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기행 20 나일강 크루즈 2, 아가서 크리스티의 <나일강에서의 죽음>
어제(7/27) 밤 손주 애와 옥상에 올라 슈퍼화성을 보았습니다. 달밑에 보이는 점이 바로 화성입니다. 어릴 때 해가 지면 서쪽에 보이는 금성 정도의 밝기였습니다. 은하수나 다른 별들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손주에게 별자리를 몇 개 가르쳐 주면서 옛 기분에 젖어보았습니다. 새벽녘에는 화성부근에 유성우가 쏟아진다는데 일찍 잠이 깨면 볼 작정입니다. (사진 1, 키워 보세요.)
나일강 크루즈에서 또 한사람을 만나게 되군요. 영국 추리소설 작가 아가서 크리스티(Agatha Christi)입니다. 작품 이름도 <나일강에서의 죽음(Death on the Nile)>이니 피할 수 없었지요.
나일강은 남에서 북으로 흐릅니다. 크루즈 여행도 남쪽 아스완에서 북쪽 카이로 방향으로 순류(順流)를 타고 가는 겁니다. 그러나 기분은 배가 항상 북에서 남으로 ‘내려’가는 것 같아 혼란스러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조금 ‘북으로’ 내려가니 좁은 갑문이 나오군요. 아스완과 같은 큰 댐으로 물을 가두어두면 하류는 물이 줄어들어 갑문을 만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배가 갑문으로 들어가면 수위를 올리고 배가 반대편에 이르면 갑문을 열고 배가 나가게 합니다. 런던의 템스 강이나 미시시피의 상류에는 강 중간에 장벽을 세워 물이 한쪽으로만 흐르게 하는 걸 보았지만 나일강과 같이 거대하고 수량이 풍부한 강인데 갑문을 만들이 수위를 조절해야만 하는지 모르겠군요.
배가 갑문으로 들어가기 시작하자 쪽배를 타고 갑문 둑에 올라온 이집트인들이 면직물을 보이면서 사라고 아우성입니다. 이집트는 목화가 유명하여 면적물이 좋다고 하더군요. 미국에서 1860년대 후반 남북전쟁이 끝나고 목화 생산이 늘어나자 이집트 목화 값이 떨어져 경제적 혼란이 오고 이 틈을 이용해서 영국이 이집트를 장악했다고 하죠. 승객들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면직물을 돌멩이에 묶어 배위로 던집니다. 상당한 높이인데 용하게 배위에 안착(?)하네요. 사지 않고 그대로 되돌려주기도 하지만 펼쳐보고는 흥정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 집에 있는 식탁이 미국에서 애들이 가져온 것이라 제법 길어 서울에서는 맞는 식탁보를 구할 수 없다면서 집사람이 하나를 펼쳐 길이를 재어 보드니 아래에 대고 큰 소리로 흥정을 하군요. 아래에서 ‘30달러’하자, ‘노, 20달러’, 아래에서 ‘노, 25달러’하자, ‘노, 20달러’... 결국 ‘오케이, 20달러’에 거래가 되었습니다. 아래에서 돌을 넣은 바구니를 우리 배로 던지네요. 그 속에 20 달러를 넣어 아래로 던지니 용케도 잘 낚아채더군요. 이집트의 여러 문화유산들이 그린 것인데 때때로 우리 집 식탁을 장식합니다.
아스완 바로 아래 언덕 위에 멋진 호텔이 있습니다. Old Cataract Hotel이란 유서 깊은 호텔입니다. 지금은 Sofitel의 체인으로 Sofitel Legend Old Cataract Hotel이란 긴 이름을 가진 5성급 호텔로 나옵니다. cataract는 폭포라는 말이죠. 영국이 초기 아스완 댐(old Aswan dam)을 만들었을 때까지는 강폭이 좁아 제1폭포, 제2폭포 등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행기 18회에서 소개한 키처너 섬 옆에는 코끼리 상아같이 생겼다고 하여 엘레판틴(Elephantine)이란 섬입니다. 호텔 보트인 돛단배 페루카를 이용하여 누비아인이 손으로 노를 젓고 동시에 발끝으로 민첩하게 조종하여 건너편에 있는 엘레판틴에 도착하기도 하고 호텔에서 섬의 풍경을 즐기는 이야기가 크리스티의 소설 여러 곳에 나옵니다. 카르나크 사원에서는 주인공이 위에서 떨어진 바위에 죽을 뻔한 사건도 일어나네요. 단체 여행이 아니라면 이런 곳에서 며칠 묶으면서 여유 있게 즐기는 것도 좋겠지만 그런 팔자가 되겠습니까?
