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의 관계가 불가분의 친분관계임을 알라!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로마서 8:5~7) 하심 같이, 인간 육신의 주성분은 흙이기 때문에 생명의 하나님이 아무리 인간 육신이 자생할 수 있는 생기를 불어넣어 주어도 그 생기의 제공자인 하나님께 감사와 창송으로 보답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직 육신의 본성대로 살려 합니다. 육신의 본성이란, 육신을 이루고 있는 원자재인 흙의 속성으로만 살아가고자 하는 습성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기로만 활동할 수 있는 인간 육신이, 생동할 수 있는 생기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로 보답하려 하지 않고, 오직 죽음의 무(無)로 돌아가고자 하니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다니엘 12:3~4) 하심 같이, 창세 이후 온 인류는 하나님께 범죄하여 쫓겨난 낙원을 다시 회복해 보려고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만 지녔을 뿐, 영생할 수 있는 유일한 자격이 되는 하나님과의 '불가분의 친분관계', 곧 자녀들로 태어난 자는 어떤 연유에서든 자신들을 낳고 양육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분리되어서는 안된다고 하는 부자지간의 참된 열정과 사랑과 지식과 지혜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 육신의 생각 자체가 하나님을 반역한 마귀(악령)의 사상과 일치하기 때문에 이 육신의 생각에서 발생되는 모든 생기의 지식과 지혜와 소원들은 모두다 흙의 속성인 죽음의 무(無)로 돌아가는 일일 뿐, 창조주 하나님의 본체인 생명력을 지닌 말씀으로 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비록 흙으로 하나님의 생명 이치를 따라 만들어져 하나님의 생기로 생동하게 되었어도, 하나님의 본체가 되신 그의 말씀을 따라 행동하려 하지 않고 오직 만들어진 육신의 욕구대로만 작용하려 합니다. 이것은 마치 갓 태어난 아이가 부모님이 주시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려 하지 않고, 자기 손에 무엇이든 잡히는 것만 집어먹으려는 짓과도 같습니다.
그래도 부모님은 갓난 아이의 욕구대로 방치하지 않고 자신들이 만든 음식만 먹이려 합니다. 갓난 아이가 부모님과 같은 성체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영적 초석(礎石)과 자재(資材)는 오직 부모님의 뜻과 성품이 담겨 있는 말씀 뿐입니다. 이처럼 자식과 부모님과의 관계는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관계처럼 '불가분의 친분관계'가 입니다. 사람이 비록 하나님께 지음을 받았지라도 아담과 하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으면 죽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불가분의 친분관계'가 되지 않고, 흙으로 조성된 육신과 '불가분의 친분관계'가 된 상태에서는 아무리 과학 기술로 낙원 같은 문명 사회를 이룩하여도 그 종점은 지옥이 됩니다. 낙원은 반석 위에 철옹성 방어벽으로 구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예수님과 하나님과 같은 '불가분의 친분관계'에서만 구축됩니다.
자기 육신의 생각을 따라 사단과 '불가분의 친분관계'가 된 김정은, 문재인, 시진핑 같은 자들은, 하나님과 세상 사람들과는, '내가 너와 같고 너가 나와 같은 불가분의 친분관계'가 되어 공생공존하려 하지 않고, 오직 사단처럼 '나는 너희들에게 거짓말과 불법불의한 말을 하여도 너희들은 나에게 그런 거짓말과 불법불의한 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내로남불의 차별적인 친분관계만 요구합니다. 이런 차별적인 친분관계를 요구하는 독재자들은 무작정 권력과 재물을 장악해 아방궁 같은 자기 방어벽만 구축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구축된 아방궁은 모두 하나님이 부시는 입김(말씀)에 의해 무너져 각종 혐오스러운 짐승과 독충과 불꽃이 들끓는 흑암한 처소가 됩니다.
사람은 하나님과 '불가분의 친분관계'가 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구조 또한 영이신 하나님을 알현할 수 있는 영혼과, 물질의 대표인 흙으로 빚어 만든 육신으로 '불가분의 친분관계'가 되어야만 비로소 하나님과 '불가분의 친분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불가분의 친분관계'로 조성되어야 할 사람이 자신의 영혼과 육신이 분리된 상태로는 도저히 하나님과 '불가분의 친분관계'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영혼은 육신을 항상 죄악으로부터 보호해 지켜야만 비로소 영육이 '불가분의 친분관계'로 결합된 거룩한 생명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존귀한 생명이 될 수 있는 지혜는, 오직 육신의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만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전지전능한 능력을 근거로해 모든 피조물들 위에 군림하셔도 자체적으로 완전한 생명에 이를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가 없으면, 낙원에 거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금은보화를 애써 찾듯, 하나님 또한 신묘막측한 능력으로 완전한 생명에 이를 수 있는 지혜를 찾아 구하였으니, 그가 바로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신 예수님이시며 또 그의 뜻과 생각과 언행만이 바로 두개 이상의 개체가 원만한 상태로 영존(영생)할 수 있는 '불가분의 친분관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런 '불가분의 친분관계'가 바로 낙원을 건설할 수 있는 유일한 초석(반석)이며, 또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들과 연합할 수 있는 낙원의 유일한 소재(素材)가 됩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하나님과 '불가분의 친분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만민들도 자신처럼 하나님과 '불가분의 친분관계'가 되도록 이끄십니다. 