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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중순경부터 약 6개월 동안 미국 북서부와 캐나다 밴쿠버 일대는 일 년 중 가장 좋은 날씨를 맞이한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이 시기, 깨끗한 공기와 눈부신 푸른 하늘은 대기 오염이 무엇인지도 모르게 한다. 곳곳에 피어난 예쁜 꽃들은 가히 장관이다. 높푸른
싱싱한 나무들이 내뿜는 생명력은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천혜의 축복이다.
인위적인 아무런 환락 시설이 없다 해도 이 계절을 이렇게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하다.
그러나 세상은 역설적이다. 만약 연중 내내 매일 이처럼 좋은 날씨와 아름다운 풍경이 이어진다면, 세상 모든 이들이 이곳으로 몰려들게 되고, 집 값은 폭등하며, 결국 도시는 오염될 것이다. 지속적인 좋은 환경 속에서는 그 소중함에 무덤덤해질지도 모른다.
지나간 가을에서 겨울에 이르는 긴 우기의 장마비와 우중충한 하늘을 겪었기에 이런 날씨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어두운 긴 터널을 지나 후에 빛을 느끼는 것이 정말 축복임을 깨닫는다. 울창한 숲, 맑은 공기, 깨끗한 물, 그리고 따사한 햇빛의 고마움은 어두운 긴 터널을 지난 자에게 주어지는 상급이다. 허면 어두움 뒤에 밝은 세상이 온다는 것은 진리인가? 아니, 어두움 그 위에도 이미 빛을 주관하시는 분의 섭리가 있다는 것이 사실인가?
가끔 비행기를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공중으로 솟구쳐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다.
대학원 마지막 학기 무렵을 떠올리며 비행기를 바라본다. 요즘은 해외 여행이 일반화 되었고, 여러 나라들의 유명한 관광지 어느 곳에서나 한국인을 마주치는 것이 식상이 되었다. 특히나 젊은이들이 배낭을 울러메고 온 세계를 여행하며 견문을 넓히는 모습을
보자면 부럽고 자랑스럽다. 그러나 19 70 년대와 80 년대 초만 해도 외국 여행이 흔치 않았고, 김포의 하늘을 한 번 벗어나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나는 비행기 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었다.
젊은 시절 그맘때는 왜 그리도 고뇌가 많았을까! 마치 온 세상 고민을 혼자서 짊어진 양 버거워 했다. 읽어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 임마누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비롯해서 철학 서적이란 서적은 섭렵하다시피 하며 인생사의 의문들, 그 의문들에 대한
답을 찾으려 애썼다. 또한 현실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들을 보며 마음아파하고 그 해결책을 찾아 몸부림치는 것이 지성인의 어깨에 놓여진 책무라 여겼다.
특히나 당시 한국 사회는 민주주의가 잘 자리잡지 못한 혼란스런 시대여서 젊음은 연일 거리로 뛰쳐나와 행동으로 말하고, 사방에 온통 화염병이 난무하는 시대였다. 이런 와중에 우리는 제주도 서귀포로 하기 봉사대를 떠났다. 당시 또래의 청년들 눈에는 좀
뻘쭉한 행동이었지만, 농번기에 모자라는 시골 일손을 돕기도 하고, 틈틈이 이런저런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오히려 젊은이들의 더 바른 자세라고 생각해서 였다. 그런데 언제나 6 월 중순부터 7 월 말 이 무렵의 한국 기후는 장마철이 한창이다. 그 해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공항으로 향하던 날 우리는 우산으로도 비를 가릴 수 없는 얄궂은 기후를 만났다. 장마비가 마치 하늘에서 쏟아붓듯이 세차게 쏟아지고 비바람이 몹시 사나웠다.
언제 너희 생전에 맑은 날이 있기라도 했냐는 듯이 온 세상이 칠흑같이 어두웠다. 그 날은 아예 해가 없다고 생각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질펀한 활주로를 박차고 이륙한 비행기가 위로 솟구치니, 거기에는 거짓말처럼 휘황찬란한 딴 세상이 있었다. 태양이 거기 있었다! 그곳에 태양은 눈부시게 내리 쬐고 있었다! 그것은, 온통 하늘을 뒤덮은 시커먼 먹구름이나, 세차게 쏟아지는
장대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내게 머리끝이 번쩍 설 정도로 놀라운 발견이었다.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먹구름이 내 삶을 온통 뒤덮는 경험들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저 먹구름 위에 여전히 눈부신 태양이 있으며, 잠시 잠깐 후면 내가 웃을 수 있을 것을 의심치 않았다. 나는 그것이 이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지탱하도록 힘을 실어줄 경전의 중심 약속이라 믿는다.
요즘도 가끔씩 나는 비행기를 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