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前 上書
설날 고향 파주의 선영을 찾아 돌아가신 어머님께 큰 절을 올렸습니다. 제가 선영을 찾는 것은 고작해야 설과 추석 그리고 한식날 등 일 년에 세 번 밖에 안 됩니다만, 이런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이 없다면 이마저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명절 때 여기저기 흩어져 사는 가족들이 다 함께 모여 차례를 지내고 선영을 찾아가 돌아가신 어르신들께 절을 올리며 그분들의 살아생전 모습을 그리며 추모하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가야할 미풍양속입니다. 이런 때가 아니면 시간을 쪼개어 바삐 사는 자식들이 한 자리에 모이기도 힘들고 조상의 은덕에 감사하며 큰 절을 올리는 것은 더더구나 힘들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기미독립운동이 일어나기 한해 전인 1918년 파주의 빈한한 농가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어머니께서 14세의 어린 나이로 저희 우(禹)씨 가문으로 시집오신 것은 먹고 살기가 어려운 친정집에서 한 입이라도 덜고자 민며느리로 출가시킨 것이다 하니 당시의 곤궁함이 어느 정도인가 쉽게 짐작됐습니다. 어머니를 며느리로 맞아들인 저희 집도 가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합니다. 저희 집 땅을 밟지 않고는 다른 동네로 나갈 수 없다 할 만큼 땅 부자였던 할아버지께서 물려받은 가산을 다 탕진하시고 말년에는 정신까지 온전치 못하셔서 힘들어 하시다가 아들이라고는 하나 밖에 없는 아버지께 밭 한 떼기 물려주지 못한 채 돌아가셨습니다. 홀로 되신 할머니께서 부족한 일손을 늘리고자 어머니를 민며느리로 받아들인 것이어서 어머니의 고생은 계속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설만 되면 어김없이 제가 떠올리는 한 분이 바로 어머니입니다. 어렸을 때 저희 시골에서는 설 차례를 끝내고 손님도 다 다녀갈 즈음인 정월 초닷새가 지나서 대보름날까지 한 열흘간이 아낙들이 한가하게 쉴 수 있는 때였습니다. 이때만 되면 동리 아낙네들이 제 집에 모여 어머니가 육전소설을 읽으시는 것을 들으시곤 했습니다. 어머니께서 힘드시면 초등학교에 다니는 저를 불러 대신 읽도록 하셨습니다. 동리의 다른 아낙네들처럼 학교문턱을 한 번도 넘지 못한 어머니께서 육전소설을 즐겨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동리 아낙들 누구도 깨우치지 못한 한글을 어깨너머로 혼자서 배워 익힌 덕분입니다.
눈으로 빨리 읽는 속독은 어려우셨던지 항상 소리 내어 천천히 읽으셨는데 그 책 읽는 소리가 하도 구수해 동리 아낙들이 제 집에 모여들었던 것 같습니다. 글 읽기는 웬만하셨지만 글쓰기는 삐뚤빼뚤 엉망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 글씨로 공책에다 매일매일 쓴 돈의 액수와 용처를 적어놓곤 하셨으니 동리아낙들로부터 대단하시다는 칭찬을 받을 만 했습니다. 어머니의 책읽기는 어린 제가 보아도 유별나셨습니다. 오일장이 서는 날에는 빼놓지 않고 머릿짐을 이고 십리를 걸어 장에 가셨습니다. 장에 가셔서 이런 저런 것들을 바꿔오셨는데 그 속에는 반드시 육전소설(?)이 들어 있었습니다. 표지 앞면에 총천연색 그림이 그려져 있고 나머지 속지는 모두 누런 종이였던 육전소설의 표1에는 어김없이 “****전”이라는 소설 제목이 굵은 글씨로 쓰여 있었습니다. “장화홍련전”, “숙영낭자전”, “조자룡전”, “을지문덕 전”등의 육전소설은 지금도 어렴풋이나마 그 내용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런 소설의 큰 특징은 모두가 고생고생 끝에 성공해 해피엔딩으로 끝나고 권선징악을 주제로 한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께서 자식들에 착한 끝은 반드시 있으니 남들에 해를 끼치지 말고 열심히 살라고 역설하신 것도 육전소설을 읽으시면서 그런 것들을 신념화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머니의 독서욕이 이러하셨으니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서 공부시키겠다는 의지 또한 남달랐습니다. 저희 동네에서 제가 제일 먼저 대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던 것은 집이 부유해서가 절대 아니었습니다. 동리에서 두 번째로 가난한 집에서 최상급 교육기관인 대학에 자식을 입학시킨 것은 어머니의 독서욕 못지않은 향학열 덕분이었습니다. 당신의 한 맺힌 향학열을 자식을 통해서 풀어보고자 허리띠를 졸라매고 저를 서울의 고등학교로 올려 보낸 것입니다. 정말 다행스러웠던 것은 어머니의 유별난 책 사랑이 제 몸에 그대로 전해졌다는 것입니다. 사오십년전만 해도 사교육이 성행하지 않아 죽어라고 책만 파면 공부 잘한다는 소리는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그나마 공부좀 한다는 축에 낄 수 있었던 것도 순전히 어머니의 책 사랑을 그대로 유전자로 물려받아 죽기 살기로 책을 파고든 때문입니다. 저의 책 사랑이 대학교를 졸업한지 38년이 지나도록 면면히 이어져온 것만도 어머니께 감사드릴 일인데 이에 더하여 당신의 책 사랑을 손자들에도 전해주시어 제 두 아들 또한 사교육비를 별반 들이지 않고 유수대학교를 졸업시킬 수 있었습니다.
