되자 조민수와 함께 창을 즉위 시켜 이성계의 세력을 억제하려 하였으나 이성계가 득세하자 유배 되었다. 조선 건국 후 태조 이성계의 출사 종용이 있었으나 끝내 고사 하였다. 그의 문하에서 배출된 문인들이 조선 성리학의 주류를 이루었고, 학문과 정치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출처: 한국 시조 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