이 호텔은 영국의 ‘사업가’ 토마스 쿡(Thomas Cook)이 1899년 이집트를 여행하는 유럽인들을 위해 지은 겁니다. 그가 설립한 토마스 쿡 여행사는 우리가 여행하고 있는 트라팔가나 인사이트, 혹은 코스모스 여행사와 더불어 영국의 대표적인 여행사이지요. 그러나 오스트레일리아에 영국 국기를 꽃아 영국령이라고 주장한 ‘탐험가’ James Cook과는 아무른 인척관계가 없다고 합니다. 이스터(Easter) 섬도 쿡이 부활절 전야 발견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1722년 네덜란드인 야콥 로게벤(Jacob Roggeveen)이란 항해가가 발견한 것이고 쿡은 이보다 50년이 지난 1774년에 이곳에 옵니다.
1961년에는 옆에 새 호텔을 크게 지어 New Cataract Hotel이라 합니다. 옛 호텔에는 윈스턴 처칠을 비롯하여 마가레트 대처 영국수상, 다이애나 왕세자비,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 지미 카터 대통령, 그리고 이 글의 주인공 아가서 크리스티 등이 투숙객으로 지냈다고 합니다. 크리스티는 이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나일강의 죽음>을 집필하였습니다. 크리스티를 기념하여 이 방을 기념관 갤러리로 만들었다고 하군요. 1978년 <나일강의 죽음>이란 영화를 여기에서 찍은 것을 비롯하여 이후 여러 영화의 촬영장소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탐정소설은 줄거리를 말해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내용을 미리 알려주면 요즘 말로 스포일러(spoiler)가 되는 것이죠. 마지막 읽을 때까지 독자가 몰입하여 의자에 앉아 머리만 굴리면서 스스로 탐정이 된 것 같이 추리해 보도록 유도하는 것이죠. 이런 추리소설 독자들을 ‘안락의자 탐정(armchair detective)’이라고 합니다. 표정의 미묘한 변화에 대한 묘사나 등장인물의 하찮은 것 같이 보이는 행동도 놓치지 않고 신경을 곤두세워 읽어야 합니다. 나는 ‘소설’을 집중하여 읽지 않기 때문에 탐정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 이르면 엉뚱하고 별로 설득력이 별로 없어 보이는 인간관계나 증거들을 내세워 사건의 전말을 설명하는 것도 김 세게 만드는 일이죠. 범인은 대부분 가까운 등장인물 중에 있지만 범인으로 의심될만한 인물들을 꼭 한 두 명 등장시켜 혼란을 유발합니다. <나일강의 죽음>은 신혼여행으로 나일강 크루즈에 나선 부부와 그 남편의 전 애인이 얽힌 치정살인 사건을 다룬 것 정도로 끝내겠습니다.
오히려 <나일강의 죽음>을 읽으면서 당시 이집트에 대한 크리스티의 묘사나 그의 생각들이 관심을 끌었습니다. 크리스티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미국이나 유럽의 심각한 상황을 인식한 듯 사회적 평등문제를 몇 곳에서 언급하고 있군요. 사치스러운 좀 멍청한 여주인공을 두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쥐꼬리만 한 임금을 받고 혹사당하는 것도 모두 저런 여자가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기도록 해주기 위한 것’, ‘세상이 평등하지 못해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다’고 하네요.
‘피라미드와 같이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거대한 석조물을 건설한 것은 사욕에 불타는 한 군주의 이기심을 충족시켜 주려는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마음에 들군요. 저와 비슷한 기분을 여행 중 느꼈던 것 같습니다. 이어지는 대화에서 ‘파르테논 신전 등 거대하고 아름다운 사원은 없는 것 보다 있는 게 좋다’면서 ‘평범하게 하루 세끼의 밥을 먹고 살다가 죽는 게 좋은가?’라고 반문하군요. 그러나 크리스티는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 보다 불쌍한 노동자들이 굶주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결론짓는 걸 보니 대공황의 영향을 느낄 수 있습니다.
크리스티 글은 또 사회진화론적인 경향도 띄는 것 같습니다. 19세기 말 제국주의 시대 사조이기도하지만 1930년대 말 나치독일의 강인함을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인데 영향을 받은 게 아닌가 합니다. ‘교육은 백인은 타락시키고 약하게 만들었으며, 미국은 타락하고 오염된 사회이고 여주인공은 돈만 많고 쓸모없는 인간이고 프랑스인 하녀는 마치 기생충 같다’ 등등입니다. 반면 영국에서는 모교의 넥타이를 매고는 거짓말은 하지 않으며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들을 구분한다고 영국의 도덕적 기준을 높이 찬양합니다. 오리엔탈리즘적인 경향도 약간 보이군요. 죽음을 동양인과 비슷하게 윤회로 본다면서, 이건 지극히 단순한 사고라고 비판합니다. 그리나 동양인이 무식하지는 않다고 덧붙이군요.