“어머님 前 上書”
상서(上書)란 본래 웃어른에게 글을 올리는 것을 뜻합니다. 1960년대 초반 시골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 글을 잘 모르시는 동네 어르신들께서 군대 나간 아들 편지를 읽어달라고 제게 갖다 주신 일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런 편지를 읽어드릴 때마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오는 문구가 “부모님 전(前) 상서(上書)”와 “기체후일향만강(氣體候一向萬康)”이어서, 저는 그 때부터 “상서(上書)”라는 단어가 웃어른에게 글을 올리는 것을 의미함을 알았습니다. 동네 어른들의 이런 편지를 자주 읽어드린 제가 정작 어머님께 “기체후일향만강(氣體候一向萬康)” 하옵시었냐며 “어머님 전 상서(上書)”를 올린 일이 별반 없었던 것은 어머니께서는 저를 장가보내시고도 교편을 잡고 있는 며느리를 대신해 두 손자를 기르시느라 만 71세로 세상을 뜨시기까지 저와 함께 사셨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제가 올리는 상서(上書)는 서간(書簡)이 아니고 서적(書籍)입니다. 그것도 어머니께서 즐겨 읽으신 육전소설이 아니고 이제껏 제가 읽어온 책들입니다. 제가 본격적으로 책을 사 읽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나서입니다. 그 전에는 학비를 대는 것만도 벅차 교과서 외에는 신간을 사서보기가 어려웠습니다. 1972년 가을 “문학사상” 창간호를 사본 것은 지금도 기억에 새로운 것이 박경리님의 “토지”를 이 책에서 처음 접했습니다. 시사월간지 “신동아”를 매월 사보기 시작한 것도 같은 해였습니다. 이청준 님의 “당신들의 천국”을 감명 깊게 읽은 것도 신동아 덕분이었습니다. 전근을 가는 곳마다 제가 제일 먼저 사귀는 사람은 책방 주인이었습니다. 언제고 대형서점을 내보겠다는 욕심을 키운 것도, 서점의 이름을 “書鬱臺”로 점지해놓은 것도 그때부터였습니다. 지금쯤 제 고향 파주에 “書鬱臺”를 열고 한 쪽에 육전소설들을 전시해 놓았어야 하는 데 5년간 이끌어온 사업을 5년 전 정리하는 바람에 “書鬱臺” 개점의 꿈도 같이 접어야 했습니다.
3년 전에 한 후배가 제게 블로그를 개설해 주었습니다. 작년 봄 몸이 불편해 산행을 쉬고 있던 중 이참에 그동안 제가 가지고 있는 책들을 전부 모아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오늘 현재로 제가 읽은 것으로 올린 도서목록은 1,523권이고 이중 간단하나마 독후감을 함께 올린 것은 360편입니다. 그동안 여러 번 이사를 다니느라 족히 3-4백 권은 내버렸고 그 속에 육전소설도 들어 있었습니다. 당시로는 의식하지 못했는데 어머님께 큰 죄를 저지른 것으로 이런 불효가 또 어디 있겠나 싶어 후회막급입니다. 어머니의 손때가 묻은 책으로 제게 남은 유일한 것은 성가집입니다. 어렵게 한글을 깨우친 어머니께서 아라비아 숫자는 미처 다 배우시지 못했습니다. 육십이 넘어 며느리로부터 아리비아숫자를 배우시려 몇 번 시도하셨지만 끝내 다 익히시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성가 책에다 한글로 노래번호를 적어 넣으신 것을 보고 진작 아라비아숫자를 가르쳐드리지 못한 것이 엄청 후회됐습니다.
