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한 자밤쯤 서운하고 외롭기도 하다. 구름이나 바람, 꽃잎이나 나무 같은 건 스스로 그저 아무 말이 없지만 사람은 그것들의 생김새며 움직임, 나타나고 사라짐을 애써 이야기한다. 저 별의 붉은 벌판을 구르는 돌멩이나 이 바다 푸른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 따위는 여기 나 좀 보시오, 하지도 않건만 사람은 우주선을 올리고 잠수정을 띄우면서까지 그것들을 끝내 찾으러 간다. 그렇지만 사람은 우주 한구석 티끌 같은 땅덩이에 이렇게 힘을 다해 붙어살고 있다는 걸, 작다란 몸뚱이에 담겼으되 정작 그 크기는 우주처럼 짐작하기 어려운 제 마음이 어떻다는 걸, 힘써 말하지 않으면 세상 그 무엇도 사람의 있음이나 마음을 말해주지 않는다. 저무는 하늘이나 가만한 고양이 등속을 그토록 사랑하고 아껴주었던들 사람이 여기에 있다고 사람의 마음이 이러하다고 한마디 말이나 해준 적 있던가. 사람을 헤아려주는 건 사람밖에 없다.
그렇다고 우리 그리 단작스럽거나 쉬이 앵돌아서지 않는다. 시인은 초봄부터 늦봄에 이르는 계절의 흐름과 그 속을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을 말하는데 그치지 않고, 봄비를 머금으며 생장하는 마당의 풀 또한 그 생의(生意)가 사람과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한다. 살아가려는 마음이란 우리와 저들이 일반(一般)이요 각기 다른 만물이 하나의 이치로 나고 자란다는 생각은 염계(濂溪)와 횡거(橫渠), 명도(明道)와 이천(伊川)에게서 비롯한다. 봄이면 스스로 돋아나는 풀과 버들가지, 어떤 까닭이 있어 크고 길게 우는 나귀, 제자리로 돌아가자 마음껏 헤엄치는 연못의 물고기, 힘껏 솟구쳐 날아오르는 하늘의 솔개를 바라보며 얻은 깨달음들은 비 온 뒤 절로 빛깔을 두터이 하는 풀잎과 마주한 시인에게로 이어진다. 저들이 우리의 있음이며 마음을 살펴줄 리 없다한들 저들의 살아 있음과 살아가려는 마음을 헤아려주는 것 역시 사람밖에 없다.
이토록 사람은 사람의 살아가려는 마음으로 미루어 사람 아닌 것의 같은 마음에까지 기필코 미치니, 나의 살아가려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남의 그것에 닿으려는 건 사람의 마음이 나아가는 마땅한 경로요 틀림없는 차례이다. 우리의 굼슬거운 마음결이 봄뜰의 이파리나 연못의 물고기에게 전해질는지 알 수 없지만, 소리처럼 한 번 울린 마음의 파동(波動)은 우리 서로에게 공명(共鳴)을 일으켜 나를 넉넉히 돌보고 남을 살뜰히 거두는 다짐이 된다. 그러므로 산다는 것의 새김은 ‘나뭇잎 새의 햇살이 눈부시다는 것’이나 ‘지금 멀리서 개가 짖는다는 것’이며 ‘새가 날개짓 한다는 것, 바다가 일렁인다는 것, 달팽이가 기어간다는 것’으로 나아갔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당신의 손의 온기’로 되돌아온다. 나의 살아가려는 마음으로 남의 그것을 헤아려간다면 이 마음 부득이 멈추어질 대한(大限)의 그때, 우리는 조금 더 어질어져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