이집트 풍경은 오늘날과는 사뭇 다르게 아름답게 묘사합니다. 이집트는 ‘평화롭고 따뜻하고 빛나는 황금빛 사막과 나일강’이 있는 곳이라 신혼여행지로서 좋다고 추천하네요. 아부심벨에서 ‘배는 강기슭에 정박해 있는데 가까운 거리에 잇는 바위사이로 보이는 거대한 신전이 막 떠오르는 태양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벼랑의 자연석으로 깎아 세운 네 개의 거대한 조각이 수천 년 동안 나일강을 내려다보며 아침 햇빛을 받아 빛난다’고 아름답게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집트 사회는 어린 거지들이 헤진 옷을 걸치고 지치지도 않은지 계속 따라다니면서 목걸이와 그림엽서를 팔고 있는데 애들 눈 위에 파리가 윙윙거리며 앉아 있다는 이집트 사회상은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크리스티를 처음 대한 것은 1973년 런던에 유학 간 직후였습니다. 학교로 가는 길에 연극 ‘쥐덫(Mousetrap)’에 관한 광고가 보이더군요. 서울에서 관광 온 분들도 이 연극을 보고 싶어 하구요. ‘문화관광’을 하려는 분들은 코벤트 가든(Covent Garden)의 왕립오페라 하우스나 로열 페스티벌 홀의 연주를 보고 싶어 하지만 몇 달 전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불가능하죠. 그날 표를 살 수 있는 건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와 벌거벗고 춤추는 ‘오, 칼카타!’ 그리곤 ‘쥐덫’ 정도였습니다. 덕분이 이 작품들은 몇 번씩 본 것 같네요.
‘쥐덫’의 광고는 요란했습니다. 한국전쟁 중에 시작했으며 미국의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 닉슨, 그리고 포드 대통령까지 다섯 대통령을 거치면서 계속되고 있는 연극이라는 겁니다. 1952년에 시작되었으니 주연 배우가 몇 번 갈리고 이제 엄마가 되어 딸을 데리고 보려왔다는 등등 흔치 않은 광고들이 보였습니다. 최근에 검색해 보았더니 아직도 St. Martin’s Theatre라는 같은 극장에서 계속하고 있군요. 2012년에 환갑잔치를 하였으니 광고내용이 더욱 풍성해졌겠죠? 미국 대통령은 그 뒤 카터부터 트럼프까지 몇 명 더 추가되었나요?
‘쥐덫’도 전형적인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입니다. 폭설로 외부와 차단된 산장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납니다. 당연히 범인은 내부에 있겠죠. 크리스티가 1947년 영국 왕 조지 6세의 어머니이자 엘리자베스 여왕의 할머니인 메리 왕비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BBC 라디오의 의뢰를 받고 쓴 방송극 ‘세 마리의 눈 먼 쥐(Three Blind Mice)’가 원작입니다. 그래서 연극 ‘쥐덫’에는 어린 애들 동요인 ‘세 마리의 눈 먼 쥐’가 배경음악으로 나옵니다. 메리 왕비는 크리스티의 열렬한 팬이라 하군요. 크리스티는 1주일 만에 ‘쥐덫’을 완성하고 메리 왕비는 이를 ‘듣고’ 매우 만족했다고 합니다. 크리스티는 1950년 이 극을 단편소설로 고쳐 쓰고 이듬해에 다시 희곡으로 무대에 올린 것이 연극 ‘쥐덫’입니다.
영국에 있을 때 우리 집에는 크리스티의 소설들이 여기 저기 뒹굴었습니다. 집 아이가 크리스티의 광팬이었기 때문입니다. ‘전집’이라도 될 만큼 크리스티 작품을 모우더군요. 그런데 서울에 와서는 한글판을 모두 사는 게 아닙니까? 손녀애도 크리스티의 작품을 좋아했습니다. 난 한 때 케이블 TV에서 방영한 몇 편만 보았을 뿐입니다. 이번에 <나일강의 죽음>에 대해 글을 쓰려고 딸애에게 이 책을 찾아 달라고 했더니 손녀보다 8살 아래인 손자 녀석은 별로 보지 않아 상자채로 창고에 넣어버렸다고 합니다.
이대 도서관에서 일신서적이 1991년 발간한 <나일강의 죽음>을 빌렸지요. 그리곤 두 달 기간이 만료되어 어제 6월 8일 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소득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정년 뒤 받은 도서관 출입증을 겸할 수 있는 명예교수 신분증을 재발급 받으라고 하더군요. 신분증 사진은 부임 첫해에 찍은 걸 정년 때까지 30년 사용한 것이죠. 저의 학교 홈피도 같은 사진입니다. (이대)교수들은 젊었을 때 찍은 사진을 오래 동안 사용하는 못된 습관이 있죠.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고 싶어서일까요? 담당 직원도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옛 사진으로 재발급하려 하기에 40살 되기 전에 찍은 사진을 지금 쓰는 건 좀 뻔뻔하지 않겠느냐면서 새 사진을 주었지요. 10년 전 여권용을 찍어 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10년은 젊은 사진이니 괜찮지 않은가요?(2018.6.9.)
사진 1, 슈퍼화성(2018.7.27.)
사진 2, 크루즈 선상에서 뒤에 보이는 것이 Old Cataract Hotel.
사진 3, 수위조절용 갑문으로 배가 들어가고 있다. 자기네 물건을 사라고 외치는 상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