이번 상서(上書)에는 글씨가 작고 내용도 어려워 어머니가 읽으실만한 책이 거의 없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굳이 “어머님 전(前) 상서(上書)”를 올리는 것은 당신으로부터 책사랑을 유전자로 물려받은 제가 어머니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줄기차게 책을 읽고 있음을 보고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1차상서(上書) 내역
1.철학/종교/인생 133권
2.경제/정치/사회/미래 428권
3.역사/문화/인류학 191권
4.한국학/문학/국어/예술 567권
5.과학/교육/등산/지리 204권
계 1,523권
이 보고로 제 상서(上書)를 마무리할 생각이 아닙니다. 3천권을 다 채우고 다시 상서(上書)를 올릴 것입니다. 오는 3월부터 방송통신대의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게 되어 앞으로 4년 동안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고전소설도 더 많이 읽을 것입니다. 혹시라도 육전소설에 나오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고전소설을 읽게 되면 이 소설의 내용은 그때그때 어머님께 올리겠습니다.
최근에 저는 피터 J. 리처슨과 로버트 보이드가 함께 지은 “유전자만이 아니다(Not by genes alone:How culture transformed human evolution)”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의 주 내용은 인간의 진화경로를 바꾸게 한 것은 유전자만이 아니고 문화도 한 몫 한다는 것입니다. 14살에 시집오셔서 저희 집에 책 읽는 문화를 일구어 놓으신 어머님은 정말 위대하십니다. 그리고 더 할 수 없이 장하시다는 것도 이 책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어머님,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2010년 2월18일 산본에서
*이 글은 지난 3월 제가 소속된 국문과 스터디 그룹인 현운재의 카페에 한 번 올린 글입니다. 이 글에 나오는 "육전소설"이 정확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당시 그리 불린 것으로 기억하고 있어 육전소설이라 썼습니다.
첫댓글 정말 잘 읽었읍니다.어머니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절절 합니다.
나도 세아들의 엄마이고 여섯명의 손자세 손녀세 자주 들어와서 글 읽을수있게...
박경리 공원탐방기에서 한 번 인사드렸지요? 감사합니다.
5년전에 결혼한 큰 아들이 아직 아이를 낳지 않아 손주를 기다리는 형편입니다.
기쁘시겠습니다.
여기서 또 뵙네요^^
다시 뵈어도 반갑습니다. 2학기 출석수업 때나 뵐 수 잇겠습니다.
어린 시절 학우님의 환경이 어떠했는지 이글을 통해 알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학우님의 인상이 밝고 순수해 보이는 모습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감명 깊게 잘읽었습니다.^^
사모곡(思母曲)은 누가 어디서 언제 불러든 가슴에 와닿지요. 졸고를 감명깊게 읽으셨다니 부끄럽고 고맙습니다.
세월따라 어김이 없는 세대 교체지만 면면히 흐르는 혈통 속에 기상은 이어지고 있으니
삶이 덧없지가 않음을 느껴보는 아침입니다.
여간 성실하지 않으시면 저 많은 책을 다 읽으실 수가 없으시지요.
아직도 읽고 싶으신 책 모두 읽을 수 있도록 늘 건강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덥지만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정독이 아니고 속독이라서 칭찬받을만한 것이 못됩니다. 얼마전 박태상교수께서 일독을 권한 Adler교수의 "How to read a book"을 사서 읽기를 시작했습니다. 오랜만에 접하는 원서라서 시간이 걸리겠지만 방학 중에 마칠 생각으로 덤벼들었지요. 이 책은 별 수 없이 정독으로 읽어야할 것 같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후배님 나요 초등학교 5학년 부터 고3 졸업 하고도 몇년 더 살았나봐요, 그래서 경동을 잘 알지요 삼산교에서 그리고 큰 동생이 삼선 고등 학교을 나와서 그때는 동구 여상 그 곳이 산이 었는데요 요곳은 밤 사이에 내 땅이야 하고 그어 노면 그곳이 내땅 이되지요 그리고 영사모 카패에도 좀 들어 오세요...