예수님이 가장 먼저 하나님과 '불가분의 친분관계'가 되기 위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지켜 순종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참혹한 십자자의 형벌로 육신과 잠시 분리영혼이 음부에 갇혔으나, 음부가 예수님의 영혼을 잡아 가두어야 할 아무런 죄목을 찾을 수가 없어서 영혼을 다시 육신에게 돌려 보낸 것이 바로 육신의 죽음을 이긴 부활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영과 육이 죽음을 이길 수 있었던 지혜는, 그의 영이 먼저 하나님의 영(말씀)과 분리될 수 없는 '불가분의 친분관계'를 이룩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또한 하나님께로 태어난 분신(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말씀)을 떠나서는 그 어떤 존재들과 함께 어울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영이 하나님의 말씀(영)을 순종치 않을 때에는 하나님의 영과 분리되는 죽음 상태가 됩니다. 만일 예수님의 영이 자기 육신이 참담한 십자가에 달려 죽는 고통을 두려워해 하나님의 말씀(영)을 불순종할 경우에는 하나님의 영과 분리되는 사망의 영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의 근본인 하나님의 영(말씀)과 분리되지 않으려고 육신의 생각을 쓰레기 취급해 버렸으니, 이 결단이 그의 승리가 되었습니다. 이 승리에 의해 흙의 대변인 노릇만 한 사람의 육신도 하나님과 '불가분의 친분관계'로 승급될 수 있었고, 아울러 물질들도 하나님과 '불가분의 친분관계'인 천국을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불가분의 친분관계'를 거울 삼아 자신들의 영혼도 먼저 하나님의 근본이신 말씀을 순종하여 하나님과 '불가분의 친분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예수님처럼 가장 먼저 흙으로 조성된 자기 육신과 또 하나님께로 태어난 자기 영혼이 하나로 통일되는 부활의 생명(삶)이 됩니다. 사람의 영과 육이 하나로 통일(부활)되지 못한 상태의 삶은 항상 영혼과 육신이 분리되어 싸우는 전투적인 삶이 되어 평생 동안 영과 육이 싸우는 내전으로 인해 고통과 번민으로 지새우게 되며, 끝내는 문재인 종북 반역 세력들처럼 영혼과 육신이 분리되는 자살의 길을 택하여 반역자 사단과 함께 참담한 지옥불에 영원히 갇히게 됩니다.
사람이 자기 영혼의 뜻을 항상 무시하고 거역하고 반발하는 육신의 생각부터 먼저 예수님처럼 정복해 다스려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천태만상의 거역과 반역이 자기 주변에서 발생되어 지옥 같은 상황을 만듭니다. 가장 가깝게는 부부지간의 냉전이며 그 다음에는 부자지간의 냉전, 형제지간의 냉전, 일가친척들간의 냉전, 민족지간의 냉전, 종국에는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과도 냉전을 치르게 됩니다. 그런데 전쟁보다 더욱 참담한 고통이 냉전입니다. 그래서 오죽하면 성경에서도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잠언 21:9) 하셨고 또,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잠언 21:19) 하셨겠습니까?
영혼과 육신이 생존 상태에서 치르는 냉전이 바로 영의 생각과 육신의 생각이 상충하는 일로서 평생 동안 고통과 번민으로 살게 됩니다. 이런 고통과 번민 뿐인 삶에서 벗어나려고 어떤 이는 영과 육이 분리되는 자살의 길을 택합니다. 그러나 자살은 자기 영혼이 자기 육신을 죽이는 살인이기 때문에 타살보다 더 무서운 죗값을 치릅니다. 예수님도 세상에 계실 때 가장 고통스러운 지옥의 시간대가 바로 영혼의 생각과 육신의 생각이 반목해 냉전을 치를 때였습니다. 즉 예수님의 영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십자가를 지려 하나, 예수님의 육신은 "우리가 무슨 죄를 저질렀길레 그 같은 참혹한 고통으로 죽어야 하나? 당신의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분명 십자가의 고통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도 인간들을 구원할 방법이 있을 터이니 간구해 보라!"고 심히 앙탈을 부렸습니다.
이런 육신의 앙탈 때문에 예수님의 영혼이 너무도 괴로워,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마태복음 26:38) 하시고서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시길,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태복음 26:39)라고 아뢰며 하나님의 원대로 살고자 하였습니다. 때에 마귀는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건 참혹한 육신의 고통이지만, 육신의 생각을 따라 육신과 화목하면 평안하다고 그르쳤습니다. 그러나 그 평안은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말미암아 겪는 고통과 번민 뿐인 참담한 형벌의 생애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은 그 무엇이든 다 지키고 따르는 아들의 지위, 곧 참된 평안을 택하였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 되어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한복음 14:27) 하셨습니다. 육신 위주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수정하거나 거역할 때에 취하는 반역의 평안이기 때문에 이런 평안은 죽음보다 못한 고통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영혼 위주의 평안, 곧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아들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시진핑, 김정은, 문재인과에 속한 악종들은 하나님(국민들)의 아들된 신분과 지위를 버리고, 오직 육신 위주의 평안(쾌락), 곧 약물 중독 상태에 놓인 거짓과 불법불의와 음란방탕한 상태로 영혼을 마비시킵니다. 이런 육신 위주의 평안(쾌락)은 사단이 가져다주는 지옥행 티켓입니다. '실세자 예수'에 기록된 믿음으로 먼저 하나님과 '불가분의 친분관계'를 이룩하시길 바랍니다.
http://cafe.daum.net/kblw 기독 애국 신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